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공동체지도력훈련원 여름 연수회가 가나안농군학교에서 열렸다. 사진 제공 밝은누리

"나라를 잃고 전쟁으로 폐허가 된 이 땅에서, 이상촌 운동으로 희망을 증언한 이들이 있습니다. 이상촌 운동은, 일가 김용기뿐 아니라, 남강 이승훈, 도산 안창호 등 독립운동을 했던 이들이 저마다 비슷하게 품었던 꿈입니다. 그분들 문제의식을 계승해서, 이제 통일된 나라를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 하나 된 겨레가 어떤 삶을 만들어갈 것인가, 21세기 동북아가 어떻게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가 하는 새로운 꿈을 꾸는 게 우리 후손들에게 남겨진 과제입니다."

더불어 사는 삶을 소망하며 배워 가는 이들이, 이상촌 운동의 역사를 지닌 가나안농군학교에 모인 이유였다. '더불어 사는 삶, 뿌리에 서서 새로움을!'를 주제로 한 공동체지도력훈련원 2018 여름 연수회는 7월 13~14일 원주 가나안농군학교에서 열렸다. 청년지도력소통과대안, 목회멘토링사역원 공동 주최로 진행됐다. 밝은누리, 없이있는마을, 기억하는교회, 아이교회, 사랑마을공동체, 섬기는교회 등 교회 공동체 식구를 포함해 300여 명이 참석했다. 공동체지도력훈련원(최철호 원장)은 해마다 여름과 겨울에 여러 교회 공동체와 함께 연합 연수회를 열어 왔다. 이 땅에 뿌리내린 오랜 공동체들, 뜻 나누며 한 몸 이루어 사는 삶을 배워 가는 이들과 함께했다.

참가자들은 부산, 옥천, 광주, 태백, 홍천, 서울, 남양주 등 곳곳에서 공동체지도력훈련원 연수회에 함께하고자 첫째 날 점심에 속속들이 모여들었다. 이들은 등록을 마치고 가나안농군학교 전경을 둘러봤다. 못 쓰는 산소통과 버려진 기차 레일을 재활용하여 만든 '개척의 종'이 곳곳에 쇠망치와 함께 걸려 있었다. 군데군데 녹슬고 벗겨졌지만 '쩡' 하는 소리가 꽤 우렁찼다. 날마다 새벽 네 시면 이 종소리를 정신을 깨우고, 구보로 땀 흘리며 짧지 않은 산길을 올라 '구국 기도실'에 들렸을 테다.

공동체지도력훈련원 여름 연수회 예배 현장. 사진 제공 밝은누리
못 쓰는 산소통을 재활용해 만든 개척의 종. 이 종은 새벽마다 10번을 타종한다. 육체의 잠, 사상의 잠, 영혼의 잠을 깨우기 위함이다. 사진 제공 밝은누리

'구국 기도회' 하면 곧 우리 사회 분단을 상징하는 '태극기 집회'를 떠올릴 것인데, 여기서 시작한 구국 기도는 달랐던 것 같다. 자기를 넘어 나라와 민족을 살리고자 하는 헌신적 일념이 '조국이여 안심하라, 온 겨레여 안심하라'는 문구에서 새삼 느껴졌다. 일가 김용기 장로가 구하던 '민족의 복'은, 우리 겨레 스스로 살아 나갈 힘을 줏대 있게 길러 가는 것이 아니었을까.

땅속에 파 놓은 냉장고 같은 '고구마 12개월 저장고'에 들어가 보았다. 일제강점기 쌀 공출에 저항해 쌀농사를 안 짓겠다고 하고 고구마 농사를 시작했다. 수년에 걸친 시행착오 끝에 11~13℃를 유지하는 저장고를 고안해 내 고구마를 주식으로 삼았다고 한다. 식당에 크게 써 있는, '먹기 위하여 먹지 말고 일하기 위하여 먹자, 일하기 싫으면 먹지도 말라'는 날고구마 같은 투박한 구호가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까.

매일 새벽 산에 올라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고자 지은 구국 기도실. 사진 제공 밝은누리
일제 수탈을 끊고 식량 자립을 하고자 고안해 낸 고구마 저장고. 사진 제공 밝은누리

"오곡이 익어 가며, 꽃이 만발하고, 벌과 나비가 춤을 추고, 집집마다 젖 짜는 양이 있고, 교회가 있고, 마을 사람들은 모두 형제가 되어 하나님을 믿고, 모두가 근로하고 생산하여 경제적으로 풍부한 생활을 영위하고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으로 정신적, 영적 안위를 얻을 수 있는 에덴동산."

