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박요셉 기자]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덕촌2리 예촌마을은 용문산 아래 산골 마을 중 하나다. 평양 조 씨가 집성촌을 이루는 이곳은 대다수 시골 마을이 그렇듯 젊은 사람보다는 나이 많은 어르신이 더 많은 지역이다. 그나마 몇 년 전부터 인근 조현초등학교가 생태적 혁신 학교로 알려지면서, 용문면으로 이주해 오는 젊은 외지인이 늘어나는 추세다.

덕촌2리 예촌마을에는 최근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낯선 외지인'이 이주하고 나서부터다. '낯설다'고 표현한 건 이들이 외지인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외지인 중에는 원주민과 어울리지도 마을 일에 참여하지도 않고, 자기들끼리 생활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이들은 다른 외지인들과 달리, 마을 일에 누구보다 열심이다.

매월 첫째 주 토요일 새벽, 마을 대청소에 꼬박꼬박 참여한다. 마을회관에서 소집 방송이 나올 때마다 빠지지 않는다. 작년에는 마을 사람과 협력해서 오랫동안 열리지 않았던 마을 축제를 재개했다. 올해 초에는 양평군이 개최한 마을 사업 경연 대회에서 우승해, 사업비 3000만 원을 따냈다. 덕촌2리 어르신들은 다른 마을 사람을 만나면 자동으로 목에 힘이 들어가면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 덕촌2리가 딴 동네보다 제일 일을 잘한다고.

예촌 공동체 사람들은 3~4년 전부터 양평군 용문면 덕촌 2리에 모여 살고 있다. 사진 제공 이수용

덕촌2리 어르신들의 자랑이자 보배인, 이 낯선 이들은 서울 동대문구 나들목교회(김형국 목사) 예촌 가정 교회 식구들이다. 서울에서 교회와 직장을 다니던 이들이 어쩌다 이곳 산골 마을에서 모여 살게 된 걸까.

"함께 살면 좋을 것 같다는 막연한 기대였다." 1월 18일 저녁 8시, 예촌마을에서 만난 가정 교회 이수용 목자가 말했다. 이날 이수용 목자를 포함해 예촌 공동체 식구 5명을 인터뷰했다.

3~4년 전부터 함께 살기 시작한 이들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웃과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지 공동체를 하면서 알게 됐다고 말했다. 현실은 이상과 다르다. 서로 다른 사람이 모여 살다 보니 예촌 공동체도 초기에는 갈등을 겪었다. 어떤 과정을 통해 갈등을 풀고 지금의 관계를 이룰 수 있는지도 들었다.

예촌 공동체 공사 전(위 사진)과 후(아래 사진). 다섯 집이 마당을 공유하고 있다. 사진 제공 이수용

높은 땅값에 밀려
용문산 산골에 정착한
도시 촌사람들

예촌 공동체에는 여섯 가구가 모여 산다. 이성재·황희원 부부는 귀농을 하기 위해 2011년 덕촌2리에 터를 잡았다. 조용호·배진영 부부, 황두원·양지은 부부, 조재국·김명희 부부가 2014년 하반기에 예촌마을에 입주했다. 이수용·조명자 부부와 박훈·유현정 부부는 2015년 하반기부터 이들과 같이 살기 시작했다. 이성재·황희원 부부를 제외한 나머지 다섯 가정은 한 땅에 단독주택 다섯 채를 나란히 짓고 마당을 공유하며 지내고 있다.

이들이 같이 살기로 마음먹게 된 건 2014년 초, 교회에서 열린 '함께 살기' 세미나를 수강하면서부터다. 양지은 씨는 "그동안 교회에 다니면서 공동체로 살고 싶다는 생각은 늘 있었는데, 세미나에 참석하면서 그 생각을 더 구체화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해서 세미나에서 만난 세 가정이 의기투합해 함께 살기 준비를 본격화했다.

처음부터 같이 살 장소로 산골 마을을 생각한 건 아니었다. 양지은 씨는 "도심을 먼저 알아봤다. 서울 외곽을 비롯해 경기도 의정부·남양주·하남 등을 돌아봤는데, 땅값이 너무 비싸 빌라 한 채도 짓기 어렵겠더라. 우리가 당시 갖고 있는 전세금 1~2억 원으로는 답이 안 나왔다"고 말했다.

이들은 땅값에 쫓겨 밀려나다 결국 양평군에서도 서울과 제일 멀리 떨어진 용문면까지 오게 됐다. 마침 용문면에 살고 있는 이성재 씨가 전원생활이 도시보다 삶의 질이 훨씬 낫다고 이야기한 것도 한몫했다.

산골 시골 마을이라는 지역 특성은 부모들이 원하는 자녀 교육 방식과 잘 맞는 곳이기도 했다. 이수용 씨는 "우리 부모들은 아이들을 어릴 때부터 사교육에 내몰고 싶지 않다는 공통된 생각을 갖고 있었다. 아이들이 자연에서 서로 어울리고 뛰놀며 스스로 원하는 삶을 찾게 하고 싶었다"고 했다.

