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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슬블로어' 유학생, '쉬운 기독교' 고발하다
[인터뷰] <한국교회에 말한다>(생각비행) 쓴 오제홍 씨
  • 김은석 (warmer99@newsnjoy.or.kr)
  • 승인 2018.06.04 12:09

[뉴스앤조이-김은석 사역기획국장] 2013년 11월 4일 오제홍 씨는 '대통령의 하룻밤'을 목격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영국 국빈 자격으로 런던에 도착한 밤이었다. 당시 주영한국대사관 직원이었던 제홍 씨는 대통령이 묵은 호텔 객실 문지기 역할을 맡았다. 지근거리에서 대통령을 수발하던 사람들을 지켜봤다.

이상한 인물이 있었다. 이영선 전 행정관. 그는 노크도 없이 대통령 방을 자유롭게 드나들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방문을 두드리고 누구인지 밝힌 뒤, 들어오라는 답을 듣고서 문을 열었던 것과 대조적이었다. 새벽 2시가 넘어서도 그랬다. '저 사람은 뭐지?' 싶었지만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국정 농단 사태가 터진 2016년 말, 한동안 잊고 지냈던 '이영선'이란 이름이 다시 생각났다. 대통령의 비정상적인 국정 운영 방식과 함께 이른바 '세월호 7시간'이 다시 이슈로 떠올랐다. 3년 전 목격한 것들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늦은 새벽까지 대통령 방을 자유롭게 드나들던 이 전 행정관이라면, 세월호 참사 당일의 봉인된 대통령 7시간 행적을 알고 있을 것 같았다. JTBC 보도국에 제보했다. '세월호 7시간'의 진실을 밝힐 '키맨'(keyman)으로 이 전 행정관을 지목하며, 2013년 11월 4일 목격한 모든 내용을 알렸다.

대사관 직원으로 일했던 제홍 씨는 2016년 말, 국정 농단 사태 당시  '세월호 7시간'의 진실을 밝힐 '키맨'(keyman)으로 이 전 행정관을 지목하며, 2013년 11월 4일 목격한 모든 내용을 JTBC에 알렸다. 제홍 씨가 제보한 내용은 JTBC 보도 프로그램 '정치부회의'에서 "그날 런던에선…되짚어본 '대통령의 하룻밤' ①"이란 제목으로 보도됐다. JTBC 영상 갈무리

제홍 씨는 'Bryan'이란 필명으로 활동하는 <딴지일보> 필진이기도 하다. '저는 주영 대한민국대사관 직원이었습니다'라는 연재에서, 대사관 직원으로 일하며 보고 듣고 겪은 부조리를 고발했다. 특히 함께 일했던 동료들이 겪은 직장 내 성폭력 사건을 폭로했다. 제홍 씨는 불이익을 당할까 봐 두려웠던 피해자들이 오랫동안 숨겨 온 피해 사실을 뒤늦게 파악했다. 이미 고소 기간마저 지나 책임을 물을 방법은 없었다.

대사관 재직 중 경험한 부조리
JTBC·<딴지일보>에 고발

대사관은 그만두게 됐지만, 제홍 씨는 이 일을 그냥 넘길 수 없었다. 곳곳에서 외교관들의 성범죄가 터져 나와도 늘 솜방망이 징계로 넘어가고 마는 점을 지적하며, 자신이 재직 시 파악한 직장 내 성폭력 사례를 언급했다.

연재 글이 <딴지일보>에 실린 뒤 가해자 측은 혐의를 부인하며 제홍 씨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지난한 법정 다툼은 아직 끝나지 않은 상태다. 방송사에 제보한 건으로 지인을 통해 "조심하라"는 국정원 직원의 연락을 받은 적도 있다. 경제적‧가정적으로도 힘든 시기를 거치고 있다.

이 모든 일은 그가 '휘슬블로어'(내부 고발자)를 자처했기에 겪은 것이다. 우리 사회는 피해자뿐 아니라 휘슬블로어에게도 냉혹하다. 때론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서지현 검사의 용기가 우리 사회에 '미투 운동'을 촉발했듯이 촘촘하게 형성된 권력의 카르텔에 균열을 내는 움직임에 동참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는 오제홍 씨.

