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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만연한 '성경 오독' 짚다(영상)
[북스앤조이] 권연경 <네가 읽는 것을 깨닫느뇨>(SFC)
  • 강동석 기자 (kads2009@newsnjoy.or.kr)
  • 승인 2018.05.13 20:51

[뉴스앤조이-강동석 기자] '성경을 제대로 읽느냐'는 물음은 성경을 정확하게 이해하느냐를 넘어 성경 말씀대로 실천하고 있느냐는 문제까지 건드린다. "실제로 우리 삶에서 성경이 어떤 위력을 발휘하고 있느냐"[<네가 읽는 것을 깨닫느뇨? - 권연경 교수의 성경 제대로 읽기>(SFC), 8쪽]는 물음이다.

성경 읽기는 단순히 성경 텍스트 자체를 읽는 일뿐만 아니라, 성경을 정직하게 대면하기 위한 노력이자 성경을 읽는 자기 자신을 정직하게 읽어 내려는 몸부림이어야 한다. 제대로 된 성경 읽기를 방해하는 최대의 적은 나 자신이다. 대부분 "우리의 모습은 진리를 사랑하고 진리를 추구하는 겸허한 구도자가 아니라, 알맹이는 없으면서 그저 자기 보존에 급급한 정치가의 모습"(17쪽)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권연경 교수의 <네가 읽는 것을 깨닫느뇨>는 월간지 <복음과상황>에서 '성경과 해석'이라는 제목으로 연재한 글들을 묶은 책으로 '성경 제대로 읽기'에 주목한다. 2008년 출간했는데, 여전히 성경 읽기에 관한 유효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한국교회에 만연한 '성경 오독'을 짚고, 성경 읽기 '기술'과 쉽게 오해하는 구절들에 대한 읽기 사례를 제시한다.

<네가 읽는 것을 깨닫느뇨? - 권연경 교수의 성경 제대로 읽기> / 권연경 지음 / SFC출판부 펴냄 / 311쪽 / 1만 2500원. 뉴스앤조이 경소영

성경은 무오한가

저자는 정직한 태도로 성경을 '제대로' 살펴야 한다고 거듭 강조한다. 먼저 성경무오설에 질문을 던진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하는 일은 대담하기 그지없다. 사람이 저술과 제작 과정에 개입한 책이기 때문이다. 성경 안에 '너무나도 인간적인 부딪침'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실례를 들어 성경을 정직하게 관찰할 때 생기는 자연스러운 의문들을 제시한다.

마태복음 1장에 나오는 아브라함부터 예수에 이르는 족보는 구약에 나오는 몇몇 왕의 이름이 생략돼 있다. 공관복음과 요한복음에 기록된 예수의 십자가 처형 날짜는 서로 다르며,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 당시 나귀의 숫자도 복음서(마가·누가 1마리, 마태 2마리)마다 다르다. 바울이 회고하는 바울 일행의 행로(살전 3:1-2)와 사도행전이 전하는 행로(행 18:5)에서도 정보의 충돌이 발생한다.

"성경을 있는 그대로 읽고 질문하는 노력이 성경에 대한 신앙고백과 혼동되어서는 곤란하다. 오히려 많은 성도들이 이런 식의 질문을 던져 본 적이 없다는 것은 우리의 성경 읽기가 얼마나 '대충'인가를 역설적으로 확인해 보인다. (중략) 물론 우리는 이런 현상들에 대해 나름의 설명을 시도할 수 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설명에는 나름의 신학적 입장이 반영될 공산이 크다. 하지만 이런 현상을 설명하는 것이 교리적으로 어렵거나 위험하다고 해서 이런 현상 자체를 무시할 수는 없다. 그것은 성경 본문을 무시하는 것이지 그 본문을 존중하는 태도가 아닌 것이다." (24쪽)

성육신이 예수의 신적 면모와 인간적 면모를 동시에 강조하듯이, '하나님의 말씀' 성경이 드러내는 인간적 정황과 정직하게 대면해야 한다. 성경의 신적 권위만 강조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위와 같은 충돌들 가운데서도 어떻게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일 수 있는지 성경 계시의 본질을 숙고해야 한다.

