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

1년 이전 기사를 검색하기 원하시면 + 버튼을 눌러 주세요.
우리 삶을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의 열심
[서평] 박영선 <하나님의 열심>(무근검)
  • 이원석 (dkdndn2@naver.com)
  • 승인 2018.02.12 19:11

고1에 회심하고, 이듬해부터 기독인들과 교제하기 시작했다. 그 모임에서 만난 어느 형이 책 하나를 권유했는데, 그 추천의 변이 참으로 '신박'했다. "어느 형제분 방언 통변 중에 하나님이 책 세 권을 추천하셨는데, 그중 하나가 이 책이야." 방언통변? 이제 겨우 회심한 지가 반년도 채 되지 않은 내게 대체 뭐래는 건지. 하지만 방언 통변이 낯설었던 만큼 하나님이 추천하셨다는 다른 책 두 권도 궁금했다. 해서 다른 건 뭐예요, 라고 물었다. 형은 나에게 <하나님의 열심>도 있었다고 답하고, 남은 책 한 권은 말해 주지 않았다(아마 잊어버렸지 싶다). 여하간 이게 바로 박영선 목사의 대표작과의 첫 만남이다.

방언 통변通辯은 방언의 통역을 가리킨다. 통상 예언의 은사와 유사한 효과를 지닌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바에 따르면, 방언과 통변 체험은 지성의 영역보다 신비의 영역에 가깝다. 그러니 방언 통역으로 책 소개를 받는 것은 어딘가 어색하게 보인다. 물론 그 어색함은 우리의 통념으로 말미암은 것일 게다. 좋은 책을 추천해 주시는 하나님이라니, 참 섬세하고 지적인 분이시지 않나(내친 김에 나의 책도 소개해 주시면 좋겠다). 아마도 이 책을 통해서 들려주고 싶은 말씀이 있었으리라. 남포교회출판부(지금은 무근검으로 개명하였다)에서 개정판을 냈다고 하는 반가운 소식을 들은 김에 이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보고 싶었다.

<하나님의 열심 - 믿음은 어디서 오는가> / 박영선 지음 / 무근검 펴냄 / 412쪽 / 2만 원

다시 찾아온 <하나님의 열심>

새순출판사에서 출간된 구판을 옆에 놓고 개정판과 비교하여 보니 여러모로 수정되었다. 일단 구판의 '머리말' 대신 새로 쓴 '서문'으로 교체하고, 또한 이사야서 9장 7절에서 따온 구절을 제사題詞로 추가했다: "지금 이후로 (중략)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새로이 바울 편(16장)이 추가되었고, 총 16개 장들을 4개의 부로 분류했다(구판의 순서는 그대로이다). 아브라함 편(1~5장)과 요셉 편(6~9장)을 각각 하나의 그룹으로 묶고, 나머지 인물들은 구약 편(10~14장)과 신약 편(15~16장)을 별개의 그룹으로 정리했다. 또한 각 인물들에 대해서 말미에 "긴 시간을 지나며 얻게 된 깨달음"(6쪽)을 짧게 덧붙였다.

각 장의 제목을 각 장별 성경 본문에서 가져오고, 그 본문의 장절을 목차에 제목 다음에 괄호로 묶어서 병기했다. 단지 몇 군데는 소폭 조율하여 사용하고(3, 5, 8, 9, 15장), 11장의 경우에는 제목이 유래한 구절(출 14:13)과 본문이 다루는 구절(출 3:1-5)이 다르다. 각 장이 기초하는 성경 본문은 구판과 동일하다. 단지 7, 8, 11, 13장은 본문의 범위를 줄이고, 14장은 늘렸다. 또한 각 장마다 중제를 삽입하여 흐름을 파악하기가 한결 용이해졌고, 구판에서 한글 없이 사용하던 영어와 한자를 한글로 교체하거나 괄호 안에 병기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본문의 문장과 문단들을 훨씬 더 명료하게 만들고, 종종 문단을 새롭게 나누었다.

예화의 경우, 남포교회 부교역자 이야기(구판 79~80쪽)처럼 삭제하기도 하고, 소설 <얄개전>(34쪽)이나 TV 프로그램 '우리들의 세계'(148쪽), 영화 '쿼바디스'(361쪽) 등 그대로 두는 경우도 있고, '벤허'나 '로마의 휴일'(170쪽) 등으로 새롭게 고전 영화로 예시를 들기도 하였다. 또한 1장에서는 여호수아 24장의 개정개역판 번역(17~18쪽)에 이어 유진 피터슨의 <메시지> 번역(21쪽)을 새롭게 소개하여 아브라함의 우상숭배에 대한 논거를 강화했다. 그러니 얼마나 개정되었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게다. 실로 거의 모든 부분에서 하나님의 열심 못지않게 저자와 편집자의 열심이 엿보인다.

