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박요셉 기자] 김동수 씨는 마스크를 쓴 채 말없이 천장을 보고 있었다. 그의 자리는 6인 병실에서 제일 구석진 곳이었다. 몸은 좀 괜찮냐는 질문에 김 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차분한 표정이었다. 며칠 전 자기 몸을 상하게 한 인물로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힘없이 늘어진 왼손에는 바늘로 여러 번 꿰맨 흉터가 보였다. 지난달 말, 제주에서 네 번째 자해를 하고 생긴 상처다.

세월호 참사 때 20여 명을 구조한 '파란 바지의 의인' 김동수 씨는 7월 13일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다섯 번째 자해를 시도했다. 지갑에서 공업용 커터칼 날을 꺼내 복부를 그었다. 그는 곧장 신촌 세브란스병원 응급실에 실려 갔다. 응급조치를 마친 외과의사는 김 씨의 신체 곳곳에 있는 상흔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자해 흔적이 너무 많네요. 마치 환자의 마음 상태를 보는 것 같아요."

기자는 7월 17일, 김동수 씨가 입원한 세브란스병원에서 그를 만났다. 김 씨의 아내 김형숙 씨가 간병하고 있었다. 김동수 씨는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4년이 지났지만 해결은 안 되고 사람들 기억 속에 잊히는 것만 같아 자해를 했다고 말했다.

김동수 씨는 참사 이후 생긴 트라우마로 4년째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다. 학생들을 구조한 의인이라 불리고 훈장도 받았지만, 김 씨는 여전히 자신을 죄인이라고 소개했다. 마지막까지 아이들을 구조하지 못하고 배를 탈출했다는 죄책감 때문에 지금도 살기 힘들다고 했다.

"사람들은 어서 빨리 힘든 기억 다 잊고 일상으로 돌아오라고 한다. 왜 아직도 옛 기억에서 헤어나지 못하냐고 뭐라 하는 이도 있다. 그런데 나는 배에서 탈출하기 직전에 그 광경을 다 봤다. 살려 달라는 아이들의 절규와 눈빛이 아직도 머릿속에 생생한데 어떻게 잊겠나."

김동수 씨는 7월 13일 청와대 앞에서 커터 날로 자신의 배를 그었다. 그는 세월호 참사 이후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뉴스앤조이 장명성

트라우마는 몸과 마음의 통증으로 나타났다. 부인 김형숙 씨는 김동수 씨가 세월호 참사 이후 PTSD(외상후스트레스장애)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평소 손발이 떨려 몸을 마음대로 가누지 못하고, 극도의 불안과 신경증을 보였다. 사소한 일에도 쉽게 화를 내며 소리를 지르는 일이 잦아졌다. 급기야는 지난달 말, 한 행사장에서 시비가 붙어 깨진 유리병으로 자신의 왼쪽 손을 자해했다.

김형숙 씨는 "세월호 4주기 이후 더 예민해진 것 같다. 병원이나 일터에서 직원들과 갈등을 일으켜 경찰이 출동한 적도 있다. '세월호에서 살아 돌아온 괴물이다', '너희들이 참사를 경험해 봤냐'며 소리를 질렀다. 본인도 스스로 감정 제어가 잘 안 되는 걸 알고 괴로워한다"고 말했다. 세월호 희생자에 대한 죄책감과 도와주지 않는 정부에 대한 원망이 뒤엉켜 김동수 씨는 스러져 가고 있다.

가족들은 매일 조마조마하며 그런 김 씨 곁을 지키고 있다. 혼자 내버려 두면 어떤 돌발 상황이 생길지 몰라 가족과 지인들이 돌아가며 김 씨를 돌본다. 김 씨가 다섯 번째 자해를 실행한 7월 13일에는, 형숙 씨가 일 때문에 잠시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세월호 생존자는 지금도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참사 속에 살고 있다. 정부가 지속적으로 피해자를 책임져 줘야 하는데, 지금은 그 몫을 개인과 가족이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 정부 관계자에게 호소해도, 4년간 고려해 보겠다는 말만 하고 구체적인 대응이 없다. 간병인이라도 둘 수 있도록 실질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제주에는 2015년 2월 세월호 피해 상담소가 설치됐다. 일주일에 한 번씩 상담사가 김 씨 집에 방문해 건강을 살핀다. 상담사와 대화를 나누고 나면 기분이 좋아지지만, 시간이 지나면 금세 악화한다고 형숙 씨는 말했다. 그는 "매일 똑같은 일의 반복이다.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한데 생존자 가족들은 하루 먹고살기도 빠듯해 다른 치료책을 찾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가족들의 필요는 '의인'이라는 명예보다 'PTSD 환자'에 대한 지원이었다. 형숙 씨는 7월 초, 한 언론사에 김동수 씨를 비롯해 세월호 생존자들이 겪는 어려움을 호소했다. 기자와 전화로 인터뷰까지 진행했지만 기사는 나가지 않았다. 이번에 김동수 씨가 자해를 하고 난 뒤에야, 언론들은 세월호 생존자들이 겪는 트라우마를 앞다퉈 보도했다.

"남편에게 자해는 호소인 것 같다. 관심을 가져 달라는 것이다." 형숙 씨는 세월호 참사를 잊지 말고 피해자들이 고통받고 있는 상황을 기억해 달라고 했다. "트라우마는 지금도 피해자와 주변 가족들을 괴롭히고 있는데, 정부나 지역사회는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세월호 생존자들에 대한 지속적인 지원이 시급하다."

김동수 씨의 손. 네 번째 자해 흔적이 깊게 남아 있다. 뉴스앤조이 장명성

"트라우마, 시간 지난다고 해결되지 않아
장기간 전문 상담과 지원 필요"
제주 내 트라우마 센터 설치 청원

세월호 참사 직후 2년간 단원고등학교에서 스쿨닥터로 지낸 김은지 교수(마음토닥정신건강의학과의원)는 <뉴스앤조이>와의 통화에서, PTSD는 시간이 지난다고 해결되는 증상이 아니라고 했다. 트라우마는 참사 직후 바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오랜 기간 잠복해 있다가 증세가 나타날 때도 있다. 특히 세월호 참사 같은 경우에는 악성 댓글과 루머, 정치적 공방 등으로 피해자들이 2차 트라우마를 겪기도 했다.

김 교수는 "트라우마는 정부와 지역사회가 장기간 피해자를 지원하고 돌보며 관리하는 게 중요하다. 피해자를 보호하지 못하고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하면, 시간이 지나면서 상처가 더 커질 수도 있다. 올해 4월 서울에 '국가트라우마센터'가 설립됐지만, 전국 곳곳에도 센터가 만들어져 촘촘한 그물망을 갖고 피해자를 케어하는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고 말했다.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제주에 트라우마 센터 설치와 세월호 생존자 지원 대책을 촉구하는 청원이 올라왔다. 청원자는 제주에 사는 김홍모 씨다. 그는 김동수 씨를 포함해 제주에 있는 세월호 생존자 24명이 트라우마로 고통을 겪고 있는데, 제주에는 이들을 위한 시설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했다. 김홍모 씨는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고통인 세월호 생존자들이 삶의 끊을 놓지 않도록 실질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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