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를 맡은 최소영 목사는 "강간당하고 학대받은 모든 여성을 위해 소리칠 용기를 달라"고 기도했다. 뉴스앤조이 하민지

[뉴스앤조이-하민지 기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교회협·이홍정 총무) 여성위원회(인금란 위원장)가 3월 22일 한국기독교회관 조에홀에서 '차별과 혐오 피해자를 기억하는 기도회'를 열었다. 성폭력으로 상처 입은 여성들을 위해 열린 사순절 기도회였다. 긴 시간 고통받아 온 성폭력 피해자들이 증언하는 순서도 있었다.

이번 기도회에서는 최소영 목사(양성평등위원회), 이혜진 목사(기장전국여교역자회), 인금란 위원장 등 여성 목사들이 인도, 성서 읽기, 축도 등 순서를 맡았다. 참가자 30여 명과 기도회 인도자들은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MeToo 운동에 참여하는 여성과 여성이 입은 상처를 위해 기도했다. 성폭력 피해자 이야기를 들을 때는 함께 눈물을 흘렸다.

'성서 읽기와 묵상' 시간에는 한국여신학자협의회(여신협·공동대표 김혜숙·김신아·이난희)가 만든 '여성 시편 71편 성폭력 피해자들의 기도'를 읽었다. 그중 일부를 옮긴다.

1. 하나님, 당신의 등은 언제나 따뜻한 어머니 숨결입니다. 하나님의 등에 업히어 오랜만에 단잠을 자고 싶습니다. 사람들의 손가락질과 조롱 소리에서 이제 그만 벗어나고 싶습니다.
10. 착하기만 했던 내 삶이 송두리째 분열되고 파괴될 때 조선의 순결 이데올로기는 차라리 은장도를 슬며시 내미는군요. 세상의 이중 잣대가 나더러 '더럽다'고 침을 뱉는군요.
14. 나에게 돌을 던지는 자들이 도리어 부끄러워 고개도 못 들게 해 주십시오. 내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바리새인들과 남성 중심의 윤리, 제도… 그것이 바로 내 아픔의 근원입니다.
24. 하나님이 그 눈물로 내 몸 구석구석을 닦아 주시며 "거룩하다, 거룩하다, 내 딸아, 거룩하다!" 속삭이심으로 나는 다시 태어나 노래합니다. 나를 수렁 속에 던져 넣고 내 불행만 노리던 자들, 한 번의 죽임으로도 성에 안 차 두 번 세 번 나를 죽인 세상의 눈들이 오히려 하나님 앞에 수치를 당하고, 정의의 이름으로 심판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폭력 피해와 여성 차별을 증언하는 시간도 있었다. 대한송유관공사 인사과장의 성폭력으로 딸을 잃은 유미자 씨, 조 아무개 목사 성폭력을 폭로하며 미투 운동에 동참한 A 씨,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레티 마이투 사무국장, 한국기독청년협의회 최애지 씨가 발언자로 나섰다.

대한송유관공사 인사과장 성폭력 및 살인 사건 피해자 어머니 유미자 씨. 뉴스앤조이 하민지

유미자 씨는 "13년째 미투 운동 중"이라고 말했다. 유 씨의 딸은 13년 전, 대한송유관공사 인사과장에게 지속적으로 성폭력 피해를 입다가 살해당했다. 회사는 사건을 은폐하려 했고, 경찰은 치정 사건으로 결론지었다. 내연 관계라는 경찰 수사 때문에, 인사과장은 살인과 사체 유기 혐의만 적용돼 징역 12년을 선고받았다. 어머니 유 씨는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상황에서 홀로 수사관이 될 수밖에 없었다. 치정 사건이 아니라 성폭력이라는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다.

유 씨는 "피해는 나와 딸이 당했는데, 내가 수사관이 돼서 진실을 밝히고 법이랑 싸우는 현실이 기가 막혔다. 법은 정의롭지 않다. 정확하게 수사하지 않은 경찰들도 처벌받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미투 운동이 성과를 거두려면 경찰이 제대로 수사하고 가해자가 제대로 처벌받아야 한다"고 했다.

기도회 참가자들은 순서에 따라 "고통스레 신음하는 피해자들을 돌보기는커녕 '꽃뱀'으로 몰아간 우리 죄를 참회합니다"며 회개했다. 뉴스앤조이 하민지

조 아무개 목사 성폭력을 폭로한 A 씨는 눈물을 흘리며 피해를 호소했다. 그는 "성폭력 피해를 고발했더니 내게 신천지, 교회 무너뜨리는 악녀, 꽃뱀이라고 했다. 경찰은 성인이 된 후 겪은 일이라는 이유로 성폭력이 아니라 화간이라고 했다. 증거를 자꾸 달라는데 17년 된 사건에 증거가 어디 있나. 하나님만이 아신다"고 했다.

A 씨는 조 아무개 목사 성폭력으로 이혼에 정신과 진료까지 겪으며 힘든 날들을 보내다 한국을 떠났다. 외국에 있을 때 걸려 온 전화 한 통이 미투 운동에 동참한 계기가 됐다. 그는 "아는 목사님이 '지금 한국에 미투 바람이 불고 있으니, 돌아와서 억울한 거 풀어 보자'고 연락 주셨다. 나처럼 미련한 교인이 없길 바라는 마음으로 미투 운동에 동참했다. 목사는 신이 아니라는 걸 교인들이 알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예배 단상 위에 '생명의 근원'을 상징하는 물과 쌀, '하나 됨'을 상징하는 끈이 놓여 있다. 뉴스앤조이 하민지

레티 마이투 사무국장은 이주 여성이 당하는 성폭력 피해 사례를 나열했다. 가해자는 남편, 시아버지, 회사 사장,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 등 다양했다. 레티 마이투 사무국장이 피해 사례를 언급할 때마다 기도회 참가자 사이에서 탄식이 나왔다. 최애지 씨는 여성이 일상에서 겪는 차별을 이야기하며 "이런 자리에 여성이 모여 목소리를 내고 자신이 겪어 온 불편함에 대해 계속 얘기하면, 이 사회가 조금씩 바뀔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기도회는 2시간가량 진행됐다. 기도회가 끝난 후에는 참가자들이 성폭력 피해를 증언한 이들에게 찾아가 기도해 주는 등 위로와 지지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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