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교단은 1년에 한 번 정기총회를 개최한다. 정기총회에 참석하는 목사와 장로를 총대라고 부른다. 사진은 지난해 9월 예장통합 102회 총회 회무 장면이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뉴스앤조이-이용필 기자] '총대'. 일반 교인에게 익숙하지 않은 이 단어는 목사와 장로들 사이에서 주로 사용된다. 총대는 사전적 의미로 전체를 대표하는 사람이다. 총대는 교회와 노회를 대표해 1년에 한 번 열리는 교단 정기총회에 참석하며, 주요 의사 결정에 참여하고 투표권을 행사한다. 이후 한 회기 동안 총회 상비부나 위원회에 배치되어 소임에 맞는 역할을 하게 된다.

특별할 것 없어 보이지만, 정치를 중요시하는 일부 목사와 장로에게 총대는 명예와 자존심이다. 총대는 노회에서 최종 선출한다. 노회에서 오랫동안 활동해 왔거나, 영향력이 큰 목사와 장로일수록 뽑힐 확률이 상대적으로 높다. 하지만 자리는 적고, 지원자는 많다 보니 총대 선출을 놓고 잡음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예장통합·최기학 총회장) 서울서남노회(이상록 노회장)는 한 달 넘게 총대 선출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다. 서울서남노회는 곽선희(소망교회)·고훈(안산제일교회)·김영진(원미동교회)·류철량(부천동광교회) 원로목사 등 예장통합 내 유명 목회자를 다수 배출한 노회로, 교단에서 규모가 큰 편에 속한다.

사건은 올해 4월 진행한 90회 정기회에서 일어났다. 당시 노회에서 목사 18명, 장로 18명 총대를 선출했다. 300명이 넘는 노회원은 A4 용지 크기의 OMR 투표용지를 받아 투표했다. 자신이 지지하는 목사와 장로 이름 옆에 마킹을 했다. 득표를 가장 많이 얻는 순서에 따라 1~18위까지 결정됐다. 목사 총대를 뽑는 것까지는 좋았으나, 장로 총대를 뽑는 과정에서 문제가 불거졌다.

같은 표를 얻은 두 장로가 공동 18위를 차지했다. 서울서남노회 선관위원회(선관위·이해성 위원장)는 A 장로를 총대 명단으로 올렸다. B 장로가 다니는 교회에서 장로 총대가 이미 2명 선출됐다는 이유에서였다. B 장로는 선관위의 일방적인 결정에 반발하며 노회 임원회에 '투표용지 재검'을 요구했다.

총대 선출을 놓고 갈등을 벌인 적은 많았지만, 재검 요청이 제기된 건 처음이었다. 노회 임원회는 4월 27일과 5월 18일 두 차례에 걸쳐 재검을 진행하려 했지만, 선관위가 재검을 반대하면서 무산됐다. 선관위는, 재검은 노회가 아닌 총회 재판국이 관여할 문제라며 절차를 밟아 진행하자고 했다.

선관위가 거듭 반대하자 노회원들 사이에서 의구심이 커졌다. 선관위가 지난 선거에서 부정을 저지른 것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흘러나왔다. 이상록 노회장은 불필요한 오해가 확산되는 걸 막기 위해 5월 29일 노회 사무실에서 재검을 진행하겠다고 공지했다. 관심 있는 노회원은 누구나 참여하라고 했다.

예장통합 서울서남노회는 총대 투표용지 재검을 놓고 갈등을 빚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재검 결과, 무효표 결과 달라
노회 임원회 "재검 결과 하자 드러나,
총회 재판국 통해 정확한 판단받을 것"

노회장이 공지한 날인 29일, 서울시 구로구 고척동 서울서남노회 사무실에 목사·장로 30여 명이 모였다. 격의 없는 농담을 주고받던 이들은 회의가 시작되자 고성을 주고받으며 논쟁을 이어 갔다.

이상록 노회장은 회의 시작과 함께 "투표용지를 오늘 재검하겠다. 모든 책임은 내가 지겠다. 만약 (투표용지에) 잘못된 게 있으면 해당 관계자에게 문제를 삼겠다"고 했다. 그러자 직전 노회장 이해성 선관위원장은 "노회에서 결의된 내용은 임원회도 선관위도 못 건드린다. 재검할 거면 총회에 먼저 질의하라"며 맞섰다.

재검을 찬성하는 측에서는 "이러니까 (선관위가) 작당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거다", "제대로 됐는지 한번 보자는 건데 그게 왜 안 되느냐"고 소리쳤다. 반대 측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이들은 "당장 재검해야 할 정도로 급한 사안인가", "재검을 해도 되는지 총회의 답변서를 받아 오라"고 외쳤다.

