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랍비 예수, 삶으로 '성경 읽기'를 가르치다
[서평] 로이스 티어베르그 <랍비 예수>(국제제자훈련원)
  • 크리스찬북뉴스 (cbooknews@naver.com)
  • 승인 2018.03.23 14:49

진짜 예수의 모습을 찾을 수 있을까. 그것은 언제나 세기의 관심사였고, 전 세계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대부분의 유물들이 사기극으로 막을 내리기는 했지만 진짜 예수 찾기는 아직 끝날 줄 모른다. 성경 비평은 곧 진짜 예수 논쟁과 깊은 연관이 있다. 존 도미니크 크로산, 조나단 리드, 게르트 타이센 등의 비평적 논쟁은 아직도 힘을 잃지 않고 있다. 2014년 새물결출판사에서 번역 출간한 <역사적 예수 논쟁>은 그동안의 논쟁들이 담겨 있다. 다양한 관점의 논쟁을 살펴볼 수 있다.

또 한 부류 사람들이 예수 이야기를 시작했다. 오래된 이야기도 있지만 최근 들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인데, 진짜 예수의 이야기를 찾아가려는 시도이다. 이것은 크로산 등이 주도한 역사적 예수 논쟁과 연관되면서도 상당히 다른 색을 가진다. 성경은 비평적으로 보되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면서 '역사와 문화'라는 새로운 관점에서 예수를 보는 것이다.

이 분야에서는 케네스 E. 베일리가 독보적일 것이다. 베일리는 중동과 헬라 문명 속에서 성경을 파헤치고 있다. <중동의 눈으로 본 예수>·<선한 목자>·<지중해의 눈으로 본 바울>(새물결플러스), <중동의 눈으로 본 예수님의 비유>(이레서원) 등이 있다. 베일리는 최대한 성경 시대의 역사와 문화 속으로 들어가려고 발버둥 친다. 2000년이 훌쩍 지난 현대 관점이 아니라 과거 실제 사건으로 들어가려 하는 것이다. 물론 그것을 불가능하다. 우리는 2000년의 시간과 문화를 뛰어넘을 수 없다. 그럼에도 이 시도는 성경을 읽는 독자들과 목회자들에게 유용하다.

한스 W. 프라이가 아쉬워한 것처럼 중세와 근대까지의 성경 읽기는 대부분 교리적 성경 읽기다. 이것은 다른 말로, 바울적 성경 읽기 또는 바울의 관점에서 성경 읽기다. 가능한 한 바울의 입김을 걷어 내고 바울 이전의 예수의 이야기로 들어가 보려는 노력은 복음서를 읽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로이스 티어베르그의 <랍비 예수>(국제제자훈련원) 역시 진짜 예수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경이로움을 선사해 줄 책이다. 그런데 이 책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랍비 예수 - 1세기 유대인 제자들과 함께 예수의 생생한 말씀을 듣다> / 로이스 티어베르그 지음 / 손현선 옮김 / 국제제자훈련원 펴냄 / 296쪽 / 1만 4000원

일단 로이스 티어베르그(Lois Tverberg)라는 독특한 저자 이야기로 시작해 보자. 저자에 대한 이해는 우리가 이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할 것인지 안내해 줄 것이다. 먼저 저자는 여성이다. 영어에 익숙하지 않는 필자는 책을 다 읽고도 저자가 남성이라는 고정관념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저자가 과학자이니 남자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책을 전개하는 과정이 집요했고 논리 정연했기 때문이다. 한국에 번역된 첫 책이기에 책 내표지에 기록된 저자 소개 외에는 알 수 없었다. 구글링을 통해 아마존으로 들어갔을 때 두 가지에 놀랐다. 하나는 여성이라는 것, 또 하나는 집필한 책이 적지 않고 히브리어를 직접 배워 랍비적 관점에서 성경을 읽는 과정을 진행하고 있다는 것.

저자의 홈페이지에서 최근 소식들과 랍비적 관점의 성경 읽기에 대한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다. 지은 책들로는 <Reading the Bible with Rabbi Jesus>, <Sitting at the Feet of Rabbi Jesus> 등이 있다. <랍비 예수>는 <Walking in the Dust of Rabbi Jesus>를 번역한 것이다. 그녀는 생물학 박사다. 이것은 성경을 해석해 나가는 특이한 관점을 풀어내는 훌륭한 자양분이다.

