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미션네트워크(한기양 회장)와 목회사회학연구소(조성돈 소장)가 7월 9일부터 10일까지 '교회가 세상을 섬길 때'라는 주제로 '사회적 목회 컨퍼런스'를 연다. 교회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이론과 실제를 논의할 예정이다. '기독교 윤리와 사회적 신앙인'을 주제로 하는 손봉호 교수의 강의문을 요약해 소개한다. - 편집자 주

독일 신학자 발터 그룬드만(Walter Grundmann, 1906~1976)은 고대 헬레니즘이 강조한 절제와 성경이 가르치는 절제를 비교하면서, 헬레니즘은 행위자의 도덕적 수월성을 위해 절제를 장려하고 성경은 이웃의 이익을 위해 절제를 명령한다고 했다.

기독교 윤리는 행위자의 선한 동기, 훌륭한 인품, 행복 혹은 만족, 하나님의 보상과 무관하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열심히 지켰지만 예수님의 맹렬한 비판을 받았다. 이웃의 이익이 아니라 자신들의 의를 위하여 율법을 지키고 선행을 했기 때문이다. 기독교 윤리는 주체 중심적이 아니라 타자 중심적이다. 자기중심적 에로스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아가페에 근거한 윤리다.

아가페는 적극적 혹은 소극적 방식으로 실천할 수 있다. 적극적 방법은 이웃의 수요를 공급해 주는 것이다. 자선, 구제 등이 이에 속한다. 소극적 방법은 이웃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윤리다.

예수님은 계명을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요약하셨다. 4계명부터 10계명까지는 윤리적 계명으로 제5계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소극적이다. 즉 이웃에게 해를 끼치지 "말라"는 명령이다. 소극적 사랑이 적극적 사랑보다 더 중요하다. 이익을 끼치기 전에 우선 해를 가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개인의 행복과 불행은 주로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결정된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정의로울 때 개인의 권리가 존중되고 행복할 수 있다. 정의는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대우하는 것 못지않게 약자를 보호하는 것이다.

존 롤스(John Rawls, 1921~2002)는 <정의론 A Theory of Justice>에서 평등의 원칙과 차등의 원칙이라는 두 가지 정의의 원칙을 제시한다. 차등의 원칙은 "최소 수혜자에게 최대 이익"이 되도록 행동하란 것이다. 고아, 과부, 나그네, 가난한 자, 병든 자, 소외된 자를 특별히 돌보라는 성경의 명령과 일치한다. 일반적으로 약자가 강자보다 억울함을 당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정의의 구체적인 실천은 약자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사회를 위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은 정의를 확립하는 것이다. 곧 약자에게 해가 되지 않게 행동하여 약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윤리는 주체 중심적이 아니라 타자 중심적이며, 그 타자는 주로 약자다. 직접적으로 약자에게 해가 되지 않게 행동할 뿐 아니라 법을 공정하게 제정하고, 그 법을 엄격하게 지키며, 법이 공정하게 집행되도록 선한 압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우리가 비윤리적으로 행동하게 유혹하는 주범은 탐심이다. 바울은 탐심을 우상숭배라고 했다(골 3:5). 그 탐심을 절제하지 않고는 윤리적이 될 수 없고 약자를 보호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사치, 낭비, 쾌락 추구를 절제해야 생태 환경오염을 줄일 수 있는데, 생태 환경이 오염되면 약자들이 가장 큰 피해자가 된다. 오염된 지역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살게 되며 오염을 일으키는 산업은 약소국에 몰리게 마련이다.

절제와 금욕은 빈부 격차를 강화하는 자본주의의 폐해를 줄이기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막스 베버(Max Weber, 1864~1920)는 "세계 내적 금욕"(innerweltliche Askeze)이 개신교의 매우 중요한 전통임을 지적했다. 약자 중심의 기독교 윤리를 실천해야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의무를 올바로 수행할 수 있다.

손봉호 / 고신대학교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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