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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없는 나라 꿈꾸는 묵시의 노래
[판타지는 믿음을 배반하는가] '염력'(2017)과 연상호 전작들
  • 유지은 (newsnjoy@newsnjoy.or.kr)
  • 승인 2018.03.03 16:02

'영상문화연구소 필름포스'가 격주 간격으로 6차례 영화 칼럼을 연재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인터뷰 기사(바로 가기)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글에는 영화 '염력'(2017), '부산행'(2016), '서울역'(2016)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편집자 주

 

B급 코미디 속에 숨겨진
한국 사회의 아이러니

은행 경비로 근무하면서 비치된 믹스 커피 두둑이 챙겨 일하는 아주머니와 나눠 먹고, 고작 퇴근길 편의점 소주 한잔이 인생의 낙인 중년의 한 남자. 어느 날 우연히 들이킨 약수 한 모금으로 초능력을 갖게 된다면?

여기까지 영화 소개를 듣고 나서는 왠지 김지운 감독의 '반칙왕'(2000)이 떠올랐지요. 소심하고 별 능력 없는 일개 은행원이 할 수 있는 저항이라면 잦은 지각과(사실은 죽도록 하고 싶지 않았을) 헤드락 거는 상사에게 복수를 꿈꾸는 레슬링을 몰래 배우는 일이 전부. 그러고 보면 레슬링이야말로 지난한 일상을 살아가는 소시민들 특히나 힘을 과시하고 싶은 수컷들에게는 전복과 쾌감의 판타지요, 프로레슬러들은 TV 속 영웅이 아닐 수 없겠어요.

놀랍게도 '반칙왕'의 주인공은 가면을 쓰고 있네요. 가면을 쓴다는 것은 정체성 변화와 성장을 갈구하는 인간의 욕망이 투사된 매체라고 혹자가 서술했듯이, 현실 세계에서 가질 수 없는 힘을 상징하는 매개이지요. 그래서 슈퍼 히어로들도 가면이나 수트를 착용할 때에 힘이 발휘되곤 합니다. 마치 그 가면과 수트 자체에 힘이 있는 것처럼 말이죠. 성경의 히어로 삼손도 힘의 근원이 머리카락에 있다고 생각되었지요. 그것들은 정체성의 상징일 뿐인데 말입니다. 현실을 타파할 수 있는 힘을 상징하는 매개가 장착될 때 영화의 장르적 요소도 함께 힘을 발휘합니다. 일단 기본적으로 하늘을 날거나 고층 빌딩을 오르는 등 지구의 중력을 거스르게 됩니다. 이제 팀플레이를 이뤄 어마 무시한 능력을 집대성한 그들은 지구의 중력을 주무르는 것도 지루해 우주 공간을 넘나들며 정의를 실현하는 초인류적 판타지를 제공하기에 이르렀지요.

그런데 이 영화, '염력'(2017)의 주인공 석헌은 그 흔한 가면도, 잇템 무기도, 망토 한 장도 없습니다. 영웅으로 거듭나기 위해 정체성의 혼란과 성장통을 겪는 과정도 좀 허술합니다. 보통 히어로들은 힘의 공익적 사용과 개인적 욕망 사이에서 갈등을 겪고, 히어로로서의 사회적 역할 때문에 개인적 위기와 함정에 빠지기도 합니다. 초능력을 갖는 과정에도 과학적 근거와 이야기의 필연성들이 부여됩니다. 그런데 석헌은 시작부터 뜬금없이 지구에 떨어진 유성의 물질이 하필이면 그가 퍼든 한 바가지의 약숫물에 흘러들었습니다. 소위 개이득이 아닐 수 없습니다.

평범한 은행 경비원 석헌은 우연한 계기로 초능력을 갖게 된다. 영화 '염력' 스틸컷

우주의 기운답게 물체의 인력을 끌어당기는 능력이 생겼지만, 고작 넥타이로 뱀을 만드는 묘기 정도로 돈을 벌어 보려 하질 않나, 기껏해야 용역 깡패를 물리치는 데 사용되거나, 동네 물건을 옮겨 방어벽을 만드는 일에 쓰는 식입니다. 이 일에 꼭 염력까지 필요했나 싶은 지점에서 관객들의 실망이 몰려온 것 같아요. 유치한 설정에 조악스럽기까지 한 특수 효과로 천만 영화감독에 대한 기대감은 가혹한 혹평과 함께 130억 영화의 조기 종영을 불러오는 참사가 빚어졌습니다.

