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면 정말 잘 풀릴까

남 이야기는 쉽게 하지만, 자신이 받는 고통은 늘 크게 느껴진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마음대로 되는 일이 별로 없었고 현실은 힘들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기도에 매달렸다. 나만의 독특한 체험을 한 적도 있다. 한동안 주님이 동행하는 데서 오는 평온함과 신비한 포근함을 넘치게 누리기도 했다. 늘 그런 것은 아니었다.

영혼의 어두운 터널을 지난 적도 많았다. 기도하면 할수록 내가 원하지 않는 일이 더 많이 발생했다. 남들은 응답도 척척 받던데, 나에게 기도하면 할수록 일을 더 꼬이게 만드는 탁월한 은사가 있는 듯했다. 이런 은사가 있다면, '내 뜻대로 마옵시고' 은사라고 부르고 싶다. 기도하면 될 일도 안 되는 것 같아서 기도를 안 하느니만 못하다고 늘 하나님께 투덜댔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도 내 착각이었다. 괜히 기대가 높아 늘 불만이었던 것이다.

일은, 꼬이기 시작하면 계속 꼬이고 풀리기 시작하면 술술 풀릴 수 있다. 일이 잘 풀릴 때는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만족과 감사는 오래가지 못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문제가 보였고 불만이 생겼다. 결국 상황에 대한 내 태도가 문제였다.

남들은 기도하면 정말 잘 풀릴까, 궁금했다. 간증하는 이들이나 기도를 전혀 안 하고도 성공을 누리는 이들을 오래 관찰했다. 여럿 모이니 나름대로 통계가 생겼다. 그러면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오십보백보라는 것이다. 기도하나 안 하나 큰 차이가 없었다. 잘되는 인간은 기도 안 해도 잘되고 안되는 인간은 기도해도 안된다.

언제부터인가 성공을 위해 아무리 확신하고 죽기 살기 기도해도 그렇게 답변이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주변에 사업이 잘 풀리거나 직장에서 승승장구하는 사람들 중 종교적 관점에서 보면 반신앙적이거나 미신적 태도로 사는 이도 많았다. 사실 한국의 대기업 회장들을 보면 신앙이 뛰어난 기독교인은 별로 없다. 부정부패로 감옥에 다녀온 이가 더 많다. <슈퍼리치>에서 발표한 2018년 최고 부자 순위를 참고해서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1위 이건희(삼성전자 회장) - 약 16조 9000억 원
2위 서경배(아모레퍼시픽 회장) - 약 8조 5000억 원
3위 이재용(삼성전자 부회장) - 약 7조 7000억 원
4위 정몽구(현대차그룹 회장) - 약 4조 9000억 원
5위 박현주(미래에셋금융그룹 회장) - 약 4조 5000억 원
6위 최태원(SK그룹 회장) - 약 3조 6000억 원
7위 신창재(교보생명 회장) - 약 2조 8000억 원
8위 이중근(부영그룹 회장) - 약 2조 6600억 원
9위 이재현(CJ그룹 회장) - 약 2조 6000억 원
10위 정의선(현대차그룹 부회장) - 약 2조 5000억 원

이들 중 비리 혐의로 수감 생활했던 최태원 회장은 오히려 감옥에서 주님을 만났다고 고백한다. 사실 성공과 부가 신앙과 크게 관련이 없는 것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 아닐까. 어떤 목사는 미국이 기독교 나라라서 복을 많이 받았으며, 부자 나라가 됐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정말 그럴까. 기독교 인구가 상대적으로 많은 미국도 최고 부자에 속하는 이들 중 기독교인 수는 많지 않다. 궁금해서 2017년 <포브스> 선정 세계 최고 부자 리스트를 찾아봤다.

1위 빌 게이츠(마이크로소프트 기술고문, 미국) – 약 96조 원
2위 워런 버핏(버크셔해서웨이 CEO, 미국) – 약 85조 원
3위 제프 베조스(아마존 CEO, 미국) – 약 81조 5000억
4위 아만시오 오르테가(인디텍스그룹 회장, 스페인) – 약 80조 원
5위 마크 저커버그(페이스북 CEO, 미국) – 약 63조 원
6위 카를로스 슬림(텔맥스텔레콤 회장, 멕시코) – 약 61조 원
7위 래리 앨리슨(오라클 CEO, 미국) – 약 58조 원
공동 8위 찰스 코치(코크인더스트리즈 회장, 미국) – 약 54조 원
공동 8위 데이비드 코치(코크인더스트리즈 전무이사, 미국) – 약 54조 원
10위 마이클 블룸버그(블룸버그 CEO, 미국) – 약 53조 원

이들 중 아주 헌신된 기독교 신앙인으로 볼 수 있는 인물은 없는 듯하다. 돈과 세속적 성공, 건강은 신앙의 태도와 관련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우리는 왜 성공을 원할까. 고통을 피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데 살펴보면 성공해도 고통을 받으며 사는 사람이 있고, 남들 보기에 별 볼 일 없어도 크게 불행하지 않은 사람이 있다. 기도하지 않고 사는 이들 중에 편하게 사는 사람도 봤고, 기도를 많이 해도 늘 고통이 끊이지 않는 사람도 봤다.

