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문화연구소 필름포스'가 격주 간격으로 6차례 영화 칼럼을 연재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인터뷰 기사(바로 가기)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글에는 영화 '저스티스 리그'(2017), '배트맨 대 슈퍼맨'(2016), '맨 오브 스틸'(2013)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편집자 주

몇 번을 생각해도 잘못된 선택이었다.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Avengers: Infinity War'(2018) 개봉이 코앞이라 지난 시리즈를 복습하며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시간에 '저스티스 리그 Justice League'(2017)를 봐야 하다니.

이런 과오를 저지른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의리 때문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TV에서 본 '슈퍼특공대 Superfriends'(1973~1986, '저스티스 리그' 한국판 제목)의 추억도 있고, 애니메이터로 일하던 2000년대 초반 워너브라더스에서 넘어온 콘티를 정리하며 습득한 지식 덕분에 현재 콘티작가로 밥벌이하고 있으니 은혜를 한번 갚아 보자는 마음이었다고 할까.

당시 그리던 작품이 '저스티스 리그'였다. 남다른 애정으로 실사판을 기다린 입장에서 마블에 이렇게나 밀리는 모습을 보니 안쓰럽다. 왜 이런 망작이 됐는지 훤히 읽히는데, 왜 DC는 전혀 감을 못 잡고 있지?

'맨 오브 스틸'(2013), '배트맨 대 슈퍼맨'(2016), '저스티스 리그'(2017) 포스터.

슈퍼맨이 죽은 이후, 외계 세력은 호시탐탐 지구를 노린다. 위기감을 느낀 배트맨은 히어로를 영입해 팀을 꾸리려 한다. 한편, 지구에 흩어진 마더 박스를 모아 지구를 씹어 삼키려는 빌런 스테판 울프가 등장하고, 자신들 힘으로 스테판 울프를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히어로들은 최후의 수단으로 죽은 슈퍼맨을 되살리는데, 부활한 슈퍼맨은 엄청 까칠하다. - '저스티스 리그'

먼저 시비를 건 쪽은 배트맨이었다. 범접할 수 없는 슈퍼맨의 힘을 목격한 배트맨은 언젠가 슈퍼맨도 악당이 될 것이라 확신하고 제거할 계획을 세운다. 슈퍼맨도 정의라는 명분 아래 불법을 저지르는 배트맨이 거슬린다. 렉스 루터는 둘의 생각을 이용해 싸움을 붙이고, 조드 장군 시신에 자신의 유전자를 이식해 둠스데이라는 괴물로 부활시킨다. -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 Batman v Superman: Dawn of Justice'(2016)

크립톤 행성에서 쿠데타를 일으킨 죄로 추방당한 덕분에 살아남은 조드 장군은 30여 년 만에 지구를 찾아온다. 조드 장군은 인간들 속에 숨어 있던 슈퍼맨을 끄집어낸 뒤, 크립톤 왕국 재건에 동참할 것을 종용하지만 인간의 편에 선 슈퍼맨과의 사투 끝에 결국 죽는다. - '맨 오브 스틸 Man of Steel'(2013)

조드 장군보다 더 사악하고 강력해진 둠스테이와의 대결에서 슈퍼맨은 자신의 목숨을 내놓아 평화를 지켜 내고 - '배트맨 대 슈퍼맨'

부활 이후 집 나간 멘탈을 되찾은 슈퍼맨은 스테판 울프를 제압하고 다시 한 번 인류를 구원한다. - '저스티스 리그'

잭 스나이더의 그리스 양식 복음서

최대한 호의를 갖고 시리즈를 보면 특이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마블은 시리즈가 거듭할수록 퀄리티와 캐릭터 몰입도가 높아지는데, DC 시리즈는 최신작을 보는 내내 이전 작품이 더 뛰어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출연하는 히어로의 쪽수에서만 밀릴 뿐, 통쾌한 액션과 스케일, 캐릭터 깊이와 이야기 밀도는 촘촘하고 이 모든 것은 슈퍼맨에게 수렴한다. (대놓고 편애하는 거지.)

신의 외아들로 태어나 권력자가 휘두르는 시기의 칼날을 피해 미천한 인간 세계에 갓난아기로 버려져 사람 손에 키워진다. 출생의 비밀을 몰랐든지 숨겼든지, 방황의 시절을 보내고 30년이 되는 해에 자신의 정체를 세상에 드러내고 숱한 이적을 행하다 죽음으로 인류를 구원한 뒤, 장사됐다가 천둥 같은 굉음과 함께 무덤을 뚫고 부활해 하늘로 올라 새로운 세상을 열어젖힌 그는 누구인가.

놀란 감독 배트맨 3부작의 성공은 수차례 리부팅에 실패한 슈퍼맨에게 다시 한 번 재기할 기회를 제공했을 것이다. 배트맨에게 준 것만큼 묵직한 메시아의 운명과 고뇌에, 잭 스나이더 특유의 비장미(라고 쓰고 허세라고 읽는다)까지 눌러 담았더니 얘가 날지를 못한다. 버거워서. 배트맨이야 땅에 발을 붙이고 있는 인간이라서 문제되지 않았지만….

