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차 강제집행 직후 궁중족발의 모습. 뉴스앤조이 박요셉

[뉴스앤조이-장명성 기자] 궁중족발은 요즘 잘되는 일 하나 없다. 건물주의 집요한 강제집행으로 쫓겨나고, 김우식 사장은 구속된 상태로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몇몇 국회의원이 8월 안으로는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상가법) 개정안을 꼭 처리하겠다고 했지만, 이마저도 무산됐다.

굳게 닫힌 궁중족발 문에는 "허락 없이 출입할 시 처벌됩니다"라고 적힌 A4 용지가 덕지덕지 붙어 있다. 그 앞에서 옥바라지선교센터는 9월 4일 저녁에도 '궁중족발을 되찾기 위한 기도회'를 준비했다. 싱어송라이터 이길승 씨가 노래하고, 향린교회 김희헌 목사가 설교했다. 20여 명이 모여 성찬까지 나눴다. "궁중족발이 쫓겨나면 모두가 쫓겨난다"는 구호를 외쳤다.

상가법 개정이 좌절돼 사기가 많이 떨어졌을 것 같은데, 기도회는 또 기도회대로 평소와 다를 것 없이 계속됐다. 옥바라지선교센터 이종건 사무국장을 9월 4일 만나, 묵묵히 연대한다는 것에 대해 들어 보았다. 그는 "도시에서 내쫓긴 사람들은 성서가 주목하는 '나그네'와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옥바라지선교센터 이종건 사무국장은 "도시에서 쫓겨난 이들은 성경이 주목하는 '나그네'와 같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장명성

"궁중족발 같은 비극, 지금도 일어나
현장에서 함께하는 예배는
피해자 외로움에 동참하는 일"

- 상가법 개정안을 '민생 1호 법안'으로 통과시키겠다던 국회가 약속을 어겼다. 옥바라지선교센터는 성명까지 냈다. 이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지난 7월, 상가법 개정을 위해 노력해 왔던 중소 상인들과 시민단체가 모여 '상가법개정국민운동본부'를 만들었다. 출범식에 민주당·정의당 의원들은 물론 자유한국당 의원도 참석했다. 여야를 막론한 국회의원들의 관심이 상가법 개정으로 이어지나 싶었는데, 결국 여야 합의 실패로 개정이 무산됐다.

상가법 개정은 시급한 문제다.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자리를 옮겨야 하는 임차인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궁중족발 사태 같은 비극은 지금 당장도 일어날 수 있다. 그런데 국회가 다른 법안이 합의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상가법까지 처리하지 않았다. 과연 정치인들이 민생을 고려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 옥바라지선교센터를 비롯한 여러 시민단체가 상가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궁중족발 사태로 비추어 볼 때 상가법 개정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은 말 그대로 임차인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인데, 상인들 입장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상권이 형성되기 시작하면 상가 건물주들이 월세를 올리고 투기를 목적으로 세입자를 쫓아내는 것이 관행이다. 임대료에 대한 보호는 단지 5년이고, 그 이후엔 몇 배를 올리든 임차인은 보호받지 못한다.

궁중족발은 이 같은 상가법의 취약한 지점에 그대로 피해를 본 약자 중 약자다. 건물주가 막무가내로 임대료를 네 배 가까이 올렸고, 이를 감당할 수 없는 사장들은 쫓겨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비극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옥바라지선교센터가 상가법 개정을 주요 이슈로 끌고 가는 이유는 상가법이 공공성을 띤 법안으로 바뀌어야 하기 때문이다. 젠트리피케이션을 통해 이득 보는 사람은 극소수 투기꾼뿐이다. 대다수 소상공인, 원주민과 그 동네의 문화를 함께 꾸려 온 소비자가 모두 피해를 본다. 상가법 개정은 이런 측면에서 상인들을 보호하고, 공공성에 대한 책임을 개인이 아닌 사회가 함께 고민하는 인식 전환의 계기가 될 것이다.

