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이 진짜 계신가요?" 교회를 찾아온 분과 대화 나누다 듣게 된 질문입니다. 그는 다른 곳에서 이 질문을 던진 후에 "의심을 버리고 믿으세요"라는 대답을 들었다고 합니다. 이 답변은 답변이라기보다는 명령에 가깝습니다. 질문에 답변이 아닌 명령을 돌려받은 이분은 교회와 점차 멀어졌습니다. 질문하는 일을 낯설어하는 우리 교회의 민낯입니다. 교회만큼 질문받기를 기피하는 곳도 없습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은 의심이나 질문 없이 기쁨이 넘치는 교회로 피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구원의 확신만이 가득한 곳에 질문이 설 자리는 없습니다.

그러나 나자렛 예수는 이 세상을 사시던 동안에 제자와 군중에게 많은 질문을 받으셨고, 답하셨습니다. 자신을 적대하던 이들의 질문 또한 받으셨고 그들에게도 답을 건네셨습니다. 인간이 되신 하느님인 예수는 사람들과 대화하고 질문하며 답하기를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사람들 질문을 환영하셨고 그들이 확신하기를 강요하지 않으셨습니다. 당연합니다. 신과 종교에 관심 갖고 신앙하기 원하는 사람 중 처음부터 확신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신앙을 시작하는 사람들은 신앙하기에 앞서 질문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신앙을 갖게 되고 나아서도 질문은 더 깊게, 넓게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신앙하는 일은 끊임없이 질문하고 답을 찾는 과정입니다.

<질문과 답변 - 성공회 신앙 안내> / 이안 S> 마컴, C.K. 로버트슨 지음 / 양세규 옮김 / 주낙현 해설 / 비아 펴냄 / 240쪽 / 1만 3000원

<질문과 답변 - 성공회 신앙 안내>(비아)는 질문과 답변이라는 행위가 소중한 종교체험임을 깨닫게 하는 책입니다. 책은 총 9장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서문에서 성공회 역사를 간추리고, 1장부터 성공회 신앙의 주제들을 하나씩 짚어 나갑니다. "하느님이 존재하신다는 증거가 있나요?"라는 질문에서 시작해 "하느님은 왜 악과 고통을 허락하시나요?", "진화론을 믿으면서 성공회 신자가 될 수 있나요?", "성공회는 성서를 문자적으로 이해하나요?"와 같은 신앙생활에 밀접하지만 고민을 남기는 질문들에 답합니다. 본문과 더불어 해설은 이 주제와 관련한 더 읽을거리를 제공합니다.

성공회는 질문하고 대답하는 일이 교회를 더 풍성하고 더 교회답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로마교회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던 크랜머, 아메리카 대륙에서 성공회 전통을 이어 가고자 했던 미국성공회, 이전까지 금지됐던 사제 성직에 도전한 여성들, 모두 금기와 통제에 대해 '왜?'라는 질문을 던진 사례들입니다. 이들은 질문하고 대화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용감한 질문과 대화는 성공회를 떠받치는 유산이 됐습니다. <질문과 답변>은 오늘날 교회도 용감하게 묻고 답하며 대화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독자들은 각 질문의 답변을 읽는 데서 멈추지 않고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질문을 받습니다. <질문과 답변>은 성공회라는 교파가 지닌 믿음이 아니라 서로 묻고 답하며 식별하는 성공회가 걸어온 길을 소개하는 책입니다.

"신앙의 반대는 의심(doubt)이 아니라 확신(certainty)입니다. 우리는 인간이라는 입장에서 하느님을 생각합니다. 우리는 광대한 우주의 작은 독립체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우주의 근원과 창조주가 어떤 존재인지 알아내려고 합니다. 이러한 시도를 할 때 우리는 겸손해야 합니다. 우리가 서 있는 자리는 확신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에 관해, 하느님과 이 세상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고 분투하라고 부름 받았습니다.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고, 성공회는 우리 모두가 신앙의 여정을 걷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여정은 때로 특정 방향에 치우칠 때도 있고 때로는 방향을 전환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여정을 걷는 와중에 어느 순간에는 하느님께서 계심을 분명하게 깨닫고 또 체험합니다. 어떤 때는 하느님이 멀리 계신 것처럼 보이는 순간도 있습니다.

