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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나쁜 그리스도인
[정신실의 신앙 사춘기] 생각하지 않는 죄
  • 정신실 (newsnjoy@newsnjoy.or.kr)
  • 승인 2018.10.05 19:05

M공화국이라 불리는 동네, M교회 바로 앞 아파트에 살았었다. 시기도 참 좋아서, 내 집 베란다에 앉아 M교회 대성전 건축을 목도하는 은혜를 누렸다. 주일에도 쉬지 않는 공사 소음에 인내심을 연단받는 시간이었다. 주일 아침과 특새가 있는 새벽마다 골목을 가득 메운 불법 주차 차량들로 시험이 들어 안티 크리스천과 한마음 되어 욕을 하고는 했다.

9월 13일 M교회 새벽 예배 설교 영상을 기사로 보았다. 출정 나팔소리로 들렸다. 맞을 만큼 맞았고 참을 만큼 참았으니 이젠 일어나 싸우라는 것 같았다. '당신들이 (순하고 착하여)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다 일어나면 막강한 힘이 된다. 그러니 숨어 있으면 안 된다. 세습을 반대하는 교회 안팎의 누구 됐든 싸우라'고 독려하는 것 같았다. 특히 이 부분이 감동적이었다.

"우리는 악한 마음 하나도 없어. 그러나 우리 교회에 고통과 아픔과 저주와 멸망을 가져다주는 그분들을 잊으면 안 돼요."

이것은 흡사 조폭 큰 형님의 돌려 말하기 신공 같았다. "야야, 형님이 이런 것까지 신경 써야겠노?" 알아서 처단하라는 말씀이다. "그분들을 잊으면 안 돼요"라는 말이 꼭 그렇게 들린다. 아, 당회장 목사님(M교회 교인들은 꼭 그렇게 부르더라)께서는 교인들에게 평화가 아니라 검을 주러 새벽 강단에 오셨구나.

그 시절 가깝게 지내던 아이 친구의 엄마가 있었다. 열심 있는 M교회 교인이었고 좋은 이웃이었다. 가끔 부탁하여 M교회 여전도회에서 만든 돈가스를 사기도 했고, 이것저것 나눠 먹기도 했다. 출정식 설교를 들으며 그 엄마 얼굴이 떠올랐다. 그 엄마와 함께했던 또 다른 아이의 생일잔치가 불현듯 생각났다. 엄마들도 함께 오라는 초대가 있어서 뻘쭘했지만 발걸음을 했다. 아이들과 함께 엄마 몇이 있었고 연배가 더 높은 여자분도 와 있었다. 알고 보니 모두 한 구역 식구였고 나이 드신 언니는 구역장님이셨다. 나 들으라고 하는 얘긴지, 평소 대화가 그런지 '당회장 목사님' 얘길 많이 했다. 당회장 목사님의 설교가 얼마나 좋은지, 그분의 신령하심이 주요 내용이었던 것 같다.

아직 그쪽에 살고 있었다면, 요즘 같은 시절 모닝커피를 같이 한다면 어떤 대화가 오갈지가 그려진다. 내 입에서 좋은 소리 나갈리 없을 것이고, '숨어 있지' 않고 '잊지 않기로' 작정한 그들이 힘을 주어 방어할지 모른다. 이에 질세라 신앙 사춘기, 영적 중2병인 나도 물러서지 않고 공격할 것이다. 김하나님을 하나님 대신 섬기는 우상숭배를 지적할지 모른다. 아마도 내가 도발할 것이고, 착하고 순한 사람들이지만 그들은 교회의 명예를 지키려 할 것이다. 게다가 당회장 목사님의 선전포고도 있었으니 강공을 펼칠 것이다.

모르긴 해도 아직 그곳에 살고 있다면 싸울 것 같다. 필연코 M공화국 한복판에서 싸움을 걸고 있을 것이다. 내가 아니어도 교회와 당회장 목사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싸울 운명에 처하고 만 것이다. 당회장 목사님을, 교회를, 하나님을 지키기 위해 싸울 것이다.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라고, 세습의 '세'자만 나와서 선제공격을 할지도 모른다. 그러다 온전한 정신의 친척과는 멀어지고, M교회 교패를 붙이지 않은 이웃과 단절될지 모른다. 그러면 그것을 주를 위해 받은 핍박으로 온전히 기쁘게 여길지도 모른다.

