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규라는 저자를 알게 된 것은 2002년 출간한 <데칼로그>(바다출판사, 2016년 포이에마에서 전면 개정판으로 출간)를 통해서였다. 이 책에서 그는 키에슬로프스키의 영화 '데칼로그'를 사용하여 "십계명에 대한 존재론적 해석"을 시도했는데, 서양철학과 기독교 사상에 대한 그의 방대한 지식과 깊은 통찰에 감탄하면서 몰입해 읽었다. 특별히 감동하고 감탄했던 지점은 한국에서 활동하는 신학자들에게서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독창성과 창의성이었다. 그의 글에 매료된 나머지 영화 '데칼로그' 전편을 주문할 정도였다. 그러나 영화에 숨겨진 코드를 모두 읽어 내기에는 내가 너무 부족했거나 영화가 너무 어려웠다. 그래서 저자를 더욱 주목하게 되었다.

지난 5월 초, 한국을 방문하려던 차에 <신 - 인문학으로 읽는 하나님과 서양 문명 이야기>(IVP)를 읽고 서평을 쓸 기회가 생겼다. 저자의 글을 읽을 기회가 주어진 것은 반가웠지만 미주와 색인을 제외하고도 878쪽이나 되는 방대한 분량이 부담이 되었다. 하지만 한국과 미국을 오가는 일정 동안 시차 때문에 깨어 있는 밤에 좋은 동반자가 될 것 같았다.

<신 - 인문학으로 읽는 하나님과 서양 문명 이야기> / 김용규 지음 / IVP 펴냄 / 932쪽 / 4만 2000원. 사진 출처 IVP

한 문장도 건너뛰지 않고 읽게 만드는
강렬한 '신론' 입문서

이번에도 이 책은 나의 기대와 예상을 넘어섰다. 깨어 있어야 했던 여러 날의 밤이 이 책으로 행복했다. 아니, 깨어 있는 시간에 이 책을 읽은 것이 아니라 책을 읽고 싶어서 깨어났다고 해야 정확한 표현이 될 것이다. 이 책은 신학 서적이라 할 수도 있고 인문학 서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그런 주제를 다루고 있는 책이 이렇게도 재미있을 수 있다니 그저 놀라울 뿐이다. 틈날 때마다 몰입해서 읽었다. 저자는 방대한 독서, 깊은 사색과 묵상을 통해 어렵고도 복잡한 주제들로 독자를 유인해 들이는 놀라운 이야기꾼이다. 한 문장도 건너뛰지 않고 읽게 만드는 강렬한 힘이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경탄을 금치 못한 것은 서양철학사와 신학사에 대한 저자의 폭넓은 독서와 이해력 때문이다. 그는 신구약은 물론, 플라톤을 비롯한 그리스 철학자들로부터 현대 철학자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분량의 일차 자료를 읽고 그 내용과 흐름을 파악하고 있다. 시대와 장소를 뛰어넘어 수많은 철학자를 소환하여 이야기를 풀어 가는데, 전혀 현학적이지 않고 연신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저자는 아우구스티누스와 토마스 아퀴나스, 그리고 초대 교부들과 중세 저자들, 칼 바르트와 폴 틸리히, 위르겐 몰트만까지 중요한 신학자들의 주장과 사상을 소개하는 과정에서도 철저히 일차 자료에 의존한다. 그뿐 아니라, 소설과 시와 회화들을 양념처럼 사용하면서 대서사시를 이어 간다. 그 많은 일차 자료를 읽고 소화했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그 다양한 자료들을 능숙하게 엮어 기가 막힌 태피스트리를 만들었다는 사실은 더욱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어려운 이야기를 쉽게 하는 것은 고도의 훈련과 수고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고급 능력이다. 심오한 이야기를 일상의 이야기처럼 풀어내는 것 역시 보기 드문 능력이다. 저자는 다년간의 저술 활동을 통해 그 비법을 터득한 것 같다. 저자로서 그는 끝없이 독자에게 말을 걸고 자극하고 도전하고 위로하면서 자신이 정한 목표점을 향해 이끌어 간다. 그의 목표는 단지 지식과 정보에 있지 않다. 물론 그는 독자를 거대한 지식의 바다로 인도한다. 하지만 그 지식을 풀어 가는 과정에서 지금 독자가, 그리고 독자가 포함된 인류 사회가 당면한 문제들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신학의 분류로 말하자면 이 책은 '신론' 입문서인데, 신에 관한 지식이 아니라 신에 관한 깨달음으로 독자를 인도한다. "한 사람의 신관은 곧 그 사람의 인생관을 결정한다"는 말이 있듯, 저자는 신에 대한 바른 이해가 각자의 존재론적 문제와 인류가 당면한(그리고 장차 당면할) 문제를 해결할 근원적 열쇠라는 신념으로 글을 펼쳐 간다.

