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구권효·이은혜 기자] 성폭력 피해 사실 자체보다 가해자 및 그 주변인들 때문에 발생하는 '2차 피해'를 호소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최근 <뉴스앤조이>의 문을 두드린 제보자들은, 성폭력 피해 자체는 심각한 수준이 아니지만 이에 대한 사과를 요구했을 때 벌어진 일들로 더욱 힘들어했다.

최근 미투 운동으로 성폭력에 대한 인식과 경각심이 높아졌다. 하지만 여전히 피해자가 추행 혹은 희롱이라고 느껴도, 가해자가 이를 인정하지 '않거나' 인정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이럴 경우 가해자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면서 대응하게 되는데, 이때 2차 가해가 빈번하게 일어난다. 자신은 억울해서 취하는 행동이라고 할 수 있으나, 중요한 것은 1차 피해 사실이며 이는 피해자 관점에서 생각해야 한다.

성폭력 사건은 공론화하는 과정에서 피해자가 또 다른 피해를 입기도 한다.

서울 A교회를 다니던 20대 청년 ㄱ은 교회에서 발생한 2차 피해 때문에 결국 교회를 떠났다. 지난해 5월 말, 주일예배 후 ㄱ은 교회 로비에서 전화 통화를 하고 있었다. 갑자기 누군가 손으로 ㄱ의 등을 옆으로 쓸면서 지나갔다. 전화에 열중하고 있던 ㄱ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등 뒤에서 발생한 일이기 때문에 누가 만진 것인지 몰라 언짢아하는 ㄱ에게, 교회 친구들은 CCTV를 확인해 보자고 했다.

CCTV에 찍힌 사람은 A교회 ㄷ 담임목사였다. ㄱ은 이 같은 사실을 같은 교회에 다니던 어머니 ㄴ 집사에게 알렸다. 그 다음 주 주일예배 후, ㄱ과 어머니 ㄴ 집사, CCTV를 함께 확인한 청년부 친구들은 당회가 열리고 있는 당회실로 향했다. 일대일로 사과를 요구하지 않고, 교회 리더십이 모인 자리에서 이야기하는 방법을 택했다.

ㄱ이 바란 건 ㄷ 목사의 진심 어린 사과였다. 하지만 ㄷ 목사는 잘못한 것이 없기 때문에 사과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인사 차원에서 만진 것이지 추행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A교회는 ㄷ 목사 지지 교인과 반대 교인으로 나뉘어 분쟁 중이다. ㄷ 목사는 ㄱ과 어머니 ㄴ 집사의 배후를 의심했다.

ㄱ은 ㄷ 목사에게 사과문 작성할 시간을 일주일 주겠다고 말하고 당회실을 떠났다. 사과문을 기다리고 있던 ㄱ과 ㄴ 집사에게 연락한 것은 ㄷ 목사가 아닌 경찰이었다. 알고 보니 ㄷ 목사는 당회가 열린 다음 날, 경찰서를 찾아가 ㄴ 집사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검찰은 9월 5일, ㄴ 집사를 불기소했다. ㄷ 목사는 검찰에 항고했다. 검찰도 ㄴ 집사 행위가 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결론지었다. 검찰은 ㄷ 목사가 ㄱ을 성추행했다고 믿을 만한 정황이 있었고, ㄴ 집사가 그렇게 믿은 데 상당한 이유가 있었다고 인정했다. 또 그가 이런 사실을 당회에 알린 점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 인정된다고 했다.

명예훼손으로 피소되고 최종 무죄 판정을 받기까지 5개월이 걸렸다. 그 사이 교회에서는 ㄱ과 ㄴ 집사를 두고 안 좋은 소문이 퍼졌다. ㄷ 목사를 지지하는 교인들은, ㄴ 집사가 딸을 이용해 담임목사를 내쫓으려 한다고 유언비어를 퍼트렸다. 성추행이 아닌데도 성추행이라 한다며 ㄱ이 지나치게 예민하다고도 했다.

ㄱ과 ㄴ 집사는 A교회가 속한 노회에 ㄷ 목사를 고소했다. "ㄷ 목사가 자기 문제를 지적하는 교인을 명예훼손으로 고발하며 압박하고, 가족들이 A교회에서 더 이상 신앙생활할 수 없도록 신천지로 음해했고, 자기 잘못을 덮기 위해 지속적으로 거짓말을 일삼았다"며 그를 처벌해 달라고 요구했다.

노회 재판은 진행되고 있지만 ㄱ은 더 이상 A교회를 다닐 수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다닌 정든 교회를 떠나야 했다. 교회에 분란을 일으키는 사람이라는 오명도 써야 했다. ㄱ은 이 일을 겪고 나서 급성불안, 우울 등의 증상을 보여 두 달 가까이 정신과를 다녔고 약물 치료까지 받았다.

ㄷ 목사는 자기도 억울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성추행을 하려는 의도도 아니었고, ㄴ 집사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것도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그는 ㄱ과 ㄴ 집사가 문제 제기한 방식에도 잘못이 있다고 했다.

