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박요셉 기자] 지금 제주에는 난민 신청을 한 예멘인 500여 명이 있다. 한국 사회에서 '난민'이라는 단어에는 의심과 불신이 뒤따른다. 제주에 예멘인이 들어왔다는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자, 지난달 31일 일부 보수 단체는 이들이 탈법을 저지를 것이라며 난민 수용을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청와대 게시판에도 같은 내용의 국민 청원이 올라왔다. 약 15만 명이 서명을 하기도 했다(이 글은 현재 삭제됐다).

이와 같은 반응은 교회도 다르지 않다. 오히려 무슬림이 이슬람을 전파하기 위해 몰려왔다며 적대하거나, 이들을 IS 같은 테러 단체와 동격으로 여기는 태도를 보인다. 관심을 보이는 이들도 난민이 처한 상황을 등한시하고 포교에만 힘을 쏟는다. 최근 제주에도 비슷한 목적으로 예멘인에게 접촉하는 교회가 있었다.

현재 제주에서는 몇몇 시민단체가 예멘인을 돕고 있다. 천주교 제주교구 이주사목위원회, 제주평화인권연구소 왓, 난민인권센터 등이 난민네트워크제주대책위원회(김성인 위원장)를 조직해, 정부가 이들을 지원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예멘인을 돕는 이들 중에는 기독교인들도 있다. 포교 때문이 아닌, 난민들이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게 하는 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환대라고 믿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삶의 터전을 잃고 한국에 온 난민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군대 징집 피하려 온 예멘 남성들
미래 불확실한 불안한 처지
김동문 목사, 난민들 위로 
그들이 처한 상황 사람들에 알려

김동문 목사가 제주출입국외국인청에서 만난 예멘인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제주시 삼도1동 O호텔에는 6월 13일까지만 해도 예멘인 130여 명이 머물고 있었다. 다음 날 6월 14일, 제주출입국외국인청이 주최한 취업 설명회에서 약 절반이 일자리를 구해 방을 뺐다. 같은 날 저녁, 김동문 목사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O호텔에 남은 이들과 아랍어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O호텔에서 만난 아민(27)과 무타심(19)은 예멘에서 두 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 타이즈 출신이다. 같은 동네에서 형, 동생으로 알고 지낸 이들은 반군 '후티'와 하디 정부 간 내전이 전국으로 확대되자 2년 전 예멘을 탈출했다. 이들이 탈출한 건 반군이나 정부군이 점령지에서 젊은 남성을 징집하기 때문이다. 군대로 끌려 가 전투에서 목숨을 잃는 것도 두렵지만, 더 무서운 건 상대편의 보복이었다. 점령군은 수시로 바뀌었다. 그럴 때마다 보복이 뒤따랐다.

김동문 목사는 무의미한 학살을 피하기 위해 젊은 남성들이 예멘을 탈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올해 제주에 몰려온 예멘인 500여 명 대다수도 10대 후반에서 20대 중후반의 남성이다. 이들은 대부분 부모와 형제를 남겨 놓고 혼자 고향을 떠나왔다. 17세 때 예멘을 탈출한 무타심은 하루에도 몇 번씩 부모님이 보고 싶어 운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나고 자란 도시를 떠나는 게 괴로우면서도, 한국에서 일을 구하지 못해 송환될까 두렵다고 했다.

김 목사는 "모든 것을 버리고 고향을 떠난 이들이다. 퇴로가 없다. 돌아가면 군에 끌려 가거나 배신자로 취급되어 죽을 수도 있다. 그런 상황에서 한국에서도 계속 살 수 있을지 미래는 불투명하니 얼마나 불안하겠는가"라고 말했다.

예멘인 라마단 금식 종료를 맞아 전통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예멘인은 피난길에서도 라마단 금식을 지켰다. 아민과 무타심을 만난 6월 14일은 라마단 금식 기간이 종료하는 날이었다. 무슬림은 라마단 금식이 끝나면 3일간 명절을 보낸다. 고향에 있다면 친척들을 방문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겠지만, 이날 이들은 소박하게 지내야 했다. 이날 저녁, 예멘인 수십 명은 호텔 지하 식당에 모여 공동 식사(iftar)를 했다.

김동문 목사도 이날 식사에 초청을 받고 예멘인들과 함께 저녁을 먹었다. 아랍어에 능통한 그는 예멘인과 대화하며 그들을 위로하고 격려했다. 어려운 처지에도 예멘인들은 아낌없이 음식을 내어 줬다. 식사를 하는 내내 김 목사 주변으로 사람이 끊이지 않았다. 김 목사는 이들 상황을 외부에 알려, 많은 사람이 난민 문제에 관심을 갖게 하고 있다.

O호텔은 예멘인들이 할랄 푸드를 먹기 때문에 다른 투숙객과 달리 특별히 주방을 사용할 수 있게 했다. 5월 초부터 예멘인이 수십 명씩 몰려오자, 한 방에 여러 명이 잘 수 있도록 허락해 주고 숙박비도 저렴하게 조정해 줬다. 호텔 관계자는 처음에는 이들이 분리수거도 할 줄 모르고 요리도 해 본 적 없어 곤혹을 치르긴 했지만, 규칙을 한 번 알려 주면 다른 외국인 관광객보다 잘 따랐다고 말했다.

