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용필 기자] '교회 세습'은 더 이상 교계에 국한한 문제가 아니다. 부와 권력을 대물림하는 교회 세습을 향한 사회적 비판이 거세다. 교계 안팎에서 세습을 규탄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정작 각 교단에서 세습과 관련한 논의는 활발하지 않다. 세습금지법이 있어도 변칙적으로 세습하는 판에, 법도 없는 교단이 대다수다.

기독교대한성결교회(기성·윤성원 총회장)도 세습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기성 총회장을 지낸 이용규 목사는 2013년 1월 아들에게 성남성결교회를 물려줬다. 교단에서 대형 교회로 꼽히는 수원 세한성결교회 주남석 목사는 지난해 4월, 둘째아들에게 교회를 세습한 바 있다.

교단과 신학교가 잠잠한 가운데, 학생들이 먼저 논의의 장을 열었다. 기성 소속 서울신학대학교 약한자들과동행하는서울신학대학교사람들(약동하는서신인)과 한국기독학생회(IVF)가 10월 26일, 배덕만 교수(기독연구원느헤미야)를 초청해 교회 세습 반대 세미나를 열었다.

약동하는서신인 총무 박김성록 전도사는 "명성교회 문제로 세습이 화두가 됐지만, 학교와 교단에서는 전혀 논의가 안 되고 있다. 기성은 대형 교회가 많지 않은데도, 알게 모르게 세습이 진행 중이다. 경각심을 가지기 위해 이번 세미나를 열었다"고 말했다.

배덕만 교수가 자신의 모교 서울신대에서 교회 세습 반대 강의를 진행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배덕만 교수는 서울신대를 나온 기성 소속 목회자이기도 하다. 배 교수는 한국교회의 세습 반대 운동 역사를 소개하면서, 왜 세습에 반대해야 하는지 등을 설명했다.

세습은 '북한', '재벌' 등에 따라붙는 수식어였다. 2000년대 초반 금란교회가 부자 세습을 하면서 '교회' 세습이 이슈가 됐다. 이 시기를 전후로 교계에는 세습 반대 운동이 일었다. 그럼에도 세습은 계속돼 왔다. 배 교수는 "세습은 부끄러운 일이고 하면 안 되는데 일반화·보편화했다. 요즘에는 세습을 안 하면 이상하게 여길 정도가 됐다"고 말했다.

세습한 교회들은 몇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배 교수는 "목사의 권위가 강하고 보수적이다. 인구가 많은 서울이나 수도권, 지방 대도시의 교회들이 주로 세습을 한다"고 말했다. 특히 대형 교회보다 규모가 300~500명 정도 되는 중형 교회 비중이 높다고 했다. 중형 교회는 아버지 목사가 개척을 했고 교인들 통제가 용이해 세습하는 데 유리하다는 것이다.

교회 세습이 이슈가 되다 보니,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예장통합)과 기독교대한감리회(감리회)는 '세습금지법'을 제정했다. 그러나 법망을 교묘하게 피해 세습한 교회들도 있었다. 감리회 소속 임마누엘교회(김정국 목사)가 대표적이다. 배 교수는 "대놓고 세습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징검다리 내지 교차 세습 등 변칙적으로 한다"고 말했다.

교회 규모가 크든 작든 세습의 멍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배 교수는 "가난한 교회의 세습은 괜찮다는 풍조가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50명 모이는 교회에 청빙되기도 어렵다. 한국교회 지형도가 바뀌고 있다. 세습은 사이즈의 문제가 아니다"고 말했다.

교회 세습을 옹호하는 이들은 "자녀가 대를 이어 하면 교회가 안정적이다", "아버지 목사의 목회 철학을 그대로 계승할 수 있다", "세습이 아니고 승계다", "아들 목사를 청빙하면 안 된다는 주장은 역차별에 해당한다"고 말한다.

배덕만 교수는 "이들의 주장이 틀린 게 별로 없는 것 같지만, 본질을 살펴보면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배 교수는 "아버지 목사가 보암직하고 먹음직하니까 (교회를) 물려주는 거다. 너무 좋으니까 다른 사람 주기 싫은 거다. '탐욕'은 성경이 말하는 악의 근원이다. 욕심을 극복하는 게 기독교 영성인데, 이 영성을 억압하거나 무시하고 있다"고 했다.

중세 가톨릭이 몰락한 이유 중에는 '성직매매'가 있었다며, 오늘날 교회 세습도 이에 해당한다고 했다. 배 교수는 "세습은 교회가 타락했다는 가장 결정적 증상이다. 빛과 소금으로 존재해야 할 교회가, 있어야 할 자리에서 넘어져 버리고 더 이상 교회가 아닌 게 됐다"고 말했다.

교회의 몰락은 사회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배 교수는 "역사를 살펴보면 모든 제국이 망하기 전 종교부터 먼저 썩었다. 교회가 타락하면 사회와 국가를 제어하는 브레이크가 고장 날 것이고, 문화도 망가질 것"이라고 했다.

배 교수는 세상에 만병통치약이 없듯이, 한국교회의 병폐도 일순간 치유할 수 없다고 했다. 세습을 하지 않도록 '교육'해 나가야 한다고 했다. 신학교가 먼저 세습은 생명나무가 아닌 선악과이고 범죄라는 것을 가르쳐야 하고, 나아가 교인들도 계몽해야 한다고 했다. 교단 차원에서는 변칙 세습을 하지 못하게 법을 정교하게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서울신대 약동하는서신인과 IVF는 세습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기 위해 이번 세미나를 개최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강의가 끝난 직후 학생들은 포스트잇에 질문을 적어 제출했다. "이 싸움이 언제까지 지속될까", "세습 반대 운동을 하는데 별로 바뀌는 게 없다", "교회 세습 중단이 가능할까" 등 주로 냉소적 반응을 보였다.

배덕만 교수는 쉽지 않고 불가능해 보일 수 있지만 세습이 잘못됐다는 이야기를 계속해야 한다고 했다. 배 교수는 "마치 '톰과 제리'의 싸움이 될지라도 (세습 반대) 법과 제도를 마련하고, 계몽 운동을 해야 한다. 힘겹고 주님이 오실 때까지 싸움이 계속될 수 있지만, 경계해 가며 싸움을 멈춰서는 안 된다"고 했다.

교회 세습 반대 강의는 1시간 30분간 진행됐다. 학생들은 강의에 만족감을 표했지만, 참석 인원이 10여 명밖에 안 된 건 아쉬움으로 남았다. 박김성록 전도사는 "신학교 분위기가 보수적인 데다가 교회 세습 문제에 관심이 없다. 앞으로 이와 관련한 논의의 장을 확대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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