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박요셉 기자] <트렌드 코리아 2017>(미래의창)에서 공저자 김난도 교수(서울대)는 오늘날 대한민국 20대를 '픽미 세대'(Pick Me Generation)로 정의한다. 학벌, 학점, 토익, 어학연수, 자격증, 인턴 경험, 공모전, 봉사 활동 등 온갖 스펙으로 무장한 채, '나를 선택해 달라'는 간절함을 가슴에 품고 사는 세대. 알 수 없는 미래를 불안해하는 청춘들은 '적자생존'과 '각자도생'을 최고의 덕목으로 여긴다.

대학교 13곳이 몰려 있는 충남 천안시에서 주는교회를 담임하는 남건호 목사(34)는 진로로 고민하는 20대 청년들과 대화할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 직업을 선택할 때 꿈과 적성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얼마나 오래 일할 수 있는지, 얼마나 버는지가 중요했다. 원하지 않는 직장과 직업을 '원한다'고 말하는 청년들을 보면서, 남 목사는 교회가 이들을 도울 방법이 없을지 고민했다. 그러던 중 취업을 준비하던 청년을 위해 교회 보증금을 빼 카페를 차렸다.

카페는 시작에 불과했다. 남 목사는 지난해 '노마드 코와플 스페이스'라는 가게를 열었다. 개인이나 단체가 모임을 열거나 일할 수 있는 복합 라이프 스타일 공유 공간이다. 디자인을 전공하는 청년을 위해 '노마드 디자인 랩'도 만들었다. 지난달에는 청년 소상공인들이 만든 제품들을 판매하는 소셜 편집 숍 '노마드 에디트'를 열었다.

'노마드'는 특정한 가치와 삶의 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을 바꿔 가는 창조적 행위를 의미한다(두산백과). 남 목사와 주는교회 청년들은 이 단어에 담긴 가치를 계속 상기하기 위해 모든 사업장 이름에 '노마드'를 붙였다.

각 사업장에는 대표가 있다. 모두 교회 청년들이다. 수익도 이들이 가져간다. 남 목사는 창업을 지원하고, 필요하면 기획·영업·홍보 등을 돕는다. 보수는 없다.

교회 청년들 고민을 들어 주다 창업까지 돕고 있는 남건호 목사를, 2월 23일 천안에 있는 카페 노마드에서 만났다. 남 목사가 교회 청년을 위해 만든 바로 그 가게다. 청년 사장이 만들어 준 커피를 건네며 남 목사는 말했다.

"20대 때 저는 제 고민을 들어 주는 멘토가 한 명도 없었어요. 힘들고 외로웠어요. 교회 청년들을 볼 때마다 그때 저를 떠올리며 다짐해요. 내가 이들의 친구이자 멘토가 되자고. 그게 여기까지 왔어요."

취업으로 고민하는 청년들을 돕는 남건호 목사. 뒤로 보이는 공간이 노마드 코와플 스페이스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비신자 위한 교회
교회는 유기체
친구 같은 교회가 슬로건

남건호 목사는 2015년, 아내와 청년 2명과 함께 주는교회를 개척했다. 전형적인 교회였다. 신시가지 천안시 두정동에서 20평짜리 상가를 임대해 예배당을 꾸렸다. 주일예배를 비롯해 새벽 기도, 수요 예배, 금요 철야도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지켰다. 낮에는 대학교에 나가 전도지를 돌렸다.

"비신자를 위한 목회를 하고 싶었어요." 남 목사는 비신자 가정에서 자랐다. 교회에서 믿는 집안 자식과 안 믿는 집안 자식 사이에는 안 보이는 갭이 있었다. 어른들은 교역자 자녀, 직분자 자녀들과 비신자 자녀를 다르게 대했다. 아이들이 장난치다 싸우면 교사들은 목사·장로 자녀 편을 들었다.

