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의 국가조찬기도회 연설이 교계에서 화제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대통령은 설교를 하고, 목사는 정치를 하고."
"문재인 대통령이 오히려 목사님 같다."
"문재인 대통령이 제대로 된 설교를 한다."

[뉴스앤조이-이용필 기자] 문재인 대통령의 국가조찬기도회 연설에 대한 반응이 뜨겁다. "문재인 대통령, '미투 피해자 위해 기도해 달라'"는 기사는 페이스북상에서만 댓글 180여 개가 달리고, 4000회 넘게 공유됐다. "목사들보다 훨씬 낫다", "성경이 말씀하는 희년의 의미를 알고 실천하는 대통령이 나라의 보배다", "목사는 없고, 대통령이 목사까지 한다"는 등 긍정적 평가가 쏟아졌다.

근래 들어 대통령의 국가조찬기도회 축사가 이렇게 화제가 된 적은 없다. 장헌일 전 국가조찬기도회 사무총장은 "14년 정도 국가조찬기도회에서 일했는데, 이번 축사 반응이 제일 뜨겁다. 일반적으로 대통령의 메시지가 경제·안보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의례적이거나 두루뭉술한 편이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여기서 더 나아가 사회의 낮은 자(여성)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한국교회에 요청했다. 그 진정성이 전체 메시지를 따뜻하게 만들었다"고 평했다.

문 대통령은 국가조찬기도회에서 세 가지 기도를 부탁했다. △고통받은 미투 운동 피해자들에게 따뜻한 기도를 해 달라 △포용하고 화합하는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여러분께서 우리나라와 한반도의 미래를 위해 기도해 달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혜와 용기를 주시도록 기도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번 대통령 국가조찬기도회 축사는 청와대 의전실에서 담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 전 사무총장은 "의전실에서 초안을 잡고 보냈는데, 문 대통령이 손을 많이 본 것 같다. 조수옥·문준경 전도사를 인용해 가면서 축사할 정도로 디테일했다"고 말했다.

"희년 실천하고 있느냐 반문한 것"
"우쭐하지 말고 냉정하게 돌아봐야"

문 대통령의 국가조찬기도회 연설에 대해 "설교 같다"는 긍정적인 반응이 쏟아졌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교계 오피니언 리더들도 문재인 대통령 축사를 높이 샀다. 그러나 마냥 좋아할 게 아니라, 메시지에 숨은 뜻을 살펴볼 필요성이 있다고 조언했다. 교회개혁실천연대 공동대표 방인성 목사(함께여는교회)는 문 대통령의 축사가 국가조찬기도회에서 울려 퍼진 아주 귀한 한 편의 설교였다고 평가했다.

방 목사는 "문 대통령이 '희년'이라는 의미를 정확히 이해한 것 같다. '약자는 속박으로부터 강자는 탐욕으로부터 해방되는 공동체'라는 말을 한국교회가 되새겨야 한다. 오히려 대형 교회를 위시한 한국교회를 향해 '희년'을 실천하고 있느냐고 반문하는 국가 지도자의 당부 말씀으로 보인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 축사 중 가장 큰 빛을 발한 대목은 여성과 미투 운동이다. 문 대통령은 한국교회와 대한민국이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 여성들의 기도와 눈물을 들었다. 그러면서 교계가 상대적으로 덜 주목해 온 조수옥·문준경 전도사를 이야기를 꺼냈다. 조 전도사는 신사참배 거부로 고초를 겪었고, 문 전도사는 병든 자를 돌보고 문맹 퇴치에 앞장섰다.

방인성 목사는 이 대목에서 부끄러움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일제 치하에서 신사참배에 굴하지 않으려 노력한 한국교회의 역사의식을 재조명한 걸로 본다. 한국교회가 과거의 정신을 되살려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노력해 달라는 메시지가 아닌가 싶다. 따끔한 일침이다"고 말했다.

