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구 우익 개신교 진영에서 자행하는 반동성애 마녀사냥 광풍이 정도를 지나치는 수준을 넘어서, 도착적倒錯的으로 진행되는 듯하다. 참여자 대부분은 동성애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알아보거나 이해해 보려는 노력이 부족했음을 자신들의 발언을 통해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들은 정보들이 '사실' 혹은 '진리'라고 맹신하는 데 주저함이 없어 보인다.

이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이들을 이렇게 맹목적으로 몰아가는 주범은 수구 우익의 보루로 자처하는 비뚤어진 신앙 의식을 가진 목회자들과 장로들로 보인다. 이들이 한결같이 주장하는 바는 '도덕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며, '도덕성의 붕괴는 동성애라는 비정상적 성행위를 통해 초래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도덕이 무너질 때 신앙도 무너질 것이며 교회도 타락하고 세상은 끔찍한 종말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는 근거 없는 주장들은 이 마녀사냥 광풍을 부채질하고 있다.

나는 이 마녀사냥의 본질이 한국교회의 부도덕성과 한국 사회의 비윤리적 행위들의 원인을 소수자들에게 돌리는 데 있다고 본다. 한국교회와 한국 사회의 부도덕한 인사들을 퇴출하고 잘못된 사회-교회 구조를 사람들이 바꾸어 가는 일에 무능해지도록 하는 데 있다고 본다. 결국 사람들이 길거리로 나가 힘을 모아 반대해야 할 '교회 세습', '성매매 문제', '설교 표절', '교회 재정 유용' 등의 중요한 문제들에는 침묵하고, 동성애 문제가 한국교회에 다가오는 위기의 본질인 양 포장하게 된다.

동성애를 타깃 삼는 이들의 의도

반동성애를 외치는 이들이 쓰는 '동성애'(homosexuality)라는 용어부터 간략히 살펴보자. 동성애는 말 그대로 '이성애'(heterosexuality)의 반대말이다. 동성애라는 용어는 이미 성(sexuality)을 두 종(동성애/이성애)으로 분류한다. 이러한 분류는 종족 보존이라는 성의 어젠다와 결합하여 그 구호에 부합하는 이성애는 '참'으로, 그것에 반하는 동성애는 '거짓'으로 가치판단한다. 그 후 비약하여 성의 어젠다를 거스르는 동성애가 인간 종 생존을 위협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더 나아가서는 신의 창조 섭리를 거스르는 죄라는 신학적 구호의 성격을 띠게 된다.

지금 여기에서 동성애 찬반 여부를 다루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 중 어떤 이들은 우호적일 것이고, 또 어떤 이들은 나름의 이유들로 우호적이지 않을 이 논쟁적인 동성애 담론 자체에 휘말리지 않기 위함이다. 오히려 우리가 제기하고 싶은 문제는 이들이 동성애를 이렇게도 반대하는 그 진짜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것에 관련한다. 이들은 왜 이토록 강하게 동성애를 반대하고 있는 것일까.

이들 주장처럼 성적 행위에는 종의 보존이라는 분명한 목적이 있고, 그것에 반하는 성행위는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고 하자. 이들 주장처럼 단순히 쾌락만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동성애에 인류가 집착하게 되면 종의 생존을 위협하고 곧 신의 창조질서가 파괴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 보자. 하지만 우리는 그러한 주장이 가능한 만큼 그 반대 주장도 가능함을 확인할 수 있다. 인간이 가축을 교배하여 그 새끼를 얻듯이 신이 인간을 교배하여 그 자손을 얻는 것은 아니다.

신은 우리에게 성적인 관계로 얻는 기쁨과, 사랑하는 상대와의 깊은 교감을 통해 누리는 행복을 선물로 주었다. 신은 우리가 그러한 행복을 자유롭게 추구하기만 하면 자연스럽게 자녀를 갖게끔 세계를 창조했다. 우리는 그저 상대가 누가 되었건 진심으로 그 또는 그녀를 사랑하며 하나님께서 주신 기쁨과 행복을 누리면 되는 것이다. 이때 문제가 되는 종족 번식은 우리가 고민할 문제가 아니라 우리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모든 생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맡기면 되는 일인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게 맞는지 저게 맞는지를 따져 보자는 것이 지금 우리의 의도가 아니다. 저들이 그토록 진지하게 외치듯 동성애가 큰 죄일 수도 있고, 또 반대편에서 주장하듯 동성애는 유전적 이유를 갖는 선천적 문제일 수도, 혹은 개인의 자유로운 사랑 행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수 있다. 이 문제는 매우 논쟁적일 수 있다. 하지만 다음의 문제는 결코 논쟁적인 것이 아니다. 그 문제는 '왜 그 많은 문제 중 유독 동성애에 대해서만 저들이 그토록 열심히 비판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지금 우리가 묻고 싶은 질문이다. 우리가 보기에 대답은 아주 분명하다.

7월 14일 서울시청광장 부근에서 열린 퀴어 축제 '맞불 집회' 현장. 뉴스앤조이 이용필
7월 5일 청와대 근처 효자치안센터 앞에서 반동성애 단체 소속 600여 명은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이 통과되면 차별금지법이 제정된다며 이를 폐지해 줄 것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뉴스앤조이 장명성

목회자 성적 타락과 세습에 침묵하는
수구적 도덕주의자들

기독교인들이 동성애자들을 비난할 때 원론적으로 동성애 자체가 죄라고 주장하는 것만은 아니다. 그들은 또한 언제나 성경을 근거로 동성애자들의 성적 타락과 방종을 비난한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가 진짜 타락했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세속에 심각하게 물든 부패한 목사들 아니었던가. 도대체 누가 누구의 타락과 방종을 비난하고 있는 것인가. 목사들의 웃지 못할 그 서글픈 스캔들을 일일이 다시 이야기해야만 하는 것일까. 그리고 지금 우리 사회의 성적 타락 원인은 동성애에 있는 것일까.