목회자 세계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남 목사가 신학대에 간다고 했을 때, 아버지와 어머니는 심하게 반대했다. 남 목사는 졸업할 때까지 은행에서 학자금을 빌려야 했다. 하지만 같은 교회를 다니는 신학대 동기는 달랐다. 그는 교역자 자녀라는 이유로 교회에서 전액 장학금을 받았다. 교단 진급 심사에서도 비슷한 차별을 경험했다. "저는 '흙수저' 목사였어요." 그는 이런 경험이 기성 교회가 아닌 개척교회 목사의 길을 가게 했다고 말했다.

천안시는 청년이 많은 젊은 도시다. 인구 62만 명에서 약 19만 명이 20~30대다. 주는교회를 찾는 대다수도 대학생이었다. 젊은 친구들과 공부·여행·연애·군대 이야기를 하는 게 남 목사에게는 목회이자 전도였다. 같이 맛집 다니고 영화 보고 수다 떨다 보니 교회 공동체가 만들어졌다.

"하워드 스나이더는 <교회DNA>(IVP)에서 이렇게 말해요.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 공동체가 곧 교회라고요. 건강한 DNA를 갖고 있는 하나의 유기체가 교회인 거죠. 이 책을 읽고 그런 고민을 했어요. '교회는 누구인가'.

노방 전도를 하면 사람들이 쉽게 거부감을 나타내요. 그런데 우리가 좋은 친구, 사람을 소개받을 때는 거부감이 잘 안 들잖아요. 복음을 전하는 것도 그런 것 같아요. 건강한 DNA를 갖고 있는 좋은 유기체를, 사람들을 소개하는 것. 결국 친구나 가족 같이 좋은 사람들이 교회인 거죠. 교회가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친구 같은 교회가 되는 게 우리 교회 슬로건이에요."

남 목사와 청년들은 작은 교회더라도 지역사회를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주변에는 자취생이 많았다. 종종 끼니를 거르거나 잦은 외식으로 집밥이 그리운 학생들이 있었다. 주는교회 청년 역시 대다수가 자취생이었지만, 이들은 다른 자취생들을 위해 반찬을 만들기로 했다. 불고기, 장조림, 무생채, 어묵국 등을 만들어 소셜미디어에서 연결된 학생들에게 나눠 줬다.

작년 가을에는 천안역에 상주하는 노숙인들을 도왔다. 교회 청년들이 패딩과 담요 등을 모아 역 앞에서 나눠 줬다.

"한 노숙인이 했던 말씀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그분이 주는교회가 얼마나 큰 교회냐고 물었어요. 그래서 청년 십수 명이 모인 작은 교회라고 했어요. 그러자 그분이 '큰 일을 하는 교회가 큰 교회지'라고 했어요. 그 말에 청년들이 위로를 받았어요.

교회를 한 번도 다녀 본 적 없는 청년은 태어나서 처음 좋은 일을 했다고 기뻐했어요. 저는 그 청년에게 지금 느끼고 있는 보람, 즐거움이 바로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과 같다고 얘기해 줬어요."

꿈 포기하는 청년들
교회가 창업 지원
지역 청년 소상공인들 멘토 자처

교회 청년들 중에는 졸업을 앞둔 이들도 있었다. 이들의 가장 큰 고민은 취업이었다. 학생들에게 취업에서 가장 중요한 건 꿈도 소명도 아니었다. 안정이었다.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수익이 불안해 포기하고, 꿈이 있지만 남들보다 재능이 특출나지 않다는 생각에 저버렸다. 남 목사는 그런 청년들이 안타까웠다.

"인간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게 의식주라고 하잖아요. 기독교인은 살면서 가장 중요한 게 의식주라고 생각해요. 예수님도 말씀하셨어요.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고유한 은사와 재능을 바탕으로 각자 소명을 좇아 하나님나라를 확장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거죠. 하지만 많은 청년이 그러지 못하고 있고 그러기도 어려운 현실이에요."

남건호 목사는 이들을 직접 도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청년들과 논의해, 카페 사장이 꿈인 청년을 위해 교회 보증금으로 카페를 열었다. 당사자는 부담스럽다며 한사코 거절했지만, 남 목사와 청년들은 그를 응원하며 창업을 지원했다.