김동문 목사는 "무슬림은 공동체 의식이 강하고 규범을 잘 따르는 이들이다. 이들이 현재 난민이라고 해서 법을 안 지킨다거나 통제가 안 되는 무리로 봐서는 안 된다. 우리와 동일한 한 인격체로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예멘인 일곱 식구, 공동생활
"언론이 만든 잘못된 무슬림 이미지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날 땐 달라"

자말의 딸들이 하 아무개 목사의 집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제주시 한림읍에 사는 하 아무개 목사는 6월 11일 자말(42)과 그의 가족을 집으로 데리고 와 함께 살고 있다. 자말은 부인과 딸 5명과 함께 5월 초 제주에 왔다. 하 목사는 이들이 수중에 있는 돈이 다 떨어져 노숙하게 됐다는 말을 듣고 급히 결정을 내렸다고 했다.

자말은 예멘에서 공무원이었다. 그는 가족들과 2012년부터 말레이시아에서 난민 생활을 했다. 예멘 어디에서도 안전을 보장받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자녀들이 안정적으로 교육을 받게 하고 싶었다. 그러나 말레이시아는 난민 협약국에 가입하지 않는 나라였다. 법적으로 국가가 난민을 보호해 주지 않았다. 자말은 경찰이나 시민들에게 수시로 돈을 빼앗겼다고 말했다. 그러던 중 한국이 난민 제도를 잘 갖췄다는 말을 듣고 가족들과 함께 제주로 넘어온 것이다.

자말과 그의 가족들도 제주에서 라마단 금식을 지켰다. 라마단 기간에 이들은 낮 시간을 대부분 잠으로 보내고, 새벽 3~4시까지 깨어 있다. 하 목사네와 자말네 두 가정은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하 목사는 "자말에게 우리가 함께 생활하기 위해서는 서로가 정한 규칙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불편하거나 나가고 싶은 마음이 들면 언제든 얘기해 달라고 했다. 지금은 자말과 그의 가족이 우리 가족을 더 많이 배려해 주는 것 같다"고 했다.

하 목사는 자말과 함께 살면서 무슬림을 향한 오해가 깨졌다고 했다. 그는 많은 기독교인이 글이나 인터넷에서 간접적으로 무슬림을 접하기 때문에 잘못된 이미지를 갖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실제로 무슬림과 대면하면서 그동안 내가 얼마나 잘못된 편견을 갖고 있었는지 알았다. 이들도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나면 우리와 똑같은 보통 사람이다"고 했다.

제주 사회, 난민 수용 경험 부족
상황별 지원책 구상 중
"예멘인, 선교 대상으로 여겨선 안 돼
인간으로서의 존엄성 보장해야"

김성인 위원장은 정부 기관과 수시로 면담하며 예멘인에 대한 제도적 지원을 요구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난민인권센터에서 2009년부터 한국에 찾아온 난민을 지원해 온 김성인 위원장은 지난달 제주에서 예멘인 문제가 공론화하자 시민단체와 함께 대책위를 만들었다. 법무부·제주출입국외국인청과 수시로 접촉하며 제도적 지원을 요구하고 있다. 법무부가 조기 취업을 결정한 것도 이러한 노력의 결과다.

6월 14일 취업 설명회에서 만난 김 위원장은 "예멘인들의 불안이 극심해지는 상황에서 법무부가 취업을 허가해 줘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어떤 사람이든 극단적인 상황으로 몰리면 취할 수 있는 행동이 많지 않다. 법무부의 신속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법무부가 취업을 승인했지만 앞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남아 있다. 제주도는 난민 500여 명을 수용할 만한 인프라나 경험이 부족하다. 대책위는 예멘인들이 새로운 환경에 정착할 수 있도록 갈등을 중재하고 상담·교육·통역 등을 지원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예멘인들의 상황을 수시로 점검해 각 유형에 맞는 지원 계획을 구상하고 있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한국교회가 예멘인이 잘 정착할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살 곳을 잃고 쫓겨난 이들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조력하는 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환대이자 복음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을 개종이나 전도의 대상으로만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저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했다.

그는 환대가 결단이 필요한 행동이라고 했다. "소돔과 고모라에서의 롯이나 여리고성에서의 라합처럼 자신의 집을 개방하는 행동이 환대다. 한국교회가 나그네를 맞이할 때도 이런 태도가 필요하다. 단순히 이들을 동정하며 감상적인 태도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대책위는 현재 단체나 개인에 후원을 받고 있다. 한국에 온 예멘인이 장기적으로 사회에 정착할 수 있도록 통·번역가, 상담가 등 전문 인력을 고용하고 교육·상담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위해서다.

이들은 혼선을 막기 위해 예멘인 지원 창구를 일원화하고 있다. 여러 단체나 개인이 개별로 난민을 돕겠다고 직접 접촉하면 불필요한 오해와 갈등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예멘인을 돕기를 원하는 단체나 개인은 반드시 대책위에 연락을 달라고 말했다.

문의: jejuyemenrefugee@gmail.com
후원 계좌: 신용협동조합 131-017-954891(예금주: 제주교구이주사목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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