지역을 결정하고 나니 나머지는 일사천리였다. 같이 살기로 결심한 그해 가을부터 세 가정이 입주하고, 이듬해 두 가정이 이사왔다. 이후 몇 달 동안은 다들 행복하게 지냈다. 새 집을 꾸미고 화단에 각종 식물과 꽃을 심고, 마당에서 고기를 구워 먹으며 들뜬 시간을 보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들은 뒤늦게 깨달았다. 서로 다른 점이 많다는 것을. 성향도 다르고 각자 지향하는 공동체 모습도 달랐다. 이러한 균열 사이로 갈등의 싹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가장 신난 건 아이들이다. 여름에는 마당에 수영장을 설치한다. 사진 제공 이수용

오랜 대화와 모임으로
갈등 해결

함께 구상해 설계한 집이었지만 막상 살다 보니 불편한 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수용 씨는 "부인이 초기에 마당을 함께 쓰는 것조차 힘들어했다"고 했다.

"우리는 사적인 공간을 최대한 보장해 주는 공동체였다. 각자 자기 집이 있고 재정도 공유하지 않은 현실적인 공동체였다. 혼자 있고 싶으면 집에서 안 나오면 그만이었다. 근데 초기에 갈등이 생기자 다들 진짜로 안 나오더라."

이 씨는 "남성들은 일 때문에 집을 비우는 시간이 많으니 덜했는데, 여성들은 하루 종일 집에 있으니 심리적인 부담이 컸던 것 같다"고 했다.

남자들도 어려움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집이 멀어지면서 출퇴근 시간이 늘어났다. 서울 을지로로 출근하는 조용호 씨는 통근 시간이 30분에서 1시간 30분~1시간 50분으로 늘었다. 그는 "새벽에 일어나는 게 죽을 맛이다. 그래도 출퇴근은 어느 정도 적응했다. 하지만 몸이 안 좋을 때나 급한 일이 생길 때 집에 일찍 가지 못하는 건 여전히 힘들다"고 말했다.

이성재 씨는 "어느 정도 갈등을 회복하고 안정화하는 데까지 3년 정도 걸린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지금 와서 우리가 어떻게 다시 하나가 될 수 있었을까 생각하면, 모임의 영향이 컸다고 본다. 성경 공부 모임, 자녀 교육 모임, 가정 교회 모임 등 여러 모임에서 대화를 나누며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다"고 했다.

모임을 하면서 이들은 서로 원하는 삶의 방식이 달랐다는 것을 점차 깨닫기 시작했다. 어떤 이들은 같이 모여 찬양하고 기도하는 시간을 원했고, 어떤 이는 대화하는 시간을 선호했다. 자녀 교육 문제가 더 시급한 이도 있었다. 이들은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누며 오해를 풀고 상대방이 원하는 삶에 맞추기 시작했다.

이성재 씨는 "시행착오는 어디든 다 있는 것 같다. 우리에게는 준비 기간이 짧았던 것이다. 우리가 먼저 친해지고 공동체를 이룬 뒤에 들어와야 했는데, 건축과 입주 준비를 신경 쓰다 보니 그 과정이 미흡했다"고 말했다.

예촌 공동체는 마을 일에 누구보다 열심이다. 사진은 지난해 마을 축제 모습. 사진 제공 이수용
매월 첫째 주 토요일 새벽에는 마을 청소에 나선다. 사진 제공 이수용

남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소소한 즐거움

지금은 갈등이 없을까. 같이 사는 삶이 어떠냐는 질문에, 유현정 씨는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지 싶다"고 말했다. 같이 있던 사람들이 모두 웃었다. 이수용 씨는 "우리가 누리는 즐거움이 무척 사소한 거라서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조용호 씨는 "급한 일이 생겼을 때 서로 부탁을 하거나 도움을 줄 수 있어 좋다"고 했다. 재작년 막내를 낳았을 때였다. 조 씨는 회사에서 아내 배진영 씨에게 급한 연락을 받았다. 진통이 심해 병원에 가고 있으니 빨리 오라는 전화였다. 조 씨는 황급히 병원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서울에서 경기도 양평군까지 가는 데 아무리 빨리 가도 1시간은 걸린다. 조 씨가 올 때까지 다른 가족들이 먼저 병원으로 달려가 배 씨의 곁을 지켰다.

함께 산다는 것은 하나의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수용 씨는 "아이들이 안전한 커뮤니티에서 자랄 수 있다. 아이가 보이지 않아도 크게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 이웃집에서 친구들과 놀고 있겠거니 한다. 육아도 부모들이 돌아가면서 맡으니, 부담이 훨씬 줄어든다"고 했다.

