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 진보를 대표하는 교회협의 존재감은 예전만 못하다. 한기총 출범으로 대표성은 약화됐고, 역할도 축소됐다. 위기를 극복할 방안은 없을까. 이홍정 신임 총무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 봤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뉴스앤조이-이용필 기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교회협·이홍정 총무)는 교계 유일한 진보 성향 연합 기구다. 1970~1980년대 군사정권에 맞서 민주화·인권 운동에 헌신하며 위상을 떨쳤다. 교회협은 대사회적 문제에 예언자적 목소리를 내고, 약자들을 위한 활동을 지속해 오고 있다.

하지만 교회협 위상은 전과 같지 않다. 이유는 복합적이다. 인권 운동을 시민단체들이 대체하고 있고, 1989년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출범으로 대표성마저 약화했다. 내부적으로는 고질적인 재정 문제가 자리하고 있고, 회원 교단으로 참여하는 교단의 입김도 교회협 활동에 영향을 미쳤다. 교회협은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예장통합), 기독교대한감리회, 한국기독교장로회,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등 9개 교단과 5개 단체로 구성돼 있다.

교계 연합 기구는 분열되고 있고 갈수록 보수화하고 있다. 교회협의 입지도 덩달아 흔들리고 있다. 반면, 지난해 '촛불 혁명'으로 국민의식과 함께 기독교인의 의식이 진일보한 것은 긍정적인 변화다. 복잡한 상황에서 교회협을 이끌게 된 이홍정 총무는 "한국교회 일치 운동과 갱신으로 위기를 극복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12월 취임한 이 총무는 직전까지 예장통합 사무총장을 지냈다.

이 총무는 과거의 영광에 매달릴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교회협은 한때 민주화 운동을 이끌었고 시민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지금은 시대 상황이 바뀌었다. 1970~1980년대와 비교해 시민의식이 한 단계 성숙한 사회가 됐다. 그는 "교회협이 당대 시대 상황 속에서 밑거름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과거와 똑같은 일을 할 필요는 없다. 예언자적 사명을 가지고 새로운 일을 해 나가면 된다"고 말했다.

교계 연합 기구는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 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한국기독교연합(한기연),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은 정치·사회적으로 보수를 대변한다. 이 총무는 "분단 상황에서 한국교회가 진보와 보수 프레임에 갇혀 있다. 복음의 정신을 가지고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보수 개신교계가 일제히 반대하는 성소수자 문제도 언급했다. 이 총무는 박근혜 정부 때까지만 해도 교계가 '종북 좌파' 프레임을 이용해 상대를 정죄했는데, 이제는 동성애 프레임을 이용한다고 했다. 이 총무는 "성소수자를 악마화하고 혐오하고 배제해서는 안 된다. 교회는 하나님의 계약 공동체로서 사회적 약자를 정의와 사랑으로 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홍정 총무와의 인터뷰는 1월 10일 서울 종로 기독교회관에서 진행했다. 이 총무와의 대화를 정리했다.

"한국교회, 욕망에 빠져 값싼 은총 만끽
이웃 아픔에 공감 필요
진보·보수 패러다임 깨뜨려야"

교회협은 군사정권 시절 민주화와 인권 운동에 앞장섰다. 이홍정 총무는 과거 교회협의 헌신으로 시민사회가 성숙해졌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를 실질적으로 이끄는 총무가 되었다. 각오 한말씀 부탁드린다.

민족 공동체의 치유와 화해, 한국교회의 일치와 갱신, 변혁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나가겠다. 한국교회는 변혁의 과제를 안고 있다. (한국교회) 내부가 변화하고, 과제를 잘 감당할 때 민족 공동체의 치유와 화해의 길도 열릴 것이다.

- 한국교회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변혁해야 할까.

한국교회는 지금 자기 연민, 나르시시즘에 빠져 있지 않나 생각한다. 교회는 하나님의 계약 공동체다. 계약 공동체는 사회적 약자를 향한 정의와 사랑을 근간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자기 욕망에 빠져 값싼 은총을 만끽하고 있다. 이웃의 아픔을 느끼지도 돌보지도 못하고 있다. 복음의 정신으로 스스로를 성찰하고, 분단으로 발생한 진보와 보수 프레임을 깨뜨려야 한다.

- 교회협은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간 정권과 맞서 싸웠다. 그런데 군사정권에 맞섰던 것에 비해 존재감이 드러나지 않았다. 무엇이 문제라고 보는가.

비슷한 질문을 많이 받는다.(웃음) 교회협은 한국 사회가 민주화하는 과정에서 당대의 존재감을 내뿜었다. 민주화 운동을 움직이는 동력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은 시대적 상황이 바뀌었다. 주권재민의 시민의식이 충만한 사회를 구가해 냈다.