하나님의 끈질긴 설득하심

그러면 이제 <하나님의 열심>(무근검) 자체로 들어가 보자. 본문에서 이 용어를 반복해서 사용하지는 않는다. 개정판에서는 "목적하신 구원을 마침내 이루시고야 마는 하나님의 열심"(133쪽)을, 구판에서는 "이렇게까지 인도함을 받도록 지도하시는 하나님의 무한히 참으시고 인도하시는 열심 있는 손길"(구판, 79쪽)을 언급한다. 각기 맥락은 다르지만, 우리가 믿도록 이끄시는 "하나님의 끈질긴 설득하심"(72쪽)을 다룬다. 교파와 신자마다 예정(132쪽)에 대한 입장이 다르기에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 하나 우리를 사랑하시고, 인도하시는 그분의 손길에 대한 성서의 가르침은 자명하다.

저자 박영선 목사는 하나님의 열심, 즉 그분의 주권과 사랑이 결합된 "끈질긴 설득하심"을 다루고자 성경의 유명한 등장인물들을 새롭게 다룬다. 초판의 머리말에서 그는 말한다. "아무도 위인으로 태어나지 않았읍니다. 모두가 다 하나님께서 열심히 열심히 만들어 내신 작품이었습니다."(새순출판사 판, 7쪽) 신판에 추가된 바울 편에서도 이렇게 외친다. "그러니 바울을 추켜세워 본받으려 하지 마십시오. 아직도 바울을 위대한 사도로만 알고 있습니까?"(394쪽) 다시 말해서 성경의 위대한 인물들은 처음부터 성자가 된 것도 아닐 뿐더러 자신의 열심으로 이룬 것도 아니다. 그저 하나님께서 열심히 만들어 내신 작품인 것이다.

하지만 교회에서는 전통적으로 성경 속의 인물들을 줄곧 위인으로 떠받들어 왔다. 그러한 태도는 열심과 결부되게 마련이다. 좋게 말하면, 그들처럼 살고 싶어 한다. 실로 열심이 특심特甚하다. 하나 나쁘게 말하면, 그 열심에 지식이 결여되어 있다. 십일조와 주일성수를 과도하게 강조하는 데에서 잘 드러나는 것처럼 한국교회의 전통적 믿음은 올바른 지식이 결여된 열심으로 특징된다.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롬 10:1)."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둔다면, '하나님의 열심'에 대한 선포가 지식이 결여된 열심으로 가득했던 이십여 년 전의 한국교회에 준 충격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일상 속에서 함께 하시는 하나님

하나 <하나님의 열심>에서 신앙인의 여정에 대한 모든 것을 말하지는 않는다. 박영선 목사는 우리를 멋진 작품으로 만드시는 위대한 예술가에 대한 '큰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로 인해 구체적 적용에 대한 아쉬움이 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는 성경이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항복시키느냐 하는 물음에는 구체적인 해답을 주지 않습니다"(139쪽)라고 천명하며, 자신의 연작 설교에서 지향하는 초점도 여기에 맞추고 있다(이에 대한 아쉬움을 채우려면 다른 저작들을 보아야 한다). 이는 믿음이 형성되는 공간, 즉 일상에 무관심한 한국 교회 현실을 향한 목회적 응답으로 이해돼야 한다.

"당시 제가 다니던 성도교회는 전통과 권위가 살아 있는 교회였어요. 한국교회 성장의 시발점이기도 하지요. 온통 그런 증거들이 교회에 가득 차 있었어요. 옥한흠 목사님, 고왕인 같은 선배와 방선기, 황성철 목사, 박성수 회장 같은 바로 아래 후배들로부터 한국교회 대학부 신화라는 게 시작됐지요. 선배나 후배들 모두 그 동기와 신앙심이 진심이고 건강하고 좋은데, 저는 그걸로 항복이 안 되더라고요. 그들에게 신앙은 사명(mission)이었는데 저에게는 신앙은 삶(life)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그때는 뭐라고 딱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이건 아니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거의 혼자서 말이죠.(웃음)" (<복음과상황> 233호, '[그 사람의 서재 ②]하나님의 열심에 항복한 사람, 박영선을 만나다')

2010년 초에 이루어진 위의 인터뷰에서 가장 눈에 들어왔던 대목이다. "동기와 신앙심이 진심이고 건강하고 좋은" 사람이 괴물이 될 수도 있다. 삶으로부터 유리된 믿음이 가져오는 폐해가 적지 않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성도교회 대학부에 소속되었던 청년 박영선은 이미 그때 '이건 아니다'라고 생각했었다. 이를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하나님이 우리를 만나시고 우리를 이끄시는 공간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이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몸을 입고 세상 속으로 들어와서 우리와 일상을 공유하신 게다. 이런 진리에 대한 바른 인식으로부터 단절된 열심의 이면에는 나(의 노력과 사명과 성취)를 내세우는 아집이 넘실댄다.

