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7일 월드컵 예선전, 독일과 한국이 러시아 카잔 축구 경기장에서 맞서고 있었다. 정해진 경기 시간이 모두 흐르고 주어진 추가시간에 한국이 공을 잡자 하프라인을 넘어 빠른 속도로 패스가 날아갔다. 손흥민 선수는 놀라운 속도로 공을 향해 달려갔다. 경기장 절반을 치열하게 달려 상대 골문에 공을 넣은 뒤 그는 눈물을 흘렸다. 여러 스포츠 경기가 그렇지만 축구 또한 우리네 삶의 일정한 모습을 보여 준다. 어떤 때는 그 모습이 극적으로 드러난다.

손흥민의 골이 감동적이었던 것은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승리에 종지부를 찍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공격수로서 그는 자신의 존재 이유가 '골'을 넣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목표를 알고 있었고, 그 목표를 완수하기 전까지는 온전히 쉬지 못했다. 공이 경기장 안에 있는 이상, 그는 그 공을 '찾아' '쉼 없이' 달린 다음 골문이라는 '방향'을 향해 넣어야 한다. 축구 경기에서 '골'을 넣기 위해 달려가는 것('towards goal')이라는 말은 '골을 넣기 위하여', '골대를 향하여', '목표를 성취하기 위하여'라는 뜻을 모두 함축하고 있다.

사람들이 '골'을 넣는 장면에 감동하는 이유는 어쩌면 단순하다. 자신에게 주어진 '목표'를 '여럿이 함께', '적절한 시간에', '적절한 방식으로' 완수하는 모습, 우리 모두가 인생이라는 경기를 치르며 진심으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모습을 압축적으로 보여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시에 인생이라는 여정이 목표를 달성하지 않는 한, 우리 마음이 안식할 수 없음을, 그러나 종착지에 이르면 우리는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안식할 수 있음을 힐끗 엿보게 해 주기 때문이다.

물론 인생이라는 여정은 축구 경기보다 훨씬 복잡하며 훨씬 길다. 그리고 상대의 골대처럼, 우리가 나아가야 할 지점이 눈앞에 선명하게 보이는 것도 아니다. 복잡함과 모호함, 고통과 슬픔이 뒤엉켜 있는 이 여정에서 우리는 손쉽게 매너리즘에 빠지고 방향을 잃는다. 때로는 원래 인생에 목적 따위는 없다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애초에 목적이 없으므로 현실에 안주하고 거기서 일정한 만족을 누리는 게 최고라고, 넘실대고 꿈틀거리는 갈망은 그것이 무엇이든 적정선에서 처리하는 게 좋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그리스도교 신앙은 언제나 이러한 목소리에 반대하며 인생이라는 여정에는, 비록 무수한 장애물이 있다 해도 끝내 이르게 될 종착지가 있다고 믿는다. 우리 내면에는 이미 그곳에 이르고자 하는 갈망이 있고, 그 갈망은 그곳에 이르기 전까지 안식을 찾을 수 없으며, 체념에서 나오는 만족은 일시적일 뿐 궁극에 이르는 안식에 견줄 수 없다고 그리스도교는 말한다. 그리고 그리스도교 공동체와 전통은 삶의 여정을 걷고 있는 이들, 신앙의 순례자들이 장애물을 만나 힘들어할 때, 방향을 잃고 헤맬 때 마음을 다잡고 시선을 잃지 않게끔 끊임없는 자양분을 공급해 왔다.