내가 아는 한, 촛불 혁명 기간에 그 누구도 교회협을 향해 집회를 인도해 달라고 하지 않았다. 이미 시민사회가 성숙해졌다는 의미다. 그렇게 보면 교회협의 존재감이 약화한 건 기쁜 일이다. 우리 사회가 그만큼 발전했다는 거니까. 교회협은 시대 상황에서 밑거름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오늘 이 시점에도 존재감을 지녀야 한다고 단순히 말하는 건 시대착오적이다.

교계 원로 김상근 목사는, 교회협 침체 원인으로 △회원 교단의 이중 멤버십 △대형 교회 의존성 △정권과의 유착 등을 들었다. 

교회협 회원 교단 중에는 이중 멤버십을 가진 교단도 있다. 다른 연합 기구에도 가입해 참여하고 있다. 한국교회와 교단이 진보와 보수로 나뉘어 있는 한 이중 멤버십을 막을 수 없다고 본다. 교단 규모가 클수록 보수 성향을 가진 사람도 많다. 그만큼 그들도 보수 연합을 필요로 한다. (이중 멤버십이) 반드시 역기능만 안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중 멤버십을 가진 회원 교단이 소통의 매개체가 될 수도 있다. 바라기는 냉전 의식을 극복해 내는 계기를 만들었으면 한다.

교회협의 존재감 약화는 민주화와도 깊은 연관이 있다고 생각한다. 문민정부, 국민의정부, 참여정부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비판적 참여'라는 명분을 가지고 자리를 차지한 교계 인사들이 있었다. 순기능과 역기능이 공존했다. 교회협이 특정 정권에 친화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사람들에게 실망감을 주지 않았나 생각한다. 교회협이 정치적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는 오해도 받았다.

교회협이 새로운 멤버를 충원하는 과정에서도 문제가 있었다. 다양성을 확보한다는 명분이 있었지만, 이 과정에서 교회협 내부의 응집력은 약화했다.

'종북 좌파' 대신 '성소수자' 프레임
성소수자 혐오·배제 대신 숙고 필요
독점과 사유화가 교회 세습 낳아

보수 기독교계는 동성애를 죄를 규정하고, 반동성애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 교회협은 사회적 약자를 위한 목소리를 꾸준히 내 오고 있다. 그런데 몇몇 회원 교단은 동성애 반대를 공식 입장으로 취하고 있다.

성소수자 문제는 결국 '프레임'이다. 박근혜 정권 초기만 해도 소위 '종북 좌파' 프레임으로 정죄하고 배제했다. 지금은 성소수자 프레임을 진리의 잣대로 활용하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한국교회는 성소수자에 대한 이해도가 낮다.

교회는 하나님의 계약 공동체로서 사회적 약자에 대해 정의와 사랑으로 임해야 한다. 이게 바로 우리의 본질이다. 동성애가 옳다 그르다 판단하기 이전에 동성애자를 대하는 우리의 언어와 태도가 어떠한지 돌아봐야 한다. 일부는 (성소수자를) 악마시하고, 혐오와 배제하는 언행을 불사하고 있다. 하나님의 계약 공동체로서 바른 태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성소수자를 하나님의 목회 관점에서 바라보는 게 중요하다. 그들과 동행하고 경청하는 가운데 성령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에 입각한 인도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처럼 너무 성급하게 판단해서는 안 된다.

1990년 영국에 간 적 있다. URC(영국연합개혁교회)에 속한 교회에 갔는데, 설문지를 돌리더라. 설문지를 보니까 "교회에 동성애자가 목사로 온다면 동의하겠는가", "동성애자를 장로로 세울 수 있겠는가"라는 질문이 있었다. 중요한 문제인 만큼 몇몇 지도자가 아니라, 모든 지역 교인에게 설문을 돌려 조사한 거다.

더 놀라운 건 2014년 URC 총회였다. 회의를 하루 종일 했는데도 결론이 안 나왔다. 결국 총회장이 나서 "우리는 동성애자를 포용해야 한다"고 공표했다. 몇십 년간 공교회 안에서 철저히 논의의 과정을 밟은 뒤 내린 결론이다. 한국교회도 이런 숙고의 자세가 필요하다고 본다.

- 예장통합은 지난해 9월 총회에서 "동성애자와 지지자는 신학교에 입학할 수 없고, 교회 항존직을 맡을 수 없다"고 결의했다. 

좀 전에 말했듯이, 프레임이 종북 좌파에서 성소수자로 바뀐 것뿐이다. 프레임에 휘둘린 결의라고 본다.

- 직전 예장통합 사무총장으로서 명성교회 세습은 어떻게 보는가. 사무총장 재직 시 '세습금지법'이 통과되기도 했는데.