저자는 인문학자이면서도 고백적인 그리스도인이다. 그리스 시대로부터 오늘에 이르는 거대한 사상사의 흐름에서 중요한 공헌을 했던 철학자와 사상가와 신학자들의 광대한 지식의 바다를 항해하는 중에도, 하나님에 대한 그의 믿음은 표류하거나 침몰하지 않고 오히려 점점 더 선명하게 그 빛을 드러낸다. 생각 깊은 독자라면 저자의 하나님 이야기를 읽어 가면서 "그래, 그거였어!"라고 수없이 무릎을 칠 것이며, 자주 멈추어 "그렇지, 내가 믿는 하나님이 이런 분이었지!" 하는 위안을 받을 것이다. 딱딱한 교리에 갇혀 있던 사람이라면 저자의 글을 읽으면서 자신을 두르고 있던 교리의 껍질들이 하나씩 허물어지는 것을 경험할 것이다. 자신을 가두고 있던 교리의 껍질을 벗는 것은 필연적으로 아픔을 동반하는 법인데, 저자의 글을 따라가다 보면 큰 아픔이 없이도 허물이 벗겨지는 것을 경험할 것이다.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에서 삼위일체론까지
하나님의 바다를 항해하다

이 책은 모두 5부로 나뉘는데, 기독교 신학에서 중요한 네 개의 주제를 각각 다룬다. 도입 격인 1부에서 저자는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를 도구로 하여 신에 대한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자신이 준비한 대서사시에 끌어들이기 위한 장치인 셈인데, 이를 제대로 읽는다면 끝까지 읽고 싶은 호기심과 열망을 느낄 것이다. 2부에서는 존재에 대한 그리스적 사유와 히브리적 사유를 비교하면서,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두 사유 전통이 통합된 기독교적 이해를 소개한다. 이 과정을 통해 독자는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온갖 의문과 회의가 정리되고 든든한 믿음에 이르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3부에서는 창조주로서의 하나님에 대해 논하는데, 여기서 저자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시간론을 소개하면서 기독교 신학 전통 안에 진화론을 포용할 수 있는 여지가 있음을 설득력 있게 밝힌다. 자연과학에 대한 저자의 깊은 이해를 보면 다시 한 번 놀라게 된다. 그가 현대 무신론을 분석하고 이에 대해 제시하는 대안은 과학도 출신인 알리스터 맥그래스보다 더 설득력 있게 느껴진다. 4부에서는 하나님의 인격성에 대해 논하는데, 기독교 신학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라 할 수 있는 신정론과 관련한 여러 의문을 붙들고 씨름한다. 마지막 5부에서는 유일자로서의 하나님에 대해 논하면서 삼위일체론을 설명한다. 여기서 저자의 관심은 하나님이 한 분이시라는 기독교의 고백이 결코 배타성과 폭력성을 낳는 것은 아니라는 점, 오히려 그와는 반대로 기독교 신학의 핵심인 삼위일체론은 포용적이며 모든 이에 대한 사랑으로 표현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하나님의 존재, 창조주 하나님, 하나님의 인격성, 유일자 하나님 등에 대해 다룬다. 사진 출처 IVP

우리 시대 왜곡된 하나님에 대한 명예 회복

이 책은 한마디로 그리스도인들이 믿는 하나님의 명예 회복이다. 대중적인 신학 그리고 상업화한 복음으로 한없이 작아지고 왜곡된 하나님에 대한 생각과 믿음을 인간의 언어와 논리가 허용하는 최대치로 회복시켰다고나 할까. 물론, 하나님은 인간의 필설로 만족스럽게 표현할 수 없는 대상이다. 그래서 안셀무스는 하나님을 "최고 본질, 최고 생명, 최고 이성, 최고 행복, 최고 정의, 최고 지혜, 최고 진리, 최고 신성, 최고 위대, 최고 미, 최고 불사성, 최고 불변성, 최고 복락, 최고 영원성, 최고 권능, 최고 일자성"(871쪽)이라고 정의했다. 이렇듯 참된 하나님은 언제나 인간의 정의와 명제 너머에 계시지만,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인"으로서 저자는 인간의 언어와 논리를 사용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최대한 가까이 접근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요즈음 사회에서 하나님에 대해 말하는 것은 무시와 조롱을 각오해야 하는 일이 되어 버렸다. 그만큼 기독교 신앙과 담론이 경박해지고 천박해졌다는 뜻이다. 그런 상황에서 저자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서양 사상사에서 피어난 꽃임을 경이로운 필치로 증명해 놓았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무한한 지적·영적 희열을 경험했고, 진지한 믿음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추천하고 싶어졌다. 신학 입문자들은 이 책을 통해 든든한 신학의 기초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고, 나처럼 이미 긴 여정을 걸어온 사람들에게는 그동안 읽고 생각하고 말해 온 것들을 정리하는 도우미가 되어 줄 것이다. 이런 저자를 이 시대에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더욱 기쁜 것은 저자가 이 책에 이어, 삼위일체 신앙을 따라 예수님과 성령님에 대한 연작을 계획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연작이 완성된다면 앞으로 한동안 이를 뛰어넘을 신론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속히 다음 편을 보고 싶다. 저자의 계속될 노력을 기도로 응원한다.

김영봉 / 버지니아 와싱톤사귐의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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