'배트맨 대 슈퍼맨'에서 대립하는 배트맨과 슈퍼맨. 영화 '배트맨 대 슈퍼맨' 스틸컷

감독은 성경 속 메시아 유전자를 슈퍼맨에게 이식한다. 자신이 능숙하게 구사하는 그리스신화풍 이미지를 덧대 슈퍼맨의 신성을 극대화한다. 슈퍼맨이 태어나는 시퀀스를 보라. 신전 같은 침실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고, 드론이 천사처럼 주변을 맴돈다. 산파가 아닌 아버지가 직접 아들을 받아 든다.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인가, 믿음이 엄청 좋아서 그렇게 보이는 것인가.

버려진 우주선에서 아버지의 홀로그램(영혼)과 조우하는 장면, 지구인 사이에 숨을지 본모습을 드러낼지 고민하면서 성당의 신부에게 고해성사하는 클락의 모습 너머 스테인드글라스 속에 예수가 서 있다. 클락은 자신을 잡아가려는 군인들에게 순순히 따르는 예수와 같은 위치에 있다. '맨 오브 스틸'로 복음서를 쓸 기세다. 사람들은 그를 신처럼 숭배하고, 히어로들조차 그를 두려워한다. 슈퍼맨을 인간과 다름없는 한 인격체로 보는 인물은 어머니 마사와 연인 레인뿐이다.

DC유니버스가 스크린을 새롭게 구축하면서 준 가장 크게 변화는 아버지와 아들의 운명적 대물림에서 어머니와의 친밀한 관계 쪽으로 초점을 옮겼다는 것이다. 아버지들은 슈퍼맨에게 초능력에 상응한 책임을 요구하고 어머니는 무조건적 신뢰와 지지를 약속한다. 인류의 흥망이 좌우해야 하는 히어로의 숙명이 지닌 무게를 인간 따위가 논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배트맨 대 슈퍼맨'은 너무 나갔다. 배트맨의 어린 시절 죽은 어머니와 슈퍼맨의 납치된 어머니 이름이 똑같다는 이유로, 한쪽이 죽어야만 끝난다고 하던 싸움은 급히 종결됐다. 그 배신감은 고스란히 관객 몫이다. '저스티스 리그'에 이르러서는 우주 최강의 빌런이 시종일관 "어머니~ 어머니~" 이름만 부르며 징징대다가 슈퍼맨에게 몇 대 쳐 맞고는 어머니가 오지 못한다는 사실에 겁을 먹고 자멸한다.

근육 덩어리 남자들이 엄마를 찾아 징징거리는 동안 실연의 아픔을 꿋꿋이 이겨 낸 원더우먼의 존재감은 커질 수밖에 없다. '배트맨 대 슈퍼맨' 관객들의 냉담한 반응에 다급했는지 1년 만에 슈퍼 히어로 수를 불려 명예 회복에 나선다. 결과는 참패. 마블과 비교했을 때 히어로 개인의 능력이나 인지도가 빠지는 것도 아닌데… 왜?

21세기 슈트에 20세기 뇌 탑재

슈퍼맨은 완성형 히어로다. 모든 능력치가 '만렙'인 유일무이한 존재다. 나머지 캐릭터는 그리스신화 속 신이나 영웅처럼 한 가지 능력에 특화해 있다. 불완전하고 약점투성이에 성격도 삐딱하다. 장단점이 분명하다 보니 팀워크와 전술 운용이 까다롭다. 유독 '저스티스 리그'는 개인기와 팀워크 조율이 헐렁하다. 포지션이 겹치기도 하고 콤비 플레이도 새롭지 않다.

DC 캐릭터의 모델이 되는 기독교와 그리스신화는 혈통을 중시한다. 아쿠아맨과 원더우먼에게도 신의 피가 흐른다. 배트맨은 평범한 인간이지만 미국식 자본주의 안에서 성공한 자본가의 상속자다. 그의 모습에서 포드자동차 창시자 헨리 포드나 워렌 버핏 같은 20세기형 기업가가 연상할 수 있다. 버진그룹 리처드 브랜슨, 스티브 잡스, 엘론 머스크 같은 21세기적 아우라를 품기는 아이언맨과는 슈트핏과 칼라부터 다르다.

마블이라고 혈통과 신화가 없겠는가. DC가 기독교와 그리스신화를 선점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북유럽신화와 불교·도교·부두교 등을 주워 담을 수밖에 없었다. 다양한 개성과 뿌리 덕분에 다양한 종의 슈퍼 히어로가 탄생했는데, 이는 신의 한수처럼 보인다. 혈통에 집착하지 않으니 신의 능력이 아니어도 좋다. 인간을 초월하는 능력만 있다면 곤충·인공지능·외계인 등등을 죄다 끌어와 낙오자·배신자·루저·왕따·돌연변이에게 이식한다.