저자는, 오늘날 우리가 읽는 성경이 정경으로 채택되기까지 400년 가까이 걸렸다는 '역사적 인식'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긴 시간 동안, 대부분 교회 공동체 성경 중 일부분만 읽고 살아왔다. 교회 지도자들은 정경화 과정에서 치열하게 토론했다.

"당시 교회의 지도자들은 우리만큼, 아니 우리보다 더 건강한 신앙을 갖고서도 요한계시록을 반박할 수 있었고, 자유주의자가 아니면서도 요한복음이나 히브리서를 신랄하게 비난할 수 있었다. 그런 우여곡절을 거쳐 이들 문서들은 오늘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되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성경에 관해 입조심하느라 바쁘다. 오늘날 성경의 영감 교리는 교회 내의 다른 어떤 이데올로기보다 더 강력한 정치적 칼날이 되었다는 사실을 누가 부인할 수 있을까? 초대교회는 없던 성경을 가진 오늘의 우리는 정경 이전의 교회보다 더 행복한가 아니면 더 불행한가? 더 자유로운가 아니면 더 억압적인가?" (26쪽)

성경은 '진본眞本', 즉 원문이 없다. 원문에 다가갈 수 있는,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등으로 쓰인 사본寫本뿐이다. 오늘날 성경에 포함된 내용 중 '오래되고 신뢰할 만한 사본'에 없는 것들도 있다. 대표적으로 '예수께서 간음한 여인을 용서한 이야기'가 그렇다(63쪽). 요한복음 원문의 일부인지 확실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사본들은 번역 과정을 거쳐 교회에 성경으로 전해지는데, 사본이 필사되는 과정처럼 번역 과정에도 인간적 실수와 신학적 판단 등이 개입할 수 있다. 오늘날 기독교인은 "정확한 원문을 모른다는 사실 및 원어가 아닌 번역을 읽어야 한다는 이중적 제약"(29쪽) 아래 있다. 저자는 성경무오설 자체를 수호하는 일보다, 성경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성경 해석의 지침을 마련하는 일이 한국교회 건강을 위해 시급하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큰소리쳐 놓고는 내 마음대로 해석해 버리는 일이 다반사인 상황에서, 아니 하나님의 말씀을 빙자하여 나의 정략적 사설을 늘어놓는 일이 다반사인 상황에서, 교회의 건강을 위해 중요한 것은 말씀의 권위를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관한 싸움이 아니라, 권위 있는 말씀을 어떤 식으로 해석하고 어떤 목적으로 써먹고 있느냐를 검증하는 일이다. 성경의 권위에 대한 믿음만큼이나, 실제 해석의 과정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 (38쪽)

우리는 너무도 쉽게 자기중심적으로 성경을 읽고 그것을 삶에 적용한다. 자기중심성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죄의 본질인데도 성경을 읽으면서 그와 같은 인간의 특성을 간과한다. "방법론적 무지를 넘어, 보다 근본적이고 실존적인 방해가 개입"(9쪽)하는 성경 읽기의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면서, 자기 삶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타자를 배제하는 칼날로 성경을 사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우리는 성경과 신학(전통)에 대한 우리의 열심이 실제로는 현재 나의 정치적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움직임이 아닌지도 물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가 가진 성경의 어떤 부분이 '확실하지 않다'는 사실은, 성경과 신학 체계를 숭배하느라 하나님을 잊는 잘못으로부터 우리를 지켜 주는 일종의 안전장치일지도 모른다." (71쪽)

성경 읽기, 이해를 넘어 실천으로

저자는 성경을 읽을 때 발생할 수 있는 '해석학적 우상숭배'에 대한 회개를 촉구하면서, 기독교인이 지향해야 할 정직한 진리 탐구가 무엇인지 낱낱이 밝힌다. 이 책에서 주목할 부분은 저자가 불러오는 낱낱의 '성경 오독' 사례들이다. 한국교회에서 흔히 잘못 해석하는 구절을 짚으면서, 어떻게 성경 텍스트를 읽어야 하는지 길을 제시한다.

사례 중 하나로, 조급한 독법과 정치적 실수로 많은 사람이 잘못 해석하는 마태복음 5장 13절(막 9:50; 눅 14:34-35)이 있다. 본문에서 예수는 '소금'에 빗대어 제자도를 가르친다. 많은 경우, '조미료'와 '방부제'라는 소금의 특성에만 천착해 말씀을 풀이한다. 본문 메시지가 소금이 되어야 한다는 뜻인 것처럼 전한다. 그러나 이미 본문은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라고 언급하고 있다. 이 본문은 이미 '소금'인 제자들에 대한 예수의 경고로 읽는 것이 자연스럽다. 초점은 소금이 맛을 잃으면 버려져 밟힐 수밖에 없다는 '소금의 회복 불가능성'에 있다.