<순례를 떠나다 - 신앙의 여정을 걷는 이들을 위한 지침서> / 마이클 마셜 지음 / 정다운 옮김 / 비아 펴냄 / 344쪽 / 1만 6000원

2002년 캔터베리 대주교가 선정한(매년 사순절 캔터베리 대주교는 신뢰할 만한 학자/성직자를 선정해 사순절 기간에 묵상할 수 있는 책 집필을 의뢰한다. 로완 윌리엄스, 데이비드 포드, 미로슬라브 볼프, 데스몬드 투투, 그레이엄 톰린, 루시 윈켓 등이 집필자로 선정된 바 있다) <순례를 떠나다 - 신앙의 여정을 걷는 이들을 위한 지침서>는 이러한 전통 위에서 '현대'라는 상황을 충분히 의식하고 내적 순례를 떠나는 신앙인들을 돕기 위해 쓰인 지침서다. 잉글랜드성공회 주교이자 영성, 전례, 사목 및 실천에 관한 다양한 신학 저작을 남긴 마이클 마셜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역사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그리고 가장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한 '순례자'인 아우구스티누스를 본으로 삼아 신앙인들의 내적 순례를 안내한다.

인생의 중반,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의 인생에서 간절히 바라던 것들을 얻고 난 뒤 한없이 초라해지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는 인생에서 '자신이' 기대하며 바라고 추구하며 살아가는 전반전의 삶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섭리를 향해 자신을 버리는" 후반부의 삶을 경험하였다. 신앙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의 인생, 순례 여정도 크게 둘로 나뉜다. 하나는 신앙을 갖게 되기까지의 여정이고 두 번째 여정은 신앙을 갖게 난 뒤 새로이 걷게 되는 여정이다. 물론 이는 기계적으로 나뉘지 않으며 매 순간 나름의 의미를 갖고 있다. 어떠한 여정이든 이 모든 여정을 궁극적으로 주관하는 이는 '나'가 아니라 하느님이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두 여정을 구분하되. 그 모든 여정을 하느님의 시선으로 살필 때 어떠한 의미를 갖는지 친절하게 설명한다.

여는 말과 1장에서는 삶이 변화의 연속이라는 사실과 신앙 역시 한곳에 정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사실을 독자들에게 주지한다. 2장에서는 인간이라면 마땅히 갖는 갈망, 욕망이 신앙 여정의 장애물이 될 수 있으면서도 동시에 방향을 바꾼 욕망은 신앙의 성숙을 돕는 자양분이 된다고 말한다. 이러한 전환의 삶을 살았던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아우구스티누스다. 3장부터 6장까지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신앙 여정을 따라가며 순례를 걷는 중에 만나는 굴곡들, 신앙이 한 단계 성장하는 지점들에 대해 살핀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회심 이후 세속적 지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새로운 차원의 세계를 발견하고 '은총'으로 경험하게 된 삶의 변화들이 전적으로 하느님의 선물임을 깨닫게 된다.

저자는 그리스도인은 의로워졌지만 여전히 죄인이며, 여전히 죄인임에도 의로운 존재라는 모순 가운데 은총의 도구들과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교회, 성서, 성사와 같은 여러표지들을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그리하여 타인을 위한 삶이 그리스도인과 교회의 소명임을 말하면서, 각자가 받은 "독특한 소명"은 "독특한 섬김"으로 이어져 그리스도인들을 성화에 이르도록 만들어 가는 여정임을 보여 준다. 글을 맺으며 저자는, 이 모든 여정이 옛날 옛적의 떠도는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여기서 신앙 여정을 걷는 우리 모두에게 해당하는 보편적 이야기라는 것을 강조하고, 독자들의 순례 여정을 응원한다.

지금으로부터 1600년 전 활동했던 아우구스티누스의 내적 순례가 여전히 호소력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은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삶은 무엇을 의미하고 어떤 목적을 향해야 하는지를 물었던 아우구스티누스의 질문이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인터넷 서점의 베스트셀러 게시판 상단에는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해 애를 쓴 흔적들로 그득하다. 자신의 심리를 해명하는 소소한 노력에서부터 의미와 목적을 찾는 데 도움을 주는 서적들이 언제나 상위에 배치돼 있다.