"예수님이 유대인이었다니!"

이 경악할 만한 발견은 그녀의 삶의 지표를 바꾸어 버렸다. 유대인 남자, 이 단순한 발견은 그동안 읽어왔던 성경 읽기 방식에 의문을 제기한다. 예수의 삶은 뭘까. 단지 속죄를 위한 설명에 불과할까. 예수를 닮는다는 것은 뭘까. 그녀는 이 고민을 갖고 2000년 전 유대인 남자였던 랍비 예수를 찾아 나선다. "처음부터 하나님은 인간 문화의 맥락 안에서 말씀하고 행동하는 길을 택하셨다."(13쪽) 그렇다. 예수는 유대인이었고, 하나님은 유대인의 한 남자를 통해 인류를 구원하셨던 것이다. 이 책이 강조하는 핵심은 '삶의 맥락'에서 성경을 읽고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책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만찬'을 복원하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이런 도입부는 책의 정곡을 보여 준다. 예수는 과연 유대인들이 지금까지 행한 모든 희생 제사 제도를 철폐했을까. 성전과 그와 관련한 모든 것에 종지부를 찍은 것일까. 성경은 예수의 제자들이 성전에 올라갔다고 말한다. 성전에서 부활하신 예수를 증언했고, 그 때문에 핍박을 받았다. 날 때부터 걷지 못하는 사람을 고친 곳도 성전 미문美門(Golden Gate)이다. "예수가 성전 예식에 반대하는 말씀을 하신 적이 없다"(30쪽)는 것은 명백하다.

기독교인들이 참고 서적으로만 이해하는 탈무드나 미쉬나는 당시 삶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초대교회 모습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것이다. 성경을 연구하는 학자뿐 아니라 적지 않은 목회자들이 이를 단 한 번도 읽지 않았다. 저자는 예수의 제자기 되기 위해서는 예수가 일으킨 "흙먼지를 뒤집어써야 한다"(37쪽)고 주장한다. 예수가 밟았던 그 길, 대화를 나눴던 그 사람, 그 현장으로 찾아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이 책은 그 길을 따라 걸어가기를 몸부림친 흔적이며 결과물이다.

쉐마 이스라엘

유대인들이 반드시 암송해야 할 성경 구절이 있다. 바로 신명기 6장 4절이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쉐마 이스라엘, 아도나이 엘로헤누, 아도나이 에하드"

구약성경에는 '듣다'라는 말이 유독 많다. 왜 순종하라는 말보다 '들어라'(청종하라)라는 말이 많을까. 예수는 "귀 있는 자는 들으라"(막 4:9)고 종종 말씀하신다. 듣는다는 것은 곧 "마음에 새기고 순종하라!"(46쪽)는 말이다. 야고보는 말씀을 "듣는 자가 아니라 행하는 자가 돼라"(47쪽)고 충고한다. 저자는 씨 뿌리는 농부 비유를 통해 옥토를 하나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들이라고 풀이한다. 들음은 곧 순종이다. 순종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 막대한 소출을 낸다.

"순종적인 제자 하나를 통해 하나님은 실로 기적적인 일을 행하시고 인간의 상상을 훌쩍 뛰어넘어 하나님나라를 확장하신다." (47쪽)

히브리어에 조금만 관심 있다면 히브리어의 핵심이 명사가 아니라 동사임을 알 수 있다. 구약성경은 말이 아니라 행동을 요구한다. 아니, 말과 행동은 분리할 수 없다. 창세기 1장은 하나님의 말씀이 곧 존재라는 점을 알린다. 존재는 순종을 통해 생존한다. '하나'(에하드)에서 사랑으로 넘어가는 해석 또한 '쉐마'가 갖는 본질적 의미다. 순종은 온 마음으로 하는 것이며, 그것이 곧 사랑이다. 3장 '가진 전부를 바쳐 하나님 사랑하기'에서 사랑을 조금 더 깊게 설명한다. 2부 첫 장 5장에서 설명하는 '좋은 눈'에 대한 해석은 경이롭다.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더하겠느냐(마 6:22-23)".