일가 김용기 장로가 가슴에 품은 이상촌이었다. 일제 강점과 전쟁으로 폐허가 된 우리 땅의 현실을 생각하면 너무 머나먼 이야기였다. 그러나 그는 진정한 주권 회복이 농사로 우리 미래를 스스로 개척하는 삶에 있다고 하며 스스로 농사꾼이 되고 농민들을 길러 내고 민족을 깨우쳤다. 그 어려운 시절 해외 원조에 의존해서 나라를 재건한 게 아니라는 민족의 자존심을 몸소 보여 준 것이다. 고구마 저장법을 계기로 신사참배와 창씨개명을 거부하고, 박정희 정권이 가나안농군학교를 본떠 새마을운동을 시도하는 과정에서도 쓴소리를 마지않았다.

46년 전 아무것도 없는 이곳에 와서 가나안농군학교 개척 과정을 지켜보고 평생 살아온 김범일 님은 여는 예배 말씀에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는 마태복음 말씀에 비추어 행복한 삶에 대해 나누었다.

바로 이어진 강연에서 오세택 님은, 두 달 전부터 가나안농군학교 비상근 교장을 맡았다며, "가나안농군학교가 지금까지 했던 기업체 직원들을 위한 교육을 과감히 탈피하고, 땅에 기반을 둔 자립 공동체를 만들어 이상촌과 농군학교의 본래 모습으로 돌아가려고 한다"고 했다. 가나안농군학교가 새로운 전환을 앞두고 있는 것이다.

공동체지도력훈련원 연수회 참가자들은 가나안농군학교에 모여 함께 밥상을 나누고, 모둠을 이뤄 공부했다. 이튿날 이른 아침 운동장에 모여 동북아 생명 평화를 위해 기도하고, 저마다의 터에서 어떻게 생명을 키우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나누었다.

유장춘 님은, 한동대에서 사회복지학을 가르치며 함께 뜻을 나눈 대학생들과 사랑마을공동체를 시작하게 된 이야기를 들려줬다. 어린 시절부터 가나안농군학교에서 나고 자란 김장생 님은 아프리카의 기아와 빈곤 문제를 풀어 가고자 주민들과 함께 흙벽돌 집을 짓고 농사를 지어 '지속 가능한 국제 개발 협력'을 모색하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윤성모 님은 중독이 구조화한 이 사회 현실에서, 일상 가운데 서로를 지켜 주며 더불어 살아가는 삶으로 답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중독이 구조화한 사회와 치유 공동체를 주제로 강의한 라파공동체 윤성모 님. 사진 제공 밝은누리

다음은 첫째 날 저녁에 흥과 감동이 피어올랐던 생명 평화 고운 울림 잔치에서 예봉산 자락 남양주 팔당에서 한 몸 살이 하는 '없이있는마을' 공동체 교회가 들려준 노랫말이다.

"세상의 가치를 따르지 않아도 예수를 따르는 마을, 그 고요한 성령을 느끼며 제자로 하나 되는 마을, 평화와 생명을 꿈꾸는 마을, 있는 듯 없이도 행복한 마을, 집에 쌀이 없을 때에도 마음 편하게 얻을 수 있는 마을, 꾸미지 않아도 빛이 나는 마을, 나를 비우며 스스로 자족하는 마을, 아이들은 해맑게 뛰놀며 하루하루 꿈을 꾸는 마을, 세상 어두움과 슬픔 가운데 그저 묵묵히 함께 위로가 되는 마을, 예수를 만난 이후로 옛 삶을 한 번도 바라지 않는 마을, 이런 마을에서 서로 꿈꾸며 사는 우린 그런 마을이 좋아요."

첫째 날 저녁에 열린 생명 평화 고운 울림 잔치. 사진 제공 밝은누리
팔당 예봉산 자락에서 한 몸 살이 하는 행복을 노래로 표현한 없이있는마을. 사진 제공 밝은누리

홍천 밝은누리와 태백 예수원 탐방도 진행됐다. 밝은누리는, 나와 이웃, 몸과 마음, 자연과 사람, 농촌과 도시가 서로 살리는 삶을 일구며, 남과 북을 넘어 동북아 온 겨레와 누리가 더불어 사는 새로운 소망을 향해 생명 평화 고운 울림 기도 순례를 진행하고 있다.

공동체 영성과 중보 기도, 성경적 토지 정의 등을 가르치며 수많은 그리스도인을 환대해 온 예수원은, 이제 한강-낙동강-동해 오십천으로 물이 나뉘는 삼수령 터전에서 북녘땅을 향해 평화의 물줄기가 흘러가는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가나안농군학교에서 가르쳐 온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 버려진 주변부를 찾아 근로와 봉사와 희생정신으로 정신과 육체, 그리고 땅을 회복하는 삶의 의미'가 한라에서 백두를 넘어 동북아 생명 평화를 일구어 가는 새로운 꿈으로 이어지는 중이다.

둘째 날 이른 아침, 운동장에 모여 동북아 생명 평화를 위해 기도했다. 사진 제공 밝은누리
더불어 사는 삶을 소망하며 배워 가는 이들이, 통일된 나라를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 하나 된 겨레의 삶을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 21세기 동북아가 어떻게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가에 대한 새로운 꿈을 품었다. 사진 제공 밝은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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