ㄷ 목사는 4월 26일 <뉴스앤조이>와의 통화에서 "지나가는 길에 우리 교회 청년이 있기에, 반가운 마음에 인사 차원에서 등을 두드리고 갔다. 성추행이 아니다"고 항변했다. 그는 "내 행동에 기분이 나빴다고 치자. 개인적으로 찾아와 사과하라고 했으면 충분히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미 나와 대립 관계에 있는 장로들이 다 있는 자리에 들어와서, 하지도 않은 성추행을 사과하라고 강요했다. 게다가 그 자리에서 동영상까지 찍고 있었다. 내가 사과하면 어떻게 됐겠는가. 나를 반대하는 교인들이 그걸 또 이용할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ㄴ 집사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것도 '역고소', '2차 가해'라는 말과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했다. 파렴치범으로 몰렸기에, 억울함을 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취한 행동이라고 했다. 그는 ㄴ 집사의 입을 다물게 만들거나, 교인들에게 겁을 주기 위해 고소한 게 아니라고 항변했다.

ㄷ 목사는 "ㄱ과 ㄴ 집사가 나를 고소하려고 다 준비해 놨다고 하더라. 나는 차라리 고소하라고 했다. 조사 과정에서 무죄를 입증하려 했는데, 정작 고소하지 않았다. 내가 가서 조사해 달라고 한다고 조사해 주는 게 아니지 않나. 형사가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면 수사가 가능하다고 해서 한 것"이라고 말했다.

ㄷ 목사는 분쟁 중이라는 특수한 상황 때문에 더욱 방어적으로 대처했다. 그러나 1차 피해에 대해 생각해 보면, 피해자 관점에서 봤을 때 이는 추행일 수 있다. 인사하기 위해 굳이 여성이 민감하게 여기는 곳을 만질 필요는 없다.

피해를 주장하는 사람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는 일은 문제 제기 대신 침묵을 강요하는 일이기도 하다.

한국교회를 주제로 팟캐스트를 제작하는 단체 B도 이 부분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20대 청년 ㄹ은 올해 초 B와 두 차례 내용증명을 주고받았다. 사과를 요구하는 ㄹ에게, B는 오히려 ㄹ이 자신들의 명예를 훼손하고 있다며 비방을 멈추지 않을 시 법적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사건은 2014년 일어났다. ㄹ은 B가 제작하는 팟캐스트에 참여했다. ㄹ은, 녹음 중간 쉬는 시간에 함께 녹음하던 ㅁ 교수가 자신에게 "연애하려면 여자는 애교가 있어야 한다. PD에게 '오빠, 과일 하나 드세요' 하면서 애교 부리면 좋아할 걸"이라고 말했다고 했다. ㄹ은 두세 차례 거절했으나 ㅁ 교수는 계속 요구했고, 당시 주변에 있던 30~40대 남성들도 이에 동조하는 분위기였다고 했다. 결국 ㄹ은 PD에게 과일을 먹여 주었다고 했다.

이 일은 ㄹ이 폭로하려고 해서 드러난 게 아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2017년 6월, 한동안 연락하지 않던 ㅁ 교수가 갑자기 ㄹ의 페이스북 게시물에 댓글을 달면서 공방이 시작됐다. 2016년 5월 벌어진 강남역 사건에 대한 이견을 ㅁ 교수가 댓글로 단 것이다. ㄹ은 ㅁ 교수와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는 뜻을 내비쳤으나, ㅁ 교수는 아랑곳하지 않고 ㄹ의 게시물에 댓글로 자기 의견을 개진했다.

이때 ㄹ이 다니는 교회 담임목사가 "이 사람이구나. 그 과일 추행 사건. 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 있지?"라고 댓글을 올린 것이 발단이 됐다. 담임목사는 2016년, ㄹ에게 그 사건을 전해 들은 상태였다.

ㅁ 교수는 '과일 추행'이라는 말에 분노하며 공식 사과를 요구했다. '추행'의 법률적 해석을 제시하면서 자신은 그런 적이 없다고 했다. 담임목사는 이를 인정하고 곧 '추행'을 '희롱'으로 바꿨지만, ㅁ 교수는 계속 공식적인 사과를 요구하며 결국에는 담임목사와 ㄹ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공적인 공간에 올린 것도 아니고 ㄹ의 페이스북 담벼락 게시물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담임목사는 불기소됐고, ㄹ에 대해서는 경찰이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한 상태에서 ㅁ 교수가 고소를 취하해 사건이 종결됐다.

ㄹ은 자신이 피해자인데 외려 자신과 담임목사가 고소당한 현실에 분노했다. ㅁ 교수가 운영진으로 있는 B 단체에, 2014년 있었던 일과 현재 벌어진 일들을 적시해 공식 사과 및 재발 방지 대책을 요구하는 내용증명을 보냈다. 그러나 B 측은 '추행'과 '희롱'의 법적 해석을 제시하며, ㅁ 교수는 ㄹ을 추행하거나 희롱한 적이 없다고 맞섰다. 오히려 ㄹ이 계속 B를 명예훼손하고 있다며, 이를 멈추지 않을 경우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했다.

