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 박요셉 기자] "세월호의 아픔이 세상을 치유한다." 궁중족발 김우식 사장이 가게 안쪽 벽에 걸린 현수막 문구를 소리 내 읽었다.

"세상에서 가장 큰 아픔을 겪은 세월호 가족들이 제가 경험한 작은 슬픔을 위로해 줘서 송구하고 감사하다. 낮에 집행관을 만났는데, 이번 주부터 강제집행이 있을 거라고 한다. 이겨 내려 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막고 버티고 지키고 싸우는 것뿐이다. 없는 사람, 약한 사람들도 이길 수 있다는 걸 보여 주고 싶다."

세월호 가족과 시민으로 구성된 '416합창단'이 1월 9일 서울 종로구 궁중족발을 찾았다. 매주 화요일 저녁, 옥바라지선교센터가 주최하는 '궁중족발을 지키기 위한 현장 기도회'에 초대받은 것이다. 궁중족발 사장 김우식·윤경자 부부는 새로 바뀐 건물주가 보증금·임대료를 기존보다 서너 배씩 인상하는 바람에 건물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했다. 소식을 접한 옥바라지선교센터는 지난해 11월부터 가게를 지키며 연대해 왔다.

이날 기도회에는 세월호 가족을 포함해 신학교 학생, 시민단체 활동가 등 60여 명이 참석했다. 평소 기도회보다 세 배나 많은 인원이었다. 의자가 부족해 늦게 온 이들은 서 있어야 했다. 나중에는 홀 입구까지 가득 차, 먼저 온 이들이 주방으로 자리를 옮길 정도였다.

김우식 사장은 기도회에 참석한 이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며 최근 상황을 전했다. 안 좋은 소식이 이어졌다. 지난주 법원은 건물주가 제기한 영업 방해 금지 가처분 일부를 인용했다. 법원은 김우식 사장이 가게를 불법점유하고 있다고 보고, 건물주가 김 사장에게 1일당 50만 원씩 징수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이어 건물주가 3차 강제집행을 신청했다며 조만간 집행이 있을 거라는 소식도 있었다.

궁중족발이 오랜만에 사람들로 북적였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김우식 사장은 곧 강제집행이 다시 진행될 것 같다고 걱정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이날 기도회가 시작하기 40분 전에도 작은 소동이 있었다. 술에 취한 건물주 일행이 찾아와 고성을 지르며 당장 가게를 비우라고 소리쳤다. 김우식 사장과 몇몇 학생이 건물주 이 아무개 씨를 제지하자, 그는 몸을 밀치며 "내 건물에서 당장 나가라"며 고성을 질렀다.

그는 2차 강제집행에서 손가락 네 개가 부분 절단된 김우식 사장에게 "남몰래 자해한 것 아니냐. 너희들은 범법자다. 법을 어기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소동은 경찰이 출동한 뒤에야 가라앉았다. 이 때문에 기도회는 10분 늦어져 시작했다.

세월호 가족들이 궁중족발 사장 부부와 연대하는 이들을 위해 노래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참석자들이 서로 축복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세월호 참사 유가족 시찬 아빠 박요섭 씨는 "법의 취지가 약한 사람, 힘없는 사람을 보호하는 데 있는데, 실정이 전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여기 와서 감옥처럼 굳게 닫힌 철문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 왜 이분들은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어 스스로 자기를 지켜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누구는 그렇게 싸우면 세상이 바뀌느냐고 말하는데, 우리가 직접 목격했다. 세월호 가족들이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갈 때 세상이 바뀌기 시작했다. 언젠가 약자들이 보호받는 세상이 올 거라고 믿는다."

416합창단은 궁중족발 가족들을 위해 이날 '인간의 노래'를 불렀다. 이 노래는 1980년대 일본에서 합법이라는 미명하에 이뤄진 구조조정 때문에 많은 노동자가 자살한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노래다.

박득훈 목사(평화누리)가 '생존권은 법 위에 있다'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이날 설교 본문은 예수가 안식일에 제자들과 함께 밀 이삭을 먹은 내용이었다(막 2:23-28). 본문에서 예수는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은 아니다"고 말한다.

박 목사는 오늘날 어떠한 실정법도 하나님이 창조한 생존권 위에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실정법을 지키는 것보다 허기를 채우는 게 예수에게는 더 중요한 일이었다. 그분은 사람들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범법자가 됐다. 오늘날 이러한 예수의 가르침에 따라 법을 어기는 건, 사회적 약자를 위해 새로운 법을 만드는 과정과 같다"고 말했다

기도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함께 기도문을 읽으며 마음을 다졌다.

"법과 권력이 저들의 편을 든다고 해도 우리는 주님 앞에서 외치겠습니다. 빼앗기는 자에게는 죄가 없습니다. 빼앗으려는 자들이 죄인입니다. 당신의 정의는 세상의 법 너머에 있음을 기억합니다. 벌금을, 폭력을, 쫓겨남을 이길 힘을 우리에게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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