나는 고통을 없애 달라고 기도해도 쉽게 응답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어차피 살면서 고통을 피할 길은 없다. 운 좋게 피해도 또 다른 고통이 온다. 기도가 응답됐다고 좋아하지 마라. 늘 응답되는 인생은 없다. 쓰레기차 피해도 다음번에는 똥차에 부닥칠 수 있는 게 인생이다. 이를 고통 보존의 법칙이라고 부르겠다. 어제 배운 말이다. 얼마 전 눈 덮인 북한산을 산행하면서 한의사 박재현 선생에게 '지랄 보존의 법칙'에 대해 배웠는데, 주변 사람들을 관찰하니 '고통 보존의 법칙'도 있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예외도 있겠지만 내 인생만 살펴봐도 고통을 받다가 좋은 시간이 오고, 좋은 시간을 누리면 고통의 시절이 오더라. 예전에 영영 벗어날 길 없을 것 같은 딱한 처지에 눈물로 살던 사람 중 나중에 만났을 때 행복하게 사는 경우도 있더라. 반대로 영원히 행복할 것 같이 안정된 삶을 살던 사람도 어느 순간 고통 가운데 절규하는 경우가 있다. 고통도 행복도 보장이 없다.

누구도 늘 고통받거나 늘 행복하지 않다. 상황이 늘 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고통을 피하기보다 담담하게 잘 받아들일 수 있기를 기도한다. 환경 때문이든, 내 잘못이든 남의 잘못 때문이든. 피할 수 없다면, 매도 미리 맞는 게 경험상 이득이듯 고통도 미리 받는 게 좋지 않을까.

기도해야 하는 이유

그렇다면 기도를 왜 하나. 기본적으로 태도가 간절하고 방향성이 올바를 때, 원하는 방향으로 응답을 받았는지와 상관없이 '복된 기도'라고 하고 싶다. 오히려 "기도가 응답됐어요!"라며 환호할 때, 그것이 진짜 기도로 응답된 것인지 기도와 상관없이 이뤄질 수 있는 것인지 자기 자신에게 물어보라고 말하고 싶다. 일이 풀리면 기도해서 그렇고, 풀리지 않으면 기도가 부족해서 그렇다는 생각은 버리는 게 좋다. 오히려 삶이 생각대로 풀리지 않을 때 유익도 있다.

기도하면서 이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고통이 삶의 소중한 일부라는 사실을 조금씩 인정하게 됐다는 점이다. 일이 안 풀려도 늘 나를 돌아보게 된다. 낮은 마음을 배운다. 섭섭함이 있고 억울함이 있을 때, 마음이 좁아지고 현실은 왜곡돼 보인다. 분노에 휩싸이다가도 기도하며 풍랑을 잠잠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만난다. 고요함이 찾아오면 그제야 정신을 차려서 보고 싶지 않았던 내 안의 숨기고 싶은 험악한 실상을 보며 회개하게 된다. 내 마음에 있는 자기 기만적 사고, 위선과 허물을 인정하는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가 아니고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피하고 싶었던 인간관계, 불의하다고 생각했던 고통스런 일도 되돌아보면 감사하다. 내 잘못된 관점과 행동이 눈에 보이면서 쓴 감정도 많이 녹는다. 내가 편하기 위해서라도 너그러운 마음과 용서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좋다. 내 인생에 고통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고통이 있어서 일이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고통을 제거하는 것을 해답이라고 믿지도 않는다. 하나님과의 대화는 참 행복하다. 이런 경험이 날 성찰하게 만든다.

하나님이 내가 원하는 성공 지향적 방식으로 기도를 응답해 주지 않으셨던 것 덕분에 나는 고통을 의미 있게 만들어 가는 지혜를 배웠다. 그리고 고통이 소중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니 고통을 받아도 의기소침하거나 동요하지 않는 삶을 배우게 된다. 고통당할 때마다 내 고집을 내려놓는 법도 조금씩 배운다. 고통 가운데 어쩔 수 없이 배우는 것이지만, 나를 성장시키는 일이니 감사한 일이다. 내 소원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고통을 없애 주시는 것이 아니라 내가 고통을 충분히 수용할 수 있을 만큼 현명해지는 것이다.

성격이 예민하고 까칠해서 그런지 별일이 아닌데도 나는 늘 크게 고통을 받는다. 그러나 괜찮다. 고통이 깊으니 은혜의 강도 깊어진다. 고통을 겪지 않았다면 내가 삶에서 어떻게 무엇을 배울 수 있었을까. 고통 없이 삶의 깊이를 배울 길은 없다. 어떨 때 나는 지극히 행복하다. 지극히 불행할 때도 있다. 하루가 밤과 낮으로 이루어지듯, 행복과 불행은 동전의 양면과 같이 내게는 늘 반복되는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인간적으로 기도는 내 의지로 하는 것 같다. 하지만 기도는 정말 선물일 수밖에 없다. 기도할 때 주님은 나도 들어갈 수 없는 내 마음 가장 깊은 곳의 빗장을 푸시고 들어오셔서 나와 대화를 나누신다. 주님은 요동치는 마음의 풍랑을 잠잠하게 하시며, 주님과 함께 주님의 관점으로 세상을 보게 하신다. 그리고 우리는 삶을 예전보다 더 깊게 통찰할 수 있게 된다. 성공도 좋지만, 고통도 소중한 삶의 깊이를 배울 수 있는, 주님의 숨은 은혜를 체험할 기회다. 기도 응답은 삶의 성공보다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성숙과 관련 있다.

이민규 / 한국성서대학교 신약학 교수, <신앙, 그 오해와 진실>(새물결플러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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