서울 종로에 있는 한 고시원에서 발생한 화재로 7명이 숨졌다. 사진 제공 김민지

[뉴스앤조이-이용필 기자] 화마火魔는 2시간 만에 7명의 목숨을 앗아 간 뒤 사라졌다. 불길이 휩쓸고 간 자리에는 검은 그을음과 타다 만 집기구만 남았다. 11월 7일 새벽, 서울 종로에 있는 한 고시원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언론들은 앞다퉈 사고 원인을 보도하고, 희생자들의 안타까운 사연을 전했다. 시민단체들은 반복되는 참사를 지적하며 비주택자들의 주거권을 보장해 달라고 시위했다.

고시원 화재로 세상이 떠들썩할 무렵, 성진호 씨(가명·37)는 서울 구의역 인근 고시원에서 뉴스를 접했다. 남 일 같지 않았다. 무의식적으로 천장에 눈길이 갔다. 화재경보기와 스프링클러가 달려 있었다. 작동이 되긴 할까. 오싹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방문에 부착된 '화재 시 피난 안내도'를 들여다봤다.

원룸 형태를 띤 고시원은 한 사람이 지낼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으로 돼 있다. 두 평도 되지 않는 방에, 침대 끝부분에 책상이 달려 있는 구조가 많다. 샤워실과 주방은 공용이다. 그나마 괜찮은 고시원에는 방에 샤워실도 있다. 성 씨가 지내는 고시원에는 한 사람만 들어갈 수 있는 샤워실이 딸려 있다.

고시원은 '현대판 판자촌'으로 불린다. '인권'을 이야기하기 민망한 공간이지만, 생계형 일자리를 찾는 빈민층이 늘면서 고시원 수요도 꾸준히 늘고 있다. 현재 15만 명 정도가 고시원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된다. 평균 월세는 32만 8000만 원이다. 성 씨도 보증금 없이 한 달에 32만 원을 내고 지낸다. 고시원은 거주자에게 밥·라면·김치 등을 제공한다.

성 씨는 이곳에서 1년 5개월째 지내고 있다. 자유분방하고 어딘가에 얽매이지 않은 삶을 추구해 왔지만, 역설적이게도 두 평 고시원 방에 붙잡혔다. 그는 고시원의 정의를 '갈데없으면 오는 곳', '언제든지 떠날 수 있는 곳'으로 규정했다. 11월 12일 성 씨가 거주하는 고시원을 직접 찾아가 그의 삶을 들여다봤다.

한 층에만 19명 거주
'2평 세상'에서 의식주 해결
고시원 화재로 떠들썩해도, 안전 점검 無

성진호 씨는 2평 남짓한 고시원에서 1년 5개월째 지내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구의역 바로 옆에 있는 고시원은 2~4층으로 이뤄져 있다. 2~3층은 숙소이고, 4층은 공동 주방으로 이용한다. 거주자들이 가장 애용하는 옥상에는 빨래 건조대와 재떨이가 놓여 있다. 성 씨는 2층 13호에 거주한다. 45평 정도 되는 한 층에만 19호까지 있다.

안내를 받아 13호 방문을 열자 2평 남짓한 '누런 세상'이 펼쳐졌다. 원래는 하얬을 꽃무늬 벽지는 누렇게 변해 있었다. 침대 위에 널브러져 있는 이불도 빛이 바래 누리끼리했다. 책상과 침대 사이에 떡하니 자리 잡은 선풍기는 누렇다 못해 황토색이었다. 테이프가 칭칭 감긴 선풍기는 힘겹게 바람을 내뿜고 있었다. 성 씨는 "주워 왔는데 연식이 얼마나 됐는지 모른다. 고시원에서는 11월에도 선풍기를 켜야 한다. 갑갑하고 더우니까"라고 말했다.

창문도 없는 밀폐된 곳의 공기는 탁했다. 숨을 쉴 때마다 인간의 진액에 찌든 특유의 쉰내가 코끝을 자극했다. 나도 모르게 미간이 찌푸려졌다. 성 씨는 "냄새가 그렇게 심하냐"고 물을 뿐이었다. 공간이 협소해 침대 위에 나란히 앉은 채 인터뷰를 해야 했다.

책상과 침대는 2평 세상을 양분하고 있었다. 책상 위에는 15인치 TV와 노트북이, 책상 한쪽에는 수납장이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침대 바로 위에 설치된 기다란 봉에는 옷걸이가 잔뜩 걸려 있었다. 성 씨는 "웬만한 건 만족하는데 수납공간이 부족한 게 아쉽다"고 말했다.

성 씨는 모든 생활을 여기서 해결한다. 먹고, 싸고, 씻는 행위가 모두 이 안에서 이뤄진다. 4층에 공동 주방이 있지만 거의 이용하지 않는다. 성 씨는 "거주자들끼리 서로 데면데면하니까 각자 방에서 끼니를 해결한다"고 했다. 수납장 한곳에는 반쯤 남아 있는 간장통이 보였다. 요리도 하느냐고 묻자, 성 씨는 "입맛 없을 때 밥에 간장을 비벼 먹는다"고 했다.