사실 그는 낮에는 대사관에서 일하고 밤에는 신학 공부를 했던 영국 생활 10년 차 유학생이다. 런던 킹스칼리지에서 유명한 복음주의 신학자 알리스터 맥그라스 지도로 석사과정을 마쳤다. 현재는 브리스틀대학교에서 중세철학신학 연구 석사과정을, 애버딘대학교에서 조직신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그는 올해 초 오랜만에 한국을 방문했다. 성폭력 사건 폭로 관련 재판에 나가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오제홍이란 자기 이름을 걸고 나온 책 <한국교회에 말한다>(생각비행)가 출판되었기 때문이다.

말도 탈도 많았던 종교개혁 500주년
사회문제 된 한국교회 민낯 지켜보며
교회 병폐 꼬집는 고발서 쓰기 시작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은 2017년, 한국교회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한 해를 보냈다. 창조과학 논쟁을 불러일으킨 박성진 후보자 인사 청문회, 교회 장로인 박찬주 육군 대장의 '공관병 갑질 사건', 명성교회 부자 세습, 종교인 과세 시행 논란, 그리고 올해 초 검찰 성추행 가해자로 지목된 안태근 전 검사의 세례 논란, 태극기와 성조기를 내걸고 운집한 보수 기독교의 삼일절 구국 기도회…. 교회가 사회에 드러낸 민낯을 멀리서 지켜보며 제홍 씨는 키보드를 두드렸다. <딴지일보>에 '한국교회에 말한다'라는 새로운 연재를 시작했다.

그렇게 반년 넘게 연재한 글을 한데 엮어 <한국교회에 말한다>를 펴냈다. 15개 글로 이루어진 이 책은 지난해부터 올해 초까지 한국교회가 연루됐던 각종 사회문제를 소재 삼아 한국교회가 지닌 고질적 병폐들, 값싼 은혜가 판을 치며 계층화‧성직주의 늪에 빠져 버린 교회를 고발한다. 10년간 몸소 경험한 영국 교회 현실을 토대로 유럽 교회에 대한 한국교회의 오해를 교정하고, "끊임없이 공부하고 질문하는 교인"들의 출현을 촉구한다.

<한국교회에 말한다>는 서점에서 종교 분야가 아니라 인문‧사회 분야 서가에 놓여 있다. 출판사와 저자가 일부러 책 정보를 등록할 때 그렇게 분류했다. 교회 문제는 더 이상 교회만의 문제가 아니라 교회 밖에서도 함께 공유할 사회문제가 되었다는 판단 때문이다.

'휘슬블로어'의 길을 택한 전 대사관 직원, 모태신앙으로 평생 몸담아 온 교회가 '쉬운 기독교'가 된 현실을 고발한 유학생 오제홍 씨를 만났다. 그는 신학에 대한 진지한 열정과 성숙한 교회를 향한 소망을 짙게 뿜어내는 젊은 연구자였다.

<한국교회에 말한다>(생각비행) 저자 오제홍 씨. 영국 생활 10년 차인 그는 런던 킹스칼리지를 거쳐 브리스틀대학교와 애버딘대학교에서 연구 석사과정과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딴지일보>에 연재한 글을 모아 올해 4월 <한국교회에 말한다>를 펴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 저자 소개를 보면 이력이 다채롭다. 석사과정에서 저명한 신학자인 알리스터 맥그라스에게 지도를 받고, 주영한국대사관에서도 근무했다. 신학은 어떻게 시작했나.

'믿음'이 좋은 아이는 아니었다. 하지만 열심히 신앙생활하신 부모님 때문에 기독교 신앙에 대한 궁금증은 늘 있었다. '부모님이 저렇게 열심히 믿는 기독교란 무엇일까. 어떤 마력을 갖고 있는 것일까.' 그래서 맘 한편에는 신학을 공부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원하는 대학 진학에 실패한 후 재수하고 싶었으나, 넉넉지 않은 가정 형편이 마음에 걸렸다. 어느 날 아버지가 신학대학교 합격증을 가져왔다. 부모님이 나 모르게 선생님과 상의해 입학 지원서를 냈던 것이다. 나중에 그만두더라도 일단 대학은 들어가야 하지 않겠냐고 하셔서 입학하게 됐다. 처음에는 아웃사이더로 지냈지만, 어느 날 하굣길에 특별한 체험을 한 뒤부터 학교생활에 열심을 내게 됐다.