좋은 눈은 "남의 필요를 살피고 가난한 자에게 넉넉하게 베푼다는 뜻이다."(91쪽) 나쁜 눈은 욕심과 이기적인 사람이다. 눈은 보는 기관이다. 히브리어에서 '보다'는 "남을 대하는 태도와 반응까지 아우르는 확장적 개념"(91쪽)이다. 좋은 눈에 대한 이야기는 보물 이야기의 해석에 해당된다. 예수는 보물을 하늘에 쌓으라고 권면한다. 하늘에 어떻게 보물을 쌓을까. 이것은 "가난한 자에게 베푼다는 뜻을 가진 또 다른 유대 관용구"(93쪽)이다. 하늘에 보물을 쌓는 일은 이웃을 잘 살피는(보는) 것에서 시작된다. 저자는 좋은 눈의 이야기에서 다시 기부와 십일조의 이야기로 끌고 간다. 나눔의 의식에서 공동체성과 공의公義를 찾아낸다.

더 많은 이야기는 책에서 찾아보기를 권한다. 책이 그리 두껍지 않은 것도 이유겠지만, 저자의 필력이 대단하다. 적절한 예화와 성경을 풀어내는 능력이 대단하다. 한번 책을 들면 순식간에 읽을 수 있다. 3부에서는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의 말씀을 유대인 남자 랍비 예수의 관점에서 풀어 나간다. 특별히 가이사의 주화를 둘러싼 논쟁에 대한 내용은 지금까지 읽었던 그 어떤 해석보다 탁월했다. 가이사의 주화가 가이사의 통치를 상징한다면, "인간은 하나님의 세상에서 쓰임 받으며 유통되는 곳 어디서나 하나님나라를 선포하도록 만들어진 하나님의 주화다."(209쪽)

그러므로 제자들은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해야 한다. 모든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이기 때문이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생물학 박사인 저자는 어디에 숨었는가' 물었다. 다시 읽었던 몇 곳을 펼쳐 들었다.

"인간 세포 하나의 작동 원리를 설명하기 위해 도서관을 가득 채울 만한 책이 필요하다. '난 몰라요'라고 말할 수 있는, 하나님 한 분만이 모든 것을 아신다는 걸 받아들이는 겸허함 속에 지혜가 깃든다." (242~243쪽)

이 책 목적은 분명하다. 성경을 읽을 때는 순종을 위해 '들어야' 하고, 교리적 선입관에 함몰돼 단어와 문맥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아는 것에는 지식이 아니라 몸이 반응한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아내가 남편을 알 듯 경험과 관계를 통해 친밀한 사이가 되는 것"(244쪽)이다. 관계 맺지 않는 지식은 아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단 한 번도 손을 내밀지 않으면서 신학 박사일 수 있고, 옆집에 굶고 있는 아이들을 무시하면서 탁월한 경건의 모습을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 아니다. 조직신학을 정교하게 다듬고 체계화했다고 믿음의 사람이 아닌 것이다. 이 책은 예수 관점에서 성경을 다시 읽어야 할 필요성을 알려 주면서 무엇보다 말씀대로 살아가고 있는가 묻는다. 진짜 예수를 만나는 것은 잃어버린 복음서 원본을 찾는 일이 아니다. 예수의 뒤를 따르고 그가 일으킨 흙먼지를 마시며 같이 걷는 것이다. 그러므로 저자가 던진 "냉담한 구경꾼"이라는 표현은 독자들에게 결단을 요구한다.

"말세에 관한 예수님의 말씀을 읽을 때 우리의 날을 계수해야 함을 염두에 두는가? 아니면 끝없는 추측과 논쟁으로 빨려 들어가는가? 잃어버린 영혼에게 더 관심을 기울이는가, 아니면 냉담한 구경꾼으로 남아 있는가? 탈출구를 찾아 두리번거리는가, 아니면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고 지상에서 그리스도의 통치를 확장하기 위해 우리 생의 매 순간을 사용하겠고 다짐하는가?" (249쪽)

이제 당신이 답할 차례다. 당신은 진짜 예수를 따르고 있는가.

*이 글은 <크리스찬북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정현욱 /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인, 에레츠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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