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최승현 기자] 한국교회에는 재정 유용·횡령, 거액의 목회자 사례비·전별금 지급 문제, 종교인 과세 반대 등 '돈'과 관련한 문제가 끊이지 않는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 2017년 3월 발표한 '사회적 신뢰도 여론조사'에서, 비개신교인은 한국교회가 최우선적으로 개선해야 할 지점을 '불투명한 재정 사용'(28.4%)으로 꼽았다. 돈 문제는 한국교회 신뢰도와 직결돼 있다.
이런 사회 시선에 대응해,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예장통합·최기학 총회장)이 주요 교단 중 최초로 '목회자 재정 윤리 강령'을 만들고 있다. 예장통합 사회봉사부는 6월 19일 서울 종로5가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에서 '목회자 재정 윤리 강령안' 공청회를 열었다. 사회봉사부는 올해 2월부터 TF를 구성해 목회자의 바람직한 재정 사용에 관한 지침을 만들고 신학적 근거를 제시하는 작업을 해 왔다. 이날 공청회는 초안을 공개하고 각 노회 사회봉사부 총무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시간이었다.
예장통합은 2015년 '목회자 윤리 강령'을 이미 제작·채택한 바 있다. 이 강령은 목회자로서 지켜야 할 도덕적 문제들에 대한 포괄적 지침이어서, 목회자의 재정 윤리에 관해서도 △교우들과 금전 거래를 하지 않는다 △부당한 사례를 받지 않는다 △재정을 투명하고 바르게 상비하여 낭비를 줄인다 △교회나 교인 개개인에게 금전 요구를 하지 않는다 △노회나 총회 주관 행사에서 잘못된 사례비 관행을 거부한다 정도만 기술돼 있다.
이번 재정 윤리 강령은 포괄적 수준의 강령을 더 구체화하는 일이다. 이날 전문前文 발표를 맡은 이홍술 목사(평화로운교회)는 "목회자 윤리 강령에 제시된 부분은 더 보완되어야 한다. 재정 투명성과 공정한 재정 관리, 윤리적 재정 운영에 대한 사회적 기대 수준이 더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교회·개인 재정 엄격히 구분 |
최호윤 회계사(교회재정건강성운동 실행위원장)가 구체적 지침을 발표했다(기사 하단 전문 참조). 지침은 크게 △목회자 개인 △교회와의 관계 △상회上會와의 관계 △지역사회 및 국가와의 관계로 구분했다.
관계별 주요 내용을 보면, 목회자 개인에게는 △교회 재정과 개인 재정을 엄격히 구분하고 별도 관리한다 △애경사·심방 등에서 생기는 사례는, 당사자에게 감사헌금으로 교회에 내도록 권면한다는 내용 등이 담겼다.
교회와의 관계에서는 △목회 활동비를 투명하게 공개한다 △교회 차량을 개인 용도로 사용하지 않는다 △은퇴 이후 시무했던 교회의 재무 상황에 관여하지 않는다 △교회 재정 관리에 교인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도록 한다는 내용이 들어갔다.
지역사회 및 국가와의 관계에서는, 교회가 세속적 가치를 좇지 말고 사회를 선도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세금 납부는 국가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운영비 분담 의무의 실천임을 인식한다 △교회 결산서가 사회에도 재정 관리 모델로 제시되도록 한다는 내용이 들어갔다.
특히 교회가 부동산 투기를 통한 불로소득을 얻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심지 않은 곳에서 거두는 불로소득을 교회가 의도적으로 추구해서는 안 된다 △교회는 수익 창출 기관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려진 헌금을 하나님나라 사역에 사용하는 조직임을 유념한다는 문구가 들어갔다.
건축 과정에서 교회가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내용도 있다. △부동산을 취득하는 경우 과다한 차입금에 의존하지 않는다 △교회가 경매 방식으로 부동산을 취득하려는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신중히 고려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 부분에 대해 최호윤 회계사는 "경매는 채무 상환 능력을 상실한 경제적 약자의 어려운 상황이 원인이므로, 어려운 사람을 보살피고 돕는 '사랑의 실천'과는 상반된다. 따라서 가능한 경매는 지양하고 부득이한 경우 기존 부동산 점유자의 어려운 상황을 최대한 배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재정 윤리 강령에 교회의 부동산 운영 방식에 대한 세부 지침까지 담은 것은 매우 의미 깊다"고 평가했다.
발제에 대해 논찬을 맡은 남기업 소장(토지+자유연구소)은 "재정 윤리 강령에 토지 문제를 별도로 다뤘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냈다. 남 소장은 "한국 경제행위가 부동산에 집중돼 있기 때문에 토지와 일반 재화를 구분해서 다뤘으면 좋겠다. 일반인들도 부동산 투기를 하고 있는데, 이는 이웃을 고통스럽게 하는 행위이므로 금지하는 내용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남 소장은 "교회가 부동산을 취득할 경우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매매 차익이 생긴다. 그럴 때 평균 지가 상승율을 초과하는 수익은 사회에 환원한다는 내용을 넣으면 사회가 놀랄 것이다. 교회가 변하려는 몸부림을 친다고 주목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제안했다.
