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박요셉 기자] 유서 깊은 서구 기독교 예배당이 교인 수 감소로 문을 닫는다는 보도를 종종 접한다. 148년 역사의 미국 리디머교회는 교인이 감소하자 2015년 예배당을 철거하고 해산됐다.

한국에서도 교인 수 감소로 낡은 예배당을 정리하는 교회가 생기고 있다. 체부동교회(염희승 목사)와 매향교회(정관영 목사)다. 두 교회는 교인이 줄어들면서 예배당 유지가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이런 경우 제값을 받고 예배당을 매각하거나 안 쓰는 건물을 철거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두 교회는 조금 다른 선택을 했다. 지역 주민을 위해 저가 혹은 무상으로 건물을 내놓은 것이다.

교인 수 감소로 운영 어려워
예배당 보존 조건으로
시세보다 20억 싸게 매각

서울 종로구 구금천교시장 뒤편에 있는 체부동교회 외관. 첨탑 위 십자가는 철거됐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1931년 만들어진 기독교대한성결교회(신상범 총회장) 체부동교회 예배당은 근대와 현대를 함께 머금고 있다. 교회는 일제강점기를 비롯해 해방과 한국전쟁 등 한국 근현대사에서 굵직한 사건들을 거치며, 옛 모습을 그대로 보존해 왔다. 높게 솟은 십자가 첨탑과 붉은 벽돌 예배당은 동시대 지어진 주변 한옥들과 함께 근대의 분위기를 자아냈다.

체부동교회 옛 예배당은 건축사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서울에서 프랑스와 영국의 근대건축 방식을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건물 중 하나다. 왼쪽 벽은 한 단에 벽돌의 긴 면과 짧은 면이 번갈아 보이도록 쌓았고(프랑스식), 오른쪽 벽은 한 단에 긴 면이 다른 단에는 짧은 면이 보이도록 쌓았다(영국식).

80여 년이 흐르면서 교회 주변은 상전벽해했다. 경북궁 옆을 흐르던 하천은 메워졌고 상인과 우마차가 다니던 금천교는 매몰됐다. 하천 자리에는 아스팔트가 깔렸다. 이제 그 위를 자동차들이 24시간 질주한다. 교회가 위치한 서울 종로구 금천교시장도 이름이 바뀌었다. 종로구청은 관광객을 유치하고 상권을 개발하기 위해 '세종마을 음식 문화 거리'라는 새 이름을 지었다.

상권이 발달하고 거리에 행인이 많아지면서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다. 땅값이 오르자, 원주민들이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어 다른 지역으로 떠나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체부동교회 교인도 있었다. 한때는 예배당이 교인들로 꽉 찼지만, 어느 날부터 빈자리가 많아졌다. 교인이 계속 줄면서, 교회는 예배당을 유지할 수 없게 됐다.

체부동교회 옛 예배당을 관리하고 있는 김무성 사무국장(체부동 생활문화지원센터)은 2월 27일 기자와의 만남에서 "교인 수가 감소하면서 교회 형편이 안 좋아졌다. 건물을 유지하는 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 결국 예배당을 부동산에 내놓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올해 3월 중순까지 예배당을 리모델링해 생활 문화 센터로 개관할 예정이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체부동교회 실내 모습. 시는 본당을 시민 관현악단이 공연하거나 주민들이 모이는 장소로 활용할 계획이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교회 부속 건물인 한옥도 주민들에게 상시 이용할 수 있도록 공개할 예정이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4년 전, 중국인 사업가가 50억에 예배당을 매입하겠다고 제시해 왔다. 염희승 목사와 교인들은 고민했다. 사업가에게 매각하면 예배당이 헐릴 게 뻔했다. 일부 교인은 제값을 받고 인구가 많은 주택가로 이전해야 한다고 했다. 오랜 논의 끝에 교인들은 역사적 가치가 있는 예배당을 보존하기로 결심하고, 시세 절반에 매입해 달라고 서울시에 요청했다.