지난 6월 국회에서 열린 상가법 개정 촉구 기자회견에서 궁중족발 윤경자 사장이 발언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 옥바라지선교센터가 쫓겨난 사람들에게 특별히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도시에서 과연 누가 가장 낮은 자리에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예전에는 빈민들이 빈민가를 이루고 모여 살았기 때문에 눈에 잘 띄었지만, 요즘은 보이지 않는 빈민이 많다. 한 마을이 재개발된다고 할 때, 세입자는 재개발 논의에 참여할 수도 없다. 논의도 할 수 없고, 쫓아내는 건물주에게도 저항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이들을 가시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과거부터 노동자·농민이 빈민이라는 인식은 있었지만, '상인'을 빈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렇지만 지금 사회는 상인도 쉽게 빈민이 될 수 있는 사회다. 꾸준히 노력해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는 식당이 되었는데, 터무니없는 임대료 인상으로 쫓겨나게 되는 사람이 '도시의 낮은 자'가 아니면 대체 누가 낮은 자인가.

- 옥바라지선교센터는 옥바라지 골목 사태 때부터 꾸준히 '현장'에서 예배하고 있다. 현장에서 예배하며 느끼는 특별한 점이 있다면.

교회에서 진행되는 기존 예배와는 당연히 분위기가 다르다. 현장의 예배는 옥바라지 골목, 궁중족발이 아니었으면 만나지 않았을 다양한 배경을 지닌 사람들, 심지어는 교회 밖 사람들까지 만나는 기회가 된다.

옥바라지선교센터가 진행하는 기도회는 종교가 다르거나 없는 사람도 함께하고 있는데, 이들이 예배를 통해 "위로받았다"고 할 때 가장 큰 감동이 온다. 궁중족발 사장님 부부도 교회를 안 다니지만, 기도회를 통해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말한다. 기도회를 통해 위로와 평안을 얻는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을 때마다 감사하게 된다.

옥바라지선교센터 회원 20명과 한 철거 현장에 찾아간 적이 있다. 철거민 부부가 우리가 방문한 것을 보고는 눈물을 흘리시더라. 우리는 그저 하루 시간 내서 갔을 뿐인데, 그분들은 우리 때문에 "살아갈 이유를 찾았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함께하는 예배가 피해 당사자의 외로움에 동참하는 일이 된다는 사실도 많이 느끼고 있다.

9월 4일 기도회에 참석한 사람들이 궁중족발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장명성

- 궁중족발 사태도 벌써 1년이 흘렀다. 함께 투쟁하고 연대하면서 힘든 일도 많았을 텐데, 앞으로 어떻게 연대하고 투쟁해 나갈 것인가.

도시 문제로 싸우는 과정에서 가장 힘들 때는 '사태가 길어질 때'다. '이 연대를 언제까지 지속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고, 투쟁에서 이겨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기대가 점점 불투명해진다. 피해 당사자가 긴 투쟁에 지칠 때, 당사자 아닌 우리가 '끝까지 투쟁하자'고 말할 수도 없다. 그럴 때는 그저 현장에 찾아가 더 많은 시간을 당사자와 보내면서 아픔을 나눌 수밖에 없다는 게 아쉽다.

사실 상가법 개정안이 통과된다고 하더라도, 지금 투쟁하고 있는 궁중족발에 소급 적용할 수는 없다. 윤경자 사장님은 이걸 알면서도, 개정안 통과를 위해 매일 아침 국회에서 1인 시위를 이어 가고 있다. 윤 사장님은 '언제라도 나와 같은 피해자가 발생할 수 있다'는 생각 하나로 투쟁하고 있다.

우리도 이 같은 마음으로 연대하고 투쟁할 것이다. 옥바라지선교센터는 앞서 말했듯 보이지 않던 어려움을 밝히는 일을 하는 단체다. "여기 쫓겨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사회에 알리고, 사람들이 쫓겨나는 일이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교회의 언어로 대중에게 전하고자 한다.

제아무리 보수적이고 구제에 관심 없는 교회라 한들, 교회를 찾아온 가난한 사람을 내쫓을 수는 없다. 그것이 교회의 마지막 희망, '가난한 자에 대한 포용'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성경에서는 그들을 내쫓을 명분을 찾을 수 없지 않나. 이 희망을 붙잡고 가난한 자, 내쫓긴 자와 함께하며 현장과 교회를 잇는 징검다리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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