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10년 전 프랑스에서 살 때 떼제(Taizé) 공동체를 방문한 적이 있다. 여러 가지가 기억에 남지만, 개신교뿐 아니라 가톨릭·정교회 등 다양한 종파 사람들과 만나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는 게 인상적이었다.

나는 전형적인 한국교회, 가톨릭을 비롯해 그리스도교의 여러 종파를 형제 종교가 아닌 타 종교처럼 언급하는 곳에서 자랐다. 그런 환경에서 자란 내게 다양한 환경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을 만나 신앙 이야기를 나누는 건 생소한 경험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그들과 나의 같은 점보다는 다른 점을 찾는 데 골몰했다.

떼제에서의 경험은 신선했다. 서로 선을 긋고 배척하는 대신 유사점을 찾으면서 공존하는 법을 배웠다. 떼제의 화해와 일치 정신은 나에게 다양한 모습의 신앙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일깨워 줬다. 신앙이 우리를 옭아매는 게 아니라, 자유롭게 해 준다는 사실을 그곳에서 배웠다.

8월 8일부터 12일까지 홍콩에서 떼제 국제 모임이 열렸다. 참석자들로 가득 찬 대성당의 모습. 떼제 공식 페이스북 갈무리

홍콩 떼제 국제 모임
기꺼이 집 내어 준 가톨릭 신자
'환대의 정신' 일깨워 줘

10년간 내 신앙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 <뉴스앤조이>에서 기자 생활을 하면서 직접 목격한 한국 '주류' 개신교는, 어떻게 해서든 다름 대신 틀림을 강조하는 곳이었다. 대표적인 예로, 국내에서 가장 규모가 큰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교단은 3년 전, 총회에서 "가톨릭은 이단도 아닌 이교"라는 발언이 나오기도 했다.

한국교회의 민낯에 지쳐 갈 무렵, 8월 8일부터 12일까지 홍콩에서 떼제 국제 모임이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물론 한국에서도 정기적으로 떼제 기도회가 열린다. 하지만 일에 치이고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참석하지 못했다. 과감하게(?) 이번 여름휴가를 홍콩에서 보내기로 결심하고 홍콩행 비행기표를 예매했다.

홍콩 일정 내내 주최 측에서 정해 준 곳에서 홈스테이를 하기로 돼 있었다. 2500여 명이 3박 4일 참여하는 행사에 숙박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큰일이었다. 홍콩 교회들은 행사 전 떼제 참석자들을 위해 집 한구석을 내어 줄 교인들을 찾았다. 이 광고를 들은 교인들이 홈스테이를 신청했고, 떼제 모임 본부는 환경에 맞게 참석자들을 각 호스트 집으로 보냈다.

8일 밤 10시가 넘어서야 홍콩 시내의 한 역에서 호스트를 만났다. 마음씨 좋아 보이는 50대 여성 잉링 씨였다. 홍콩 시내에서 1시간 떨어진 집까지 이동하는 동안 그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가톨릭 신자인 잉링 씨는 교회에서 손님을 맞을 가정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듣고 신청했다고 했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이를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 하나로 자기 집에 들여 머물 곳을 제공한 것이다.

홍콩의 집값은 상상을 초월한다. 보통의 가정집은 좁기로 유명하다. 잉링의 집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의 원룸보다 조금 넓은 집에서, 잉링은 한쪽에 있는 소파를 펴 나의 잠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다른 참석자들과 이야기를 나눠 보니 모두 비슷한 상황이었다. 어떤 호스트는 자기 집이 너무 작아 게스트들이 불편할까 봐 걱정했는데, 잠을 잘 자는 모습을 보니 감사하다고 고백했다. 누군가를 환대하는 데는 환경이나 조건이 중요하지 않았다.

한국 원룸보다 조금 넓은 집도 홍콩에서는 넓은 편에 속했다. 잉링 씨는 집 한켠을 기꺼이 기도회 참석자의 잠자리로 내어 줬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전 세계 그리스도교인과 만남
다른 종파 배척 아닌 포용

8일 저녁 기도회를 시작으로 4일간의 기도회가 시작됐다. 1888년 완공된 홍콩 대성당은 1500여 명의 순례자로 가득 찼다. 자리가 모자라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 앉거나, 허벅지와 허벅지가 맞닿을 정도로 다닥다닥 붙어 앉아야 했다. 사람이 어찌나 많은지 기도회 시작 시간보다 두 시간은 먼저 와 있어야 앞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전 세계 46개국에서 2500여 명이 참석한 대규모 기도회였다. 홍콩 대성당이 이 모든 사람을 수용할 수 없는 까닭에 도보 15분 거리에 있는 성요한성공회교회에서도 똑같은 형식의 떼제 기도회가 진행됐다. 참가자들은 기도회가 열리는 4일 중 하루는 성요한교회에서 열리는 기도회에 참석했다.

매일 오전, 점심, 저녁 기도회가 열렸다. 프랑스 떼제공동체 수사들이 수개월 전부터 홍콩에 머물면서 이 행사를 준비했다. 전 세계에서 모인 자원봉사자들도 개최를 도왔다. 홍콩시와 가톨릭·성공회·침례회·감리회 등 홍콩의 다양한 그리스도교 교회도 협력했다.