서울시는 2015년, 33억을 주고 교회(340.82㎡)와 부속 건물 한옥(79.34㎡)을 인수하고 '서울시 1호 우수 건축 자산'으로 지정했다. 시는 주민들을 위한 생활 문화 센터로 예배당을 활용할 계획이다. 올해 3월 중순 개관을 앞두고 있다. 주민들은 발표회, 총회 등 행사 장소로 이용하거나 취미 강좌를 수강할 수 있다.

체부동교회에 출석했던 한 주민은 27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교회가 힘든 결정을 했다. 이 문제로 담임목사와 교인들이 오랫동안 논의했다고 했다. 50억을 받고 좋은 동네로 가 건물을 신축할 수 있었겠지만, 그러지 않았다. 돈보다 주민들 편익을 우선했다. 교회가 큰 배려를 해 줬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미군 폭격장 속 매향교회
흉물로 방치돼 있던 구예배당
젊은 예술가들 연구실로

매향교회 옛 예배당 모습. 젊은 작가들은 천장을 갈고 내부를 리모델링해서 작업실 겸 전시실로 이용하고 있다. 사진 제공 경기창작센터
매향리스튜디오 개관 후 첫 번째 전시회 모습이다. 작품 이름은 '매향의 싹'. 사진 제공 경기창작센터

'매화 향기가 진동하는 동네' 매향리는 50년 전부터 꽃향기보다 미국 폭격기가 일으킨 굉음과 화약 냄새가 진동하는 곳이었다. 경기 화성시 매향리에는 미 공군이 폭격 훈련을 하는 '쿠니사격장'이 있었다. 쿠니사격장은 1954년부터 미 공군이 이용하다 2005년 부대가 철수하면서 폐쇄됐다.

미 폭격기 미사일은 가끔 민가를 덮치기도 했다. 미 공군이 사격장을 운영한 54년간 매향리에서는 주민 12명이 희생됐다. 아이들은 탄피와 포탄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았다.

1952년 만들어진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전계헌 총회장) 매향교회 예배당도 폭격의 여파를 피할 수 없었다. 옛 예배당 외벽은 페인트가 듬성듬성 벗겨졌고, 종탑은 불그스름한 녹이 피어올랐다. 교회는 자칫 표적으로 오인될까 십자가도 세우지 못했다.

매향교회는 근처에 예배당을 신축한 뒤 옛 예배당을 교회학교 장소로 사용해 왔다. 매향교회 정관영 목사는 27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옛 예배당은 교회학교 아이들의 놀이터였다. 방학이 되면 아이들이 이곳에서 먹고 자고 놀았다. 도시 교회 청년들이 농활이나 수련회를 하러 오면, 숙소로 쓰기도 했다"고 말했다.

세월이 흐르며 농촌에서는 아이들을 찾기 어려워졌다. 농촌 인구는 매년 감소했고 노령화가 농촌 문제로 떠올랐다. 정 목사는 "아이들이 사라지면서 시골 교회 교회학교가 다 죽었다. 옛 예배당은 사용 빈도가 감소하면서 그대로 방치됐다"고 했다.

교회는 옛 예배당을 어떻게 할지 고민했다. 그러던 중 예술가를 지원하고 있는 경기창작센터에서 예배당을 사용하고 싶다는 요청이 들어왔다. 교회는 경기창작센터에 5년간 무상으로 옛 예배당을 임대해 주기로 결정했다. 경기창작센터는 옛 예배당을 리모델링하고 '매향리스튜디오'라는 새 이름을 지었다.

정 목사는 "작년부터 젊은 작가들이 작업실로 이용하고 있다. 교인들 모두가 지역사회를 돕는 일에 찬성했다"고 말했다.

매향리스튜디오는 젊은 작가들이 모여 다양한 전시회와 프로그램을 열고 있다. 지난해, 매향리를 돌며 폭격의 흔적을 살펴보는 탐방 프로그램 '우리들의 농섬'을 진행했고, 이때 수집한 탄피와 포탄으로 기획 전시를 기획했다. 지난달에는 매향리의 아픈 역사를 표현한 전시회 '한국적 모자이크'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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