여전히 열일 하시는 하나님

하나 지금의 상황은 다르지 않을까. 요새 누가 일상의 중요성을 모르나? 또한 성경 인물을 우상시하는 이가 어디 있나. 요즘 교인들, 특히 청년 세대의 식견은 예전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넓다. SNS 덕이 클 게다. 하지만 (지금 교회의 실상이 보여 주듯이) 그걸 아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래선지 개정판 서문에 지금 현실에 대한 아쉬움이 읽힌다. "성경 속 인물들을 더 이상 위인으로 여기지 않으며, 그들처럼 살아보겠다는 열정도 희미해진 시대이기 때문입니다."(7쪽) 우리 시대가 더는 성경 속 인물들을 위인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옳지만, 불행히도 이는 그들처럼 살겠다는 열정이 사라져 가는 것과 궤를 같이한다.

지금은 시대정신이 달라졌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노골적으로 대의보다 이익을 우선하며, 주체를 소비자로 호명한다. 어쩌면 신자유주의가 지금의 현실을 재구성한 탓에 우리의 상황이 더욱 악화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교회나 세상이나 나를 우선하는 것은 매일반이다. 하나 진리가 트렌드에 따라 변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가진 전제는 쉽게 변하고 바뀌고 사라집니다. 하지만 그 어떤 전제로 출발하여 따져 물어도 하나님의 열심은 오늘도 한결같이 모두에게 충만히 다가올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전히 일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7쪽) 그렇다. 하나님은 오늘도 여전히 열일 하고 계신다. 그것이 바로 복음의 핵심이다.

이야기를 정리하자. 전세기 한국 교회의 뜨거운 열정은 복음으로부터 다소 동떨어진 측면이 적지 않았다. 이런 지식 없는 열심으로 가득했던 20세기 후반 한국교회의 필요에 부응하여 <하나님의 열심>이 등장했다. 하나 열심 없는 지식으로 넘실대는 지금의 한국교회에서도 그 본질적 문제는 달라진 것 같지 않다. 예나 지금이나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지 않고, 우리 자신을 중심으로 하는 것은 여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대가 달라져도 인간의 죄성은 여전하듯이 하나님의 열심 또한 마찬가지다. 통변 이야기는 잊으셔도 좋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끈질긴 설득하심, 즉 복음이다.

뉴스앤조이는 여러분의 후원으로 제작됩니다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http://www.newsnjoy.or.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원석의 다른기사 보기

관련기사

line 루터를 통해 루터를 넘자 루터를 통해 루터를 넘자
line 진리는 들려주기 전에 먼저 보여 주어야 한다 진리는 들려주기 전에 먼저 보여 주어야 한다
line 한국교회 현주소를 비추는 거울, 종교개혁 한국교회 현주소를 비추는 거울, 종교개혁
line 그리스도인이 술과 음주를 논하기 위해 먼저 알아야 할 것들 그리스도인이 술과 음주를 논하기 위해 먼저 알아야 할 것들
line 이슬람포비아에 걸린 한국교회를 위한 치료제 이슬람포비아에 걸린 한국교회를 위한 치료제
line 우리가 해석학을 공부해야 할 이유 우리가 해석학을 공부해야 할 이유
line 철학은 영성이다 철학은 영성이다
line 의와 평강과 희락을 누리기 위한 우리 시대의 조건 의와 평강과 희락을 누리기 위한 우리 시대의 조건
line 고등교육이 참된 영성을 만나다 고등교육이 참된 영성을 만나다

추천기사

line "'명성교회라면 뭐든 할 수 있다'는 명제가 흔들렸다"
line 억대 연봉에 임대 수익 수백만 목사, 교회 빚은 35억 억대 연봉에 임대 수익 수백만 목사, 교회 빚은 35억
line '가짜 뉴스' 나팔수 자처한 기독교 언론들 '가짜 뉴스' 나팔수 자처한 기독교 언론들
기사 댓글 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