전작 '부산행'(2016) 같은 스케일과 긴장감을 기대했다면 '염력'은 처음부터 B급 코미디를 표방했다고 하는 감독의 말을 기억해야 합니다. 코미디를 기대했던 관객도 허기가 채워지지 않았다면 좀 더 강한 쾌락성, 웃음 혹은 감동을 필요로 할 겁니다. 그런데 정작 감독은 쾌락도 감동도 아닌, 웃음은 더욱더 아닌 현실의 이야기-코미디보다 더 코미디 같고 판타지보다 더 믿을 수 없는 한국 사회의 현실판 위에서 이야기를 구축하려고 했습니다. 바로 이 미묘한 어긋남이 폭망의 비극을 불러왔고, 감독은 현실 영화로 소통하는 것에 실패했지만, B급 코미디 속에 숨겨진 한국 사회의 아이러니 재현에는 오히려 성공한 것이 아닐까요.

약자들의 현실에는 출구가 없다

연상호 감독의 전작들은 한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그 유명한 '부산행'(2016)과 프리퀄 애니메이션 '서울역'(2016)을 보면 좀비의 등장을 피해 도망하거나 진압하는 이들이 있을 뿐, 그 존재가 어디서 어떻게 나왔는지, 그들은 누구인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사람을 물어뜯고 공포스러운 형상으로 변해가는 데도 그냥 어떤 바이러스에 감염된 집단('부산행') 심지어는 불순한 폭도 취급을 합니다('서울역'). 부산행 열차 안의 첫 번째 감염자가 발생하는 장면을 떠올려 보지요. 심은경 분 감염자에게 처참하게 물리면서 객석 사이를 비틀거리며 지나가는 승무원을 사람들은 놀라서 쳐다보지만, 크게 나서는 사람도 말리는 사람도 없습니다. 미처 손을 쓸 새도 없이 그 일들은 일어나고 말았지요.

'부산행', '서울역'에는 좀비를 피해 도망치거나 진압하는 사람만 나올 뿐이다. 좀비가 왜 나왔고, 그들이 누구인지는 궁금해하지 않는다. 영화 '부산행' 스틸컷

그런 첫 번째 지나침은 '서울역'에서 더 구체적입니다. 처음 희생자 노숙자가 서울역 앞에 피를 흘리며 지나가는데 그것을 본 시민 두 명이 처음에는 도움이 필요한 것 같다며 다가가려 하지만, 냄새나고 더러우니 그냥 가자고 하는 대사가 나옵니다('부산행'에서는 SNS상에서 사람들이 추론하는 말들이 잠깐 스마트폰 화면으로 스쳐 지나가는 것을 제외하곤 다른 언급이 없습니다). 물론 이런 구성은 재난 영화의 공식이기도 합니다. 재난 영화는 보통 사소할 수 있는 윤리적 간과 혹은 개인적인 욕망에서부터 씨앗이 시작되어 거대한 괴물이 되고 말지요.

봉준호 감독의 '괴물'(2006)은 한 미군 부대의 발암물질 방류 사건이 한국 사회의 거대한 괴물이 되어 백주白晝에 출몰, 모든 것을 삼켜 버립니다. 앞서 새끼 괴물이 한강에서 발견되었지만, 낚시꾼들은 손가락이나 무는 징그럽고 귀찮은 존재를 그냥 방사합니다. 권력과 외압에 눈 가렸던 양심, 개인의 이기적 선택들이 모여 거대한 괴물을 만드는 데 일조합니다. 한국 사회의 문제는 원인이 존재하며, 그것을 비틀어 꼬집고자 하는 의식이 봉준호 감독의 모든 영화에 분명하게 구조화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연상호 감독은 좀 다릅니다. 원인 따위는 없습니다. 그냥 그들은 비틀어지고 포효하고 쓰러지고 피 흘리는 희생자일 뿐, 말이 없습니다. 항변하지 않습니다. 아직 생존한 사람들도 원인을 해결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일단 피할 뿐입니다. 솔직히 해결할 능력이 없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해 주어야 할 사람들-정부, 군, 경찰 등은 상황 파악 능력이 놀랍게도 떨어집니다. 거의 수수방관으로 일관하거나 허술한 대처를 하다가 나중에는 힘으로 진압하고 사멸하게 해서 문제의 구멍을 봉쇄하려 합니다.

연상호 감독을 명감독으로 만든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2011)은 이런 구조가 날것 그대로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중학교 내 힘의 권력 사이에서 벌어지는 폭력을 소재로 한 이 영화는 너무나 가슴 아픈 현실을 보여 주어 눈물 없이 볼 수 없으나, 눈물조차 마르게 하는 냉혹함이 있습니다. 폭력에 시달리는 약자들은 벗어날 수도 순응할 수도 없는 굴레에 갇혀 신음하지만, 그 누구도 그 굴레를 깨지 못합니다. 이들의 가장 든든한 보호자가 되어 주어야 할 부모와 선생님도 방관으로 일관합니다. 가장 무서운 건 교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폭력을 실제로 거의 눈치 채지 못하는 담임 선생님입니다. 어쩌면 눈치 채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들 역시 학교라는 구조 안의 '을'에 불과하니까요.