"곧 예수님의 의도는 핍박받는 것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대신 제자다운 맛을 포기함으로써 핍박을 면하려는 자들은 다시 그 맛을 회복할 수 없이 버려지고 심판받을 뿐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것이며, 이로써 제자들을 경고하시려는 것이다." (115쪽)

이런 오독은 왜 발생하는 것일까. 저자는, 제자들에게조차 재기의 가능성을 허용하지 않는 듯한 뉘앙스 때문에 불편하고, 또한 '성도의 견인' 교리와 상치하는 듯하여 선택적으로 본문을 읽어 그렇다고 말한다. 따라서 본문을 될 수 있으면 꼼꼼히 관찰해야 한다. 본문의 불편한 부분과 직면하려는 태도가 필요하다. "본문 속에 내게 편한 의미를 집어넣어 읽고, 또 내게 불편한 부분은 덮고 넘어가는 태도는 말씀의 칼에 무릎 꿇는 겸허함이 아니라, 내 칼로 말씀을 재단하는 오만이다." (116쪽)

구원을 지나치게 현재화하려 하는 한국교회 태도를 꼬집기도 한다. 많은 기독교인이 구원의 확신을 더욱 확실하게 하려는 데 에너지를 소모한다. "구원에 관한 많은 이야기들은 '구원의 확신'이라는 주제 주변을 맴돈다."(202쪽) 이들은 현재의 삶을 가꾸기보다 "미래의 부활과 구원을 현재로 당겨 오려는 신학적 성급함"(209쪽)을 드러내는 데 급급하다. 저자는 많은 사람이, '회심과 부르심이 하나님의 은총에 근거한다'는 사실을 역설하는 구절을 '구원의 현재성을 확증하는 용도'로 받아들인다고 지적한다.

"그리스도의 재림과 하나님의 심판으로 대변되는 우리의 미래는 신학적 말장난으로 조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미래에 이르는 과정이 '살아 있는 믿음', 곧 '행위와 함께 일하는' 믿음이 요구된다는 사실 또한 변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시간을 우리가 조작할 수 없다면, 우리는 이런 구원이 '이미' 주어졌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209쪽)

성경에는 구원에 대해 경고하는 구절이 적지 않다. 이 구절들도 정직한 태도로 마주해야 한다. 저자가 지적하듯, 강단 위에서 부활을 강조하는 목회자와 일상 가운데 '부활의 충격'을 경험하는 신자가 한국교회에 적은 것도 성경 오독과 편식에서 비롯한 결과다.

"성경을 해석한다는 명분 아래, 끊임없이 우리의 삶을 방어하고 타인의 삶을 공격하는 (중략) 우리의 '작업'을 정확히 드러내는 것이 진리를 향한 첫걸음"(57쪽)이다. 저자는 끊임없이 '제대로' 성경 읽기가 깨달음을 넘어 실천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글을 통한 호소들은 한 편 한 편의 설교처럼 읽힌다. 이 책에는 제대로 성경을 읽기 위해 필요한 질문도 많이 담겼다. 저자의 질문들을 되짚으며 읽어야 한다.

권연경 교수는 정치꾼·협잡꾼의 소굴이 되어 버린 오늘날 교회 현실을 성토한다. 권 교수의 메시지에는 성경이 전하고자 하는 진의에 다가서려 하지 않고 이를 계속해서 곡해하려 하는 공동체를 향한 안타까움도 묻어 있다. 10년 전 출간한 책인데도, 오늘날 한국교회 현실은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여전히 한국교회에는 '들을 귀'가 필요하다.

"우리의 욕심으로 말씀을 학대하지 않으려면, 말씀 앞에 끊임없이 우리 자신을 '괄호 치는', 일종의 현상학적 판단 중지가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거품 무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의 칼날 앞에 나 자신의 삶을 순순히 내어놓는 것이다. 이것이 보다 실제적인 의미에서 말씀의 권위를 존중하는 태도가 아니겠는가." (1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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