양지은 씨는 "어제도 옆집에 갔더니 현정 언니가 있기에, 늦은 밤까지 차를 마시며 얘기를 나눴다. 소소한 즐거움이 있다. 밖에서 우연히 마주치면 손 흔들어 인사하고 저녁에 그냥 차 한 잔 마시자며 불러 내어 대화를 나누는 등, 같이 있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기쁨이 있다"고 했다. 그는 "어떻게 보면 이런 삶은 도시든 산골이든, 굳이 공동체가 아니어도 가능하다. 하지만 오늘날 사람들의 관계가 깨어지면서 쉽게 누리기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마을 행사에 늘 함께하고 있다.  사진 제공 이수용

말이 아닌 삶으로
기독교 사랑 전하는
예촌 공동체

예촌 공동체는 서로만 행복한 것이 아니다. 마을 주민을 기쁘게 하는 일에도 열심이다. 지난 12월 성탄절에는 예촌 공동체 식구들이 마을 어르신 가정집을 돌며 캐럴을 부르고 선물을 나눠 줬다. 3년째 하는 연례 행사다. 양지은 씨는 "어르신들이 무척 좋아해 주신다. 지난 겨울에는 선물을 사 놓고 기다리는 분도 있었다"고 했다.

양지은, 황희원, 조명자 씨는 계간지 <덕촌2리마을신문>을 만들고 있다. 마을에서 일어난 소소한 이야기나, 오랫동안 거주한 어르신의 입을 빌려 마을 역사 등을 소개하고 있다. 젊은 사람들이 만들기 시작하니, 기존보다 디자인이 예뻐졌고 가독성도 좋아져 주민들에게 인기가 높다.

이성재 씨는 "우리가 단체로 우르르 몰려 왔는데 어떻게 마을 일을 외면할 수 있나. 우리가 조금 노력한 것뿐인데도 어르신들이 좋아해 주신다. 조용했던 마을에 활력이 생기니 우리도 기쁘다. 다들 시골 마을이 죽었다고 말하는데, 우리가 마을 공동체를 회복하는 데 도움을 주고 싶다"고 했다.

"우리가 매력적인 모습으로 살면, 사람들이 궁금해하지 않을까 싶다. 저들은 뭔데 저렇게 행복하게 잘 살까. 그렇게 삶으로 영향을 끼치는 개신교 공동체가 되고 싶다."

실제로 예촌 공동체를 보고 옆 마을 부부가 교회에 다니고 싶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예전에 교회에 다녔다가 안 좋은 일을 당해 교회를 떠난 이들이었다. 예촌 공동체는 먼저 가정 예배로 함께 모이며 차차 개신교에 대해 알아 가자고 제안한 상태다.

예촌 공동체를 취재하러 온 방송국 PD가 나들목교회 설교를 찾아서 들은 일도 있었다. 이성재 씨는 "시골에서 집을 짓고 함께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PD가 취재를 왔다. 그런데 기독교인이 아닌 그는 우리가 이렇게 사는 이유를 끝내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더 알고 싶은 마음에 교회 홈페이지에서 설교를 들었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이수용 씨는 "주변 사람들에게 노골적으로 교회에 가자거나 예수를 믿으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그저 우리가 세상에서 신앙적 가치를 갖고 진실하게 산다면, 그 자체만으로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공동체를 하고 싶은 사람에게
"행복하게 사는 게 중요"

공동체로 살 때 우리가 무엇을 얻고 누릴 수 있을지 많이 고민했으면 좋겠다. 추상적이고 막연한 가치는 도움이 안 된다. 그리고 각 개인이 스스로 어떤 걸 포기하고 버릴 수 있을지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공동체가 추구하는 어떤 신념, 가치를 강조하며 구성원을 그 아래 끼워 넣는 일은 지양했으면 좋겠다. - 이성재

은행에 대출이 많으면 안 깨진다(웃음). 단순한 얘기일 수 있지만, 함께 많이 만나고 맛있는 거 먹으면서 대화를 많이 나누라고 말하고 싶다. 그 과정에서 서로에 대한 공감과 소통이 커지는 것 같다. 김형국 목사가 종종 놀러온다. 우리에게 너희들 평소 예배 잘 하냐, 기도 많이 하냐고 한 번도 묻지 않는다. 대신 단 하나만 강조한다. 너희들끼리 재밌게 잘 놀고 행복하게 잘 살라고. 그게 정말 중요한 것 같다. - 이수용

그냥 하라고 말하고 싶다. 공동체의 삶이나 개인의 삶이나 모두 의미 있고 중요하다. 자기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삶이 있다면, 그 삶을 살라. - 양지은

같이 많이 만나고 모이면 좋겠다. 여자들이 좀 더 친해질 수 있었던 것도 성경 공부, 교육 모임 등을 하면서부터다. 자꾸 서로 모이다 보면, 같이 하고 싶은 일을 찾게 되고 같은 비전을 품게 된다. - 유현정

좋은 환경에서 건강하고 씩씩하게 자라는 아이들을 보면 참 행복하고 좋다. 하지만 얻는 게 있으면 포기해야 할 것도 반드시 있다. 새벽에 출근하는 건 지금도 힘들다. 직장인들은 그것부터 감안하면 좋겠다. - 조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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