교회 세습은 한국교회 성장 배경과 깊은 관련이 있다. 사회는 자본주의에 발맞춰 나가고, 교회는 개교회 중심주의, 성직 교권 중심주의가 기초가 됐다. 이는 독점과 사유화의 패턴으로 이어졌다. 독점과 사유화가 삶의 양식 연장선상에 있다 보니 대형 교회 세습이 일어나는 것이다. 세습은 교회를 소유하고 있다는 의식의 발로에서 이뤄진다.

- 함께 일한 예장통합 총회 직원들은 이홍정 총무의 장점으로 "외압에 흔들리지 않는다", "고집이 강하다"는 점을 들었다.

(웃음) 예장통합 사무총장이 되자마자 사회적으로 굵직한 사건이 터졌다. 국정원 대선 개입, 세월호 참사,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 국정교과서 사건. 예장통합 교단 소속 대다수는 정치적으로 보수적 입장을 취했는데, 내가 의견을 개진해 사안마다 성명을 발표했다. 100회 총회에서는 금권 선거를 문제 삼는 칼럼을 <한국기독공보>에 썼다. 이런 게 누적이 돼서 어려움을 당하기도 했다. 나의 정체성이자, 신앙 의식, 양심이라고 할 수 있다.

- 남북 관계가 급진전을 보이고 있다. 1월 9일 남북 고위급 회담을 통해 평창 올림픽에 북한 대표단이 참석하고, 한반도 긴장 완화를 위한 군사 당국 회담을 열기로 했다. 평소 남북 평화운동을 전개해 온 교회협 입장에서는 환영할 수밖에 없겠다.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동북아시아의 평화가 이뤄져야 한다. 평창 올림픽에 이어, 2020년 하계 도쿄 올림픽, 2022년 동계 북경 올림픽이 열린다. 이 기간 한반도와 동북아시아를 중심으로 평화 환경을 조성하는 공동 안보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정권도 노력해야 하지만, 특별히 동북아시아 평화 시민이 노력을 배가해야 한다. 동북아시아는 신냉전체제를 이루고 있다. 한반도 평화를 넘어 신냉전체제를 깨뜨려야 한다. 촛불 시민 혁명의 에너지가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평화운동으로 진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한국교회총연합'이 공식 출범했다. 이로써 교계 연합 기구는 4개가 됐다. 상대적으로 교회협 입지가 더욱 줄어드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일부 연합 기관은 가입 교단 수를 앞세운다. 회원 교단의 숫자로 표준화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본다. 연합 기구는 협의체가 돼야 한다. 협의적 과정이 생략된 연합 기구는 의사 결정 과정에서 교권주의를 피할 수 없다. 교권 정치는 연합 운동과 일치를 저해하고, 갈등과 분열을 일으킨다.

"특정 정권 지지하지 않겠다
양심수 석방 안 한 정부 유감"

동성애를 반대하는 교계를 향해서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이홍정 총무는 혐오와 배제가 아니라 포용의 정신으로 성소수자를 끌어안아야 한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 지난 성탄절에 가톨릭과 함께 성탄 음악회를 개최했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도 참석했는데,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가.

신앙과직제협의회가 주관하는 음악회였는데, 이번에는 가톨릭이 주최했다. 대통령 내외분이 가톨릭 신자여서 초대했다. 환담 시간에 몇 가지 당부의 말씀을 드렸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 세계 교회가 중재자 역할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해 달라고 했다. 교회협과 천주교주교회의가 WCC(세계교회협의회)와 바티칸을 동원, 한반도와 동북아시아 평화를 위한 공동의 중재 역할을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 촛불 혁명으로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와 달리 문재인 정부와는 좋은 관계를 유지해 나갈 것으로 보는 이들도 있다.

교계 연합 기관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입장과 태도가 바뀌었다. 교회협은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문재인 정부가 지향하는 가치와 교회협의 가치가 상당히 맥을 같이한다. 그러나 정권을 지지하는 협의회로 자리매김하고 싶지 않다. '예'와 '아니오'를 분명히 밝힐 것이다.

- 문재인 정부의 정책 가운데 아쉬운 게 있다면.

교회협 총무 취임 이후 양심수 석방 문제에 대한 캠페인과 기도회를 열었다. 청와대 수석실 관계자도 찾아온 적이 있어서 뜻을 잘 전달했는데,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양심수 석방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건 촛불 혁명 정신과 맞지 않다. 이 점은 좀 아쉽게 생각한다.

- 교회협 수장으로서 앞으로 어떻게 이끌어 나갈 생각인가.

협의회적 과정을 많이 거치겠다. 중요한 의사 결정이 특정 집단에 의해 결정되게 하지 않겠다. 수평적으로 소통하고, 다 함께 의식의 성숙을 도모하겠다. 지역 교회협과의 유대도 강화할 것이다. 심리적 거리를 좁히고, 어떻게 에큐메니컬적 목회를 해 나갈 수 있을지 함께 머리를 맞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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