상상력을 과하게 발동해 본 것이다. 아이 친구 엄마와 그 구역식구들 얼굴이 떠오른 것은 사실이지만 싸우는 장면은 상상일 뿐이다. 담임목사 수호를 위해, 십자가 군기 하늘 높이 쳐들고, 그의 군사 되어 용맹스럽게 나가는 이들을 많이 본 탓이다. 목사의 범죄를 덮는 일에 얼마나 맹목적인지 다정하던 교우를, 가까운 친척을 꽃뱀과 마귀 사탄으로 모는 일에 서슴지 않는 이들을 보면서 받았던 충격이 크다. 기독교 집안이라 이 교회 저 교회 친척이 널렸다. 내로라하는 범죄자 목사들이 있는 교회에 친척들이 있었고, M교회에도 가까운 친척이 있다. 연락이 뜸해져서 그렇지 가까이 살던 때였다면 싸우고 말았을 것이다. 당회장 목사님, 존경하는 담임목사님을, 사랑하는 목사를 모욕하는 자는 원수에 불과하다.

대개는 순하고 착한 사람들이다. 목사에게만이 아니라 이웃에게도 그러할 것이다. 거절할 줄 모르고, 힘든 사람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기꺼이 희생하고 양보하는 착한 크리스천들이다. 웬만하면 좋고, 웬만하면 괜찮고, 웬만한 건 다 은혜로 넘어가는 사람들일 것이다. 이런 이들이 대개 목사의 호위무사가 된다. 착하고 충성되고 순종적인 것이 무엇이 문제인가. 교회를 지키겠다는 것이, 분란을 막자는 뜻이 무엇이 문제인가.

착한 것도 죄가 될까? 은혜로 풀고, 형제(특히 형제라 부르기도 황송한 주의 종의) 허물을 덮어 주는 것이 뭐 그리 나쁜 일인가 말이다. 착한 것이 죄가 될까? 더는 가릴 수 없이 명백히 드러난 목사의 범죄 앞에서, 슬며시 호위무사 역할을 내려놓으며 하는 말들이 있다. "나는 순종한 죄밖에 없다!" 권력형 범죄에 연루된 이들 중에도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꼭 있다. "내겐 아무 권한이 없었다. 나는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다."

2차 대전 중 나치의 친위대 장교로 유대인 학살에 가담한 아돌프 아이히만이 1960년 5월 이스라엘 비밀경찰에 체포되었다. 아이히만이 예루살렘 재판정에 섰을 때 사람들은 '인간의 얼굴을 한 악마'를 확인하고자 했을 것이다. 기대와 달리 그는 '괴물'이 아니었다. 아내를 사랑하고 자식을 끔찍이 아끼는 지극히 평범한 한 남자였다. 심지어 친위대에 들어간 것도 친구의 권유를 받아 마지못해서였단다. 이 재판을 지켜본 한나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을 말했다. 아이히만이 유대인 말살이라는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른 것은 그가 타고난 악마였기 때문이 아니라 아무런 생각 없이 자신의 직무를 수행하는 결과라는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성실하고, (어쩌면 착하게) 엄청난 살인을 저지른 것이다.

나빠서 나쁜 게 아니다. 착하고 성실하더라도 '아무 생각 없음', '사유와 성찰 부재'에서 악이 발생한다. 생각하지 않은 것이 죄이다. 내 행동과 말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하지 않은 죄, 한나 아렌트가 말하는 바 '무사유의 죄'이다. M교회 목회 세습은 몇 만 교인들이 깔아준 '무사유의 죄'라는 멍석 위에서 가능할 터이다.

