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박요셉 기자] 대체복무제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국방부·법무부·병무청 등이 10월 4일 공동 주최한 '종교 또는 개인적 신념 등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대체복무제 도입 방안 공청회'에서는, 대체 복무 기간을 현역 육군 병사의 1.5배 수준으로 책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국방부 등 관계 부처는 올해 6월부터 대체복무제 도입을 위한 실무추진단과 민간자문위원회를 운영해 왔다. 당사자 의견을 수용하기 위해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를 직접 면담하고, 대체 복무 분야를 찾기 위해 국내 교도소 및 소방·사회복지시설을 답사하기도 했다.

이번 공청회는 실무추진단이 10월 중 대체 복무 방안을 최종 확정하기 전, 국민 여론을 폭넓게 수용하기 위해 준비한 자리였다. 행사에는 300여 명이 참석했다. 발제자와 토론자들은 주요 쟁점인 대체 복무 기간과 복무 분야를 놓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그러나 일부 참석자가 대체복무제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패널들을 향해 고성을 질러 잠시 소란이 나기도 했다.

대체복무제 실무추진단이 국민 여론을 수렴하기 위해 공청회를 열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국제사회·국내 여론 고려하면 1.5배가 바람직"
복무 분야로 교정·소방·사회복지 등

주 발제자로 나선 임재성 변호사(법무법인 해마루)는 대체 복무를 징벌적 제도가 아닌 병역거부자의 권리를 존중하는 방향으로 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체복무제를 논의할 때 가장 첨예한 쟁점 중 하나가 '복무 기간'이다. 임 변호사는 "대체 복무 기간은 대체 복무의 난이도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다. 국제사회도 복무 기간을 놓고 오랫동안 고민했다. 그 결과, 현역(육군)의 1.5배가 바람직하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했다.

대체 복무를 시행하고 있는 나라 중 대다수가 이미 복무 기간을 2배 미만으로 정하고 있다. 임 변호사가 소개한 25개국 중 현역의 2배 이상을 복무 기간으로 설정한 곳은 핀란드밖에 없었다. 참고로 핀란드는 현역 복무 기간이 5.5개월이다. 독일·대만·덴마크·스웨덴·알바니아 등은 대체 복무 기간이 현역과 동일하다. 임 변호사는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를 비롯한 국제기구들이 대체 복무 기간을 현역의 2배로 설정하는 것은 인권침해로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국내 여론도 1.5배를 지지하고 있다. 임 변호사는 올해 7월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시행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 33.4%가 1.5배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19.4%가 동일한 기간으로 책정해야 한다고 답했다고 했다. 같은 달 리얼미터가 실시한 '적정 대체 복무 기간에 대한 국민 의식 조사'에서도 34%가 1.5배를 지지하고, 17.6%가 대체 복무 기간을 현역과 동일하게 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국민 과반이 1.5배 이내를 지지하고 있는 것이다.

임 변호사는 "2배 이상을 주장하는 이들의 근거 중 하나가 '국민 공감대', '박탈감' 등이다. 복무 기간을 짧게 하면 군 복무를 수행한 이들이 박탈감을 느끼고 대체복무제를 악용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주장에 근거가 없다는 사실이 두 여론조사에서 확인됐다"고 말했다.

공청회에서 제기된 쟁점은 복무 기간뿐이 아니었다. 임재성 변호사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가 교정 및 소방·사회복지시설 등 다양한 곳에서 대체 복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이 비군사 영역에서 복무하면서 국가 의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대체 복무의 본질이라며, 취지에 부합한 대체복무제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이들에게 선택지를 주지 않고 제한된 분야에서만 복무하라고 강요하는 건 또 다른 인권침해가 될 수 있다. 복무 영역을 다양하게 넓혀 사회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이기도 한 임재성 변호사는 적절한 대체 복무 기간으로 현역의 1.5배를 주장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대체 복무 기간 2배에
지뢰 제거, 유해 발굴 등
비전투 분야 시켜야"
군 당국은 부정적, 헌재 취지도 어긋나

또 다른 발제자 지영준 변호사(법무법인 저스티스)는 대체 복무 기간이 현역의 2배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지 변호사는 현역 복무 기간이 군마다 다른 점을 강조했다. 현재 육군은 1년 9개월인 반면, 해군과 공군은 각각 1년 10개월, 2년이다. 그는 육군(국방 개혁 감축안 기준으로 18개월)의 2배(36개월)가 되도록 대체 복무 기간을 정해도, 공군(국방 개혁 기준으로 22개월)의 1.6배밖에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대체복무제를 도입한 다른 국가들도 군마다 복무 기간이 다른 건 마찬가지다. 일반적으로 가장 많은 입영 대상자가 복무하는 육군을 기준으로 대체 복무 기간을 산출하고 있다.

한국은 다른 국가보다 군 복무 기간이 길기 때문에 배수가 아니라 개월 수로 기간을 따져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2.1배를 대체 복무 기간으로 정한 핀란드는 현역 복무 기간이 5.5개월로, 한국 육군 현역병의 1/4도 안 된다. 1.7배를 채택하고 있는 그리스는 현역 복무 기간이 9개월이다.

