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알쓸신잡' 보시나요? 최근 시즌3가 시작되었더군요. 인문학 소양이 부족한 저에게는 각 분야 전문가들이 재미있게 이야기하는 것을 지켜보는 일이 하나의 낙입니다. 마치 저 자신이 똑똑해지는 느낌… 그냥 느낌뿐이겠죠.

생각의 골을 파이게 하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정리한 수사학(Rhetoric)을 김영하 작가가 알기 쉽게 설명해 준 것인데요. 아리스토텔레스는 말을 잘하기 위한 3가지 원칙을 정리했다고 합니다. 첫째는 로고스(logos), 둘째는 파토스(pathos), 셋째는 에토스(ethos)입니다.

그중의 제일은 에토스라고 했다더군요. 한마디로 논리와 감동도 중요하지만, 화자話者가 살아온 삶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말하는 사람의 인격, 그가 걸어온 삶의 발자취가 중요하다는 뜻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원칙적으로 맞는 원칙 같습니다. 하지만 소셜미디어가 일상이 된 지금 한국 사회에서, 에토스는 과연 어떤 의미일까요. 오늘도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에는 무릎을 치게 하는 논리와 수려한 글솜씨로 수많은 좋아요와 댓글, 공유를 얻는 사람이 많습니다.

한두 번씩 보고 공감을 표시하다가,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사람의 팬이 되기도 합니다. 그렇게 누군가는 '페북 스타'가 되고, 그가 올리는 글은 곧 그 자신이 됩니다. 우리는 그 사람의 글을 보면서 그를 안다고 이야기하지만, 과연 그의 에토스를 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에토스를 설명하는 김영하 작가. tvN 알쓸신잡 갈무리

추석 연휴 직전 <뉴스앤조이>는 충격에 빠졌습니다. 현대드라마치료연구소 김세준 대표의 성폭행 의혹 때문입니다. 타 언론사를 통해 알려져 뒤늦게 사실을 확인하느라 더 혼란스러웠습니다.

김세준 대표는 교계에서 크게 유명한 사람은 아닙니다. 하지만 <뉴스앤조이>와는 특별한 인연을 맺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제가 여기서 일한 기간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그는 <뉴스앤조이>와 관계가 있었습니다. 김세준 대표의 이름이 들어간 <뉴스앤조이> 기사가 상당합니다.

김세준 대표는 <뉴스앤조이> 논조와 결을 같이했습니다. 목사이자 상담가로서, 한국교회가 부족한 부분을 지적하는 말을 많이 했습니다. 심지어 성폭력에 취약한 교회 구조를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한국교회에서 전형적으로 드러나는 목회자와 자녀 간 갈등의 골을 짚으며, 드라마 치유 기법으로 경색된 관계를 풀기도 했습니다. <뉴스앤조이>는 그의 말과 활동을 기사로 옮겼습니다.

<뉴스앤조이>는 김세준 대표의 성폭력 사건을 보도하는 것은 물론, 남아 있는 그와 관련한 기사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논의했습니다. 안타까운 점은 논의의 지평이 좁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기사 내용을 제공한 경찰은 정보를 제한적으로 알려 주고, 김세준 대표도 거듭된 인터뷰 요청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해, 사건의 구체적인 정보에 접근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여러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한국교회를 향해 개혁적인 말들을 했던 사람이 성폭력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이전 기사들도 그대로 두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한편으로는 혹시나 성폭력 피해자가 남아 있는 기사들 때문에 2차 피해를 당하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고민도 있었습니다.

<뉴스앤조이>는 논의 끝에 일단 전자를 택하기로 했습니다. 동시에 피해자분과 연결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고, 이 사건에 책임감을 가지고 끝까지 보도하기로 했습니다.

하루에도 수많은 말이 태어나고 잊히는 세계. 말의 무게가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시대. 하지만 고대나 지금이나 말하는 사람의 삶이 가장 중요하다고 저는 믿습니다. 천 번 갱신을 부르짖고 만 번 개혁을 외친 사람의 본모습이 그의 말과는 너무나 다를 때, 우리는 실망을 넘어 인간에 대한 회의를 경험합니다.

빼어난 언술과는 달리 뒤로 은밀한 죄를 저질러 무너지는 사람도 종종 나타납니다. 그런 사람이 뱉은 말들은 그냥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 말을 믿었던 사람들의 가슴에 큰 상처를 남기고, 결과적으로 개혁은 더 멀어지고 맙니다.

비판의 칼끝은 결국 자신을 향합니다. 말(글)을 많이 할 수밖에 없는 직업이 기자입니다. 독자분들도 저희가 쓰는 기사가 모두 맘에 드시지는 않을 것입니다. 실제로 저희가 부족한 면도 많습니다. 그래도 <뉴스앤조이>는 다시 한 번 스스로를 돌아보고 언론의 책무를 다하겠다고 약속드립니다.

저도 쓴 기사가 쌓여 갈수록 뿌듯함보다는 두려움이 앞섭니다. 나중에 이 말들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글을 다듬는 것처럼 삶도 다듬어 가야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이렇게 또 하나의 말을 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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