스캇 펙은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의 진단에서 심리·영성적으로 한 발 더 나간다. 정신의학자로서 평생 수많은 사람을 상담한 스캇 펙은 과학적 태도로 객관적 추론을 통해 인간의 내면을 탐구하였으며 영성적 태도 또한 잃지 않았다. 영성적이라 함은, 그 자신이 정의하는 대로 "만물을 지배하는 보이지 않는 질서와 조화를 이루기 위한 시도"를 말한다.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을 날카롭게 분석하되 보이지 않는 더 많은 부분을 인정하고 존중한 것이다. 과학적이며 영성적 태도로 인간 내면을 치유했던 그의 끝은 '회심'이었다. 마흔셋에 자발적으로 세례를 받고 기독교인이 되었다.

내면에 대한 정직한 탐구로 신앙인이 된 그가 경험을 통해 얻은 확실한 결론은 '악은 존재한다!'이다. 악한 사람은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상담하며 만난 어떤 사람들, 겉모습은 멀쩡하고 태도는 한없이 예의 바르며 심지어 도덕적인 듯 보이지만 끝없는 거짓말로 의사를 속이는 사람들로 혼란스러웠다. 그 지점에서 자신의 전공 정신의학 서적 어디에도 나와 있지 않은 질병의 이름을 붙였다. 남을 속일 뿐 아니라 그 누구보다 자신을 속이는 '거짓의 사람들', 즉 악한 사람들이라고 하였다. 그의 저작 <거짓의 사람들>(비전과리더십)은 악한 사람들에 관한 탐구이다. 스캇 펙의 악인 역시 그저 나쁜 사람이기보다는 '착한 (모습을 띤) 나쁜' 사람이다.

"악은 평범하고 정상적이며 심지어는 합리적인 것처럼 나타나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악한 사람들은 위장술의 도사이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든 자기 자신에게든 자신의 참된 색깔을 있는 그대로 열어 보이지 못한다." (스캇 펙, <거짓의 사람들>)

고상하고 도덕적이며 순종적인 모습을 띠고 일상을 살고 있을 사람들. 심지어 날카로운 논리로 부패한 교회를 비판하는 개혁가일 수도 있다. 누구보다 말과 글이 번지르르한 나 자신일 수도 있다. '너도 죄인, 나도 죄인, 인간은 모두 죄인'이라는 환원주의로 가자는 말은 아니다. 마르틴 부버(Martin Buber)를 인용하면 이렇게 구분된단다. 악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과정 중에 있는 사람들과 이미 미끄러져 들어가 '본질적인' 악에 먹혀 버린 '추락한 피해자들'이다. 글쎄. 착하고 바른 모습을 띠고 어디에나 있는 악한 사람이 누구인지, 그가 지금 미끄러져 들어가는 과정에 있는지, 이미 먹혀 버린 상태인지 판단할 근거나 능력이 내겐 없다.

스캇 펙은 악에 관한 두 가지 본질을 제시한다. 인간 본성 안에 있는 악의 쌍두마차는 '지독한 게으름'과 '나르시시즘'이라고 한다. 여기서 게으름이란 성장을 위한 고통을 감수하지 않으려는 적극적 나태함이다. 스스로 생각하지 않으려는 게으름, 한나 아렌트의 '무사유의 죄'에 맞닿아 있는 것 같다. 생각하는 고통, 생각 끝에 올 변화와 성장의 고통을 맞닥뜨리지 않으려는 적극적 수동성이다.

깊이 생각하는 고통, 책임을 면피하는 딱 좋은 방법은 집단의 가치관에 기대는 것이다. 권위자 말을 전폭적으로 수용하는 것이다. 일본 철학자 나카지마 요시미치는 공동체 보호색으로 자신을 숨기고 사는 사람이라고 표현한다[<니체의 인간학>(다산3.0)]. 교회, 공동체, 사회단체, 목회자, 목소리 큰 논객에 기대어 착한 고양이 눈을 하고 동조하며 찬사를 보내다 호위무사가 되는 것이다. 진심으로 두려워하는 것은 공동체에서 배제되어 보호색을 잃는 것이기에 누구보다 현재 자신이 속한 집단에 헌신한다. 평소에는 지극히 부드럽고 온화하지만 자기 안전이 위협을 받는 때가 되면 만사를 팽개치고 권위를 지키는 투사가 된다. 이를 위해서라면 모든 사람을 배신하고, 지금 막 내뱉은 주장을 취소할 수도 있는 사람들. 착한 나쁜 사람 아닌가.

