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빈민 선교를 하고 있는 이태후 목사는 삶으로 보여주는 것이 최고의 선교라고 했다. 입으로 떠드는 것보다 묵묵히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 그게 이 목사의 선교 방법이다. ⓒ뉴스앤조이 신철민
믿고 배운 대로 살기란 정말 힘들다. 가난한 자와 함께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많지만, 그렇게 살기 위해서 빈민촌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적다. 약한 자와 함께하는 게 예수의 명령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많지만, 그 명령을 따르는 사람은 드물다. 하물며, 먼 이국땅 미국까지 가서 빈민들과 함께 살을 부대끼며 살기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있다. 이태후 목사가 바로 주인공이다.

이 목사는 현재 필라델피아 North Central에서 산다. 필라델피아에서도 두 번째로 가난한 동네다.  이 지역은 총기 사고로 인해 하루에 수 명씩 죽어나가는 곳이다. 그에 따르면 2006년 한 해 동안 필라델피아에서만 406명이 살인 사건으로 죽었다. 이 목사는 2006년 여름 이후 자신이 아는 사람만 세 명이 죽었다고 했다. 그것도 총에 맞아서 말이다. 오히려 주변 사람들은 이 목사를 향해 그곳에서 하루 빨리 나오라고 적극 권면할 정도다. 

그래서 첫 질문도 위험하지 않느냐는 얘기였다. 이 목사도 사람인데, 물론 위험하다고 답했다. 하지만 하나님이 우리의 생사를 주관한다고 굳게 믿기 때문에, 환경이 안전과 위험의 기준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목사는 이제 지역 주민들과 좋은 관계가 형성됐다고 말했다. 필라델피아에서는 2003년부터 살았으니, 벌써 4년째다. 이제 갱도 알고, 마약 판매상도 안다고 했다. 또 동네 사람들과도 두루두루 친하다. 그 사람들은 자신을 '우리'(we)라는 울타리 안에 넣었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목사가 며칠 씩 집을 비우기라도 하면, 먼저 찾아와서 언제 오느냐, 어디 갔다 왔느냐를 물어본다. 다른 사람이 이 목사를 찾아와도 마치 자신을 찾은 것처럼, 반갑게 맞아준다고 했다. 

삶으로 보여주는 것이 전도

▲ 이태후 목사는 "현지인의 삶의 맥락 속에서 복음을 증거해야 한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신철민
그런데 그가 처음부터 '우리' 안에 들어갔던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이 목사 역시 이방인일 뿐이었다. 눈도 마주치지 않고, 아무도 말 한마디 건네지 않았다. 이 목사는 지역주민들과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먼저 다가갔다. 아침저녁으로 골목을 청소했다. 겨울에는 수북이 쌓인 눈도 치웠으며, 어떤 날에는 하루 종일 동네를 돌아다니며, 인사만 한 적도 있다. 복장에도 신경 썼다. 좋은 양복이 아니라, 찢어진 청바지에 티셔츠, 아니면 반바지에 슬리퍼. 같이 밥도 먹었다. 그들의 고민도 들어줬다. 이렇게 하기를 수년. 드디어 지역주민들의 마음이 열리기 시작했다.

마음 문을 열었다고 해서 무조건 예수 믿으라고 강권하지 않았다. 선교를 위해 빈민촌에 들어갔지만, 집집마다 방문해 전도를 해본 적은 없다. 길거리에서 지역주민을 만나도 마찬가지다. 설교도 하지 않았다. 이 목사는 입으로 시끄럽게 떠드는 모습보다는, 묵묵하게 삶으로 살아내는 것이 최선의 전도라고 생각했다. 그들이 스스로 마음을 열 때까지 기다리자는 얘기다. 이런 전도 방법은 당장 결실을 맺기 힘들다. 그래도 이 목사는 이게 최선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이 목사는 특히 한국교회의 선교 방법에 대해 할 말이 많았다. 우리가 믿고 있는 것을 바로 전할 것이 아니라, 현지인의 삶의 맥락 속에서 증거해야 한다고 했다. 입을 열어 말하기보다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마음으로 관찰하는 자세가 더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들과 함께 살면서 그들이 먹는 음식을 같이 먹으며, 복음이 무엇인지, 예수님의 사랑이 무엇인지, 삶으로 보여주는 것이 최선의 전도라고 했다.

이태후 목사는 29살이었던 1994년 미국에 갔다. 한국에서 미학을 공부한 그는 이것으로 평생 목숨을 걸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웨스트민스터신학교에서 공부하기로 했다. 그가 미국을 택한 이유는 이렇다. 한국 신학이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과연 어떤 것이 성경적이고, 어떤 것이 미국적인지 알아보고 싶었다. 당시 한국교회는 미국과 성경을 혼동하고 있었다는 게 이 목사의 기억이다.

그러면서 그는 찬송가를 예로 들었다. 아프리카나 남미만 하더라도 그들 고유의 악기를 사용하고, 찬송을 하는데, 우리나라의 찬송가는 주로 미국의 것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그것도 1800년대부터 1900년대 초반까지의 찬송을.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것일까. 왜 우리는 우리 고유의 것으로 하나님을 찬양하지 못하는 것일까. 이런 것을 정확하게 보기 위해서는 미국에서 공부를 해야 한다고 믿었다.

'한국교회 선교 방법 바꿔라'

▲ 이태후 목사는 한국교회가 미국에 너무 의존한다고 말했다. 하나님과 미국을 혼동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뉴스앤조이 신철민
이런 맥락에서 이 목사는 최근 한국교회가 보여주는 미국 짝사랑은 도가 넘었다고 지적했다. 많은 목사가 미국을 기독교 국가라고 말하지만, 굉장히 잘못된 주장이라는 얘기다. 미국이 지금까지 했던 역할을 본다면, 오히려 반기독교적이라는 말도 했다. 미국은 그저 이기적인 공동체며, 자국민의 이익을 최고로 여기는 나라일 뿐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런데 한국의 일부 목사는 한국교회가 미국 선교사의 도움을 받았다는 이유로, 미국에 대해 막연한 향수에 젖어 있다고 했다. 역사의 이해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미국은 한국을 좋아서 지원하는 게 아니라, 자국의 이익을 위해 지원하는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했다.

목사라면 어려운 시절에 미국을 들어 우리를 도와준 하나님께 감사해야지, 미국에 고마워할 것은 아니라고 했다. 구속사에 대한 역사의식의 부재. 이 목사는 그 문제를 지적했다.

밖에서 본 한국교회는 어떨까. 이 목사는 1990년대 중반부터 한국교회가 사회에서 주류 세력이 됐다고 했다. 그리고 이때부터 한국교회의 위기가 시작됐다고 말했다. 1980년대 교회는 주류가 아니었다. 그래도 예언자와 선지자의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그런데 주류가 된 뒤부터는 그럴 수 없었다. 지킬 게 너무 많아졌다는 지적이다. 비주류에서 주류로, 주변인에서 기득권으로 바뀌었다는 위치의 변화가 한국교회가 현재 안고 있는 가장 큰 위험이라고 했다.

또 기독교인이라면, 자꾸 위를 쳐다보지 말라고 했다. 하나님나라는 위로부터가 아닌, 아래로부터의 개혁을 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한국의 대형 교회들은 제국주의의 가치를 누리고 싶어 하기 때문에 장로 대통령론을 들고 나온다는 얘기도 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절대 하나님나라가 올 수 없다고 단언했다.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