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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용서: 유예된 죽음을 사는 이들의 몫
[판타지는 믿음을 배반하는가] '신과 함께'(2017), '코코'(2017), '원더풀 라이프'(2000)
  • 최은 (newsnjoy@newsnjoy.or.kr)
  • 승인 2018.02.17 12:01

'영상문화연구소 필름포스'가 격주 간격으로 6차례 영화 칼럼을 연재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인터뷰 기사(바로 가기)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글에는 영화 '신과 함께: 죄와 벌'(2017), '코코'(2017), '원더풀 라이프'(2000)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편집자 주

"하늘에서 쫓겨나 비처럼 떨어뜨려진 '천사'가 천여 명이나 문 위에 보였다.
그들은 저마다 화난 소리로 외쳤다.
'누구냐, 죽지도 않은 주제에 죽은 자의 왕국을 활보하는 놈이?'"

- 단테의 <신곡>, '지옥편' 제8곡에서

살았으나 죽은 자, 죽었으나 산 자

올해 초 개봉한 디즈니 픽사의 애니메이션 '코코'에는 '단테'라는 이름의 강아지가 나온다. 동냥밥을 얻어먹고 다니는 멕시코의 흔한 동네 강아지에게 그들은 수백 년 전 시인의 이름을 붙였다. 예사롭지 않다. 추락한 천사들이 '죽지도 않은 주제에 죽은 자의 왕국을 활보하는 자'로 칭한 이름, 단테라 불리는 강아지는 '코코'에서 후에 소년 '미구엘('미카엘'의 스페인어 이름이다)'을 사후 세계로 인도하는 상상의 동물 '알레브리헤'가 된다. 어쩌면, 본디 그 정체가 알레브리헤였거나.

300만 관객을 넘긴 애니메이션 '코코'와 그보다 앞서 개봉해서 140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신과 함께: 죄와 벌' 덕분에 2018년 초부터 극장가는 사후 세계에 대한 판타지와 상상력으로 뒤덮였다. 18년 전에 개봉했던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원더풀 라이프'까지 조용히 부활했으니 그렇게 말해도 좋으리라.

'신과 함께', '코코', '원더풀 라이프' 포스터.

'코코'에서 음악가가 되고 싶은 소년 미구엘은 망자들이 이승을 방문한다는 멕시코의 전통 명절 '죽은 자들의 날'에 사후 세계를 여행하게 된다. 자신의 우상인 전설의 가수 에르네스토 델 라 크루즈를 만나겠다는 열망으로 가득한 소년에게 괴짜 해골 사나이 헥터가 나타난다. 그와 함께 저승에 머무는 하룻밤 동안 미구엘은 자신의 조상들을 만나고 가족의 비밀을 알게 된다.

주호민의 인기 웹툰이 원작인 '신과 함께: 죄와 벌'은 젊은 소방관 김자홍(차태현)의 사망으로 시작한다. 죽은 자가 거쳐야 하는 일곱 지옥(살인, 나태, 거짓, 불의, 배신, 폭력, 천륜 지옥)의 재판 과정을 마칠 때까지 저승 3차사가 그와 동행한다. 그들은 각기 변호인과 호위무사의 역할을 맡고 있다.

마지막으로 '원더풀 라이프'는 사후 세계로 넘어가기 전 7일 동안 머무는 정거장인 '림보'에서 죽은 자들이 자신들의 기억을 정리하는 모습을 담담하게 그려 낸다. 망자들은 기억을 모두 잃게 되는데, 이 림보에서 단 하나의 소중한 기억만을 골라 영상으로 찍어서 간직할 수 있다. 단, 끝까지 기억을 선택하지 못한 이들은 림보에 남아 다른 이들이 기억을 정리하는 일을 돕는다. '원더풀 라이프'의 주인공 모치즈키(이우라 아라타)는 그들 중 하나이다.

그렇게 망자亡者는 망자忘者가 된다

그리스신화에서 죽음이 레테의 강(망각의 강)을 건너는 것으로 완성된다고 이야기하듯이, 상상의 텍스트에서 기억과 망각을 통해 죽음을 이해하는 것이 새로운 일은 아니다. <신곡>에서 단테도 죄의 기억을 지우는 레테의 강물을 마시고 나서야 연옥을 지나 천국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럼에도 이 세 편의 영화를 기억을 중심으로 다시 보자니 여전히 흥미롭다.

