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성적 지향을 결정하는 것은 생물학적 요인 하나가 아니며 양육·환경·문화·심리·사회적 요인이 상호작용하여 영향을 미친다. 보수 개신교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비정상적 양육이나 성적 학대 등의 경험이 성적 지향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준다는 과학적 증거는 없다."

[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개신교인이면서 정신과 전문의로 활동하고 있는 이서지 원장(해솔마음클리닉)이 말했다. 이 원장은 동성애는 질병이 아니기 때문에 선천적인지 후천적인지 연구할 필요가 없어졌는데도, 동성애를 반대하는 개신교인들은 여전히 이를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서지 원장은 성적 지향을 결정하는 요인이 아직 명확하게 밝혀진 게 아니라고 했다. 한두 가지 확정적 요인일 가능성은 거의 없고, 천성과 양육의 복잡한 상관관계로 추정된다고 했다. 또 이 원장은 "성적 지향이 선천 혹은 후천 요인 중 어느 것이 우세하느냐에 따라 쉽게 바뀔 수 있고 없고를 논할 수도 없다. 유전성이 약하다고 해서 바뀌기 쉬운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서지 원장은 동성애가 선천적인지 후천적인지 따지는 것보다 현재 성소수자가 겪고 있는 불행감에 집중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이서지 원장은 11월 1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기독여민회가 주최한 21회 종교개혁제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정신의학적 이해'라는 주제로 발제를 맡았다. 이 원장은 전 세계 정신의학회에서 성소수자를 어떻게 보고 있고, 현재 흐름은 어떠한지 설명했다.

기독여민회는 매년 종교개혁일 즈음 주제 하나를 정해 세미나를 개최해 왔다. 올해 주제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급진적 포용주의와 성소수자'였다. 기독여민회는 한국교회 주요 교단이 임보라 목사(섬돌향린교회)를 이단으로 내모는 모습을 보며 심각성을 느꼈다. 이에 조금 다른 시각에서 개신교와 성소수자 문제를 논의해 보자는 취지로 이 자리를 마련했다.

한국교회 반동성애 운동에 앞장서는 이들은, 동성애 인권 운동가들이 미국정신과의사협회(APA)를 협박해 동성애를 <정신질환의 진단 및 통계 편람>의 질병 목록에서 제외했다고 주장한다. 이서지 원장은 1970년대 초, 동성애 인권 운동권과 APA가 대립한 것은 맞지만, 그것을 계기로 APA가 특별위원회를 만들어 운동가들을 만났고, 심화 연구를 진행해 동성애를 목록에서 삭제하기로 결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정신분석학회는 APA가 동성애를 질병 목록에서 제외하는 것에 반대한 단체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APA보다 먼저 동성 결혼을 지지하고, 성소수자를 이성애자로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전환 치료는 정신분석적 치료의 원칙에 반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2002년에는 APA와 함께 동성 커플의 자녀 입양과 양육권 허용안을 지지하기도 했다.

이서지 원장은 한국교회 반동성애 운동이 성소수자를 향한 사회적·문화적 편견을 가중해 우울증과 같은 심리적 고통을 불러온다고 했다. 아무 조건 없이 사람을 환대한 예수의 발자취를 따르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동성애가 선천적·후천적인지 논쟁하는 것보다 그들이 현실에서 겪는 불행감과 심리적 고통을 다루는 것이 먼저라고 했다.

박경미 교수(이화여대)는 초대교회가 보여 준 '급진적 포용주의'를 지금 이 시대에 적용하면, 교회가 동성애자도 품을 수 있다고 했다. 이날 강연에는 140명 가까이 참석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한국교회 몇몇 교단은 성소수자가 교회에 오면 내쫓을 수 있고, 신학교에도 입학할 수 없게 했다. '성소수자와 성서'라는 주제로 발제를 맡은 박경미 교수(이화여대)는 이처럼 성소수자를 배제하는 행동이 과연 갈라디아서 3장 28절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는 구절이 내포한 '급진적 포용주의'를 반영한 모습인지 돌아봐야 한다고 했다.

박 교수는 바울이 이 구절을 썼다기보다는 당시 초대교회 공동체의 세례 고백문을 인용한 것이라는 게 학자들의 결론이라고 했다. 이 구절은 기독교 공동체 내에서는 그 어떤 지배 구조와 차별도 용납될 수 없다는 사실을 설명한다. 인종·계층·성별과 무관하게 그리스도 안에 모두가 하나라고 말하고 있다. 박 교수는 "이제 오늘의 상황에서는 여기에 한 가지 조항이 덧붙여져야 한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동성애자나 이성애자나 하나'다"고 말했다.

"초대교회가 혼란과 갈등 속에서도 갈라디아서 3장 28절의 선언을 지키고 실천해 왔듯이, 오늘 우리도 동성애자를 비롯해 성소수자들을 그리스도의 몸의 온전한 지체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이 교회가 오랜 역사적 굴곡에도 지켜 온 복음의 본질에 속하기 때문이다."

곽이경 국장(왼쪽)과 오은지 대표가 성소수자 당사자와 가족으로서 커밍아웃이 어떤 의미인지 설명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박경미 교수와 이서지 원장의 발제 후에는 성소수자 당사자면서 개신교 신앙인으로 인권 운동을 펼치고 있는 곽이경 국장(민주노총 대외협력국)과 성소수자부모모임 회원들이 쓴 <커밍아웃 스토리>를 펴낸 출판사 한티재의 오은지 대표가 참석해 커밍아웃과 관련한 경험을 풀어놨다.

오은지 대표는 여성에서 남성으로 성별을 전환하고 법적으로 정정 허가까지 받은 아들을 자녀로 두고 있다. 오 대표와 가족은 독실한 가톨릭 신앙인들이다. 오 대표는 아들의 존재를 주변에도 조금씩 알리기 시작했고 다니는 성당의 지인들에게도 털어놓았다.

오 대표는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 반응이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고 했다. 그동안 힘들었을 거라며 위로해 주는 사람도 있고 괜찮다고 말해 주는 사람도 있었다며, 우리가 지닌 그리스도교 신앙의 포용력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또 이야기를 들은 사람 중 한 명이, 사실 자신의 딸도 레즈비언이라고 고백했는데 얘기할 곳이 없어 괴로웠다는 심경을 전해 왔다고 했다. 오 대표는 같은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이 우리 예상보다 훨씬 많을 수 있고, 주위에 성소수자가 많이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고 했다.

대외적으로 자신의 성 정체성을 드러내고 활발히 활동하는 곽이경 국장은 성소수자와 지지자들이 말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지금도 일상에서 예기치 않은 순간에 커밍아웃해야 하는 일이 발생한다고 했다. 누군가 의도치 않게 한 발언이 성소수자를 향한 차별·혐오를 담고 있을 때, 그 앞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일 말이다.

곽 국장은 "혐오 발언 앞에 내 정체성을 직접 드러내면 그렇게 말한 사람도 굉장히 미안해하는 경우가 많다. 만나보지 않아서 그렇지, 직접 만나면 모두가 똑같은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계속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곽이경 국장은 과거 서울학생인권조례를 통과시킬 때 성소수자 인권 운동을 하는 개신교인들과 함께 밤샘 기도를 하면서 그 자리에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곽 국장은 보수 개신교인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팔아 성소수자 혐오에 앞장서고 있는데, 이럴 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개신교인들이 적극 연대하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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