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교회에서 일어나는 성폭력을 취재하다 보면 좌절감에 휩싸일 때가 있습니다. 하나의 사건을 보도하면 또 다른 사건 피해자가 연락해 왔습니다. 폭로와 비판. 제자리걸음을 하는 것 같은 취재는 제게 여러 의문점을 남겼습니다.

교회 성폭력은 거의 전부 피해자가 교회를 떠나는 것으로 마무리됐습니다. 이때 피해자는 가해자뿐 아니라, 교인들의 행동 및 교단의 대처에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안타까운 점은 교인들과 교단 관계자들이 피해자에게 상처를 주려고 그렇게 행동한 게 아니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사건을 잘 처리해 보려고 나름 노력했지만, 성폭력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 결국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방향으로 사건이 흘러가게 된 것입니다.

<뉴스앤조이>는 반복되는 교회 성폭력의 구조적 문제를 드러내고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올 한 해 연중 기획으로 '교회 내 성폭력 OUT'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기획 마지막으로, 연말에 '교회 성폭력 대처 매뉴얼'을 제작할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2018년 초 한국 사회를 뒤흔든 '미투 운동'은 교회에서도 미투를 촉발하게 했고, 더 빠르게 대처 방안을 내놓아야 할 필요를 느껴 지난 4월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교회에는 교회 상황에 맞는 성폭력 대처 매뉴얼이 필요합니다. 사회에는 분야별로 '성폭력 대처 매뉴얼'이 있습니다. 학교·관공서·정당·병원 등 각 기관이나 종사자 상황에 맞는 매뉴얼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이 매뉴얼을 교회 현장에 적용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교회는 또 다른 특수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뉴스앤조이>와 올해 7월 출범하는 기독교반성폭력센터가 함께 만든 교회 성폭력 대처 가이드북 <미투, 처치투, 위드유>(뉴스앤조이)는 교회 성폭력 대처와 예방을 담은 소책자입니다. 그동안 교회 성폭력과 관련한 몇몇 소책자가 있었지만, 피해자와 가해자, 제3자(교인 및 교단)가 각각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상세하게 알려 주는 실용서는 없었습니다.

<미투, 처치투, 위드유>는 교회 성폭력 당사자들이 어떤 말과 행동을 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제시한 가이드북입니다. 특히 교회에서 목회자에게 성폭력 피해를 입었을 때의 현실적인 피해자 위치를 고려했습니다. 피해자는 본인이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이를 어렵게 깨달았다고 해도 쉽게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합니다.

"매뉴얼을 숙지하기 전, 먼저 피해자는 이 사실을 명확하게 인지할 필요가 있다. 성폭력은 가해자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피해자 잘못이 아니다. 따라서 피해자가 부끄러워해야 하는 일이 아니다. 수치심은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 몫이다. '평생 지워지지 않는 상처'도 아니다. 성폭력 피해를 입은 뒤에도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교회 성폭력이 발생했을 때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대처 방법을 전혀 모른다 해도 괜찮다. 전국에는 성폭력 피해자를 돕는 상담소가 있다. 피해자에게 법률·의료 지원, 심리 치료 등 여러 방법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곳이 많다. 피해자는 절대 혼자가 아니다. 상담 기관에 다이얼을 누르는 행동만으로도 큰 용기를 낸 것이다." - <미투, 처치투, 위드유> '교회 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가이드' 중

가이드북에는 <뉴스앤조이> 기자들이 피해자에게 직접 들은 사례를 바탕으로 교회 성폭력이 어떤 모습으로 발생하는지 소개합니다. 목사와 교인이라는 특수한 관계에서 쉽게 발생하는 '그루밍' 성폭력의 실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 직접적인 신체 접촉이 있는 강간이나 추행보다 더 자주 발생하는 성희롱·성차별 발언과 문제점도 조명했습니다.

"사실 교회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것은 '성희롱'이다. 성희롱은 상대방에게 성적 굴욕감·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발언이다. 이와 동시에 사회적 편견을 기반으로 한 '성차별' 내지 '여성 혐오' 발언도 문제가 된다. 성평등 문화가 뒤처진 교회에서는,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이런 발언이 나올 수 있다. 이런 것들도 엄연한 성폭력이다." - <미투, 처치투, 위드유> '교회에서 발생하는 성희롱·성차별 발언' 중

<미투, 처치투, 위드유>는 모두에게 안전한 교회를 만들기 위한 길잡이가 될 것입니다.

