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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은 정말 '난민' 때문에 이슬람 국가가 됐나
때 되면 돌아다니는 '레바논 루머' 팩트 체크
  • 이은혜 기자 (eunlee@newsnjoy.or.kr)
  • 승인 2018.06.26 17:36

[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제주도에 있는 예멘 난민을 우호적으로 소개하는 기사에는 어김없이 댓글이 달린다. 대부분은 난민을 비하하고 그들을 내쫓아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유는 제각각이다. 20~30대 무슬림 남성이 대부분이라는 점을 들며 한국 여성을 보호해야 한다거나, 난민 그룹 안에 한국을 이슬람화하기 위해 온 무슬림 근본주의자가 섞여 있다는 주장도 있다.

그중에서도 예멘 난민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개신교인들이 적극적으로 퍼 나르는 게시물이 있다. "기독교 국가 레바논은 어떻게 이슬람 국가가 됐나"라는 문장과 함께 시작하는 글과 유튜브 영상이다. 이 게시물은 현재 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 밴드, 각종 기사 댓글을 타고 퍼져 나가고 있다.

영상에서는 자신을 레바논 출신이라고 소개하는 한 여성이 등장해 경험담을 풀어 놓는다. 이 여성은 레바논이 원래 기독교 국가였는데 요르단에서 넘어온 팔레스타인 난민을 수용하다 보니 무슬림에게 인구 역전을 당해 이슬람 국가가 됐다고 주장한다. 1975년 레바논 내전도 종교전쟁이었고, 외부에서 온 무슬림 때문에 자국 기독교인이 박해를 받은 것처럼 이야기한다.

무슬림들에 부정적인 개신교인들은 지금 제주도에 있는 예멘 난민 신청자 500여 명을 받아 주면, 이들이 결국에는 한국을 이슬람화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근본주의 무슬림들이 난민의 얼굴을 하고 들어와 있으며, 이 사람들이 결국 한국교회를 무너지게 할 것이라고 한다. 영상은 이를 뒷받침해 주는 강력한 무기가 됐다.

레바논 출신 브리짓 개브리엘은 미국 한 개신교 방송에서 내전 당시 무슬림들만 기독교인을 무자비하게 공격한 것처럼 이야기했다. 유튜브 동영상 갈무리

이 영상은 2016년 8월 3일 유튜브에 처음 등장했다. 포털 사이트 '다음'에 있는 카페 '옛적 그 선한 길'에서 번역해 제작한 영상이다. '시대에 대한 분별', '좌파와 싸울 수 있는 실력을 기르자', '애국 우파 세계관', '창조와 과학', 'IS, 이슬람 침략'이라는 게시판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카페는 근본주의 극우 개신교 성향을 띤다. 이후 같은 성향의 블로그 'GMW연합'에서 글로 이 영상을 소개하면서 더 퍼져 나갔다.

영상에 등장하는 레바논 출신 여성은, Act for America(미국을위해행동하라)라는 단체 브리짓 개브리엘(Brigitte Gabriel) 대표다. 그는 레바논 출신으로 1989년 미국으로 이민했다. 개브리엘은 레바논 인구 중 약 45%를 차지하는 '마론파' 기독교인이다. 마론파는 중동 지역에 분포한 기독교로, 성 마룬을 따르는 이들이 수도원과 교회를 세우고 공동체를 유지해 왔다. 서기 700년 경에는 흩어진 여러 유파를 하나로 모아 이슬람에 저항하기도 했다.

마론파 기독교는 흔히 한국에서 말하는 '개신교'와 차이가 있다. 이들은 스스로를 가톨릭으로 정체화한다. 프랑스도 이를 인정해 17세기부터 마론파 기독교의 보호자를 자처하고 나섰다. 이런 지역·문화적 맥락에서, 레바논은 아랍어와 함께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나라가 됐다.

1943년, 프랑스의 강력한 지원을 바탕으로 레바논 '공화국'을 건설했다. 공화국은 가톨릭과 이슬람 그 어느 것도 공식 종교로 인정하지 않았다. 레바논 지역을 구성하고 있는 마론파 기독교, 수니파 무슬림, 시아파 무슬림 인구 분포에 따라 대통령직·국무총리직·국회의장직을 설정해 각 파가 동등하게 권력의 한 축을 담당할 수 있게 했다.

