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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의 또 다른 길 보여 준 KTX 투쟁
[인터뷰] 김승하 지부장, 자캐오 신부
  • 장명성 기자 (dpxadonai@newsnjoy.or.kr)
  • 승인 2018.07.28 18:17

[뉴스앤조이-장명성 기자] 길었던 투쟁이 끝났다. KTX 해고 승무원 180명은 7월 21일, 한국철도공사(코레일)와 정규직 복직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2006년 5월 해고 이후 12년 만이었다.

코레일과의 싸움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었다. 해고 승무원 34명은 코레일의 불법 파견을 주장하며 법적 조치를 취했다. 1·2심 모두 해고 승무원이 이겼다. 기적 같은 경험도 잠시, 2015년 2월 대법원은 판결을 180도 뒤집었다. 서울고등법원은 2015년 11월 파기환송심에서, KTX 해고 승무원들에게 해고 기간 지급받은 임금 8640만 원을 토해 내라고 판결했다.

지금에서야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박근혜 정부와 거래했던 재판 리스트 중 하나가 KTX 해고 승무원 관련 판결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당시 상황은 절망이었다. 대법원과 파기환송심 판결은 KTX 해고 노동자들을 옥죄었다. 코레일의 직접 고용과 해고자 복직 문제에, 8640만 원의 임금 반환 문제까지 더해진 것이다.

KTX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민사회와 종교계가 'KTX해고승무원문제해결을위한대책위원회'(대책위)를 꾸렸다. 특히 종교계 인사들은, 코레일과 철도노조 사이에서 다리 역할을 하며 문제 해결에 앞장섰다.

자캐오 신부(왼쪽)와 김승하 지부장(오른쪽)을 철도회관에서 만나 인터뷰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KTX 투쟁이 승리로 마무리된 지금, 김승하 지부장(철도노조KTX열차승무지부)과 자캐오 신부(길찾는교회)를 철도회관에서 만났다. 자캐오 신부는 대한성공회 용산나눔의집 원장 사제이자 길찾는교회 담당 사제로, 2015년 KTX 해고 승무원 문제 해결을 위한 대림절 기도회를 시작으로 대책위에 참여해 이번 합의에 이르기까지 연대하고 관심을 기울여 왔다.

인터뷰가 있던 7월 27일은 고 노회찬 정의당 의원의 영결식이 열린 날이었다. 노회찬 의원은 해고 승무원들과 처음부터 끝까지 투쟁을 함께한 국회의원이었다. 살아서 마지막으로 남긴 메모도 해고 승무원들의 승리를 축하하는 내용이었다.

김승하 지부장은 노 의원의 마지막 가는 길에 함께하기 위해 영결식에 참석하고 오는 길이었다. 아직 수습되지 않은 감정들이 얼굴에 그대로 나타났다. 인터뷰 시작 전 잠시 노회찬 의원 이야기를 꺼내자 김 지부장은 말을 잇지 못했다.

환수금 해결, 복직 교섭 과정서
디딤돌 놓은 종교계
다양한 종교 함께하며
말할 수 있는 범위 넓어져

- KTX 해고 승무원과 성공회 사제. 두 사람은 어떻게 만나게 되었나.

자캐오 / 10여 년 전 대한성공회 성북나눔의집 실무자로 일하면서 해고 승무원 투쟁 현장에 방문한 적은 있었지만, 적극 참여하지는 않았다. 파기환송심 판결이 난 무렵 김승하 지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 중에 "아직도 해결이 안 되다니요"라며 둘이 허탈하게 웃기도 했다. 거리 기도회를 제안하며 투쟁에 함께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게 시작이었다.

- 해고 승무원 중에는 신앙이 없는 사람도 있고, 종교가 다른 사람도 있을 텐데 굳이 '기도회'를 제안한 이유가 있었나.

자캐오 /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기도였다. 기도는 '상징, 이야기, 기억'으로 싸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종교가 지속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 기도라고 생각했다. 그리스도교 전통에서 볼 때, 기도는 본래 일상에서 계속되던 행위다. 그런데 지금은 교회 안에서만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다. 기도는 일상에서 어떤 사람들과 함께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 그런 생각으로 기도회를 제안했다.

김승하 / 나도 개신교인은 아니지만, 기도회라는 형식에 대한 부담감이나 거부감은 없었다. 기도회도 투쟁의 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형식만 기도회일 뿐이지, 같은 주제를 놓고 생각하면서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셨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이전부터 각 종교에서 노동운동 하시는 분들이 개별적으로 함께해 주셨다. 그러다 2017년, 대책위가 출범하면서 힘을 합하기 시작했다. 환수금 중재 때도, 이번 교섭 과정에서도, 종교인들이라서 할 수 있는 역할을 해 주셨다.

자캐오 신부는 2015년 대림절 거리 기도회를 시작으로 KTX 해고 승무원들과 함께해 왔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 종교계가 노사 관계의 완충 역할을 한 것 같다.

김승하 / 종교인들이 여러 방면에서 문제 해결을 위한 통로 역할을 했다. 염수정 추기경이 하승창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을 만난 자리에서 "KTX 해고 노동자 문제에 관심을 가져 달라"고 이야기해 주셨다. 시민사회수석실이 종교 영역을 담당하고 있다 보니, 이 문제를 해결하자는 의견을 각 종교에 제안했다.