거꾸로 뒤집어 보면, 무수한 현대인은 여전히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의 의미와 목적이 무엇인지를 찾지 못해 방황하고 있다. 수많은 책이 나름의 답변을 독자들에게 던졌겠지만, 그들은 여전히 찾아 헤매고 방황한다. 질문 자체는 매우 오래되었으나, 답을 찾아가는 길은 더 모호해지고 너무나 많은 갈래가 나온 나머지 오히려 주의를 산만하게 한다. 이럴 때 이 질문을 가장 오래전에 던졌던 사람, 그리고 그 사람이 추구한 방식, 그리고 그 사람이 찾은 답을 살피는 것은 어떠한 방식으로든지 도움이 된다.

그러한 면에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쉼 없이 답을 찾아 헤매는 이들의 동반자이자,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알려 주는 효과적인 안내자이다. 자기 자신에게 더 집중하라는 현대의 무수한 자기 계발 서적과 달리 아우구스티누스는 자기 자신에게 쏠려 있는 시선을 자신의 바깥으로, 세상의 궁극적인 의미를 지닌 하느님에게 돌리라고 조언한다.

우리는 고립이 아닌 관계에서, 우리를 창조하신 분과의 관계에서만 우리 자신이 될 수 있다. 거울을 오래도록 뚫어지게 바라본다고 해서, 즉 우리 자신의 모습과 감정에 침잠한다고 해서 우리 자신을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끊임없는 자기성찰을 한다 해서 우리가 참된 본연의 모습을 깨닫는 것도 아니다. 이렇게 해서 얻게 된 자기 자신에 대한 지식은 자아도취에 불과하다. 우리 본연의 모습은 오직 우리를 창조하신 분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통해 드러난다(283쪽).

그러한 면에서 그리스도인의 내적 순례는 역설적인 여정이기도 하다. 이 여정은 자기에게서 자기에게로 이르는 길이 아니라 자기에서 벗어나 진정한 근원을 향해 나아가는 여행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슴에서 의지에 이르는 기나긴 여정은 자기 자신에서 머무르지 않고 자신을 창조하신 분, 세상에 의미를 부여하시는 분, 궁극적인 목적을 이루시는 분을 향한다.

빠른 속도로 지점을 통과하듯 읽어야 좋은 책이 있는가 하면, 안내자의 인도를 따라 찬찬히 걷듯 읽어야 좋은 책이 있기도 하다. 이 책은 후자에 해당한다. 지은이는 6주 내지 8주에 걸쳐 한 장씩 묵상을 하며 읽도록 책을 구성했으며, 각 장마다 더 깊은 묵상을 할 수 있도록 개인을 위한 질문, 공동체를 위한 질문을 수록했다. 그러니 이 책은 홀로 읽어도 좋지만, 공동체 안에서 함께 읽어도 좋다.

필자는 지은이 마이클 마셜에게 영적 지도를 받으며 소명을 발견했고 성공회 사제로 서품을 받았다. 영국에서 함께하는 동안 그가 다정한 미소로 친근하게 던지던 수많은 질문과 공감하며 유심히 경청하던 모습은 필자의 삶을 변화시켰고, 소명을 향해 포기하지 않고 걸어갈 수 있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

성직자로서의 인격과 신학자로서의 지성이 고스란히 담긴 책이 한국어로 정성스럽게 출간되면서 필자가 경험한 것을 '지금' 그리고 '여기'에서 다른 사람들과도 나눌 수 있게 된 것 같아 기쁘다. 이 '이정표'를 통해 자신의 안식하지 못하는 마음, 안달하는 마음을 긍정하고 '마침표'를 향해 나아가는 이들, "세상에서 가장 긴 여정"에 커다란 기쁨 가운데 동참하는 이들이 더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허범 / 서울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한 후 변호사가 되었다. 런던, 홍콩, 서울에서 금융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성공회 교회에서 신자로 선교 및 평신도 교육 사역을 하다가 성공회 대학 신학대학원에서 공부한 뒤 명예사제 서품을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금융 전문 변호사로 일하면서 대한성공회 강남교회 협력사제로 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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