레바논은 서쪽 해안을 제외하고는 이스라엘, 시리아, 요르단과 인접해 있다. 이런 지리적 환경은 내전이 지속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구글 지도 갈무리

레바논 남부는 이스라엘 북부, 시리아 서부, 요르단 북부와 인접해 있다. 1948년 이스라엘이 독립국가로 인정된 뒤부터 팔레스타인 난민이 대량 발생했다. 요르단에서 추방된 팔레스타인 난민이 레바논 남부로 유입됐고, 이들은 그곳에서 이스라엘을 상대로 무장 활동을 벌였다. 레바논 정부가 인도주의적 정책을 펴서 난민을 수용한 건 아니었다. 레바논은 각 종파마다 민병대를 조직하고 있었지만, 정부군은 난민 유입을 막을 만한 능력이 없었다.

마론파 기독교인들은 점차 세력을 확장하는 팔레스타인 민병대를 곱게 보지 않았다. 야세르 아라파트가 이끄는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도 레바논을 기점으로 한 단체였다. 1975년 시작된 레바논 내전은 기독교 민병대 '팔랑헤'와 PLO 사이의 싸움이 주를 이뤘다. 인근 아랍 국가들은 PLO를, 이스라엘은 팔랑헤를 지원했다.

피비린내 나는 전투는 멈추고 발발하기를 반복했다. 무슬림 민병대가 기독교인을 죽이고, 반대로 기독교 민병대는 무슬림을 죽였다. 개브리엘 대표의 영상 속에는 무슬림이 기독교인을 죽였다는 사실만 이야기되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분명 있었다.

일명 '사브라 샤틸라 난민촌 학살'. 1982년 9월 14일, 이스라엘의 지원을 받은 팔랑헤는 베이루트시 외곽의 팔레스타인 난민촌을 방문해 여성과 어린이를 가리지 않고 무자비한 학살을 자행했다. 이 사건으로 PLO는 난민 3000여 명이 희생됐다고 주장했다. 이스라엘은 희생자 3000명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900명 가까이 희생됐다고 발표할 정도로 학살 규모가 컸다.

취업 설명을 듣고 있는 예멘 난민들. 이들은 각종 루머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레바논 내전은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나지 않았다. 인근 국가들과 정치·외교적으로 복잡한 문제가 얽혀 있다. 그러나 개브리엘 대표는 이런 정황은 무시한 채, 미국 근본주의자들이 좋아할 법한 이야기를 했다. 레바논을 떠나 이스라엘을 거쳐 미국에 정착한 개브리엘은, 이후 근본주의 복음주의자 팻 로버트슨이 운영하는 방송국의 뉴스 앵커로 활약했다.

미국에서는 개브리엘 대표와 그가 설립한 '미국을위해행동하라'가 지나치게 반이슬람적이라는 비판이 있다. 개브리엘 대표는 2007년 한 대학 강연에서 "쿠란이 알라의 말씀이라는 것을 믿으며, 매주 금요일 모스크에 가는 무슬림은 미국의 시민이 될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2007년 호주의 한 방송에서는 "이슬람을 믿는 사람은 모두 급진적 무슬림"이라고 말해 논란이 됐다.

영국 언론 <가디언>은 지난해 개브리엘 대표가 백악관을 방문하는 사진을 올린 것을 두고, "안티 무슬림 단체 대표가 백악관과 만났다"고 보도했다. <가디언>은 이 기사에서 '미국을위해행동하라'가 헤이트(증오) 그룹으로 분류된다고 했다. 미국 비영리 법률 지원 기구 '남부빈곤법률센터'도 개브리엘 대표를 가리켜 "극단적 이슬람 혐오주의자이며 헤이트 그룹의 대표"라고 비판했다.

레바논은 한 번도 '기독교 국가'인 적이 없었다. '기독교'도 한국교회가 이야기하는 '개신교'가 아니다. 레바논은 '이슬람 국가'도 아니다. 레바논은 중동 지역에서 거의 유일하게 이슬람교를 국가 종교로 채택하지 않은 나라다. 지금도 공화국 형태를 유지하며 각 종파 간 세력을 견제하고 있다.

'레바논 루머'는 극우 성향의 한 미국인이 한 얘기일 뿐이다. 하지만 일부 기독교인은 이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확산시키며 난민 혐오의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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