무엇보다 이명웅 교수님(교의학)의 강의를 들으면서 하나님을 더 잘 알게 되었다. 공부를 할수록 궁금한 게 많아졌다. 이 교수님을 자주 찾아가 질문하곤 했다. 하루는 <하나님의 칭의론Iustitia Dei>(CLC)을 주시면서, 더 공부하고 싶으면 유학을 떠나 이 책의 저자에게 배워 보라고 하셨다. 이 책의 저자인 알리스터 맥그라스는 당시 옥스퍼드대학교에 재직 중이었다. 그렇게 영국 유학에 대한 막연한 꿈을 갖기 시작했다.

가정 형편을 생각하면 유학은 꿈도 꿀 수 없었다. 하지만 학사장교로 군에 입대해 특전사로 차출되고 이라크 파병도 다녀와 유학 자금을 마련할 수 있었다. 전역 후 결혼을 하고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이명웅 교수님이 추천하신 알리스터 맥그라스가 옥스퍼드대학교에서 런던 킹스칼리지로 임지를 옮겼다는 소식을 듣고 킹스칼리지에서 첫 학위를 시작했다. 당시 교회론 전공자는 나 혼자였다. 담당 교수가 안식년으로 자리를 비워 학장이었던 알리스터가 대신 논문을 지도해 줬다. 그렇게 일대일로 1년이 넘게 배웠다.

석사과정을 마치고 박사 지도를 받기로 되어 있었는데 급작스럽게 알리스터가 옥스퍼드대학교로 다시 돌아가게 됐다. 당시 옥스퍼드대학교는 킹스칼리지 학생들이 옥스퍼드대학교로 옮겨 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재정적으로도 어려워진 상황이었다. 그때 영국에 주재하는 한국대사관에 취직을 하게 되어, 박사과정을 바로 시작할 수 없었다.

대사관에서는 5년 남짓 일했다. '이러다가 공부는 못하게 되겠구나' 싶어서 박사과정에 진학하기로 했다. 안타깝게도 은퇴를 앞둔 알리스터는 더 이상 박사과정생을 받을 수 없다고 했다. 대신 무슨 공부를 하면 좋을지 조언을 구했다. 루터의 이신칭의에 대한 연구는 많이 되었으나 중세, 특히 아우구스티누스의 칭의가 제대로 조명되지 않았다고 일러 줬다. 이 밖에도 여러 조언을 얻었고, 추천서도 받았다. 박사과정 지원 결과 옥스퍼드를 비롯해, 브리스틀과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 애버딘대학교 등에서 입학 허가를 받았다. 지도 교수가 누군지에 중점을 두어 브리스틀과 애버딘 두 곳에 입학을 결정했다.

알리스터 맥그라스 지도·영향받아
2개 대학에서 칭의론 연구 중

브리스틀대학에는 중세를 연구하는 센터가 있다. 아우구스티누스와 아퀴나스의 칭의론 비교를 연구 주제로 삼았다. 각각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영향을 받았기에 인식론의 차이가 컸을 것이다. 지도 교수님은 내 의도는 이해하지만 두 사람 중 한 사람에 대해 연구하는 것도 평생 끝내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깊이 파지는 않고 연구 석사 논문으로 끝내기로 했다. 이제 논문을 제출해야 한다.

애버딘대학에는 바르트센터가 있다. 칼 바르트는 칭의론 연구를 다 마치지 못했지만 중세 신학자 안셀무스의 칭의 개념에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바르트가 살아 있었다면 어떻게 칭의론을 마무리했을지 가설을 제기하는 논문을 쓰려고 한다. 물론 이러한 연구가 학계 안에서 지속 가능할지 알 수 없다는 지도 교수의 조언도 있었다.

