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적 병역거부의 의미

'양심적 병역거부'는 '양심적', '병역' 거부라는 표현 때문에 오해의 소지가 있다. 더 정확한 표현은, '양심의자유를 이유로 한 집총 거부'이다.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말은 '한 개인이 자신의 양심에 따라' 병역을 거부하는 행위를 일컫는 것이지, 병역거부 행위가 보편적 양심을 따르는 도덕적 행위라는 의미가 아니다. 그러므로 '양심적 병역거부'를 허용한다고 해서 병역의무 이행을 국민의 숭고한 의무로 받아들이는 대다수 국민들이 '비양심적'인 사람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 글에서는 양심적 병역거부 관련 헌법재판소(헌재) 결정과 이러한 결정이 나오게 된 배경, 그리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와 같은 헌재의 결정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간단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6월 28일 헌재는 병역법 조항 중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처벌을 위한 조항(제88조 제1항 본문 제1호 및 제2호)은 여전히 합헌이지만,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제를 규정하지 않은 조항(제5조 제1항)은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병역법에 이미 언급되어 있는 '대체복무제'가 실행을 위한 세부 조항에 마련되어 있지 않은 것은 위헌이므로 대체복무제를 실행할 수 있도록 법 조항을 보완해야 한다는 것이다.

헌재 결정의 요지 및 내용

병역법 제88조 제1항 등에 대한 위헌 소원에 대하여, 2018.06.28. 헌재는 ①재판관 6(헌법 불합치):3(각하)의 의견으로, 병역의 종류에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제를 규정하지 아니한 병역법 제5조 제1항은 헌법에 합치되지 아니하며, 2019.12.31.을 시한으로 입법자가 개정할 때까지 계속 적용된다(헌법 불합치), ②재판관 4(합헌):4(일부 위헌):1(각하)의 의견으로,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처벌 근거가 된 병역법 제88조 제1항 본문 제1호 및 제2호는 헌법에 위반되지 아니한다(합헌)는 결정을 선고하였다.

다수 의견에 따르면, ①대체복무제라는 대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군사훈련을 수반하는 병역의무만을 규정한 병역 종류 조항은 침해의 최소성 원칙에 어긋나고, ②병역 종류 조항이 추구하는 '국가 안보' 및 '병역의무의 공평한 부담'이라는 공익은 대단히 중요하나, 병역 종류 조항에 대체복무제를 도입한다고 하더라도 위와 같은 공익은 충분히 달성할 수 있다고 판단됨에 반해, 병역 종류 조항이 대체복무제를 규정하지 아니함으로 인하여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최소 1년 6월 이상의 징역형과 그에 따른 공무원 임용 제한 및 해직, 각종 관허업의 특허·허가·인가·면허 등 상실, 인적 사항 공개, 전과자에 대한 유·무형의 냉대와 취업 곤란 등 막대한 불이익을 감수하여야 하는데,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게 공익 관련 업무에 종사하도록 한다면, 이들을 처벌하여 교도소에 수용하고 있는 것보다는 넓은 의미의 안보와 공익 실현에 더 유익한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고, 국가와 사회의 통합과 다양성의 수준도 높아지게 될 것이므로, 현재의 병역 종류 조항은 법익의 균형성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병역 종류 조항에 대체복무제가 마련되지 아니한 상황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현재의 대법원 판례에 따라 처벌 조항에 의하여 형벌을 부과받음으로써 양심에 반하는 행동을 강요받고 있으므로,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제를 규정하지 아니한 병역 종류 조항은 과잉 금지 원칙에 위배하여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양심의자유를 침해한다.

헌재의 결정이 나오게 된 배경

2012년 기준으로 전 세계 각국에 수감되어 있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총 723명인데, 그중 우리나라에만 669명이 수감되어 전체의 약 92.5%를 차지하고 있다. 1950년부터 2016년 말까지 우리나라에서 양심적 병역거부로 처벌받은 사람은 약 1만 8800여 명이다. 그런데 양심적 병역거부권은 사상의 자유, 양심의자유, 종교의자유의 구체화라고 볼 수 있으므로,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위한 대체 복무 수단을 마련하지 않고 병역의무 위반으로 처벌하여 범죄자로 만드는 것은 헌법상 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따라서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위한 대체 복무 수단을 마련하는 것은 헌법상 평등 원칙에 부합된다. 그 때문에 징병제를 채택하고 있는 59개국 중 약 20개 국가가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대체복무제를 현재 운영 중이거나 도입하였는데, 미국·영국·프랑스·스위스·그리스·독일과 같은 선진국뿐 아니라, 중국과 대치하고 있는 대만도 최근에 대체복무제를 도입하였다.

