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주의와 자유주의 양극단 극복한
새로운 종교신학 가능성

<기독교는 타 종교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 다종교 사회를 사는 그리스도인을 위한 교양>(IVP) 저자 제럴드 맥더모트(Gerald McDermott)는 고전 신학과 현대 신학을 아우르는 동시에, 신학자로서 접근하기 쉽지 않은 불교·도교·유교·이슬람교 등의 타 종교에 대해서도 섬세하고 정확한 이해를 보여 준다. 또한 근본주의와 자유주의의 양극단을 극복하고 복음주의 정체성에 기초한 새로운 종교신학 가능성을 제시하는 독창성이 돋보인다. 이러한 맥더모트의 새로운 유형학은 종교신학의 '전회'(Kehre)라 부를 만하다.

저자는 행여 연약한 독자가 빠질 수 있는 어설픈 혼합주의를 경계하는 마음을 책 행간 곳곳에 담아 두었다. 이 책으로 말미암아 복음주의자들은 그리스도의 최종성을 훼손하지 않고도, 전통적인 복음주의 교리를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타 종교를 진심으로 존중하고 그들로부터 배우는 것이 성경적·신학적·교회사적으로 정당하다는 명확한 규범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기독교는 타 종교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 다종교 사회를 사는 그리스도인을 위한 교양> / 제럴드 맥더모트 지음 / 한화룡 옮김 / IVP 펴냄 / 312쪽 / 1만 5000원. 사진 제공 IVP

그리스도의 최종성 희생하지 않으면서
타 종교 존중하고 배울 수 있을까

오랫동안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은 두 가지 부당한 주장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할 것을 강요받곤 했다. 타 종교는 구원이 없으니 완전히 무가치하다는 근본주의 입장과, 타 종교는 구원에 이르는 동등한 '하나의 길'이니 그리스도의 최종성을 포기해야 한다는 입장이 그것이다. 이런 양극단의 갈림길에서 저자는 이 두 주장을 모두 기각하고 설득력 있는 제3의 길을 제시한다. 맥더모트는 복음주의자가 그리스도의 최종성을 희생하지 않고도 타 종교를 진심으로 존중하고 타 종교로부터 풍성히 배우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또 자신의 주장을 이론적으로 정당화하는 것을 넘어서 세계 종교 전통 안에서의 다양하고 구체적인 배움 사례들을 제시한다. 맥더모트는 종교신학의 주류를 이루었던 기존의 '구원 중심' 유형학을 말하는 대신, '진리와 계시 중심'의 새로운 유형학을 제안한다. 그러므로 저자가 힘주어 말한 것처럼 <기독교는 타 종교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는 진정한 "복음주의 종교신학의 시발점"(19쪽)이 될 것이다.

이 책의 구조는 크게 '서론부터 5장까지', '6장부터 9장까지', 그리고 '10장',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서론부터 5장까지는 기독교인이 타 종교로부터 배울 수 있음을 성경적·신학적·교회사적으로 증명하는 이론적 작업을 수행한다. 6장부터 9장까지는 자신의 이론이 적용되는 구체적 사례를 불교·유교·도교·이슬람교 등의 세계 종교를 통해 보여 준다. 10장에서는 독자들의 예상되는 질문과 이에 대한 응답을 다룬다.

맥더모트는 서론에서 타 종교에 대한 무지가 불러올 수 있는 비극을 경고한 후, 책의 주제를 분명히 제시한다. "이 책은 구원의 문제가 아니라 진리와 계시의 문제를 다루며"(19쪽), "예수님이 모든 사람들을 밝히는 빛(요 1:9)이시며, 하나님은 비기독교 전통들 가운데 그분 사진에 대한 증거를 남겨 두셨다(행 14:17)는 성경적 명제들을 탐구한다.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복음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신플라톤주의로부터 배웠다면, 토마스 아퀴나스가 성경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배웠다면, 장 칼뱅이 르네상스 인문주의로부터 배웠다면, 복음주의자들도 붓다—그리고 다른 위대한 종교 사상가들과 전통들—로부터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를 더 분명하게 이해하게 해 주는 것들을 배울 수 있다고 주장한다."(19쪽)

1장에서 저자는 자신이 복음주의자로서 이 문제를 다룬다는 점을 강조하는 동시에, 복음주의자들이 견지했던 기존의 구원 중심 유형학의 한계를 비판하고 진리와 계시 중심 유형학을 새로운 대안으로 제시한다. 2장에서는 새로운 유형학의 핵심 개념인 '계시' 문제를 다룬다. 계시 개념의 본질과 계시를 둘러싼 다양한 논쟁의 지형을 압축 정리한 후, 결국 계시가 '다차원적'인 것임을 주장한다.

이후 3장에서는 유대교와 기독교 전통 바깥에 있는 타 종교에도 하나님의 계시가 있음을 풍부한 성경적 증거를 통해 살펴본다. 4장에서는 타 종교 안에 하나님의 계시가 있음을 신학적으로 논증한다. 미국의 청교도 신학자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의 '언약'과 '모형론'을 핵심적 신학적 근거로 제시한다. 5장에서는 교회사의 사례들을 보여 준다. 특히 아우구스티누스(Aurelius Augustinus),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장 칼뱅(Jean Calvin)을 예로 들어 그들이 교회 외부에서 온 사상들을 매개로 기독교의 계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받았음을 입증한다.