자연스럽게 서울 종로 고시원 화재 이야기가 나왔다. 성 씨는 고시원에 살지 않을 때는 몰랐는데, 막상 살아 보니 죽음이 생각보다 가까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성 씨가 천장을 가리키며 말했다. "화재경보기와 스프링클러가 있지만, 작동이 되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천장에는 어른 손바닥만 한 환풍기도 달려 있었다. 환풍기 흡입구에는 먼지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세상은 고시원 화재로 시끌시끌하지만, 정작 고시원 측은 조용했다. 침대에 걸터앉은 성 씨가 말했다. "안전점검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거주자들도 따로 요구하지 않는다. 다들 먹고살기 바쁘니까, 그러려니 하고 지낸다."

경제난에 고시원 문 두드려
오랜 성찰 뒤 목회 포기
"하루하루 하나님 붙잡고 살아,
사업 대박보다 감사 강구"

옥상은 거주자들이 가장 애용하는 장소다. 그나마 맑은 공기를 마시고, 햇볕을 쬘 수 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성진호 씨는 고시원 생활이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다만 초기에는 힘들었다고 했다. 고시원이 주는 특유의 이미지가 부담스러웠다. 인생 실패자, 사회 취약 계층, 노인 등이 찾는 곳으로 생각했다. 실제 고시원에 들어와서 보니 밑바닥을 전전하는 인생이 많았다. 그렇다고 성 씨가 딱히 피해를 당한 적은 없다. 성 씨는 갑자기 찾아온 재정 문제로 고시원 문을 두드렸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었다. 어둡고, 칙칙하고, 갑갑한 기운은 3개월이 지나자 적응됐다.

성 씨는 현재 개인 사업을 하고 있지만, 한때는 목회자로 살았다. 파트·전임전도사를 거쳐 목사 안수까지 받았다. 안수까지 받아 놓고 왜 다른 일을 하느냐는 질문에, 성 씨는 "목회자로 살 자신이 없었다"고 했다. 신학교에서 배운 내용은 정작 교회에서 써먹을 수가 없었다. 교인들 눈치 보며 설교하는 자신이 싫었다. 성 씨뿐만 아니라 주위에 이런 고민을 하는 목회자 선·후배가 많았다.

성 씨는 "겉돌지 말고 양자택일을 하는 게 낫겠다 싶었다. 냉철하게 돌아보니까 나한테 목회 능력이 충분하지도, 십자가를 질 형편도 안 되더라. 오랜 고민 끝에 목회를 관두기로 했다"고 말했다.

다소 진지한 이야기가 오가는 중, 옆방 사는 남자의 기침 소리가 나무로 된 벽을 뚫고 들어왔다. "방음이 안 되는 것도 문제라니까." 성 씨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각종 사건 사고로 고시원이 회자되지만, 성 씨는 당분간 고시원을 떠날 생각이 없다고 했다. 이곳에서는 50만 원으로 한 달을 버티는 게 가능하다. 원룸으로 옮길 경우 돈은 배 이상 들어간다. 성 씨는 "고시원에 사는 사람 모두가 여기 있기를 싫어한다. 돈이 없으니까 그냥 지내는 것뿐이다. 하지만 이들은 언젠가 떠날 것이다. 청약에 당첨돼 떠난 사람도 있다"고 했다.

성 씨는 너무 한쪽에 치우쳐 고시원을 바라보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오늘날 '고시원'은 사회 낙오자들이 모여 사는 곳의 대명사가 되어 버렸다. '1인 룸'이나 '개인 룸' 이런 식으로 순화해 보는 건 어떨까 싶다"고 했다.

2평 남짓한 세상은 도저히 적응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머리가 무거워졌다. 마치 신경을 죽이는 듯한 고약한 냄새에 온몸의 세포가 총궐기하는 듯했다. 중간중간 숨이 턱 막히기까지 했다. 더는 인터뷰를 진행하기 어려웠다. 성 씨에게 양해를 구한 다음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고시원을 빠져나오니 숨이 트였다.

성진호 씨는 목회는 하지 않지만, 하루하루 하나님을 붙잡고 산다고 말했다. 이쯤 되면 "지긋지긋한 삶에서 벗어나게 해 주세요", "사업이 대박 나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할 텐데 성 씨는 조금 특이했다. 그는 "극단으로 치우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균형 있게, 평범하게, 형편에 맞춰 감사하며 살아가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고 했다.

교회가 고시원 거주자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 성 씨는 "고시원 거주자뿐만 아니라 누구나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다. 거주자들이 힘이 들면 알아서 교회에 찾아갈 것이다. 교회는 교회 본연의 역할만 잘하면 된다. 교인들 잘 케어하고, 사회 기대에 부응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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