'어벤져스'를 비롯한 마블 영화에는 개성이 두드러지는 다양한 종의 슈퍼 히어로가 등장한다. 영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스틸컷

태생이 불완전할 수밖에 없는 반쪽 히어로들은 능력만 믿고 치고받고 싸우면서 생존해 서서히 자신만의 포지션과 밸런스를 찾아간다. 원더우먼과 플래시가 어필하는 매력은 비주류 범주에 속하는 히어로라는 데서 온다. 족보를 따지지 않고 오직 능력으로 살아남은 플래시. 원더우먼은 신의 몸으로 태어났지만 여성이기에 근육질 남자들이 득실대는 정글에서 남자의 룰을 따를 필요가 없고, 남자의 룰에서 파생하는 여자의 룰에서도 자유롭다. 슈트가 터질 듯한 근육맨들에게 잭 스나이더의 폼생 폼사는 과유불급이지만 원더우먼의 반쪽짜리 슈트의 빈틈은 완벽하게 커버해 준다.

전지전능의 심심함

히어로들의 특징이니 작전이니 궁합이니, 여태껏 늘어놓은 이야기들도 슈퍼맨이 부활하는 순간, 무의미해진다. 스테판 울프는 슈퍼맨이 만난 악당 중 역대급 허당이다. 그런데도 '저스티스 리그' 멤버들이 전부 달려들어도 당해 내지 못했다. 과연 이 팀이 유지될 수 있을까.

만약 내게 저스티스 리그 재건을 맡긴다면, 브루스 웨인은 배트맨 슈트와 장비에 쓰는 예산을 슈퍼맨 후원 계좌로 돌리고, 사이보그에게는 슈퍼맨이 투시 못 하는 특정 물질을 투시하는 장비와 아이언맨 자비스와 같은 인공지능 서비스를 슈퍼맨에게 제공하도록 하겠다. 그러고 보면, 전작에서 보여 준 배트맨의 근심은 인류의 안녕이 아닌 시리즈의 폭망이었던 게 분명하다.

판타지는 우리가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것들을 다룬다. 과거와 미래, 신, 삶과 죽음, 사후 세계, 천국과 지옥, 사상의 종말 그리고 현실 너머의 또 다른 세상(다른 은하계, 사이버 세계)을 상상으로 그려 낸다. 상상은 이성적이고 과학적 배움과 경험에서도 만들어지지만, 무의식 속 규정되지 않는 어떤 것에서도 영향을 받는다. 신앙·종교·문화 같은 것 말이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성경에서 영감을 얻고, 다른 종교와 문화에 살아가는 사람들 역시 그들 방식대로 꿈을 꿀 것이다.

필자는 다원주의자가 아니다. 기독교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하나님에 이르는 유일한 진리라고 믿는 보수주의자다. 하지만 유일하고 명백한 진리라고 하면서 과학·철학·예술·종교를 저급하고 쓸모없는 잔지식으로 매도하는 일부 기독교의 판단은 경계한다. 슈퍼맨 혼자서 세상을 구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심심한 드라마를 100분 동안 견디며 볼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인가. 기독교적이 아닌 것에 어떤 의미도 없다면, 이 세상은 정말 심심한 세상이 될 것이다. 중세 유럽의 경우처럼.

왼쪽부터 플래시, 슈퍼맨, 사이보그, 원더우먼, 배트맨, 아쿠아맨. 영화 '저스티스 리그' 스틸컷

'저스티스 리그'에서 유일하게 반짝이는 장면은 영화가 다 끝난 뒤의 엔딩 쿠키 영상이었다. 슈퍼맨과 플래시가 끝없이 뻗은 도로에 나란히 서 있다. 누가 먼저 바닷가에 도착할지 내기 중이다. 플래시의 기세는 이미 슈퍼맨을 이긴 듯하다. 하지만 답은 이미 나와 있다. 100% 슈퍼맨의 승리다. 그러나 슈퍼맨은 플래시의 도전을 즐겁게 받아들인다.

슈퍼맨은 자신의 능력을 발휘해 플래시의 재능을 증명하려 들지 않는다. 살짝 져 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속상해하거나 자존심 상할 이유는 없다. 플래시보다 슈퍼맨이 빠르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편하고 재밌게 놀아 주는 것이다. 나는 기독교와 교회가 같이 놀아 줬으면 좋겠다.

류현 / 사회학과를 저렴한 성적으로 졸업 후, 애니메이터로 활동하다가 콘티작가로 전업해 '과속 스캔들'(2008), '인간 중독'(2014), '국가대표2'(2016) 등등 20여 편의 주옥같은 영화 크레디트에 이름을 올렸다. 2~3년에 한 번씩 단편 영화를 연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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