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여름, 전국다문화도시협의회 주관으로 유럽 다문화 도시 벤치마킹 코디를 맡아 관계 공무원 7명과 독일, 오스트리아, 체코를 방문한 적이 있다.

첫날 방문지는 프랑크푸르트시 다문화통합센터였다. 통일 이후 프랑크푸르트시는 1989년 다문화과를 신설했다. 다문화통합센터는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도시 통합의 중추 역할을 맡고 있다.

다문화통합센터는 어떻게 하면 외국인들과 평화적·성공적으로 어울려 살아갈 수 있는지, 종교 간 문제를 어떻게 소통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지 등을 연구한다. 센터는 전문 인력을 투입해 지역에서 발생하는 언어교육(독일어, 모국어), 부모와 자녀 문제 등에 지속적으로 개입하며 다양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

센터는 민간 기관인 개신교 디아코니아와의 깊은 연계 아래 일을 한다. 프랑크푸르트에는 180여 개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산다. 가장 중요한 일은 종교 간 분쟁 해결이다. 센터는 다양한 종교 분쟁을 해소하고 사람들이 성공적으로 어울려 살아가게 하기 위해 노력한다.

현재 프랑크푸르트 시민 40% 이상이 이주 경험이 있고 24.3%가 국제 이주민이며 신생아 2/3의 부모가 외국인이다. 그래서 프랑크푸르트시에는 이주 배경이 있는 아동이 많다. 직업교육 등을 통해 사회에서 배제되지 않고 더 나은 전망으로 살 수 있도록 하고, 청소년들이 가족 안에서 안정적으로 살아가는지 관심을 기울인다.

아프리카인, 무슬림인 등 이주민들이 배제되지 않는 문제도 부서에서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근래 뜨거운 주제는 전 세계적으로 발생한 6500여 만 명의 난민 문제다. 이란 등의 국가에서 살해 위협, 고문 등 상황을 피하려고 난민으로 오는 사람들을 어떻게 맞이하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가 문제다.

하이델베르크 난민 수용소를 방문하고 난 뒤. 사진 제공 홍주민

독일은 유럽에서 난민들이 가장 많이 선택하는 나라다. 내가 방문한 2015년 상반기만 해도 20만 명(유럽 전체가 40만 명)이 유입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2015년 한 해 80만 명 정도가 들어올 것으로 예상했는데, 결과적으로 120만 명가량 들어왔다.

독일에서는 찬성과 반대, 두 가지 입장이 있었다. 개신교 디아코니아, 가톨릭 카리타스을 비롯해 유입 난민을 환영하며 받아들이려는 시민사회의 움직임이 있었다. 시청 등 관공서에 방문하거나 문서를 쓰는 일을 도와주는 자원봉사자가 많았다. 프랑크푸르트시는 그런 측면에서 자부심을 갖고, 유입 난민에 대한 시민단체 및 종교 기관 등에서 다양하게 도움을 준 것에 감사하고 있다고 했다.

당시 나는 이 부서를 방문하면서 충격에 빠졌다. 부서 대표가 이란에서 난민으로 와 33년 전에 정착한 에스칸다리 그륀베르크 박사였기 때문이다. 정치적으로 망명한 이란 출신의 난민이었던 이 여성은, 당시 독일 중부 유럽 금융 허브권 프랑크푸르트시 다문화통합부서 명예부시장이었다(2008~2016년).

그는 난민들이 분쟁 지역에서 오기 때문에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이나 종교적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는 프랑크푸르트시가 모두에게 권리를 주면서 인내심을 갖고 평화적으로 문제를 극복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강변한다.

1965년 이란 테헤란에서 출생한 그는, 자신의 라이프스토리를 말하는 것에 그리 흔쾌하지 않았다. 기억하기 싫은 트라우마가 떠오르기 때문이란다.

1978~1980년, 이란혁명 때 그는 고등학생이었다. 당시 이란 정권에 대항한 민주주의 운동에 가담해 체포됐고, 감옥에서 1년 반을 복역했다. 그는 당시 종교의자유와 무슬림에 대한 비판적 대화에 관여했다. 19세 때, 독일을 경유해 미국으로 망명하려고 계획했고 프랑크푸르트에는 2일 정도 머물고자 했다.

하지만 이란과 미국의 관계가 나빠지면서 미국 체류 비자가 나오지 않아 더 머물게 된 것이 33년이 됐다. 행운이었다. 독일에 머물면서 의학과 심리학으로 학위를 받고 지금은 정치가와 심리학자로 활동하고 있다. 프랑크푸르트시 다문화통합센터에서는 명예직으로 일하고 있다가, 2018년 2월 녹색당 후보로 시장선거에 나와 선전했다.

그륀베르크 대표와 2015년 여름에 나눴던 대화를 정리했다.

에스칸다리 그륀베르크 박사. 사진 제공 홍주민

- 본인이 난민 출신이라 의미가 있기도 하지만, 때로 약자만 대변하다 보면 정부와 마찰이 생길 때도 있을 것 같다.

1층에 의회가 있다. 서류를 접수받아 일을 진행한다. 위원회는 300개가 있으며, 토론하면서 해결점을 찾는다.