게으름보다 더 치명적인 것은 스캇 펙이 말하는 악의 두 번째 본질인 나르시시즘인지도 모른다. 브래넌 매닝이 <아바의 자녀>(복있는사람)에서 말하는 것처럼 "죄의 본질은 어마어마한 자기중심성"이다. 사유하지 않는 게으른 사람이 착한 나쁜 사람이라면, 성찰하지 않는 자기중심적 인간은 "의인이라 칭하는 죄인"이다. 과도한 자기만족의 사람이다. 바리새인들의 치명적 잘못이 율법을 칼같이 지키는 그 자체가 아니라 '이만하면 됐지!'라는 종교적 우월감에서 비롯한 자기중심성이다.

나르시시즘이 교묘한 게으름을 만나면 어떻게 될까. 나르시시즘에 찬 자신의 후광이 되어 줄 셀럽 목회자를 치켜세우며 곁에서 마음으로 충성한다. 그를 높이고 칭찬하며 적당히 자신의 영광도 함께 취한다. 셀럽의 약점을 모르는 바 아니고, 때로 냉철한 판단도 하지만 개인적 관계성 안에서 이해하고 덮는다. 그러던 어느 날, 셀럽의 치명적인 치부가 드러나고 그는 추락하고 만다. 그러면 누구보다 먼저 돌을 던질 것이다.

"세상에는 좋은 목사, 나쁜 목사 딱 두 종류 밖에 없는데 알고 보니 나쁜 목사였네! 잘도 속였군. 역시 사람은 믿을 게 못 돼."

치켜세우고 동조했던 자기 행적을 무화하기 위해 더 큰 소리로 비난하고 앞장서서 돌을 던진다. 누구보다 날카롭게 사유할 수 있지만 자신에 대해서는 성찰할 수 없는, 성찰하지 않는 게으름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만하면 됐지', '내가 뭘 했지', '나는 뭘 좀 알지', '그거 맨 처음 시작한 게 나야'. 나르시시즘은 약도 없는 악의 질병이다.

그 인간이 그런 줄 알았으면 내가 그렇게 충성을 했겠는가. 나는 충성한 죄밖에 없다, 교회를 사랑한 죄밖에 없다, 시키는 대로 한 죄밖에 없다. '~밖에 없는' 작은 죄밖에 짓지 않은 교인들이 넘쳐난다. 돈, 섹스, 권력에 관련한 강력 범죄를 저지르고 회개하지 않는 목회자가 많지만 '~밖에 없는' 작은 죄를 지은 교인 수보다는 훨씬 적다. 단독 범행일 리 없다. 죄는 본질상 얽히고설켜 위장되는 것이다.

권위에 찍히고 싶지 않아 싫은데 좋은 척 열심히 했던 일, 까칠한 사람 소리 듣고 싶지 않아 스스로 입을 틀어막고 말았던 순간들, 불합리한 줄 알면서 갈등이 두려워 눈감고 추진했던 그 일들, 충성심을 보이기 위해 뜬금없이 날린 아부, 그 수치심을 지우고자 또 하고 또 했던 변명. 이 모든 것들로 큰 범죄에 일조했을 것이다. 악은 자기 성찰 앞에서 맥을 못 춘다고 하는 스캇 펙의 당부와 같은 말을 마음에 새기며 마쳐야겠다.

"그들은 마침내 자신의 게으름과 나르시시즘을 끊임없이 성찰하고 그에 따라 자신을 정화하는 일이 각 개인의 책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한 개인적 정화는 각 개인의 영혼의 구원뿐 아니라 그들이 속한 세계의 구원을 위해서도 필요하다는 것을 터득할 것이다."

정신실 작가가 '신앙 사춘기'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연재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인터뷰 기사(바로 가기)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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