(중략) 우리는 심지어 견뎌 내기 어려운 현실에 직면할 때조차, 그 순간에도 하느님이 항상 우리 가까이에 계신다는 약속을 확인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에 대한 헌신과 확신이 흔들릴 때도 하느님께서 우리를 당신 품 안에 안아 주신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복음이 지닌 아름다움입니다." (45쪽)

빠르게 변하는 이 시대에 확신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을 봅니다. 이들에게 의심과 질문은 식별 도구가 아니라 삶에 불안을 더하는 장애물일 뿐입니다. 진리가 묻고 답하는 역동 속에 숨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합니다. 그리스도교가 편안한 쉼터이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성공회는 확신이 신자들에게 평화를 가져다주기보다 갈등과 반목을 가져왔음을 역사를 통해 잘 알고 있습니다. 상처를 남기고 갈등하던 시간을 숨기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교파는 진솔합니다. 정직하게 묻고 의심하는 일에 두려움이 없습니다.

이 책이 담은 내용을 '교리문답'이 아니라 '질문과 답변'으로 부르는 이유는 성공회의 태도 때문입니다. 성공회는 교리를 그리스도교 전통이 전하는 답변으로 여기나 자기 정체성을 지키고 질문을 피하고 타인을 배제하는 도구로 여기지 않습니다. 교리는 더 풍성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한 출발점입니다. <질문과 답변>은 '우리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은 누구인가', '우리에게 속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인정해야 하는가'를 묻지 않습니다. 확실한 답을 제공하기보다 고민하고 대화하며 서로를 받아들이는 길을 안내합니다. 첨예하게 의견이 갈리는 사회·윤리 문제뿐만 아니라 전적 타락, 예정론과 같은 신학 문제에 대해서도 대화 가능성을 열어 둡니다. 답변이 너무나 촘촘한 나머지 자신이 속한 집단을 수호하고 타자를 외면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봅니다.

'교리문답'은 자칫 답이 정해져 있다는 인상을 줍니다. 심지어 정해진 답을 얻기 위해 거꾸로 질문을 만들었다는 생각마저 들게 합니다. <질문과 답변>은 우리가 삶을 살며 갖는 질문들, 성공회라는 교회와 만나 제기하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질문들을 담았습니다. 여기서 저자들은 답변을 통해 성공회라는 교파를 변호하려 하지 않습니다. 답변이 성서와 전통, 이성이라는 기준에 충실하길 원하고 우리가 사는 시대 맥락에 더 적확한 답변이고자 노력할 뿐입니다. 답변은 아직 열려 있습니다. 우리 삶이 멈추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신앙에 관한 질문의 종착지는 의심을 내려놓고 하느님을 굳게 신뢰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종착지에 다다르려는 교회의 노력이 질문 자체를 없애려 하는 방향으로 맞춰져 있지는 않았는지, 정해진 답으로 신자들을 인도해 고요하고 평화로운 교회를 일구려는 데 있지는 않았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신자로 더불어 사는 일은 같은 답변을 나누는 데서 출발하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 베푸신 풍성한 은총,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셔서 펼쳐 보이신 희망,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하느님과의 만남, 삼위일체 하느님을 기쁨으로 찬미하는 데서 우리 신앙은 출발합니다.

<질문과 답변>은 그리스도교 전통이 지닌 유구한 대화가 지금 우리 상황에서 어떻게 펼쳐질 수 있는지 보여 주는 친절한 안내자입니다. 이 대화에 참여하시겠습니까?

노승훈 / 대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성공회 사제 서품을 받았다. 현재 대한성공회 간석교회에서 사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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