자신의 교회 권력을 이용해 수많은 여성 교인을 알게 모르게 폭행하고 추행해 온 목사들에 대해서 이들은 왜 이리도 잠잠한가. 동성애자들의 성적 타락을 한탄하는 목사들이 왜 대한민국에서 성행하는 성매매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그렇게도 침묵을 유지하고 있는가. 그들이 진정으로 염려하는 것이 인류의 성적 타락인 것일까. 아니면 그들은 오히려 자신들의 타락이 문제가 되는 것을 염려하여 그것을 가리기 위해 공격할 대상을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일까.

동성애를 반대하는 똑같은 기독교인들은 세습하는 목사들에 대해서 침묵한다. 심지어는 성서에 의하면 목사직 세습이 가능하다는 적반하장의 주장에도 침묵한다. 우리는 목사직 세습 문제가 동성애 문제만큼 논쟁적이라고 보지 않는다. 하나님 앞에 모든 사람은 죄인이다. 개신교는 우리가 다 똑같은 '죄인'이라는 의식의 평등성을 가르친다. 우리가 이렇게 평등하다면 그 누구도 세습을 통해서는 담임목사가 될 수 없다. 성직자가 되고자 한다면, 모든 사람과 동등하게 신앙의 훈련과 신학 교육을 받아야 한다. 그렇게 성직자가 되었다면, 그는 더 나아가 아버지가 대형 교회 목사라는 이유로 그 교회 목사로 청빙될 수는 없는 것이다.

세습은 신앙인의 자세가 아니다. 이러한 행위는 아주 이기적이다. 이런 가족이기주의, 더 나아가 집단이기주의는 노력하는 다수의 신학생들과 목회자들에게, 그리고 가장 심각하게는 많은 교회 교인들에게 깊은 좌절감과 실망감을 안겨 준다. 이러한 반상식적인 교회 세습은 교회를 향한 사회의 시선 자체를 불신에 가득 차게 한다. 그들이 이 문제에 침묵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동성애에 반대하는 그 집회를 선동하는 목사들의 부패와 관련한 문제이기 때문은 아닐까. 큰 교회 목사들이 함께 서로의 문제들을 이런 식으로 덮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자신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교인들을 앞세워 소수의 약한 공동체를 집단 린치하는 방식으로.

사실 반동성애 집회 배후에 부패한 목사들만 있는 것 같지는 않다. 현재 개신교회 리더십은 목회자들로부터 '장로'들을 중심으로 한 평신도로 이전되는 중이다. 문제는 교회의 평신도 지도력이 전체 교인들 의사를 반영하기보다 갈수록 고령화·고립화하고 있다는 데 있다. 이들은 교회 내 권력을 내놓지 않기 위해, 담임목사직 세습에 침묵하고, 재정 비리를 공모하고, 심지어는 설교 표절에도 눈을 감는다. 흠이 있는 목사는 평신도 리더십을 함부로 공격하지 못하기 때문에 오히려 힘의 관계가 역전된다.

모든 평신도 지도자가 이러한 것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뉴스에서 접하는 문제 있는 교회 대부분은 이러한 내부적 구조를 갖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사회적 지위와 재력을 갖춘 이들이 장로로 추천되는 현재 한국교회 풍토를 고려할 때, 이들이 자신들과 모종의 끈이 닿아 있는 다른 영역 인사들과 서로 공생하는 관계망을 이미 구축해 놓았음을 상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한국의 수구 우익 집단들과 교회가 강하게 연동되어 있다는 사실이 우연에 기인한 것일까.

정치적 편향성이 한쪽으로 급격히 치우친 부패한 교회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한국 개신교회는 정치 현장에서 수구 우익의 선봉에 선다. 그래서 평신도 지도자들 역시 교회 내 부정의에 공범이 되고 있고 그들은 부패한 목사들과 더불어 수많은 사람이 자신들이 아닌 동성애자들에게 돌을 던지도록 종용하고 있는 것이다.

교회 내 적폐 청산에 힘 쏟아야

특정한 성행위나 취향에 대해 신학은 분명히 자신의 입장을 가질 수 있다. 자신의 입장을 타인에게 무조건 강요하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말이다. 하지만 현재 동성애 반대를 주도하는 교단들의 정책은 각자 고유한 자기 의사를 표현할 자유마저 침해하고 있다.

이제 사회문제로까지 번진 한 대형 교회의 명백한 세습에는 자신들 스스로 세운 세습금지법까지 재해석하면서 눈감아 주는 그 교단이 동성애에 대해서는 왜 이토록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일까. 우리 사회 적폐 세력이 우리 상상을 넘어 정말 넓게 분포하고 있듯이 교회 내 적폐 세력도 곳곳에 배치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염려된다.

우리는 이제 어떻게 해야만 하는가. 우리가 보기에는 그토록 뻔하게 집단이기주의에 오염된 목사들, 장로들의 제 잘못 가리기를 위한 동성애 비난에 계속 꼭두각시 노릇을 하고만 있어야 하겠는가. 우리가 교회를 진정으로 아낀다면 논쟁적인 동성애 문제에 열을 올리기보다는, 잘못이 분명해 보이는 목사들의 성적 타락, 목회직의 세습, 설교 표절, 교회 재정 유용 등의 문제에 더욱 관심을 두고 적폐 세력에 대항해야만 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야 위기의 현대 교회에도 작은 희망의 싹이 다시 돋아나지 않을까.

장효진(가명) /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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