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 데카르트(Rene Descartes, 1596~1650), 블레즈 파스칼(Blaise Pascal, 1623~1662), 아이작 뉴턴(Isaac Newton, 1643~1727), 근대를 열어젖힌 이야기의 주인들이다. (오늘날 기준으로) 철학자, 수학자와 과학자인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바로 그들이 모두 '신'을 진지하게 물었다는 점이다.

데카르트는 죽기 전까지 무신론자로 비난받았으나 의심할 여지 없는 절대적 진리에 대한 갈망을 품고 있었고, 1641년 출간한 책 <제1철학에 관한 성찰 Meditationes de prima philosophia>로 그리스도교 신앙을 옹호하려 했다. 파스칼은 "절대적으로 무한하고 최고로 완벽한 존재를 인정하는 것은 어처구니없다”고 단언했으나 1654년 하늘에서 울리는 목소리를 들었다고 고백했으며 <팡세 Pensees>에서 인간의 자기애에서 벗어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가능한 신과의 만남을 설득했다. 뉴턴은 기계적 세계관을 정립한 자연과학자로 오랜 시간 인정받아 왔으나 신앙에 지대한 관심을 두고 성서를 연구했으며, 새로운 자연법칙을 발견할 때마다 "신이 쓴 책의 내용을 읽어 냈다"(30쪽)고 감탄했다. 이들에게 철학, 수학, 과학의 진리는 신앙과 괴리되지 않았다. 달리 말해 만물을 생성하고 움직이는 신, 신이 창조한 광대한 우주, 우주 속에 인간은 괴리되지 않았다. 근대의 아버지라 부를 만한 이들에게 신은 온 우주를 이끌어 가는 궁극적인 원인이자 삶의 의미를 해명하는 근원적인 열쇠였다.

<신 - 우주와 인류의 궁극적 의미> / 키스 워드 지음 / 한문덕 옮김 / 비아 펴냄 / 108쪽 / 8000원

그러나 그들의 자녀들은 더 이상 신을 묻지 않는 듯하다. 신을 경배하는 이들은 여전히 많지만 정작 자신이 찬양하는 신이 누구인지, 신이 창조한 우주는 어떻게 움직이는지, 이러한 실제 움직임을 통해 슬쩍 엿볼 수 있는 인간 삶의 궁극적 목적은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묻는 이들은 적다. 신자들은 움츠러들어 신에 대해 '사유'하기를 꺼리고 무신론자들은 신앙인들의 부적절한 행태와 비합리적인 고백을 비난하지만 정작 그들과 신에 대해 진중하고 끈질긴 대화 나누기를 거절한다. 질문하지 않는 신앙인과 경솔한 무신론자 모두 신과 우주(세계), 인간을 함께 사유하던 선조들의 전통을 망각했다. '전체에 대한 감각'을 상실한 것이다. 근대 이후 인간은 그 어느 때보다 거대해졌다고 하지만, 그 모습은 마치 거대한 섬에 홀로 있는 거인과 같다. 이 세상에 인간은 그저 자기 홀로 있는 것처럼 보이고 자신을 둘러싼 것은 자신과 무관하게 돌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 어느 때보다 위상이 높아진 인간이 역설적으로 그 어느 때보다 왜소해지고 고독해졌으며 더 나아가 불안에 휩싸이게 된 것은 저 '감각'의 상실과 연관이 있다. 어느 소설가의 책 제목을 빌려 말하면 (자신의 사고 지평에서) "신을 죽인(이 맥락에서는 제거한) 자의 행로는 쓸쓸"하다.

<신 - 우주와 인류의 궁극적 의미>(비아)의 저자 키스 워드(Keith Ward, 1938~)는 신과 우주, 인간을 함께 사유하는, 오래되었지만 (우리가 망각했기에) 낯선 전통에서 학문 활동을 이어 온 학자다. 그는 단단한 철학적 기초, 자연 과학에 대한 예리한 통찰력, 복잡한 문제에 독자들이 접근할 수 있게 해주는 명료한 문체로 신과 우주(세계), 인간에 대해 사유한다. 이 책은 얇지만, 그의 문제의식과 탐구 방식의 핵심을 보여 주는 지도와도 같다. 그는 묻는다. '신은 누구인가? 혹은 무엇인가?'(1장), '우주는 어떻게 신을 가리키는가?'(2장), '신은 목적을 가지고 있는가?'(3장)

이 책에서 저자는 네 부류의 독자들(잘못된 신 이미지를 갖고 있거나 '신에 관해서 말할 수 없다'고 여기는 사람들, 신을 '알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과 신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각기 다른 방식으로 조언한다. 미켈란젤로(Michelangelo, 1475~1564)의 그림에 등장하는 "백발에 흰 수염을 지닌 근육질 남성"(7쪽)으로 신을 상상하는 사람들에게는 신의 무한함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스도교 전통은 어떤 한계도 없으며, 어떤 것에도 의지하지 않는 무한한 신을 전해왔다. 신 형상 만들기를 금지했던 고대 유대교 신자들, 이슬람 신자들 역시 이 믿음을 함께 나누었다. '신에 관해서 말할 수 없다'고 말하는 이들에게는 유한한 대상만을 가리킬 수 있는 인간 언어로는 무한한 신을 완전히 설명할 수는 없다는 데 공감하지만 시적 언어, 종교 언어를 통해 "이 세계가 단순히 세계 그 자체로 머무르지 않으며 이를 넘어서는 실재를 표현하고 있음"(19쪽)을 설명한다. 표면에 드러난 세계는 근원이자 원천인 실재를 드러낸다.