ㄹ의 증언을 토대로 보면, 여성에게 애교를 부리며 과일을 먹여 보라는 말은 성희롱 내지 성차별 발언에 해당한다. 이에 대해 ㅁ 교수는 기자에게 "그 사건에 대한 기억은 없다. 당시 녹음에 함께했던 PD와 ㅂ 목사에게도 물어봤는데, PD는 과일을 받아먹은 일이 없으며, ㅂ 목사도 내가 그렇게 말한 적은 없다더라"고 했다. 그는 "ㄹ은 녹음 이후 오히려 기쁨과 감사함을 표했다. 그 일이 불쾌하고 수치스러웠다고 생각할 근거가 없다"고 했다.

B 단체 대표 ㅂ 목사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몇 년 전 일이라 잘 기억나지 않지만, ㅁ 교수가 '남자 친구 만들려면 애교가 있어야 한다'는 정도로 이야기한 건 얼핏 생각난다. 그게 전부다. 과일을 먹여 줬다는 건 소설이다"고 말했다. ㅂ 목사는 "우리는 방송으로 전병욱을 비판했다. 만약 우리 안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다면 제대로 처리해야겠다 싶었다. 진상을 조사하려고 노력했는데, ㄹ이 협조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온라인상에서 계속 우리를 비방했다"고 말했다.

ㅁ 교수와 ㅂ 목사는 ㄹ이 '남성 혐오 단체'에 빠진 것을 사태의 원인으로 지적했다. 이들이 남성 혐오 단체로 표현한 곳은 '메갈리아'다. ㄹ이 강남역 사건 후 메갈리아에 빠졌고, ㅁ 교수가 이를 우려하는 메시지를 보내자 그에게 앙심을 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수년 전 일이 생각나 ㅁ 교수와 B 단체를 비방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런 경우 법적으로 일단락 지어야 더 이상 말이 나오지 않겠다는 생각에 ㄹ을 고소한 것이라고 했다.

여성과 남성 사이 뚜렷한 인식 차
'피해자 관점'으로 사건 바라봐야
피해자가 바라는 건 '진정한 사과'

가부장 문화가 강한 한국 사회에서 성폭력을 논의할 때, '피해자 관점'(혹은 '피해자 중심주의')과 '2차 가해'라는 개념은 많은 성폭력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를 말할 수 있는 토양을 제공했다. 물론 최근 들어 여성계에서는 이 개념들의 오용·오해에 대한 재고가 이뤄지고 있으나, 이는 여전히 피해자 말이 쉽게 무시되고, 피해자 의도를 의심하며, 가해자는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는 한국 사회 분위기에서는 몇 걸음 앞서 있는 논의다.

위 두 사건은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들이 1차 가해를 인정하지 못해 2차 가해를 하게 된 경우로 해석할 수 있다. 1차 가해를 인정하지 못하는 이유는 피해자 관점에서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1차 가해를 인정하지 않으니, 자신의 행동이 2차 가해라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한다. 하지만 성폭력 전문가들은, 동의 없이 여성의 등 부분을 쓸어 만진 것이 충분히 추행일 수 있다고 말한다. 여성에게 애교를 부려 보라는 말도 성희롱 내지 성차별 발언이라고 지적한다. 그런 행동과 말을 한 사람에게 성적인 의도가 없었다고 해도 그렇다.

근 2~3년 사이 한국 사회에서 급변하고 있는 페미니즘 및 성폭력 사건의 인식 차에서 오는 현상이다. 여성학자 정희진은 이렇게 말한다.

"지난 2015년부터 발생한 일련의 사건들은 한국 사회 곳곳에서 일상적인 젠더 전쟁의 시발점이 되었고, 이 전쟁은 앞으로도 지속될 전망이다. 젠더 전쟁의 양상을 비유하자면, 여성은 '지나치게' 각성한 상태고 남성은 술에 덜 깬 혹은 자신이 술에 취한지도 모르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겠다." (<피해와 가해의 페미니즘> 203쪽)

이런 현상은 교회를 비롯한 기독교 공동체에도 계속해서 밀려오게 될 것이다. 남성 입장에서는 1차 가해를 인정하면 마치 범죄자가 되는 느낌을 받기 때문에 더욱 방어적으로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그럴 때일수록 '진정한 사과'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피해자가 문제를 제기하면서 원하는 것은 가해 행위에 대한 진심 어린 사과다.

남성들이 느낄 수 있는 억울함에도, 이런 민감한 문제 제기는 계속해야 한다. 아무 생각 없이 던지던 차별·혐오 발언과 상대방 동의 없는 터치가 더 이상 용인되지 않는 문화가 교회 안에도 형성돼야 하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