피해자·주변인·가해자별 가이드 수록
다양한 사례 소개로 이해 도와

사건 발생 후, 피해자·가해자·주변인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고, 어떤 행동은 하지 말아야 하는지도 소개합니다. 예를 들어 만약 당신이 교회 성폭력 피해자라면 고려할 여러 선택지가 있습니다. 가이드북은 각 과정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가해자에게 일대일 면담을 신청할 것인지, 교회에 설치된 당회 등을 통할 것인지는 논의를 통해 결정한다. 누구와 면담하게 되더라도 이 과정을 녹음해 증거로 남기는 것이 좋다. 대화에 참여하는 사람은 상대방의 동의 없이 녹음해도 된다. 제3자가 나누는 대화를 몰래 녹음하는 것은 불법이지만, 대화의 당사자가 녹음하는 것은 ─ 상대방의 동의를 구하지 않더라도 ─ 불법이 아니다(통신비밀보호법 제3조 제1항, 대법원 판례 2013도16404)." - <미투, 처치투, 위드유> '교회 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가이드' 중

교회 성폭력 사건에서는 주변인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미투, 처치투, 위드유>는 △경청, 공감, 지지 △'2차 피해'와 '피해자 관점' 이해하기 △가해자 주변인, 이렇게 하면 안 된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분리 △성폭력 전문 상담사(기관)에 도움 요청 △가해 목회자 징계 순으로 제3자 역할을 짚었습니다.

교인들뿐 아니라 상회上會, 즉 교단의 역할도 중요합니다. 교단은 목회자를 관리·감독해야 할 책임이 있는 곳이지만, 오히려 제대로 된 해결의 걸림돌이 될 때가 많습니다. 피해자가 교회 공동체 내에서 사건 해결을 원할 때, 혹은 교단이 소속 목회자의 성폭력 사실을 인지했을 때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상회도 관련 법에 따라 절차를 진행할 때 성폭력 전문 기관에 조언을 구하는 것이 좋다. 대부분 남성 목사와 장로로 구성된 조직에서, 사건을 피해자 관점으로 바라보는 데는 한계가 있다. 사건을 맡은 기소위원회나 재판위원회는 성폭력 전문 상담사 혹은 기관으로 구성된 자문단을 두는 것을 의무화해야 한다. 이때 양성평등기본법에 따라, 특정 성별이 전체 위원 수의 10분의 6을 초과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다." - <미투, 처치투, 위드유> '교회 성폭력 제3자를 위한 가이드' 중

<미투, 처치투, 위드유>는 가해자의 회복과 치유를 언급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동안 사례를 통해 정리한 가해자가 취하면 안 되는 행위를 7가지로 정리했습니다. △역고소 △'합의된 관계' 주장하기 △상담(교육)이라 변명하기 △가해자와 가족의 고통을 피해자 책임으로 돌리기 △성경 말씀으로 성폭력 정당화하기 △사역이라는 대의 이용하기 △버티기입니다.

전문성을 더하기 위해 현직 성폭력 전문 상담가들에게 감수를 받았습니다(왼쪽이 감수자의 말).

기독교반성폭력센터와 <뉴스앤조이>는 교회 성폭력 예방이 더 중요하다는 데 뜻을 같이합니다. 예방은 교회 구성원 모두가 노력해야 합니다. 각 교회와 교단에서 성폭력 예방 교육을 정기적으로 실시하고, 교단 내 성폭력 관련 규정을 제정해야 합니다. 그뿐 아니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 온 외모 평가, 남녀 역할 구분 등에도 문제를 제기해야 합니다.

<미투, 처치투, 위드유>는 <뉴스앤조이>와 기독교반성폭력센터가 작성하고, 전문성을 더하기 위해 한국성폭력상담소 이미경 소장, 탁틴내일연구소 김미랑 소장, 천주교성폭력상담소 김미순 소장의 감수를 받았습니다. 교회 특수성을 고려하면서 어떻게 성폭력에 잘 대처할 수 있을지,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모든 교회와 교단이 이런 가이드북을 구비해 놓으면 어떨까요. 크고 작은 관련 사건이 발생했을 때 이 가이드북 안내대로 대처한다면, 피해자와 가해자는 물론 결과적으로 교회를 보호하게 될 것입니다. 나아가 우리 교회 내 권력 구조와 문화를 돌아보며, 모두가 안전한 교회를 만들기 위한 첫걸음을 뗄 수 있을 것입니다.

가이드북은 발행 후부터가 중요합니다. 교회 현장에 이 책을 보급하고 더 많은 사람이 내용을 숙지할 수 있도록 워크숍 등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현재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 '텀블벅'에서 출판을 위한 모금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사전 모금에 참여하시는 분께는 금액에 따라 기념품을 함께 보내 드립니다. 관심 있는 여러분의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미투, 처치투, 위드유> 텀블벅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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