하지만 학계에 들어가기 위해 연구의 범위를 제한하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재밌는 걸 공부해야지 않겠나. 이런 얘기 하면 배가 불렀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다.(웃음) 애초에 교수가 되어 따박따박 월급 받으면서 편하게 연구하겠다는 생각은 버렸다. 하고 싶은 연구 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

- 사연 없는 신학생, 힘들지 않은 유학 생활이 어디 있을까 싶지만, 정말 여러 사연을 겪으며 지내 온 것 같다. 이 책의 발단이 된 <딴지일보> 연재는 어떻게 하게 됐나.

지난해 사회적으로 창조과학 논쟁을 불러일으킨 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장관 후보자 인사 청문회가 계기였다. 그는 신앙적으로는 '지구 나이 6000년'을 믿고, 과학도로서 45억 년설도 신뢰한다고 말했다. 6000년이면 6000년이고 45억 년이면 45억 년이지, 왜 이를 분리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러한 모순적 상황이 한국교회 현실을 나타내는 것 같았다. '신앙 따로 삶 따로'인. 그 이유가 무엇인지 살피는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유학 초기 잠시 존 스토트가 몸담았던 '올소울즈교회'(All Souls Church)에 다녔다. 여담이지만, 매일 아침 주보를 나눠 주던 할아버지가 존 스토트였음을 나중에야 다른 교인에게 듣고서 알게 됐다. 존 스토트는 창조를 믿지만 진화론을 인정하는 창조적 진화론자다. 그와 그에게 배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창조과학은 맹신에 의해 만들어진 허구일 수 있겠다는 합리적 의심을 시작했다.

아무튼 박성진 장관 후보자 사건을 계기로 '한국교회에 말한다'라는 연재를 시작했는데, 메일과 쪽지를 많이 받았다. 궁금한 걸 물어보는 분이 많았다. 대부분 교회에 상처받고 떠나신 분들이었다. 그분들이 지닌 상처가 교회의 모순 때문 아닌가 싶었다. 한국교회의 모순적 상황을 하나씩 짚어 보면 좋겠다 싶어서 연재를 써 내려갔다.

창조과학, 기복신앙, 성범죄,
세습, 종교인 과세 등
모순 드러낸 주제 다룬
<한국교회에 말한다>

- 창조과학, 기복 신앙, 성범죄, 세습, 종교인 과세, 사이비, 친일 등 다양한 주제를 전방위적으로 다뤘다. 원래 여러 문제에 관심이 있었나.

책에 담긴 글들은 한국에서 신학을 공부하면서, 또 영국에서 10년간 학업과 교회 생활을 병행하며 단편적으로 써 온 글들을 업데이트하고 축약한 것이다. 일기장에 생각을 정리하려고 적은 기록들을 다 모아 보니, 그때 생각했던 한국교회 문제들이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반복되고 있더라.

- 개인적으로 책에서 다룬 주제들과 관련한 사연은 없나.

성직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이 생긴 지는 오래됐다. 어릴 때부터 온 가족이 함께 다니던 교회에서 담임목사와 장로들 사이에 갈등이 심해 다투는 과정을 목격했다. 결과적으로 장로 4명 모두가 교회를 떠나게 됐다. 그 과정을 지켜보며 수없이 많은 의문이 들었지만 아무도 대답해 주지 않았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목사의 권위에 대한 장로들의 문제 제기가 갈등으로 불거진 것이었다. 일종의 세력 다툼이었다. 그때부터 절대왕권처럼 교회의 권력이 집중된 목사직에 회의를 품게 되었다.

책에 이단 문제를 언급하기도 했지만 사실 이단보다 조용기 목사가 끼친 해악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그의 '삼박자 축복' 그리고 그 축복과 돈의 연결성 때문에 지금 한국교회가 풍비박산한 것 아닌가. 어렸을 때 부모님을 따라 오산리기도원(조용기 목사의 장모인 최자실 목사가 운영하던 곳)에 간 적이 있다. 안수 기도를 해 준다고 하는데, 100만 원 낸 사람은 2분, 50만 원 낸 사람은 1분간 기도해 준다고 하더라. 내 눈에는 너무 이상해 보였는데 어른들은 성령(?)의 은혜를 받았다고 했다.