계속되는 논쟁 가운데 분위기는 재검 찬성 쪽으로 기울었다. 이상록 노회장의 지시에 따라, 종이 박스에 담겨 있던 투표용지가 공개됐다. 노회 임원회는 투표용지를 재검하기 위해 미리 전문가까지 섭외했다. 흰색 바탕의 장로 투표용지와 노란색 바탕의 목사 투표용지를 검표하는 작업은 1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지난 정기노회에서 실시한 목사 총대 투표에는 353명이, 장로 총대 투표에는 348명이 참여했다. 재검 결과, 선관위가 무효로 처리한 투표용지에 문제가 있었다. 앞서 선관위는 목사 투표용지 중 30표를 무효로 처리했는데, 재검 결과 무효표는 9표 늘어난 39표로 나왔다. 장로 투표용지도 마찬가지였다. 선관위는 30표를 무효로 처리했는데, 재검 결과 41표로 나타났다. 문제는 무효표 11표가 유효 표로 체크됐다는 것이다.

총대 당락과 순위에 영향을 줄 수도 있는 재검 결과가 나오자, 노회 임원회는 펄쩍 뛰었다. 임원회는 "투표 전 '18명만 찍어야 된다', '마킹하지 않고 다른 표시를 하면 안 된다'고 수차례 공지했다. 그런데 선관위는 21명을 찍은 투표용지도 유효로 인정했다"고 비판했다. 또 장로들의 순위를 매긴 체크 리스트도 투표함에 없었다며 책임을 추궁했다.

재검을 반대했던 선관위와 관계자들은 해명하느라 급급했다. 한 선관위원은 "판정조가 (무효표를 유효 표로) 인정한 것"이라고 변명하면서 장로 체크 리스트를 뒤늦게 꺼냈다. 다수의 노회원은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말라", "일단 사과부터 하라"고 말했다.

노회 임원회는 "총대 선출 투표 결과에 하자가 있다는 게 밝혀졌다. 착오였든 오류였든 간에 이후 상황은 총회 재판국에 넘겨 정확한 판단을 받겠다"고 했다.

재검을 반대하는 한 목사가 장로 투표용지를 갖고 나가려다가 제지를 당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사태 본질은 자리싸움" 
개인 명예·자존심 위한 수단으로 전락

공정하지 않은 투표와 개표는 당연히 문제가 된다. 그러나 일부 노회원은 현 사태를 보며 다른 의미로 혀를 찼다. 애초에 제대로 검표하지 않은 선관위도 문제지만, 더 근본적인 원인은 '총대'를 바라보는 시각 자체에 있다는 것이다. 명예와 자존심을 세워 주는 듯한 총대 자리에 목을 매다 보니 불상사가 벌어졌다는 것이다.

노회 사무실에서 만난 한 장로는 "총대가 되려는 이유는 심리적 부분이 크다. 친구 장로는 총대에 뽑혀 총회에 가는데, 나만 못 가면 자존심이 상한다. 선출 과정에서도 자존심 싸움이 벌어진다. 1번으로 뽑힌 총대와 10번으로 뽑힌 총대 사이에도 묘한 간극이 존재한다. 순위가 높을수록 자긍심이 크다. 모두가 총대에 목을 매는 건 아니지만, 이런 문화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예장통합 정기총회에는 목사‧장로 1500명이 모여 나흘간 회무를 진행한다. 사람이 많다 보니 발언할 기회가 적다. 대다수 총대는 거수기 역할만 하다 돌아가는 게 현실이다. 그럼에도 총대를 향한 욕망은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는다.

익명을 요구한 한 목사는 "총대는 명예다, 명예. 총대가 되면 본인 스스로 노회를 대표한다고 자부한다. 명예욕에 사로잡히다 보니 이번처럼 부정선거 의혹까지 제기되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총회에서 얻는 이점이 있다 보니 총대가 되려 한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또 다른 목사는 "이번 노회 사태의 본질은 자리싸움이다. 총대가 되면 동기 목사들에게 인정받는다. 총회 임원도 뽑을 수 있게 되고, 상황에 따라 좋은 부서에도 들어갈 수 있다. (정치적으로) 욕심이 있으면 발을 넓혀 노회를 넘어 전국구로 활동할 수 있다. 이렇다 보니 총대가 되려고 (노회 안에서) 항상 싸운다"고 말했다.

재검을 통해 투표 결과에 문제가 있다는 게 드러났다. 노회 서기 전만영 목사(사진 왼쪽)가 선관위를 향해 책임을 묻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총대는 노회에서 선출한다. 총대를 명예로 생각하는 목사와 장로가 많다 보니 갈등도 잦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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