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월 탄핵을 반대하는 목회자들이 대형 십자가를 들고 행진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뉴스앤조이-이용필 기자] 촛불 혁명으로 새 정부가 들어선 지 반년이 지났다. 1,600만 명이 넘는 시민이 '적폐'에 맞서 거리에서 촛불을 들었고, 그 덕에 대한민국은 새 시대를 맞았다.

탄핵 정국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 씨의 부정이 속속 드러났지만, 지지자들은 박 전 대통령을 감싸는 데 급급했다. 태극기 집회로 불린 친박 집회에서는 개신교인을 만나는 게 어렵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을 위해 대형 십자가를 만들어 '마귀들과 싸울지라'를 외치며 행진하고, 친박 집회 참여를 권면한 목사들도 있었다.

탄핵 반대 집회에 등장한 대형 십자가를 본 사람은 대부분 혀를 찼지만, 십자가를 만든 조성훈 목사(예장연합 이사장)는 개의치 않았다. 조 목사는 "박근혜 대통령은 피해자이며, 역대 대통령보다 깨끗한 지도자다. 촛불 시위를 폄하할 생각은 없지만, 그 속에 빨갱이와 종북 세력이 침투·선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용목 목사(은혜와진리교회)는 입법·사법·행정·언론·교육·기업계에 종북 좌파가 침투해 국정을 유린하고 있다며 '애국 집회'에 참여해야 한다고 설교했다. 조 목사는 "애국하는 국민들이 태극기를 들고 일어나서 외치고 있다. 모이는 횟수가 거듭할수록 더 많이 참여하고 있다. 애국하는 국민은 모두 힘을 모아야 한다"고 독려했다.

일부 보수 개신교 단체는 노골적으로 탄핵 반대를 외치지는 않았지만, 나라를 위해 기도한다는 명목으로 은근히 박근혜 전 대통령을 비호했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롬13:1),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딤전 2:2)는 성경 구절을 문자 그대로 따라야 한다고 종용했다.

보수 개신교의 몸부림에도 여론은 탄핵 찬성으로 기울었다. 헌법재판소 판결을 앞두고 탄핵 인용을 찬성하는 입장이 77%에 이르렀다. 반대는 18%에 지나지 않았다. 범죄 사실이 명확하고 대다수 국민이 탄핵 인용을 바라는 상황에서, 몇몇 대형 교회를 중심으로 한 보수 개신교는 끝까지 저항했다.

대표적 예가 한국기독교총연합회와 한국교회연합이 주최한 3·1절 구국 기도회다. 여의도순복음교회와 은혜와진리교회는 교인 수만 명을 집회에 동원했다. 주최 측은 나라를 위한 순수한 기도회라고 주장했지만, 기도회가 끝난 뒤 같은 장소에서는 '탄핵 기각을 위한 집회'가 열렸다.

이념에 물든 메시지가 잇달아 나왔다. "북한 공산 세력과 동조 세력을 단호히 배척한다", "강압적이고 물리적인 대통령 탄핵에 단호히 반대한다", "국가 위기 상황에서 정상적인 국정 운영을 위해 1,000만 성도와 함께 즉각 나설 것"이라고 외쳤다.

새 정부는 '적폐 청산'을 내걸고 사회 여러 방면에서 개혁을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보수 개신교인은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 올해 11월, 트럼프 미국 대통령 방한에 맞춰 열린 '구국 기도회'는, 형식만 기도회였지 내용은 문재인 대통령과 촛불 시민을 비판하는 내용이 흘러넘쳤다.

사회적 불의에 공감하지 못하고, 이념에 치우친 보수 개신교의 모습은 안타깝게도 낯설지 않다. 국가적 사건을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철저히 이념과 정치, 감정싸움으로 밀어붙여 왔다. 뿌리 깊은 반공주의와 기독교 신앙의 잘못된 만남. 이것을 해결할 방법은 보이지 않고, 개신교는 사회에서 계속 도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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