영남신학대학교 김승호 교수(기독교윤리)는 "재정 윤리 강령은 교회와 목회자의 대사회적 공신력을 높이는 데 일조하고, 목회자 후보생들과 목회자들에게 교육적 효과도 있을 것으로 본다"고 평가했다. 다만 김 교수는 개교회별 문화와 전통에 따른 세부적 차이도 있으므로, 지침 중 너무 세분화한 내용은 다소 수정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에 참석자들은 "교회가 지나친 부채를 안고 있는 데 대한 내용도 들어가야 한다", "교회 분쟁 시 돈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 행태에 대한 내용도 있어야 한다"는 등의 의견을 제시했다.
예장통합 사회봉사부는 이날 논찬자·참석자 의견을 취합해 세부 지침을 보완한 후 총회 임원회에 상정할 예정이다. 이 안은 총회 임원회를 거쳐 오는 9월 열릴 예장통합 103회 총회에 상정된다.
사회봉사부 총무 오상열 목사는 "교회가 어떻게 다시 사회를 선도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서 시작했다. 사회에서는 부정선거 금품을 받았다가 적발되면 그 금액의 50배를 물어야 한다. '청탁방지법'도 생겼다. 교회가 이런 흐름을 선도해야 한다. 이 윤리 강령이 노회를 넘어 지역 교회, 신학생들에게 적용되도록 고민하고, 예장통합이 재정 윤리 면에서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기회로 삼겠다"고 말했다.
재정 윤리 강령의 신학적 기초를 설명한 장로회신학대학교 고재길 교수(기독교윤리)는 "전도서 5장 19절과 신명기 6장 10-11절 등, 성경에 따르면 물질과 땅, 재산은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주신 선물이다. 재정의 소유권은 하나님께 있으며, 인간에게 위임한 것"이라고 말했다. 목회자는 이를 위임받은 사람으로서 도덕적 실패 없이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했다.
고재길 교수는 레위기 25장 8-10절에 근거한 희년 정신, 마태복음 6장 11절에 근거한 일용할 양식에 관한 말씀들을 생각하며 이웃과 나누고 자족할 줄 아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했다. 그는 목회자 사례비를 예로 들며, 교회가 말씀에 근거해 경제적 양극화 해소에 앞장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목회자 재정 윤리 지침(안) 1. 개인의 재정 윤리 1) 목회자는 재정의 주인이 아니라 청지기로서의 관리자임을 인식한다. 2) 교회재정과 개인 재정을 엄격히 구분하고 별도로 관리한다. 3) 애경사, 심방 등에서 생겨나는 사례의 경우, 당사자 성도에게 감사헌금으로 교회에 내도록 권면한다. 4) 목회자·개인의 노후를 지혜롭게 준비하되, 지나치게 경제적 관점에 얽매이지는 않는다. 2. 교회와의 관계에서 지켜져야 할 재정 윤리 1)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 부름받은 백성들의 공동체임을 인정한다. 2) 목회 활동비는 하나님과 교회 앞에 투명하게 관리해야 한다. - 목회자는 교회 재정의 청지기로서 목회 활동비 사용 내역을 하나님 앞에 바르게 관리·보고할 의무가 있다. 3) 교회 차랑을 개인적 용도로 사용私用하지 않는다. 4) 지출 용도에 따라 교회 카드와 개인 카드를 구분하여 사용하고, 교회 카드를 목회자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하지 않는다. 5) 교회는 목회자가 개인적으로 처분할 수 있는 양수, 또는 매매의 대상이 아님을 유념한다. 6) 은퇴 시 퇴직금 이외에 교회가 주택을 제공하는 경우 목회자 본인 사망시(경제력 없는 배우자가 남는 경우 배우자 사망시) 교회로 환원하겠다는 사후 증여를 작성한다. 7) 은퇴 이후에는 사무했던 교회의 재무 상황에 관여하지 않는다. 8) 교회재정을 '관리의 도구'로 활용하지 않는다. 9) 교회재정 관리에 성도들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도록 한다. 3. 상회와의 관계에서 재정 윤리 1) 교회의 수입을 총액으로 투명하게 보고한다. 2) 상회비는 비용이 아니라 부족함을 서로 보충하는 사랑의 나눔임을 인정한다. 3) 목회자 개인의 피선거 활동에 교회 재정을 사용하지 않는다. 4. 지역사회 및 국가와의 관계에서의 재정 윤리 1) 세금납부는 국가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운영비를 분담하는 의무의 실천임을 인식한다. 2) 교회 결산서가 사회에도 재정 관리의 모델로 제시되도록 한다. 3) 교회가 부동산을 투자의 수단으로 활용하지 않는다. 4) 교회가 부동산을 취득하는 경우 과다한 차입금에 의존하지 않는다. 5) 교회가 경매 방식으로 부동산을 취득하려는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을 신중하게 고려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