한국교회사를 공부해 보니 초기 이단은 오늘날과 같은 사이비는 아니었다. 순수한 마음으로 시작해 변질되기 시작한 거다. 한국의 이단들이 가진 특징은 어떤 한 특정인에게 권위와 권력을 주고, 심지어 신성시하는 것이다. 조용기 목사와 다른 게 뭐가 있는가.

<한국교회에 말한다>는 지난해부터 올해 초까지 한국교회가 연루됐던 각종 사회문제를 소재 삼아 한국교회가 지닌 고질적 병폐들, 값싼 은혜가 판을 치며 계층화‧성직주의 늪에 빠져 버린 교회를 고발한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 전공 분야여서 그런지 칭의에 대해 상당히 비중 있게 다루었다. 한국교회의 값싼 구원론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지금 공부하는 주제가 '하나님의 의'다. 이는 구원론과 구분된다. 구원론이 믿음의 여정, 단계를 논의한다면, 하나님의 의에 대한 연구는 구원의 시작을 논의한다. 하나님의 의는 인간사에서 말하는 '정의正義'를 말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의로우신 것은 주체적 의로움의 성격을 띤다. 따라서 주어진 의에 대한 개념과 다르다. 아직 연구가 진행 중이다. 성경이 말하는 의는 무엇이고 우리가 아는 하나님의 의, 역사 속에서 받아들여진 하나님의 의는 무엇인지 공부하고 있다.

올해 초 서지현 검사의 성추행 가해자로 지목된 안태근 전 검사가 교회에서 세례받고 간증하는 것을 보면서 이 부분을 꼭 다뤄야겠다고 생각했다. 안 전 검사는 "죄 많은 저에게 이처럼 큰 은혜를 경험하게 해 주신 나의 주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립니다"라고 말했지만,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한 반성과 사과, 뉘우침이 없다면 누구나 간증 시간에 한번쯤 할 수 있는 말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지난 삶을 진심으로 회개한다면 자기 잘못을 왜 인정하지 않는가. 그럼에도 교회는 세례를 베풀고, 구원을 받았다고 교인들에게 약속한다. 구원에 대한 오해와 잘못된 칭의의 가르침이 발현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우구스티누스, 칭의와 성화 구분 안 해
사랑의 행위 통해 의롭게 된다고 강조

보통 우리는 바울의 말을 빌려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다"고 말한다. 그런데 아우구스티누스는 '사랑'을 강조한다. 믿음은 관념인 반면 사랑은 나타나고 드러난다. 따라서 머릿속에 머무는 게 아닌 게 된다. 물론 종교개혁가들 역시 칭의와 성화를 통해 구원에 이른다고 주장하며 믿음과 그에 따른 행위(사랑)가 긴밀하게 상호작용을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아우구스티누스는 칭의와 성화를 구분하지 않는다. 이 둘은 구분될 수 없기 때문이다. 성경은 이 사랑을 통해 우리가 의롭게 될 수 있다고 쭉 강조하듯, 아우구스티누스의 칭의는 구원에 대한 단계적 구분을 지양한다.

- "평신도는 없다"며 교회 내 계층화를 강하게 비판한다. 그런데 '평신도'라는 말은 한국교회 안에서 너무 많이 쓰이는 표현이다.

한인 교회 사역을 마친 후 지금까지 동네에 있는 영국 교회를 다니고 있다. 신학을 했다고 하니 목사님들이 영국 교회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해 줬다. 그들에게는 성직자와 일반 신도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 목사를 '파스터'(pastor)라고 부르지도 않는다. 대부분 이름을 부르지만 굳이 직함이 있다면 '리더' 정도. 설교도 리더만 하지 않는다. 장로도 하고, 집사 중 특별한 전문 분야가 있거나 신학을 공부한 사람은 누구나 설교할 수 있다. 물론 주로 설교하는 사람은 리더다. 교인들은 사회봉사와 지역사회를 돕는 일에 정말 열심히 참여한다.