노동·시민단체도 이미 압박하고 있었는데, 종교계까지 나서자 코레일 측에서도 이 문제가 사회의 요구임을 느끼고 받아들였던 것 같다. 종교인들이 함께하면서 돌파구가 마련되었다.

자캐오 / 종교계는 완충 작용을 만드는 정도의 역할을 했다. 노사가 직접 부딪히지 않게 일종의 우회로를 만든 것이다. 이를 통해 서로 협상하는 과정을 거칠 수 있었다. 큰 도움이 되었다기보다는, 하나의 디딤돌이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그저 당사자들이 흔들리지 않고 싸움을 지속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싶었을 뿐이다.

- 긴 투쟁에 서로 연대하면서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김승하 / 자캐오 신부님이 처음 찾아왔을 때가 기억에 남는다. 파기환송심이 끝나고 '이제 우리는 완전히 끝났다', '더는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생각이 들 때였다. 당시는 박근혜 정부였기 때문에 더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아무도 우리에게 관심을 주지 않을 때 연대를 제안해 오니 큰 도움이 됐다. 절망적일 때 도와주었기에 감사하다.

종교계와 연대하면서 거리 기도회, 108배, 오체투지 등 우리 존재를 보여 줄 수 있는 통로가 많아졌다. 이전 투쟁에서도 다양한 방법을 취하긴 했지만, 그래도 대부분은 집회와 선전전, 피켓팅 등이었다. 다양한 종교와 함께하다 보니 사람들에게 얘기할 수 있는 창구도 넓어졌고, 싸우는 이미지를 넘어 호소하는 느낌으로 다가갈 수 있게 됐다.

김승하 지부장은 "'이제 다 끝났다' 생각했을 때 자캐오 신부가 찾아와서 고마웠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종교는 중재자·디딤돌 역할
긴 투쟁·싸움 뒤 치유·회복도

- 개신교가 노동·사회문제에 연대하거나 목소리를 내는 경우는 드문데, 해고 승무원들과 연대하기로 한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자캐오 / 우리는 다 노동자 아닌가. 우리가 고백하는 하나님은 사람의 모습으로 오셨고, 우리 삶 한가운데로 오셨다. 노동은 절대적인 시간으로만 봐도 우리 삶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삶과 밀접한 노동을 위해 싸우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게 종교가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혐오·차별·배제는 낮은 취급을 받는 사람들을 향한다. KTX 해고 승무원들도 실제로 낮은 사람들이 아닌데, 낮은 취급을 받아 온 사람들이다. 우리의 신앙과 연대는 더 낮은 곳으로 흘러야 한다. 낮은 곳에 임하신 예수를 따라 더 낮은 곳으로 가야 한다.

- 긴 투쟁 속에서 의지가 꺾일 때도 많았을 텐데, 장기 투쟁에서 다양한 단위의 연대가 실제로 힘이 되는가.

김승하 / 투쟁 초기에는 연대의 중요함을 잘 몰랐다. 정리 해고 직후 처음 투쟁에 함께했던 300명의 힘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투쟁이 길어지면서 함께하는 사람이 줄고, 여론의 관심이 줄어들었다. 우리밖에 없는 것 같을 때 함께해 주는 사람들에게서 싸울 힘을 얻었다.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한다는 게 참 소중하구나'하고 깨달았다. '남의 일'에 자기 일처럼 나서는 분들을 보며 감사했다.

김승하 지부장이 2017년 12월 열린 'KTX 해고 승무원 복직 촉구 종교인 오체투지'에 참여해 발언하고 있다. 자캐오 신부도 함께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 투쟁하는 사람들과 함께해 온 종교인 입장에서, 또 직접 투쟁해 온 당사자 입장에서 봤을 때 앞으로 이러한 사회문제에서 종교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김승하 / 파기환송심이 끝났을 때, 이 문제로 종교인에게 도움을 요청할 생각은 전혀 못했다. 애초에 종교 단체들은 사회문제에 크게 관심이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가톨릭교인인데, 한번은 성당에 가서 내 이야기를 했더니 '정치 이야기는 하지 말라'고 하더라. 일상의 모든 선택이 정치이고, 정치가 내 삶과 직결되는데, 성당에서는 그런 얘기하지 말라고 한다. 그렇다면 억울한 사람들은 어디 가서 하소연해야 하나.

이번 일을 통해 종교가 투쟁 현장에서 중재자, 문제 해결의 디딤돌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각박하고 힘든 사회에서 자기 싸우기 바빠 신앙생활에 힘을 쏟을 여력이 없는 사람도 많다. 그런 이들에게 먼저 찾아가고, 사회문제에 참여하는 일은 종교가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필요하다.

자캐오 / 투쟁, 싸움이라는 것이 사람의 에너지를 갈아 넣게 만들고, 극단적인 감정을 끄집어내기도 한다. 해외에서는 이런 투쟁을 마치고 나면, 종교 단체가 오랜 싸움과 갈등 뒤에 남은 트라우마를 해소하고 치유하는 일에 적극 앞장선다.

KTX 해고 승무원들의 투쟁은 장장 12년의 싸움이었다. 앞으로 몇 년 동안이라도 고생한 마음을 치유하고 보듬어 갈 수 있도록 상담 지원이 필요하다. 종교계가 '상담'을 넘어 투쟁으로 인한 상처를 치유하고 품어 줄 수 있는 역할을 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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