6장에서는 기독교와 불교의 근본적 차이를 서술한 후, 기독교인이 불교로부터 배울 수 있는 사례들을 제시한다. 7장에서는 도교 전통 중에서도 '철학적 도교'에 집중해서 하나님의 계시를 논의한다. 위장해 계신 하나님, 하나님의 역설적 방식 등의 논의가 매우 흥미진진하며, 8장에서는 유교, 특히 중국의 정언적定言的 명령법, 충과 서를 핵심 주제로서 서술한다.

9장에서는 서구인이나 복음주의자들이 흔히 간과하는 이슬람교에 대한 오해나 새로운 진실들을 설명하고, 두 종교 사이의 차이점도 논의한다. 또한 기독교인들이 이슬람교에서 배워야 할 것으로 알라에 대한 복종,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극장인 창조 세계, 규칙적이고 신 중심적인 기도, 가난한 자들에 대한 자선, 신앙과 공공 광장 등에 대한 사례들이 제시된다. 마지막으로 10장에서는 독자들이 던질 것으로 예상되는 비판적 질문에 응답하고, 기독교인이 타 종교로부터 진리를 배워야 하는 네 가지 이유(목적)를 말한다.

지적 희열과 감동,
'인생의 책'을 만나다

책을 사랑하는 이들은 일생 동안 수많은 '인생의 책'을 만난다. 나에게 <기독교는 타 종교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는 정확히 그런 작품이다. 출판 평론가 이권우는 의미 있는 독서의 두 가지 유형을 독자의 기존 세계관을 전복하는 "이크의 책 읽기"와 이미 아는 지식을 더 세밀하고 풍성하게 하는 "각주의 책 읽기"로 구분한 적이 있는데, 나에게 이 책은 후자에 속한다.

내가 이 책을 처음 만난 2005년 어느 여름이 떠오른다. 당시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오랫동안 고민해서 쌓은 희미한 사유의 건축물을 누군가 더 학문적인 언어로 명확하게 설명해 줄 때 느끼는 엄청난 지적 희열과 감동을 맛보았다. 나는 철학과 종교학을 전공하면서 세속 철학과 타 종교를 공부하고 있었고, 이러한 진지한 탐구를 통해 나름의 풍성한 신앙적 유익을 누리곤 했다.

예컨대, 나는 불교의 공관空觀을 통해 통속적 기독교가 빠지기 쉬운 '의인론적 신관'을 정화淨化할 수 있었고, 불교의 자연관을 배우는 것으로 심오한 '생태신학적 자극'을 받았다. 또 도교의 '은유적 역설'을 되새기면서 기독교 진리의 '변증법적' 성격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런 탐구의 열매를 맥더모트만큼 학문적 언어로 선명하게 구체화하지는 못했다. 이런 개인적 상황 가운데 이 책은 복음주의 관점에서 타 종교에 대한 나의 탐구와 체험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님을 증거하는 강력한 알리바이가 되어 주었다.

'사유의 경건'이자 제언인 질문을
맥더모트에게,
또 나에게 묻는다

엄청난 지적 생산성을 보여 주는 이 책을 읽으며 마음속에 숱한 질문이 떠올랐지만, 그중 세 가지만 언급하고자 한다.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는 질문은 "사유의 경건"이라 했다. 책을 읽으며 떠오른 이 질문은 이 책이 그만큼 탁월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첫째, 질문은 타 종교로부터 배워서 하나님을 더 잘 알 수 있다는 맥더모트의 주장이 종교개혁으로부터 유래해 오늘날 복음주의 주류가 견지하고 있는 '성경의 충분성' 교리와 모순을 일으키는 것은 아닌가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저자가 10장에서 자신의 입장은 "정경에 내용이 아니라 이해를 더하는 것"(284쪽)이라고 대답하여 해명되었다.

둘째는 맥더모트의 연구 범위와 관련한 것이다. 기독교 신학자로서 갖는 지식의 한계 때문이겠지만, 저자가 타 종교로부터 배움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 주는 사례를 왜 불교·도교·유교·이슬람교로만 한정 지었나 하는 의문이다. 다시 말해, 왜 힌두교, 신도 같은 다른 세계 종교나 샤머니즘(무교)이라는 인류 보편의 종교적 사례를 다루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든다. 맥더모트가 이들 종교에 대한 사례까지 서술했다면 이 책의 문화적 접촉점은 더욱 확장되었을 것이고, 한층 완성도 높은 책이 되었을 것이다.

셋째는 저자가 타 종교로부터 배울 수 있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종교 개념을 면밀히 논의하지 않은 것에 대한 물음이다. 맥더모트는 계시 개념에 천착한 만큼 종교 개념 또한 치밀하게 다루었어야 했다. 현대 종교학에서 '종교와 비종교의 구획 기준'은 점점 그 경계선이 불분명해지고 있다. 폴 틸리히(Paul Tillich)가 종교를 '궁극적 관심'(Ultimate Concern)으로 정의하면서, '종교'·'가종교'·'사종교'를 구분했던 시도조차 점점 낡은 유형이 되어 가고 있다. 현대 종교학은 국가주의·민족주의·스포츠 등도 종교 현상의 하나로 탐구한다. 저자가 규정하는 종교는 무엇이며, 그가 배울 수 있다고 말한 종교의 경계선은 어디까지인가. 이런 물음에 맥더모트가 후속 작품을 통해 해명해 주길 기대한다.

김성환 / 만 권의 책과 함께 사는 독서가, 서평가. 철학·종교학·신학을 전공한 기독교 인문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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