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분 할머니와 여행을 떠나야겠다고 생각한 지도 벌써 1년이 지났다. 2016년 가을, 종로 쪽방촌에 우연히 가게 되었는데 좁은 길에서 담소를 나누던 세 분 할머니를 만나게 되었다.

서울 종로에 쪽방촌이 있다는 사실도, 무려 60년 이상 서울의 소외 계층 보금자리 역할을 해 온 사실도 처음 알게 되었다. 그리고 현재 종로 쪽방촌에서는 800여 가구 600여 분이 1~2평짜리 방에서 매월 25만 원 안팎의 월세를 내며 힘겹게 살고 있었다.

대화를 나누면서 세 분 할머니 모두 90세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놀랐다. 내 귀를 의심했다.

첫째는 너무나 정정하신 모습에서 놀랐고, 둘째는 쪽방에서 30~70년 홀로 지냈다는 말씀에 놀랐고, 셋째는 세 분의 삶의 이야기를 듣고 놀랐다. 그러면서 세 분 할머니와 친해지게 되었고, 매주 월요일 서울 시내 거리 노숙인 사역 후 종로 쪽방촌에서 할머니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어느 날 할머니께서 여행을 가 본 적이 별로 없었다는 말씀하셨고, '90세 할머니와 떠나는 여행'을 계획하게 되었다. 2017년 봄에 '남이섬 봄꽃 여행', 2017년 가을에 '설악산 단풍 여행' 후 드디어 2018년 봄에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에 다녀왔다.

이번 여행의 이름은 지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다음과 같이 제목을 정했다.

'꽃과 함께, 90세 할머님 네 분과 떠나는 마지막 제주도 여행'

성산일출봉에서 90세 할머니 네 분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좌측부터 강정식, 김옥순, 김만복, 이복순 할머니. 사진 제공 손은식

할머니들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은 '꽃과 같다'는 것이다. 1920년대에 태어나 나라 잃은 설움과 함께 일본 근로정신대에 다녀오신 김옥순 할머니(1929년생), 꼿꼿한 정신으로 평생 홀로 살아오신 강정식 할머니(1927년생), 해방 후 홀로 남으로 내려와 북에 남겨 둔 가족을 그리워하는 김만복 할머니(1932년생), 네 자녀 모두 훌륭한 사회인으로 성장했지만 홀로 1평짜리 방에서 지내는 이복순 할머니(1927년생).

이 네 분 할머니는 서울 종로 쪽방촌에서 살아가며 온갖 아픔과 설움을 겪고 계시지만, '꽃과 같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꽃이 현재가 가장 아름답듯 네 분 할머니 또한 현재가 가장 아름답기 때문이다. 네 분 할머니의 과거 아픔과 쪽방촌에서의 어둔 삶의 자국도 지금 피어나는 꽃과 같은 아름다운 모습에 묻힌다. 현재의 행복을 위해 밝고 힘차게 살아가시는 모습이 또한 꽃과 같이 아름답다.

김포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기 전. 도우미 형제들과 함께. 사진 제공 손은식

네 분 할머니의 여행을 돕기 위해 도우미로 나선 프레이포유 사역자들과 함께, 김포공항 비행기 앞에서 사진을 촬영하며 여행을 떠나는 기분을 맛보았다.

2박 3일 제주도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회복과 충전의 시간을 가졌다. 좁은 쪽방에서 한평생 살아오셨기에 여러 사람이 함께하는 여행에 익숙하지 않고 힘들 수도 있었겠지만 네 분 할머니는 정말 이 여행을 즐기고 계셨다. 날마다 꽃과 같이 아름다우셨다.

호텔에서 아침 식사 전 함께 모여 하루 일정을 나누며. 사진 제공 손은식
힘이 들 때는 등에 업히셔서 여행을 이어 나갔다. 사진 제공 손은식
여행을 마치고 종로 쪽방촌으로 돌아와 헤어지기 전에 찍은 사진. 사진 제공 손은식

제주도 여행을 마친 뒤 종로 쪽방촌으로 돌아와 헤어질 때, 네 분 할머니께 다음 여행지를 말씀드렸다. 바로 동남아시아. 지난 90년의 힘들고도 외로웠던 시간을 보상하고도 남을 만큼 아름다운 오늘과 내일이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말씀을 드렸다.

현재 종로 쪽방촌에는 90세 할머니 네 분이 더 계신다. 그분들은 혼자 걷기가 힘들 정도로 몸이 불편하며 1평쯤 되는 방에서 열악하고 힘든 환경 가운데 살고 계신다. 그 외 600여 명의 사회와 단절된 소외 계층이 오늘도 종로 쪽방촌에서 힘겹게 하루를 살고 계신다.

소외 계층 사역을 하며 다음의 질문을 했다. '하나님은 왜 이 땅에 소외 계층을 두셨을까.' 매일 생각하며 사역에 임했고 이제는 어느 정도 답이 마음으로 떠오른다. '건강하고 부유한 사람은 남보다 더 받은 것에 감사하며 가진 것을 나누며 돕고 살아가야 하며, 그럴 때 삶의 의미와 행복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소외 계층의 사람은 세상에서 버려진 듯 홀로 힘겹게 살아가는게 아니라 손을 잡아 주는 누군가를 통해 다시금 일어날 수 있다. 그렇게 해서 모두 함께 살아간다는 의미를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땅에 수많은 소외 계층이 있지만 우리는 현재 이 네 분 할머니와 종로 쪽방촌 주민들, 매주 거리에서 만나는 노숙인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고 있다.

종로 쪽방촌 1평 남짓 방에 사시는 90세 박순애 할머니는 거동이 불편해 함께 여행을 할 수 없었다. 무척이나 아쉽다. 사진 제공 손은식

*종로 쪽방촌 네 분 할머니와 함께 떠나는 제주도 여행은 소외 계층 봉사 단체 프레이포유에서 기획해 2018년 4월 9일부터 11일까지 진행됐다. 마지막 여행이라고 이름 지은 것은 2017년 봄 여행 후 이순재 할머니께서 돌아가셨고, 다른 90세 할머니들의 마지막 여행이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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