이러한 배경에서 종교적 신념 또는 헌법상 양심의자유를 이유로 병역을 거부하는 사람을 병역의무 위반으로 처벌하는 바람에 범죄자가 양산되고 있으므로 대체복무제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었다.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는 2006년 이후 여러 차례 우리나라에 대체복무제 등 대안적인 입법 조처를 권고하고, 2015년에는 징역형을 선고받은 양심적 병역거부자 전원을 즉시 석방할 것을 한국 정부에 권고하기도 했다. 헌재는 이미 2004년경에 입법자에 대하여, 국가 안보라는 공익의 실현을 확보하면서도 병역거부자의 양심을 보호할 수 있는 대안이 있는지 검토할 것을 권고하였는데, 그로부터 14년이 경과하도록 이에 관한 입법적 진전이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그 사이 국가인권위원회·국방부·법무부·국회 등 국가기관에서 대체복무제 도입을 검토하거나 그 도입을 권고하였다.

지속되는 국제적 비판에 직면한 우리나라는 노무현 정부 시절(2003~2008), "병역 이행 관련 소수자의 사회 복무제 편입 추진 방안"을 발표했는데, 대체 복무에 대해 ①복무 기간은 현역 복무 기간의 두 배(육군 현역 18개월 기준으로 36개월), ②복무 조건은 합숙 생활, ③난이도는 사회 복무 분야 중 24시간 근접 관찰이 필요한 최고 난이도의 업무로 배치, ④복무 형태는 한센·결핵·재활·정신병원 등의 특수 병원과 국·공립 노인 전문 요양 시설에서의 근무로 명시하였다. 법원에서도 최근 하급심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무죄판결을 선고하는 사례가 급증하는 추세였다. 양심적 병역거부 인정 및 대체복무제 도입을 위해 제20대 국회에 발의된 '병역법 일부 개정 법률안'은 3건에 이르고 있다.

양심적 병역거부 및 대체복무제 도입에 대한 국민의 인식은 과거에 비해 크게 변화해 가고 있다. 예컨대, 서울지방변호사회가 2016년 회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 응답한 변호사 1200명 중 80.5%가 대체복무제 도입에 찬성했다.

헌재의 이번 결정은 이러한 경과와 배경에 따라 이루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다수결을 기본으로 하는 민주주의 의사 결정 구조에서 다수와 달리 생각하는 이른바 '소수자'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이를 반영하는 것은 관용과 다원성을 핵심으로 하는 민주주의의 참된 정신을 실현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대체복무제도 도입을 우려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주로 대체복무제도의 남용과 그에 따르는 안보 문제, 그리고 특정 종교 집단에 유리하지 않은가 하는 문제 때문이다.

먼저, 대체 복무 지원자가 많아져 안보가 흔들릴 것이라는 우려는 다른 나라의 사례를 볼 때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가까운 대만의 경우에도 현실은 대체 복무로 할당된 인원을 다 채우지 못하는 형편이다. 대체 복무가 사회 복무 분야 최고 난이도 업무에 대해 배정되고 기간도 현역 복무의 약 2배에 달하는 기간 동안 이루어진다면, 단순히 집총을 거부를 위한 대체복무제에 지원하기 위해 개종을 하거나 허위로 양심을 진술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길고 힘든 복무를 선택하는 것 자체가 병역거부자의 양심을 판단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가 될 수 있다. 우리나라도 외국의 대체복무제를 참조하여 현역 복무에 비해 부담이 큰 대체복무제도를 설계한다면, 병역기피자들의 제도 남용이나 악용의 문제와 심사의 곤란성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 또한, 세계적으로 많은 안보 전문가들이 미래의 전쟁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양상으로 진행되므로, 병력 감축, 무기의 첨단화, 전투 능력 상승 등의 방향으로 안보 정책을 수립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따라서 대체복무제도가 병력 감소에 미칠 영향도 미미할 것이지만, 국가 안보력 저하에 미칠 영향은 더욱 미미할 것이다.

더욱이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위한 대체복무제도는 특정 종교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현실에서는 양심적 병역거부자 중 특정 종교 신봉자들의 비율이 절대적이지만, 불교·천주교·기독교 신자는 물론이고 종교가 없는 사람들도 없는 건 아니다. 역사적으로 영국과 미국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대다수는 성경 말씀에 철저히 순종하려는 신념으로 평화주의를 선택한 기독교 분파(메노나이트, 퀘이커) 신자들이었다. 그러므로 아직은 소수지만 정통적인(이단이 아닌) 기독교 신앙 때문에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매년 평균 700여 명의 젊은이들이 집총을 거부하고 있는데, 이들을 형사처벌하여 수많은 전과자를 양산할 것인가, 아니면 다른 방식으로 국가와 사회에 대한 의무를 다하도록 할 것인가.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역사적 기독교의 중요한 전통인 '기독교 평화주의'에 대해 깊은 연구와 묵상을 해 볼 것인가, 아니면 남북 대치 상황이 변하지 않았다고 말하며 계속해서 구시대의 안보 이데올로기에만 머물러 있을 것인가. 변화하는 시대와 사회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 성경의 원리를 현실 세계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 하늘로부터 오는 지혜와 분별력이 필요한 때이다.

박종운 / 법무법인 하민 변호사, 교회개혁실천연대 공동대표

* 기독교윤리실천운동에서 발행하는 '좋은나무'에 실린 글입니다. 허락을 받고 게재합니다(원문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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