지금은 침례교회를 다니지만, 예전에 성공회에 속해 있을 때 목사 한 분이 "중세 교회는 계급주의 때문에 망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민주주의와 평등주의가 유럽 종교개혁 이념의 근간을 이루는데, 목사가 말씀을 가르치는 역할을 맡았다고 해서 성경에도 없는 귄위를 가지려 하는 건 잘못된 가르침이라고 했다. 바울이 갈라디아서 3장 28절에서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라고 한 것은 단순히 구원에만 해당되는 개념이 아니다. 이 말은 당시 모든 사회‧문화적 배경을 타파하는 평등주의를 의미한다. 석사 지도 교수였던 알리스터 맥그라스도 한국교회의 계층화, 성직주의 등 권위주의가 만연한 모습을 우려한 바 있다.

지금 다니고 있는 교회는 웨일즈에 있다. 웨일즈 출신 로버트 저메인 토마스 선교사(Robert Jermain Thomas, 1840~1866) 순교 150주년이 몇 해 전이었다. 이즈음 한국교회가 영국과 한국을 오가며 엄청 큰 행사를 열었다. 한국의 대형 교회 목사가 와서 웨일즈 지역 신학교에 현금으로 수억 원을 기부한 것을 두고, 웨일즈 교회 목사님이 "한국에서는 담임목사가 그렇게 큰돈을 마음대로 써도 되느냐"고 묻더라. 다른 목사님 한 분은 초청을 받아 한국에 다녀왔는데, 공짜로 비행기 비즈니스석을 타고 가 좋은 호텔에서 삼시 세끼 먹으며 묵었다고 한다. "영국에서는 안 그랬는데 한국에 가니 목사가 대단한 사람이 된 것처럼 느껴졌다"고 하더라. 내게도 한국에서 그런 대접받는지 물었다.(웃음)

오제홍 씨는 현재 브리스틀대학에서 아우구스티누스와 아퀴나스의 칭의론을, 애버딘 대학에서 칼 바르트의 칭의론을 연구하고 있다. 학계에 자리 잡기 어렵더라도, 하고 싶은 연구를 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고 말한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교회 계층화는 하나님나라와 배치
스코틀랜드 장로교 비계층적 문화 본받아야

사실 이러한 것들은 직접 교회에 가고 사람들을 만나며 경험한 일이지만, 학문적으로 이를 뒷받침하는 사례도 있다. 애버딘대학교 조직신학 학과장 폴 니모 교수가 쓴 칼럼 'The reach of the Scottish Reformation'을 번역한 적이 있다. 폴 니모 교수는 스코틀랜드 종교개혁 핵심에 '비계층적 교회 문화'가 있다고 지목하며, 그 영향이 프랑스혁명과 미국 혁명에도 미쳤다고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스코틀랜드를 변방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장로교의 기원이 스코틀랜드 장로교다. 기원이 그렇다면 우리도 그걸 따라야 하는 것 아닌가. 그들은 있던 계급을 타파하려고 그렇게 노력했는데, 우리는 없는 계급을 만들어 이러고 있으니 아이러니한 모습이다. 평신도라는 말 자체가 교회를 계층화하는 것이다. 계층주의는 결국 그리스도가 추구한 하나님나라와 배치된다.

- 책의 마지막에서 한국교회가 무너졌다고들 말하는 유럽 교회에 와서 보고 배우라고 주장한다.

이 책의 클라이맥스다. 유럽 교회가 죽었다고 하는 선교사님들이 인용하는 자료들은 대부분 비슷하다. 이슬람화한 지역에 있는, 인적이 드문 교회에 찾아가 허름하고 보잘것없는 교회를 보여 주며 교회가 죽었다고 한다. 하지만 한인 타운에 한인 교회가 엄청 많듯, 이슬람 타운에는 이슬람 사원이 생길 수밖에 없다. 문화적인 것이다.

영국은 건축법상 지어 놓은 교회를 허물 수 없다. 사람들이 100년, 200년 된 집에서 사는 이유도 집을 함부로 허물 수 없기 때문이다. 내부를 리모델링해서 다른 용도로 쓰는 수밖에 없다.

