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

저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드는 회사에 다니고 있습니다. 이 직업군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젊어서 밤샘 작업이나 야근하는 게 일상입니다. 조직 문화가 그렇다 보니 몸 돌보는 것보다 성과 내는 것이 더 중요하고 성과 중심 조직 문화가 당연한 것 같습니다. 매주, 매달 떨어지는 일을 잘해 내야 밥값 제대로 하는 유능한 인재라는 인식 때문인지, 책임감이 강한 것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없는 능력 있는 능력 다 발휘하며 능력을 입증하려 애를 써 왔습니다. 그렇게 지난 10년을 살았습니다.

이제는 두려움이 몰려옵니다. 밤새거나 야근을 지속적으로 하면, 더 이상 몸이 못 받쳐 주고 체력적으로 힘들어 일하는 것이 점점 두렵습니다. 이렇게 일하다 과로사할 것 같습니다. 이제 와서 왜 이렇게 일했나 제 자신을 살펴보니, 인정받으려고 그랬던 것 같습니다. 성과를 내고 유능한 직장인으로 살려는 욕심에 몸이 망가지는 것도 모르고 일했습니다. 이제라도 중심을 잡고 싶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무기력증이 저를 지배해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습니다. 지금은 겨우겨우 일을 하는데, 이런 상태로는 앞으로 직장 생활도 힘들 것 같습니다. 먹고살 수나 있을지 걱정입니다. 제가 기독교인인데도 하나님보다 다른 사람의 시선이 더 중요했고, 늘 하나님을 뒷전에 두고 살아온 것 같습니다. 이런 번 아웃 상태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요.

내일의 에너지를 오늘 소비하는 사회

'번아웃증후군(Burnout Syndrome)'은 1980년대에 뉴욕 정신분석가 프로이덴버거(Herbert Freudenberger, 1926~1999)가 자신의 논문에서 약물중독자를 상담하는 전문가의 무기력을 설명하려고 '소진'(burn out)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데서 유래했다. 의욕적으로 일에 몰두하던 사람이 극도의 신체적·정신적 피로감을 호소하며 무기력해지는 현상이다.

한국에는 2013년에 번아웃증후군이 나타났는데, 당시 '레드불'·'핫식스' 등 고카페인 함유 에너지 음료 시장이 급성장했다. 여러 부작용이 있는데도 에너지 음료 시장이 급성장한 것은, 그만큼 한국 사회가 내일의 에너지를 당겨서 오늘 소비하지 않고는 직장에서 살아남기 힘든 구조이기 때문이다.

질문자의 상황은 그나마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 인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행이다. 질문자의 고민은 4가지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한다.

1) 인정받으려는 욕망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2) 육체적으로 한계를 느끼는데, 어떤 대안이 있는가
3) 앞으로 어떤 일을 해야 먹고살 수 있을까
4) 이 상황에서 하나님과 어떻게 관계할 것인가

인정받으려는 욕망의 문제는 기준에 대한 문제다. 내가 유능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상사나 다른 사람을 통해 인정받는다는 것은 그만큼 자존감이 낮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상태에서 일을 하면, 과도하게 다른 사람 기준에 맞춰야 한다. 그러면 결국 자기 자신은 빈껍데기가 되고 만다. 1~3년 차는, 일에 대한 기준이 만들어지지 않았기에 상사 기준에 맞춰서 일을 배울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일한 지 10년이 넘었다면 자존감으로 일을 해야 한다.

10년 정도 경력이면 팀장이나 부팀장 정도의 위치에 있게 되는데, 전문성을 갖고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그 팀에 할당된 일을 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할당량을 조절하는 것도 자신의 역할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무조건 일을 해서 능력을 인정받기보다 책임지는 위치에서 일을 정리하고 조율할 필요가 있다. 사람을 배치하고 분산하는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자존감이 조금씩 만들어진다. 자기 확신이 없다면 결정을 내리거나 조율하기 힘들다.

숨 쉴 공간 찾아야

질문자는 육체적으로 한계를 느낀다고 했다. 10년간 쉬지 않고 계속 일해 왔으니 이제는 쉬어야 한다. 1년간 쉬면서 자신을 돌아보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하면서 육체적으로 회복할 시간을 가져야 한다. 이때 쉬지 못하면 계속 일하기 힘든 상황이 온다. 두려워하지 말고, 우선 쉬면서 무기력을 회복해야 한다. 가장이라서, 경제적 이유로 쉬지 못하고 있다면, 생활 규모를 줄이고 몇 달이라도 쉬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쉬는 것 외에는 답이 없어 보인다.

지금 같은 방법이 아니라면, 어떻게 먹고살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는데, 해당 직종에서 일의 양이 적으면서 지속적으로 일할 수 있는 곳을 찾아보라. 찾아보면 그런 곳이 꽤 있다. 지금의 자기 위치와 주변만 돌아보면, 이곳을 벗어났을 때 다시는 이쪽 분야에서 자신을 써 주지 않을 것 같고 세상에서 밀려날 것 같지만, 지금까지 배운 기술로 충분히 일할 곳을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지금까지 앞만 보면서 달려왔지만, 쉬면서 생각도 전환하고 컴퓨터 프로그램을 짜는 일이 메인은 아니지만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을 찾으면 힘들이지 않고 일하는 곳을 찾을 수 있으니 살펴보기 바란다. 아직 한창때라서 가장 핫한 곳에서 밀려나는 두려움이 있겠지만 자기 몸 상태에 맞게 직업을 구하는 것은 실패도 뒤처지는 것도 아니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마음으로부터 자유하기 바란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해 말하자면, 현실에서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은 훈련이다. 현실에서 하나님과 교류하거나 교제하지 않으면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떤 상태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어떤 상태이지만 하나님 앞에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가기를 어려워하는 것은 자신의 상태가 부끄럽고 하나님이 그 상태를 보고 실망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 때문이다. 조금 더 나아지면 하나님 앞에 나가야겠다고 생각하는데, 이것은 우리의 착각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지금 나오기를 바라시지, 조금 더 나은 상태나 그럴듯하게 됐을 때 나오기를 원하지 않는다. 지금 나가는 것, 그것이 지금 가장 필요한 결단이다.

당연한 말 같지만, 번 아웃은 개인 문제 아닌 사회문제다. 번 아웃을 만들어 내는 한국 사회와 기업에서 직장인으로 생존하고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위로와 회복이 필요하다. 기독 직장인 모임 등 직장인을 위해 숨 쉴 공간을 만드는 모임에 참여해 보는 것도 번 아웃을 해결하는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한병선 / 한병선영상만들기 대표, IVF(한국기독학생회) 기독 직장인 모임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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