이 일 자체가 도전적이라서 대립과 마찰이 있을 수밖에 없다. 7년 전 무슬림 사원 건축 문제로 시위가 일어난 적이 있는데, 그 후로는 평화롭다. 난민들이 분쟁 지역에서 오기 때문에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이나 종교적 문제 등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프랑크푸르트시는 모두에게 권리를 주면서 인내심을 갖고 평화적으로 문제를 극복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 시 센터에 중앙정부와 교섭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가.

독일은 시스템이 독특하다. 시는 독자적 정부다. 연방에서 대표들이 회의를 하지만, 예산 운영이나 과제 수행은 독자적으로 한다.

- 부서 직원이 얼마나 되나.

직원은 40명이다. 그 외의 인력은 100명 정도다. 이들은 모두 전문 자격증을 갖고 있다. 한 번 일하면 계속 근무한다(한국처럼 순환식으로 하지는 않는다 - 필자 주).

- 독일의 이주민 정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주해 온 지 30여 년 됐다. 처음에는 3년 계약으로 일하다가 정착하게 됐다. 정책이 바뀐 뒤로 4세대까지 와서 많은 변화가 예상된다. 이주 정책은 많이 변해 왔고, 앞으로도 변할 것이다.

- 이곳에 와서 정착할 때 민간이나 정부에서 어떤 도움을 받았나.

처음에 망명했을 때 독일 정부의 지원은 없었다. 혼자서 7개월 정도 카세트로 어학 공부를 했고, 8개월째부터는 의학 공부를 시작했다. 이후 복지 단체로부터 점점 많은 지원을 받게 됐다. 그때 당시는 지원이 열악했다. 지금은 NGO나 시민사회에서 많이 돕고 있다.

- 이주민은 선거에 대해 어떤 권리와 의무를 갖는지 궁금하다.

독일 여권이 있어야 투표가 가능하다. 20년 이상 살아도 투표권이 없는 경우도 있다. 지방정부 선거도 안 되고, 세금을 내더라도 투표권은 없다. 다만, 유럽연합에 속한 사람은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

- 한국도 난민 때문에 법무부에서 어려움이 많다. 비자가 만료되는 시점에 난민을 신청하면, 결정이 나기까지 2년이 소요되기 때문에 한국에서 2년간 생활할 수 있다.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제소하고 판결까지 1년이 걸려서 최대 3년까지 체류 가능하다. 독일은 어떤가.

독일은 보통 1~3년 걸린다. 최대 6년이 걸리기도 한다. 난민 통과가 되지 않으면, 법정에서 기다리는 시간을 준다. 기간이 정해지지 않아 12년을 기다리는 사람도 있다. 검토해서 난민 인정이 안 되면 불법체류자가 된다. 그리고 기다리는 동안 일을 못하기 때문에 시에서 지원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최근 난민 신청한 사람이 많아 서류 검토 등에 인력이 부족해 이번에 1000명을 한꺼번에 채용하기도 했다.

난민으로 들어와 독일 땅에 정착해 부시장으로 역동적으로 일하다 시장 선거까지 나온 그륀베르크 박사에게 뜨거운 연대의 마음을 보낸다. 그는 이주민이 적은 곳에서 오히려 외국인에 대한 부정적 사고나 행동이 나온다고 말한다.

시민 40% 이상이 이주 경험이 있고 24.3%가 국제 이주민이고, 신생아 2/3의 부모가 외국인인 프랑크푸르트에서 다양한 국제 이주민들이 통합을 이루면서 무지개색 미래를 향해 평화로운 공존의 세상을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자부심을 갖는다는 그의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Wir sind stolz(우리는 자부심을 갖습니다)."

한국 사회는 제주에 들어온 예멘인 500여 명을 둘러싼 논쟁으로 아직까지 홍역을 치르고 있다. 시민사회에서 이제까지 주제가 되지 않았던 세계 난민에 대해 관심도 갖게 되었다. 현재 난민에 대한 다양한 논란을 촉발했다는 점에서 난민은 한국 사회 향방에 뜨거운 화두로 작용하리라는 기대도 함께 품게 된다.

분단 상황으로 독립된 섬처럼 60여 년간 지내 온 지정학적 한계 때문에 한국이 아직도 많은 인식론적 한계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난민이나 이주민에 대한 인종주의, 혐오와 배제 문제는 우리가 넘어야 할 산이라고 본다. 한국에서도 난민 출신 시장 후보가 나올 수 있을까.

최근 안타까운 탄원서를 접하면서 이란 난민 출신 독일 프랑크푸르트 시장 후보 그륀베르크 박사가 오버랩됐다. 청와대 청원 핵심 내용은 이렇다. 

현재 중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이란 국적의 학생은 일곱 살에 한국으로 왔다. 그는 기독교로 개종해 반 아이들과 국적을 불문하고 어울려 지내 왔다. 하지만 난민 신청을 불허해 법원 판결에서 패소했고, 신분이 박탈돼 강제 출국 예정이란다. 지금 그가 이란으로 돌아가면 목숨이 매우 위태로울 수 있어 27명의 반 친구들이 매우 간절하고 절박하게 청원 운동을 하고 있다. 청원서에 힘을 실어 주어야 한다. 거짓 난민은 없다. 아래는 청와대 청원 주소다.

청와대 청원 바로 가기: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303099

홍주민 /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M.Div)을 졸업하고, 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교에서 디아코니아학 디플롬(Dip.Diakoniewissenschaftler) 및 신학 박사(Th.D) 학위를 받았다. 한신대학교 연구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한국디아코니아 상임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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