양희송 대표(청어람ARMC)도 개신교가 우쭐하며 좋아할 게 아니라, 등골의 서늘함을 느껴야 한다고 했다. 양 대표는 "문 대통령의 축사는 교회가 약자와 소수자를 위해 기여해 달라는 뜻이다. 지금도 사회는 교회를 필요로 하는데, 교회가 제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대통령이) 조용하지만 강렬하게 지적한 것으로 잘 새겨 자양분으로 삼고 교감해야 한다"고 말했다.

양 대표는 의례적인 기존의 축사에 비하면 상당히 파격적이고 진정성을 담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대통령은 설교를 하고 있고, 목사는 정치를 하고 있다'는 대비가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아주 상징적이다. 기도회에 참가한 인사들은 대통령의 축사에 흡족해하는 데 그치지 말고 (메시지를) 무겁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김진호 연구실장도 "대통령이 원하는 바를 한국교회에 이야기했다는 데에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김 실장은 권력을 지향하는 한국교회가 자성하고 더 낮은 곳을 돌아봐야 할 때라고 했다.

뒤바뀐 '설교'의 의미
진정성 있고 심금 울리는 이야기 열광
"위상 떨어진 설교, 자성해야"

손석희 앵커의 브리핑과 문재인 대통령의 연설은 한국교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JTBC 갈무리

문재인 대통령 축사에 많은 사람이 열광하는 것과 비슷한 사례가 또 있다. JTBC뉴스룸 손석희 앵커는 올해 1월 31일 앵커 브리핑에서 한국교회를 작심하고 비판했다. 성추행 가해자로 지목된 안태근 전 검사가 대형 교회에서 세례를 받고 간증한 걸 지적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한국의 대형 교회가 시대를 거듭하며 변질되었듯이,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죄 사함을 구하는 간증과 회개 또한 시대를 거듭하며 변질되고 있는 중이다. 언제부터인가 죄를 고백하는 간증과 회개라는 형식마저 대형 교회의 힘을 빌고, 대형 교회는 이를 또한 자신의 힘을 과시하는 기회로 삼아 왔다는 의구심이 이미 팽배한 바.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이것이 일부 한국 대형 교회의 참담함이라고 말한다면 지나친 것일까. 신앙을 가진 이들은 자괴감으로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중략)

구약성서 여호수아서 7장에는 자신의 탐욕과 교만을 다스리지 못한 '아간'이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아간은 추궁 끝에 죄를 실토하지만 용서받지 못한다. 해석은 분분하겠지만, 아마도 그의 회개에 진심이 빠져 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결국 용서받지 못한 아간은 돌무더기 아래에 묻혀, 그곳의 이름은 긴 세월이 지난 오늘날에까지 남아 '아골 골짜기'라 불리고 있다(수 7:26)."

손석희의 앵커 브리핑은, 범죄를 저지르고도 하나님께 용서받았다며 피해자를 외면한 한국교회 잘못된 '회개' 문화의 정곡을 찔렀다. 방송 이후 웬만한 목사들 설교보다 낫다는 평가가 이어졌고, 앵커 브리핑 영상은 소셜미디어를 타고 기독인들 사이에 빠르게 공유됐다.

과거에는 '설교'의 의미가 따분하고 맥락 없이 그저 길기만 한 이야기로 치부됐다면, 지금은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고 심금을 울리는 의미로 바뀐 듯하다. 그 변화를 주도한 것은 설교권을 독점한 목사들이 아니라, 오히려 '비개신교인'이다. 이런 측면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축사와 손석희 앵커의 브리핑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양희송 대표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람들은 감동적이고 지식과 결단을 이끌어 내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한다. 진정성을 담은 이야기에 대한 향수와 애틋함을 느끼고 있다. 이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 찬사의 의미로 '설교 같다'고 말한다. 문 대통령과 손 앵커의 언어는 한국 사회를 울렸고, 그런 의미에서 설교 같다는 평가를 듣는 것이다.

교회의 설교 강단은 그 역할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설교의 위상도 떨어졌다. 단순히 말재간의 문제가 아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진정성 있는 설교가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안태근 전 검사장이 교회에서 세례를 받고 있다. 성추행 피해를 입은 검사는 안 씨를 향해 "회개는 하나님이 아니라 피해자에게 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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