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목사들과 교인들의 온갖 반사회적·비윤리적 범죄와 기독교 신앙이 어쩌면 그렇게 '찰떡궁합'일 수 있는지는 나의 일관된 관심과 분석 대상이다. 여러 이유가 있고 다채로운 해석이 가능한데, 나는 그 이유 중 하나가 '하나님은 내 편'이라는 아전인수적 신앙에 있다고 생각한다.

교회에서 부르는 찬양 가사와 시중에 나와 있는 QT 교재를 보면, 대부분 '하나님과 나'의 관계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한국교회 비리나 사건·사고를 보도하는 참담한 기사에 달리는 댓글이나 공유 글을 보면, 이런 패턴의 고백이 자주 보인다.

"이 어두운 시대에 저는 주만 바라봅니다. 오직 주님밖에 없습니다."

물론 안타까운 현실 가운데 참담한 심정으로 주님만 의지하겠다는 고백은 충분히 이해가 가고 아름다울 수 있다. 그러나 물의를 일으키고 범죄를 벌인 기독교인의 문제는, 세습을 하고 성범죄를 저지르고 권력을 남용하며 온갖 비윤리적 행태를 해도 하나님이 날 사랑하시고 내 편이라는 잘못된 자기 확신의 신앙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하나님과 나'의 관계를 지나치게 믿는 데서 문제가 발생했는데, 그 해결책이 '주님만 바라보는 나'가 돼서는 곤란하지 않을까.

예장합동에서 온갖 정치적 패권을 행사하며 전병욱을 집요하게 비호했던 악명 높은 한 정치 목사는 놀랍게도 기도원에 자주 가는 사람이었다. 예전에 자주 갔던 게 아니라 요즘도 틈만 나면 기도원에 올라가 기도하는 '기도의 사람'이라고 했다. 아들에게 교회를 물려주는 데서부터, 온갖 못된 짓을 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은 사람인데 말이다.

나는 한국교회의 삐뚤어진 신앙관의 중심에 하나님과 나의 관계에 대한 '지나친 확신'이 자리 잡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무슨 짓을 해도 하나님은 내 편이라는 믿음의 중심에 '이웃'이 들어설 공간은 없다.

그럼에도 대부분 기독교인은 자신들이 이웃을 엄청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 삶의 이해관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순수한 객체(타자)로서 '전도 대상자'를 이웃이라고 착각하니까. 그렇기에 단기 선교나 해외 선교 열심히 가서 그 전도 대상자들을 위해 눈물을 펑펑 쏟아도, 내 직장 동료가 성추행을 당해 억울해서 흘리는 눈물을 얼마든지 차갑게 외면할 수 있는 것이다. 이웃은 내 삶의 안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범위에 '순수한 객체'로만 존재하니까. 내 삶을 피곤하게 하고 불이익을 줄 수 있는 직장 동료나 후배는 전도 대상자가 아닐 뿐더러 번거로운 존재다.

서지현 검사가 성추행을 당해서 아파하며 고군분투할 때 주변의 동기나 선후배 중 기독교인이 한 명도 없었을까. 아니, 엄청 많았을 것이다. 그들은 모두 침묵하고 방관했다. 그들도 교회에서는 전도 대상자들을 놓고 기도하며 울었는지 모른다.

이웃 없는 종교가 돼 버린 기독교, 그 중심에는 왜곡된 '하나님과 나'의 관계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 편이 아닐 수도 있다. 예수는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다. 하나님을 사랑한답시고 '주님만 바라보는 나'에서 그치지 말라는 이야기다.

예수는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라고 묻는 유대인과 제자들에게, 강도당해 죽어 가는 이를 끝까지 도운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들려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 세 사람 가운데서 누가 강도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 그가 대답하였다.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여라'(눅 10:36-37)."

흥미롭게도 죽어 가는 이를 보고 그냥 지나친 두 명은 그 시대 가장 경건하고 직업적인 종교인, 제사장과 레위인이었다. 이 비유가 지금도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가장 사랑과 자비가 넘쳐야 할 전문 종교인들은 죽어 가는 이를 버려두고 지나갔지만, 당시 가장 저주받고 불경건한 존재로 취급당하고 혼혈로 비난받던 사마리아인은 사랑과 자비를 베풀었다.

교회가 혼란하고 교회에 불의가 판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주님만 바라보는 나'로 도피할 것이 아니라, 주님을 향한 사랑이 결국 우리 주변 이웃에게 관심을 갖고 사랑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하지 않을까. 하나님은 고통받는 이웃의 편이라고 성경에서 줄기차게 말씀하는데 이웃의 편에 서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내 편'이라며 이웃을 버려두는 제사장·레위인과 다를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은 당신 편이 아닐 수도 있다.

하나님의 눈은 고통받고 죽어 가는 당신의 이웃에게 향하고 있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의 시선이 머무는 곳을 봐야 하지 않을까. 주님만 바라본다고 고백하면서 자기 주변의 강도 만나 죽어 가는 이웃을 외면한다면 예수의 비유에 나오는 제사장, 레위인과 똑같은 인물이 된다.

우리 기독교인들이 자기 주변의 고통받는 이웃에게 얼마나 매정한 존재인지 세월호 참사는 충분히 보여 줬다. 그런데도 그들이 예배할 때마다 "주님만 바라봅니다"라고 고백하고 찬양하며 지금도 눈물을 흘릴 것이라고 생각하니 참으로 역겹고 참담하다. 하나님은 그들을 향해 이렇게 호통치셨을 것 같다.

"구역질나니까 나만 바라보지 말라고!"

권대원 / 삼일교회 집사. 10년간 대학청년부 간사로 사역했으며, 2012년부터 전병욱 목사 면직 운동에 참여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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