카페 노마드 실내 모습. 7평대 작은 카페지만, 스페셜티 커피와 무료 배달 서비스 등으로 사람들에게 인기가 좋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주는교회 1호 창업점 '카페 노마드'가 있는 곳은 천안역에서 약 200m 떨어진 구도심 일대다. 과거 천안에서 가장 상업이 발달한 곳이었지만 지금은 이전보다 상권이 죽어 색 바랜 낡은 상가들이 밀집해 있다.

천안시는 도시 재생 사업 일환으로 구도심 일대를 청년 창업 특구로 지정했다. 청년 창업자들에게 임대료와 리모델링 비용 일부를 지원했다. 주는교회 청년들을 포함해 청년 창업자 70여 명이 이 제도 덕분에 구도심 일대에 가게를 차릴 수 있었다. 카페 노마드와 노마드 코와플 스페이스가 자리하고 있는 건물에는, 20~30대 사장이 운영하고 있는 한복집, 목공소, 빵집, 미술 학원 등이 입주해 있다.

남건호 목사는 동료 상인들의 고충 처리반 역할도 맡고 있다. 평소 '대표님'이라고 부르던 상인들이 '목사님'이라고 부르는 날이면, 그날은 상담이 필요하다는 거다. 나이 어린 사장들은 자신들이 상대하기 거북한 건물주와 공무원에게 항의하거나 요구할 게 있을 때 남 목사를 찾는다. 건물주나 공무원들도 '목사'라는 타이틀 때문인지 웬만한 부탁은 다 들어준다고 남 목사는 말했다.

"목회 대상이 대학생에서 청년 소상공인으로 확장한 거 같아요. 젊은 나이에 혼자 창업해서 가게를 운영하는 게 얼마나 힘들고 외롭겠어요. 다 처음 경험하는 거잖아요. 이들에게 '넌 혼자가 아니야', '같이 힘들어해 줄 사람이 옆에 있어'라고 말해 줄 사람이 필요해요.

저는 여기 상인들이 모두 잘됐으면 좋겠어요. 카페 노마드가 다른 동네에서 이곳으로 이사 올 때 디저트를 (메뉴에서) 다 뺐어요. 옆에 빵집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상생해야죠. 사도행전을 보면 초대교회 모습이 나오잖아요. 거기서 가장 인상적인 내용이 '그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라는 부분이에요. 우리 교회를 통해 이 동네에 가난한 사람이 없어지는 게 제 바람이에요."

노마드 코와플 스페이스는 개인이나 단체가 다양한 목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공유 공간이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지역 청년 소상공인들이 노마드 코와플 스페이스를 이용하고 남긴 선물들. 뉴스앤조이 박요셉

남건호 목사와 인터뷰하면서 자연스럽게 질문 하나가 떠올랐다. 창업을 지원하고 가게 일을 돕고 나면, 사례비는 얼마나 받을까.

"수익은 없어요." 남 목사가 말했다. 그는 교회나 각 사업장에서 받는 돈은 없다고 했다. "아직은 받지 않고 있어요. 청년들에게 말했어요. 너희들이 사업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고 어느 정도 수익이 보장되면 그때 받겠다고요." 현재 남건호 목사는 맞벌이하는 아내의 수입으로 생계를 꾸리고 있다.

"저를 나무라는 동료도 있어요. 그렇게 시간과 돈 다 쏟으면 번아웃될 수 있다고요. 물론 금전적인 지원만 받고 상처를 남긴 채 교회를 떠난 친구들도 있어요. 근데요. 20대 때 저는 멘토가 없었거든요. 목회, 인생, 삶에 대한 질문이 가장 많을 시기인데, 물어볼 만한 사람이 한 명도 없었어요. 그때 들었던 아쉬움 때문에 이러는 것 같아요.

많은 교회가 '청년 사역이 중요하다', '청년들이 교회를 등진다'고 말하잖아요. 청년 사역의 답은 의외로 간단해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묶인 가족이잖아요. 이 청년이 이런 상황에 처했는데, 내 친동생이라면 내 자녀라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하면 돼요. 그런 마음으로 청년들을 대하면 시간이나 돈은 전혀 아깝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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