지영준 변호사는 병역거부자를 지뢰 제거 등 비전투 분야에 복무하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지 변호사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이 대체 복무 분야로 '비전투 업무'를 맡아야 한다고 했다. 의무醫務나 요리, 유해 발굴 혹은 지뢰 제거 등은 총을 들지 않기 때문에 이들이 맡기에 적절한 분야라는 것이다. 그는 "최근 여호와의증인 교인들이 입영 자체를 거부하는 추세지만, 1990년대 후반만 해도 이들은 군에 입대해 집총만 거부했다. 과거 입영 사례가 있기 때문에 군에서 비전투 요원으로 활동하는 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했다.

하지만 국방부·법무부 등 관계 부처는 대체복무자들이 군에서 비전투 요원으로 복무하는 주장에 회의적이다. 이날 공청회에서 대체복무제 실무추진단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지뢰 제거나 유해 발굴 등은 규정상 군인(군무원)만 수행할 수 있고 민간인은 참여할 수 없다. 만약 대체복무자들이 비전투 업무를 수행한다고 해도, 현역병이 동일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의 복무 기간을 현역과 다르게 하는 이유를 설명하기가 어려워진다.

비전투 분야 복무 방안은 헌법재판소 결정 취지에도 어긋나는 조치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는 군 관련 업무는 절대 수행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라 하더라도 도저히 선택하기 어렵게 만드는 것은 대체복무제를 유명무실하게 하거나 징벌로 기능하게 할 수 있으며 또 다른 기본권 침해 문제를 발생할 수 있다(2018. 6. 헌법재판소 결정문)." 헌법재판소는 당사자들의 수용성을 고려해야 한다며, 비군사 분야를 대체 복무에 포함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대체복무제는 2020년부터 시행된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토론 시간으로 이어지자, 일부 참가자가 발제자에게 질문했다. 대체복무제 자체를 부정하거나 입영 대상자들이 제도를 악용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양심'이라는 단어를 문제 삼으며 군 복무자를 비양심적인 사람으로 몰고 있다고 항의하는 이도 있었다.

임재성 변호사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을 '병역기피자'로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대체 복무는 면제가 아니다. 군 복무에 상응하는 어렵고 힘든 일을 하겠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가 이들을 지금까지 감옥에만 보내다가 이게 옳지 않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 병역거부자가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대체 수단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병역기피자라고 매도하며 손가락질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대체복무제 실무추진단 단장을 맡고 있는 이남우 인사복지실장(국방부)은 항의하는 참석자들에게 대체복무제 도입의 기본 원칙을 설명했다. △병역기피 수단으로 악용되지 않도록 엄정한 시행 방안을 마련하고 △병역의무 형평성을 유지하며 △안보에 지장이 없는 선에서 국제 기준을 존중하겠다는 방침이다.

이 실장은 헌법이 모든 국민의 양심의자유를 보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다른 사람의 양심에 대해 가치판단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민주주의는 나와 다른 생각을 인정하고 존중해 주는 사회다. 양심에 따라 병역을 거부했다고 군대 가는 게 비양심적이라고 지적하는 이가 있는데, 그렇다면 그들의 주장처럼 양심 대신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라고 명명한다면 군 복무자는 신념이 없게 되는 걸까. 이러한 논리로 비판하는 것 자체가 타당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보수 개신교인들이 공청회가 열리기 전 행사장 건너편에서 대체복무제 비판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보수 개신교, 대체복무제 비판 집회
"특정 종교에 혜택 제공하면 안 돼"

대체 복무 기간을 2배로 해야 한다거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에게 지뢰 제거 등 비전투 분야에 배치해야 한다는 주장은, 일부 보수 정치권과 개신교계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입장이다. 공청회 발제자 지영준 변호사는 보수 개신교 단체가 주최하는 행사에 패널로 다수 참석한 바 있으며, 대체복무제를 반대하며 소란을 일으켰던 참석자들도 대부분 보수 개신교인이었다.

보수 개신교 단체들은 공청회가 열리기 전 행사장 맞은편에서 '형평성 있는 대체복무제 방안 제시 및 코드인사, NAP, 악법과 조례 반대'라는 이름으로 집회를 열었다. 참가자 200여 명은 저마다 '형평성 있는 대체복무제 제시하라', '종교 박해하는 나쁜 코드인사', '나쁜 NAP 악법과 조례 폐지'라고 적힌 피켓을 들었다.

보수 개신교권에는, 대체복무제를 허용하면 청년들이 병역을 기피하려 여호와의증인으로 갈 것이라는 우려가 퍼져 있다. 집회 참가자들 역시 대체복무제가 특정 종교를 위한 혜택이라고 주장했다. 사회를 맡은 바른군인권연구소 김영일 목사는 "정부가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정교분리 원칙을 위배하고 있다"며 특정 종교에 혜택을 줘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들은 대체복무제 실무추진단이 교정·소방 등 비군사 영역을 대체 복무 분야로 고려하고 있는 점을 지적하며, 국민 여론과 형평성에 어긋나는 방침이라고 주장했다. 병역거부자를 지뢰 제거 등 비전투 분야에 배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실과 다른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김영일 목사는 법무부가 대체복무제 도입을 주도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며, 주관 부서를 국방부가 아닌 법무부에 맡기는 것 옳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대체복무제 실무추진단은 국방부를 포함해 법무부·병무청 인사들이 함께 구성하고 있고, 단장은 국방부 인사복지실장이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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