'돼지의 왕'에서 진짜 갑들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을과 을의 싸움이 부각된다. 영화 '돼지의 왕' 스틸컷

감독은 자신의 영화는 을과 을의 싸움을 다루고 있다고 말합니다. 정확합니다. 그들은 아무리 몸부림쳐 봤자 을 혹은 병, 정일 뿐이고, 을위의 을들은 '돼지의 왕'에서 사냥개로 비유되는 강자들이며, 진짜 갑들은 정체를 드러내지도 않습니다. '돼지의 왕'은 중학교가 배경이지만, 우리 사회의 현실 축소판에 다름 아니며,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시뮬라크르(simulacre)를 보여 준 셈입니다. 판타지 장르에는 때로 현실보다 더 현실 같고, 오히려 현실이 더 믿을 수 없는 아이러니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돼지의 왕', '사이비'(2013), '서울역', '부산행' 등에서 반복되는 약자들의 현실에는 출구가 없습니다.

'돼지의 왕'과 '사이비'가 지독한 현실의 비극으로 끝을 맺는다면, 좀비라는 존재로 포장한 후작들은 조금 완화된 우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곁길에 '염력'이 있습니다. '염력'이 판타지인지 코미디인지 우화인지, 판타지를 가장한 리얼리티인지 뭐라 명칭해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이 영화에 웃음보다는 슬픔이 배어 있는 것은 모티브가 된 실화가 아직도 진행형이기 때문입니다. 용산 참사의 진상 규명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누구나 직감하듯이 그것은 단 한순간의 참사로 끝이 아니라 한국 사회 아픈 환부의 연속선상에 있습니다.

우리에게 판타지가 필요한 이유

'아라한 장풍 대작전'(2004)이나 '드래곤 볼'처럼 마냥 통쾌한 염력을 구사할 수만은 없는 이유. '어바웃 타임'(2013)처럼 신비한 능력을 발견하고도 벽장이나 왔다 갔다 하면서 여자의 마음을 사는 일에 능력을 낭비하는 것조차 낭만적인, 말랑말랑한 드라마가 될 수 없는 이유. 굳이 염력까지나 필요했을까 싶은 그 순간들이 사실은 염력이라도 있었으면 싶을 정도로 간절했던 이유. 그렇게 해서라도 살리고 싶었던 그 현장, 돌이키고 싶었던 그 현장… 가능이라도 하다면 4년 전 차디찬 바닷속으로 들어가 세월을 들어 올릴 수 있는 염력이라도 있었으면. 염력 아니라 정명한 공권력과 사회구조의 안전망들이 이 일들을 해 줄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대들은 그토록 잠잠했구려.

염력으로 용역들을 물리치는 석헌. 영화 '염력' 스틸컷

'부산행'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려 봅니다. 출구 없는 대한민국, 그러나 아이는 노래합니다.

검은 구름 하늘 가리고
이별의 날은 왔도다
다시 만날 기약을 하고
서로 작별하고 떠나리
알로하 오에
알로하 오에
꽃 피는 시절에 다시 만나리
알로하 오에
알로하 오에
다시 만날 때까지

남들이 뭐라 하든, 감독이 동의하든 안 하든, 필자의 귀에 이 노래가 종말의 묵시로 들린 건 착각만은 아니겠지요. 혹시나 해서 두 번 세 번 보았지만, 이 장면에서 여지없이 굵은 눈물이 흘렀습니다. 대안 없이 달리는 고통의 질주 속에서 구원을 기다리는 노래, 고달픈 현실 세계에서 눈물 없는 세상을 바라보는 묵시의 노래. 한국 사회의 현실은 다름 아닌 이 땅의 순례자들이 걷는 나그네 길의 현실판일 뿐입니다. 이것이 다가올 나라를 볼 수 있는 눈이 어두운 우리에게 판타지가 필요한 이유가 아닐까요.

유지은 / 학부는 물리학, 특기는 피아노. 공중파와 종편 방송 교양 프로그램을 수백 편 연출했지만 작사 작곡한 노래가 더 유명한 독립 저널 <영상이몽> 발행인이자 영화제작 강사. 영화치료, 사진치료, 미술치료로 나와 타인의 진정한 소통을 꿈꾸는 르네상스형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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