신은 '알 수 없다'고 말하는 불가지론자들에게 키스 워드는 이러한 이들이 주로 옹립하곤 하는 과학 자체의 원리에 대해 생각해 볼 것을 권한다. 과학은 "그것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그것은 왜 그러한가? 그것은 어떤 법칙을 따르는가?"(20쪽)라는 질문을 던지며 더 완벽한 설명을 찾는 데 익숙하다. 통념과 달리 그는 이러한 과학적 태도는 종교적 태도와 동떨어져 있지 않다고 말한다. 과학적 태도를 지닌 이들이 "어떤 일을 초래한 이유가 있고, 이를 적절하게 설명할 수 있다"(35쪽)는 과학의 "기본 믿음이자 공리"를 더 밀고 나간다면 궁극의 설명이자 궁극의 원인인 '신'을 필요로 할 수밖에 없다. 어떤 면에서 신에 대한 믿음, 신 존재는 자연 과학을 성립 가능하게 하는 바탕이다. 그는 왜 무한한 (그래서 하나인) 신을 강조해 온 서구 문화권에서 자연 과학이 등장했는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고 말한다.

신이 더 이상 '무의미하다'고 말하는 이들에게 저자는 신의 '목적'에 대해 생각해보자고 제안한다. 저자는 "과학에서 이유를 묻는 것은 (중략) 무엇 때문에 사물이 존재하게 되었는지 그 원인을 묻는 것이지만 우주가 존재하게 된 그 이유를 물을 때 만족스러운 대답은 어떤 목적이 있다고 할 때만 가능"(54쪽)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실천하는 주체가 누구인지와 관계없이 의미 있는 "보편적인 가치들", 즉 목적들을 열거한다. 행복, 지식, 창조 활동(자유), 사랑(협력)은 인간이든지, 아니면 외계 생명체든지 상관없이 이성을 지닌 존재라면 누구나 추구할 만한 가치이며, 이 가치를 향한 행동을 추동하는 이가 신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3장에서 감춰져 있으나 분명하게 두드러지는 존재는 '인간'이다. 인간은 본질적 가치를 통해 삶의 의미를 물으며 이 본질적 가치들은 인간과 신, 세계를 연결하는 핵심 고리들이다.

독자 중에는 저자가 전개하는 논리가 생경하다고 느낄 이들도 있겠다. 앞서 언급했듯 저자가 나름대로 상정한 네 부류에 속해 있거나, 좀 더 근본적으로 신, 우주(세계), 인간을 따로 떼어 내 생각하는 방식에 길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 신앙인이든 신앙인이 아니든 우리는 셋을 함께 연결해 사유하는 방식에 익숙하지 않다. 신은 경배와 찬양의 대상이며, 우주는 탐구와 발견의 대상, 인간은 의미와 행복을 찾는 존재지만 이 셋이 어떻게 맞물려 돌아가는지 상상하는 법을 잊어버렸다. 한국이라는 맥락에서 독실한 신앙인이 되기 위해서는 신앙만을 견지해야 한다는(그래서 이성을 반대하거나 이성의 가치를 외면하는) 풍토 또한 이러한 분위기를 강화하는 데 일조한다. 고전적인 신학의 정의는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이지만 이러한 풍토 속에서 신앙을 견결하게 하면 할수록 (신, 세계, 인간에 관한) 이해는 넓어지고 풍요로워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협소해지고 궁핍해진다. 그러한 면에서 과학과 철학 질문은 궁극적으로 종교적인 질문을 일으키며 이를 함께 연결해 생각해야 한다는 저자의 제안은 (우리에게) 낯설지만, 오히려 고전적인 신학의 정의에 충실한 제안이기도 하다.

입문서에는 여러 형태가 있다. 어떤 입문서는 하나의 주제에 대해 다양한 입장을 소개해 독자들이 주제를 둘러싼 논의들을 일별할 수 있게 도와주는가 하면, 어떤 입문서는 해당 주제와 관련한 자신의 문제의식과 사고 전개 방식을 압축적으로 보여 주는 것으로 독자들이 해당 주제에 한 걸음 발을 내디딜 수 있도록 돕는다. 이 입문서는 근본적으로 후자다(물론 출판사에서는 전자의 장점도 취할 수 있도록 해당 주제에 관련해 한국에서 읽어 볼만한 책들을 소개해 놓았다). 이 책을 시작점으로 키스 워드의 저서들이 좀 더 번역되어 출간되기를 바란다. 우리는 여전히 신과 우주, 인간을 함께 사유하는 오랜 전통을 좀 더 맛볼 필요가 있고 '전체에 대한 감각'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좀 더 다양한, 더 많은 시도들이 이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양지우 /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했고, 대학원에서 신학 석사 학위를 마쳤으며, 성공회에서 사제 서품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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