영국에 이민자가 들어온 지 50년 됐다. 백인들이 살던 동네에 무슬림들이 정착하기 시작한다. 무슬림 비율이 50%, 80%로 늘어나면 백인들은 그 동네에서 더 살 수 없어 다른 데로 이사를 간다. 그러면 그 동네에 있던 교회는 인적이 드물게 되고 빈 교회 건물을 무슬림들이 비싼 값을 주고 사거나, 월세를 내고 쓴다. 어떤 교회 건물은 술집으로, 어떤 교회 건물은 도서관으로, 어떤 교회 건물은 이슬람 사원으로 사용한다. 이것은 건축법 때문에 다시 허물 수 없어서 생긴 현상이지 교회가 무너진 것을 증명하는 사례가 아니다. 그런데 그런 걸 사진으로 찍고 영상으로 제작해서 교회가 변했다고, 무너지고 있다고 한국에 알린다. 잘못된 정보다.

일요일 상법(The 1994 Sunday Trading Act)이 생기기 전만 해도 영국 사람들은 일요일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일요일이면 상점은 모두 문을 닫고 대중교통조차 다니지 않았다. 뭘 할 수 있겠나. 사람들이 모여서 시간을 보낼 공간이 교회밖에 없었다. 그러니 국민 70~80%가 교회에 다닌 것이다. 그런데 일요일 상법이 발효된 후 일요일 예배 참석자가 급감했다. 그제야 영국 교회는 그동안의 제도에 문제가 있었음을 깨닫고 연구를 시작했다. 그리고 첫 번째로 한 일이 대학마다 있던 신학과를 종교학과에 소속되게 한 것이다. 국가가 가지고 있던 종교 선택권을 국민에게 돌려준 셈이다.

유럽 교회는 질적 성장 중
교회 권력 일반인에게 나누는 것이
종교개혁 정신

지금 영국 교회는 과도기다. 많은 영국인이 교회에 나가지 않는 것은 기존 제도가 싫어서이지 신앙심이 없어서가 아니다. <액체교회>라는 책을 쓴 피터 워드(더럼대학교)라는 영국 신학자는 "청년들에게 신앙과 열정이 없지 않다. 제도화되고 형식에 얽매이는 교회가 싫어서 안 나가는 거다"라고 말한다. 그는 정형화한 교회주의를 벗어나 청년들 스스로 교회를 이루도록 도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결국 우리는 유럽 교회를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유럽 교회가 죽었다느니 무너졌다느니 판단하고 있는 셈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교회에 대해서도 우리는 한국적 신앙 안에만 머물러서 판단하고 있다. 우리 판단이 성경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언제든 열어 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국 생활 10년 동안 여러 현지 교회를 경험한 그는 한국교회에서 유럽 교회가 죽었다고 말하는 것은 제대로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주장한다. 오히려 유럽 교회에 가서 배우라고 말한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종교개혁의 실제 정신은, 교회가 가진 권력을 일반인들에게 다 나눠 준 것이다. "너도 하나님 만날 수 있어, 우리가 가진 기득권 내려놓을게." 이게 종교개혁의 정신이다. 영국 교회는 그걸 계속 실천하지 못하다가 이제야 실천하기 시작한 것이다. "교회를 오든 안 오든 선택은 너희가 해. 여태까지 우리가 주도권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건 잘못된 것 같아"라고 말한다. 따라서 유럽 교회가 특히 영국 교회는 죽었다고 보지 않는다. 자기반성은 하고 있지 않나. 그것도 성공회 차원에서. 양적 성장이 아니라 질적 성장을 하고 있는 중이라고 본다.

영국 교회에서 교인들이 참여하는 독서 모임에 가 보면, 다양한 사람이 모여 함께 토론하고 의견을 나눈다. 수준 높은 신학 서적부터 일반 소설까지 분야는 다양하다. 함께 공부하고 질문하며 자기 신앙을 점검하기 위함이라고 했다. 신앙은 순간 반짝이고 마는 게 아니라 죽을 때까지 가야 하는 것이다.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은 찰나에 주어지는 게 아니라 긴 여정 가운데 있다. 획일적인 교인을 찍어 내는 방식이 아닌 참된 그리스도인을 길러 내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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