다른 나라, 다른 그리스도교 종파에 속한 사람들은 '예수'라는 큰 우산 아래 하나가 됐다. 프랑스 떼제에서는 주로 라틴어·프랑스어·영어·독일어 등으로 찬양을 부르지만, 홍콩에서는 아니었다. 프랑스에서 부르는 것과 같은 찬양을 중국어·광동어·일본어·한국어·필리핀어 등 참가자들의 나라말로 불렀다. 천장이 높은 가톨릭 대성당에 1500명이 동시에 부르는 찬양이 울려 퍼지면서 서로의 목소리가 맞닿아 장관을 연출했다.

같은 찬양을 반복해서 부르고 같은 성경 말씀을 읽고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 됨을 느꼈다. 우리가 각자 어떤 종파에 있든, 그 시간만큼은 서로 같은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하나님의 은총이 우리와 함께하길 기도하고, 사회가 외면하고 배제하는 약자들을 위해 기도했다. 극도의 경쟁 사회에 내몰린 각국의 청년들, 인도네시아 지진으로 희생당한 사람들, 그리고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 기도했다.

아침 기도회는 각 지역에서 소규모로 열렸다. 지은 지 9년 된 성공회 예배당에서 열린 아침 기도회 모습. 뉴스앤조이 이은혜

점심과 저녁 기도회와 다르게 아침 기도회는 순례자들이 머물고 있는 지역별로 모였다. 교회 30곳에 흩어져 모인 그리스도인들은 먼저 떼제 기도회를 한 뒤, 다시 10명 내외로 소그룹을 지어 성경을 묵상하고 이야기했다. 다른 참가자들과 서로의 신앙에 대해 더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 신앙인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내가 속한 그룹에서는 홍콩에서 교정 선교를 하는 복음주의 개신교인, 중국에서 청소년을 전도하기 위한 방법을 연구하는 가톨릭 신자, 홍콩에서 교사로 재직하면서 아이들에게 복음을 전할 방법을 찾는 성공회 신자가 각자 자기 삶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이 무엇인지 나눴다.

홍콩에서 온 모니카(50대)는 8살에 처음 기독교 신앙을 접했다. 하지만 집에서 교회를 다니지 못하게 해 성인이 될 때까지 혼자 신앙을 지켜야 했다. 모니카는 그때의 경험이 교회 밖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그는 "하나님을 믿는 방법은 다양하다. 한 가지 방법만 강요하는 건 기독교가 지닌 풍부함을 깎아 내리는 일"이라고 말했다.

프랑스에서 온 에렐(20대)은 신앙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아시아 사람들을 보며 도전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인도네시아·인도·방글라데시 등 타 종교인이 더 많은 지역에서 온 기독교인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내가 얼마나 마음 편하게 신앙생활했는지 느끼게 됐다. 그들의 신앙에 크게 감명받았다"고 말했다.

인도네시아에서 온 프리야(30대)는 나처럼 휴가 대신 떼제 기도회를 택했다. 가톨릭 신자인 그는 홍콩에 있는 대형 은행에 재직 중이다. 그는 자신이 좋은 환경에서 자라 교육을 많이 받았기에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고 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하면 사회에 기여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그는, 주말을 이용해 홍콩에서 일하는 인도네시아 출신 가사 도우미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다.

다양한 사람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으며, 과연 그리스도교 신앙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했다. 모두 다른 신앙 배경을 지니고 있지만, 이 땅에서 의미 있는 삶을 살기 원하고 그 방법을 고민하는 신앙인이라는 점에서 우리는 한배를 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번 기도회에는 한국에서도 100여 명이 참가했다. 8월 10일 점심과 저녁 기도회 사이 진행된 오후 워크숍에는, 한국의 개신교 공동체 밝은누리가 발제를 맡았다. 밝은누리는 올해부터 진행하고 있는 '생명 평화 고운 울림 기도 순례'를 소개했다. 참석자들은 한반도 평화를 위해 전국 각지를 돌며 기도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고 박수를 보냈다.

홍콩 기도회에서는 각 나라말로 찬양을 불렀다. '주님을 찬양하라'(Laudate Omnes Gentes)를 한국어로 부르는 모습. 유튜브 그레곰TV

10년 만에 찾은 떼제 기도회는 기나긴 신앙의 여정에서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점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주었다. 다양한 신앙의 모습을 고민하고 그 안에서 자유를 누리는 사람들을 만나니, 여러 현장을 다니며 일그러진 내 마음에도 평화가 찾아왔다. 신앙의 모습이 다르다 해서 '이단'은 아니다. 그렇게 치면 한국교회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장로교, 순복음 같은 곳은 전 세계 그리스도교 차원에서 볼 때 지극히 소수 아닌가.

세상에는 어떻게 하면 예수가 가신 길을 따라갈 수 있을지 고민하는 수많은 그리스도인이 있다. 이들은 민족과 문화, 세대, 종파의 경계를 넘어 서로의 신앙을 나누면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고민한다. 고민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신앙을 삶으로 살아 내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사셨을지 같이 고민하고 같은 기도를 올리는 것. 그것이 바로 떼제가 말하는 '일치'의 정신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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