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과 행동의 관계가 어떠한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복잡하고 어려운 일입니다.1) 그럼에도 우리는 대체로 생각하는 대로, 또는 믿는 대로 행동합니다. 또한 사람들의 행동을 바꾸려면, 세상과 인간에 대한 새로운 지식을 끊임없이 제공하여 생각을 바꾸어야 하겠지요. 기독교 교리의 중요성은 바로 여기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가 말해 주는 세상과 인간에 대한 체계적 지식은, 그 지식을 체화한 사람들에게 새로운 윤리와 삶을 제공합니다. 따라서 참된 기독교 교리에 대한 이해는 반드시 삶을 바꿉니다. 누군가 기독교가 궁금하다면, 기독교인이 믿는 교리들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것도 정확히 말이지요.

물론 이걸 위해 교리반에 들어가거나 서적을 읽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야 할 필요성도 충분하지요. 하지만 기독교인의 삶을 관찰할 수도 있습니다. 공산주의를 이해하기 위해서 마르크스의 저작을 읽어 볼 수도 있지만, 공산국가를 관찰할 수도 있으니까요. 특히 기독교의 경우에는 기독교인의 '일상'을 관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원래 세계관은 무의식적으로 하고 있는 일에서 더 잘 드러나기 마련이고, 큰 결심과 숙고를 거쳐야 하는 일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기 마련이지요. 기독교의 교리는 기독교인의 일상에서 분명히 드러납니다. 그리고 로버트 뱅크스는 무대를 1세기로 옮겨, 기독교인들이 믿는 바의 세계관을 엿볼 수 있도록 '푸블리우스'라는 가상 인물의 하루를 보여 주지요.

<1세기 그리스도인의 하루 이야기> / 로버트 뱅크스 지음 / 신현기 옮김 / IVP 펴냄 / 72쪽 / 6000원. 사진 출처 IVP

그는 1세기 로마의 한 남자입니다. 그는 지체 높은(그러나 상류층은 아닌) 가문 출신이고, 아내와 두 자녀(아들과 딸)와 함께 살고 있지요. 그리고 집안에는 친척 한 명과 세 노예가 있습니다(14~15쪽). 그리고 아마도 금융업에 종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56쪽). 그가 묘사하는 하루는 별나지도, 대단하지도 않습니다. 일어나서 먹고 마시며,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일을 하며, 집에 가서 잡니다. 물론 설정상 이 하루가 로마에서 화재가 일어난 다음 날이긴 하지만, 사실 다음 날이라고 특별할 것도 없지요(여담이지만, 종교개혁 501주년이라고 특별할 게 뭐가 있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500주년 역시 마찬가지겠지요).

그러나 그의 일상에서는 사상이 드러납니다. 1세기의 지체 높은 가장이 흔히 그랬듯 노예를 소유하고 있었지만, 노예를 해방시켜 주기도 하고(15쪽), 다른 가장들과는 달리 그들을 가족처럼 따뜻하게 대해 주기도 합니다. 때로 노예를 꾸중하고 정색하기도 하지만(23쪽), 이내 후회하기도 하지요(24쪽). 믿지 않는 사람들과 목욕탕에서 만나 대화하며 세계관의 충돌을 겪기도 하고(31쪽), 아이들과 대화하며(36~37쪽), 사람들의 뒷담화에 불편해하기도 합니다(53쪽). 사람들을 만나고 일을 대하는 일상에서는 늘 그의 신앙이 반영되고, 어떻게 대처하고 살아야 하는지 고민하기도 합니다. 그는 흔하지만 흔치 않고, 다른 것이 없는 듯 다릅니다.

푸블리우스는 하루 동안 그다지 위대한 일을 한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하루를 보내고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럼요. 잘 해냈어요. 하나님 감사합니다."(57쪽) 이 말은 위대한 일을 해냈기 때문에 잘 해냈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도전과 유혹, 내적 갈등 가운데서도 하루를 (그 가운데 죄도 지었겠지만) 살아 냈다는 말이겠지요. 그건 감사한 일입니다. 하루가 지났는데 하나님을 향한 생각이 변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명하신 뜻대로 (완전하지는 않지만) 살아냈다는 것. 그건 은혜를 받은 것이고, 따라서 하나님께 감사한 일이지요.

그러한 의미에서 이 책은 비록 소설이긴 하지만, 위대한 신앙 인물들의 전기만큼이나 감동을 줍니다. 역자는 후기에서 이 책을 '간증'으로 읽었다고 했는데(67쪽), 저는 이 책을 전기로 읽었습니다. 이러한 전기야말로 장삼이사張三李四 그리스도인들에게 힘을 주지요. 위대한 결단과 커다란 일을 해내는 그리스도인들은 소수이며, 사실 그들의 삶만이 탁월한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일상을 살면서 겪는 문제들에 대한 소소한 결단 역시 위대하며, 그날 해내야 하는 작은 일 역시 성경적으로 해내려면 하나님을 향한 신뢰가 필요하니까요.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일상은 작은 것이라도 위대합니다. 그 일상 자체가 위대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와 함께하시는 분이 위대하시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한 사람의 일상 이야기는 그 사람의 생각과 믿음을 드러냅니다. 물론 우리는 늘 생각한 대로, 또는 믿는 대로 사는 것이 아니며,2) 모든 명목상의 기독교인들이 정말 성경이 말하는 기독교적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기독교적 생각을 가지고 기독교적 삶을 살아가는 한 남자의 일상(비록 소설이긴 하지만)이, 지금 우리 삶과 얼마나 다른지를 생각해 보면서 우리가 해야 할 숙제들을 발견하는 것은 정말 의미 있는 일일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읽는 데 20분이 걸렸지만 이 책이 제시하는 숙제를 풀려면 20년이 넘는 시간을 보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으니까요.

※사족

이 책은 소설입니다. 따라서 이야기가 있고 결말이 있습니다. 작은 책이고 신앙서적으로 분류되어 있기 때문에 많은 분들이 SNS에서 소설의 결말까지 다 까발리는 서평을 쓰곤 하시는데, 제가 보기에는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결말을 알고 보면 이 책을 보면서 느낄 감동이 (당연하지만) 현저히 줄어들어 버리니 말이죠. 예비 독자시라면 가급적 서평 보지 마시고, 책을 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스포일러 경고도 하지 않고 결말 부분을 말하는 서평을 쓰신 분들은, 스포일러 경고 정도는 달아 주셨으면 합니다.

이정규 / 시광교회 담임목사, <야근하는 당신에게>(좋은씨앗), <새가족반>(복있는사람) 저자

1) 그럼에도 오지랖을 좀 부리자면, 마이클 폴라니의 저서들을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다. 특히 그의 <개인적 지식>(아카넷)이나 <암묵적 영역>(박영서)은 내게 큰 도움이 되었다.
2) 이 문장에서 또 오지랖을 부려 보자면, 이 문제에 관해 제임스 K. A. 스미스의 <하나님나라를 욕망하라>(IVP)를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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