죽은 자들의 땅에서 미구엘이 만난 헥터는 이승의 사람들에게 잊혀져 가고 있어서 다시 한 번 죽을 위기에 처해 있다. 그 와중에 그들은 기억해 주는 사람이 없는 한 음악가가 소멸되는 것을 직접 목격하기도 한다. '원더풀 라이프'에서 종착역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림보에 남은 이들은 아직 기억을 간직하고 있거나 기억을 잃지 않기를 고집하는 이들이고, '신과 함께'에서 저승차사들은 자신들의 기억을 잃은 상태에서 망자들이 지은 죄를 기억하도록 돕는다. 무슨 연유에선지 3차사 중 리더인 강림(하정우)만이 유일하게 기억을 보존하고 있는데, 강림이 저승법을 어겨 가면서까지 원귀가 된 수홍(김동욱)을 돕는 것은 아버지와 관련한 강림 자신의 기억과 깊이 관계되어 있음을 영화는 틈틈이 상기한다.

하여 이 세 편의 영화는 기억을 모두 버리기 전에는 완전히 죽을 수 없는 이들, 또는 망각 속에서 또 한 번 죽어야 하는 이들, 그 소멸만은 막아 보려고 애쓰는 이들이 사후 세계를 넘나들며 활약하는 영화들이다. 잊기를 거부하는 자들, 망각의 두려움을 아는 자들이 움직인다.

미구엘은 죽은 자들의 땅에서 음악가 헥터를 만난다. 영화 '코코' 스틸컷

기억을 맡은 자들: 무엇을 위한 기억인가

그들은 왜 그렇게 기억에 집착하는가.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살아서 못한 일이 있기 때문이다. '코코'의 미구엘과 '신과 함께'의 강림, '원더풀 라이프'의 모치즈키는 타인의 기억을 매개하고 자극하는 인물들이라고 할 수 있다. 살아서 저승을 오가거나 최종 죽음이 유예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하는 일이란 타인의 억울함과 원통함을 듣고 계기를 마련해 주는 일이었다. 미구엘이 마마 코코에게 찢어진 사진 조각을 떠올리게 하고 강림이 수홍에게 현몽의 기회를 제공해서 자홍이 집을 나갔던 날에 대한 바른 기억을 이끌어 냈던 것처럼.

결국 귀인이고 의인인 줄 알았으나 천륜 죄인으로 밝혀진 자홍에게 염라대왕은 최종 판결을 내린다. "저승법 1조 1항, 이승에서 진심으로 용서를 받은 죄는 저승에서 다시 묻지 않는다." 바른 기억은 망각을 낳았다. 그들이 맡은 기억은 그러므로 망각을 위한 기억이다. 미로슬라브 볼프 식으로 표현하자면 '기억의 종말'이자, 곧 용서일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완전한 죽음(망각)'을 위해서는 가해자나 행위자가 아니라, 피해자와 궁극적으로는 심판자 쪽에서 망각하도록 해야 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서둘러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심판자가 "기억하지 않겠다"(히 8:12, 사 43:25, 렘 31:34)고 선언하는 것이 먼저다. 해골들이 춤을 추고, 잡신(?)들이 난무하는 영화를 보면서 주기도문을 읊조리고("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시고…"), 예언서와 복음서를 떠올리는 진기한 경험을 한다.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 18:18)

삼도천을 건너는 3차사와 자홍. 영화 '신과 함께' 스틸컷

"나는 날마다 죽노라"

'죽지도 않은 주제에' 죽은 자들의 세계를 누비던 그 시인은 자신의 기억을 방대한 시로 남겨 지난 수세기 동안 신앙과 상상력의 틈새를 메웠다. 단테의 <신곡> '천국편' 제1곡에서 단테는 온 누리를 꿰뚫는 강한 빛을 본 자로서, 자신이 제대로 기억하고 기록할 수 있을까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인다. 어떤 의미에서는 시인도 기억을 맡은 자였을 것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땅을 살아가는 삶에 대해 생각할 때 나는 자주 '유예된 죽음'이라는 말을 떠올린다. "날마다 죽노라"(고전 15:31)고 고백했던 사도 바울의 말이 과장이 아니고, '거듭남'이나 '부활'이 종교적인 수사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면, 나는 지금 죽었으나 죽지 않은 삶을 살고 있는 것이 맞다.

바울과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매일 죽기로 결심하지만 죽음 자체를 망각하거나 차마 죽을 수 없어 바둥거리는 오늘의 나는 어떤 기억을 어떻게 다루어 용서와 화평, 즉 참된 망각에 기여할 수 있을까. 억울함과 원통함의 기억과 그 기억을 덮는 구조로서의 악이 가득한 오늘 이 땅을 살아 내는 동안 나는 어떤 기록을 정직하게 남겨야 할 것인가. 사후 세계이지만 완전히 죽지 않은 세계를 다룬 영화들을 곱씹으며 생각보다 가까이에서 죽음과 영원을 느낀다. 그런데 그것은 가장 처절한 삶의 문제이기도 하다.

최은 / 영화를 읽고 쓰고 말하는 그리스도인. 영화이론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청어람아카데미와 CBS아카데미 숲 등에서 강의했다. 월간 <복음과상황>, 라디오 'CBS광장' 등에서 영화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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