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교회에서 14년간 부목사를 지낸 임명진 목사는 넉 달 전 서울 정릉동에 북악하늘교회를 개척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뉴스앤조이-이용필 기자] 21세기교회연구소(정재영 소장)와 한국교회탐구센터(송인규 소장)가 12월 1일 연 소형 교회 리포트 세미나에서 조금 특이한 조사 결과가 나왔다. 소형 교회 목회자 대부분이 교인 수 정체와 재정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73.3%가 목회에 '만족'한다고 응답한 것이다. 

'작은 교회'는 시대상 어쩔 수 없는 것이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시대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현실적 어려움 때문에 전자와 후자는 종이 한 장 차이 같기도 하다. 하지만 여전히 작은 교회를 개척해, 성장 욕망을 버리고 지역사회와 소통하며 소명을 구체화해 가는 목회자가 적지 않다.

넉 달 전 북악하늘교회를 개척한 임명진 목사도 그런 꿈을 품고 있다. 현실적 어려움을 생각하면 늘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지만, 대형 교회 부목사로 있으면서 느꼈던 자괴감에 비하면 목회 만족도는 높다. 임명진 목사를 12월 6일, 북악산 중턱에 있는 북악하늘교회에서 만났다.

대형 교회서 14년 사역
할 말 못 하고, 당회 거수기 역할에 '회의'
갈 곳 없는 주민들 모여 공방·뜨개질
'작은 도서관'으로 지역 문화 공간 자리매김

임명진 목사는 교회를 개척하기 전 대형 교회 두 곳에서 부목사로 있었다. A교회에서 4년, B교회에서 8년간 몸담았다. A교회에서는 청년 사역을 했다. 일이 많아 교회에서 살다시피 했지만, "가장 행복했던 시기"라고 회상했다.

전통적 스타일을 고수하는 B교회는 잘 맞지 않았다. 교인 관리나 목회에 대한 전반적인 사항은 배울 수 있었지만, 부목사로서 한계를 많이 절감했다. 스스로도 만족할 수 없었다.

"이건 목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과연 내가 목사가 맞는지, 목회자로서 마땅히 해야 할 말도 못하는 게 맞는지 회의가 들었어요. 당회에 들어가도 말도 못 하고, 거수기 역할만 하고. 내가 왜 여기 있어야 하나 싶었어요."

교회를 개척하기로 결심했다. 설렘과 두려움이 동시에 찾아왔다. 잘할 수 있는, 관심 있는 일을 찾았다. 책과 영화를 좋아하는 임 목사는 문화 사역을 떠올렸다. 가진 게 책밖에 없으니, 도서관을 겸한 교회를 해 보자고 생각했다. 전도와 교회 홍보가 목적이 아닌, 말 그대로 지역 주민과 함께할 수 있는 '사랑방'을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느 순간 나아가야 할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임 목사는 올해 1월 B교회에서 사임했다. 교회 부지를 찾아 나섰다. 처음에는 접근이 용이한 곳 위주로 알아봤다. 이미 그런 곳에는 무수히 많은 교회가 들어서 있었다. 교회가 없는 지역을 찾다가 '북악스카이웨이'로 이어지는 정릉동 508단지를 발견했다. 정릉은 임 목사의 고향이기도 하다. 이런 지역이 있는지조차 몰랐을 정도로 외진 곳이었다. 번화가에서 다른 교회와 피 터지게 경쟁하느니, 북악산 중턱에서 사랑방 사역을 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북(Book)악(樂)하늘교회'는 그렇게 세워졌다. 십자가는커녕 교회 간판조차 달려 있지 않다. 입구 오른쪽 벽면에 걸린 간판에는 '문화 공간 작은 도서관 북악하늘'이라고 적혀 있다. 주민들이 자연스럽게 들고날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춘 것이다.

커피를 만드는 작은 데스크 옆으로 테이블과 의자, 책장이 한눈에 들어왔다. 책장에는 5,000여 권이 진열돼 있었다. 책을 좋아하는 임 목사가 직접 모았다. 기증받은 건 얼마 되지 않는다. 문학, 사회과학, 신학 등 장르도 다양하다.

평일 오전 동네 주민이 모여 뜨개질을 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작은 도서관 '북악하늘'은 오전 10시부터 저녁 8시까지 연다. 주중에는 동네 주민의 '사랑방'으로 쓰인다. 오전에는 주부들이, 오후에는 학생들이 주로 이용한다. 흔한 카페조차 없는 곳에, 자유롭게 이용 가능한 27평형 문화 공간이 생기니 주민들로서는 반가울 따름이다. 문화 공간은 일요일이 되면 예배당으로 바뀐다.

문을 연 지 얼마 안 됐지만, 임 목사 바람대로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감당하고 있다. 평일이 되면 주민이 삼삼오오 모여 공방을 하거나, 뜨개질을 한다. 점심을 싸 와서 임 목사 부부와 함께 먹으며 교제한다. 기자가 교회를 방문했을 때도 주민들은 뜨개질을 하면서, 김밥을 나눠 먹었다.

예배당은 '영화관'이 되기도 한다. 임 목사는 성북문화재단의 도움을 받아 유럽 단편영화들을 상영하고 있다. 공청회 장소로도 사용됐다. 외지다 보니 버스가 잘 다니지 않는다. 학생들이 통학 문제로 큰 불편을 느꼈다. 주민들은 시민단체 관계자를 초청해 버스 배차 시간 조율을 위한 공청회를 여러 차례 개최했다.

"경제적 어려움은 이미 각오,
사회에 선한 영향력 미치는 게 최우선"

임 목사는 대형 교회 부목사로 지내다가 목회에 대한 회의를 느꼈다.  교회 개척을 하게 된 계기로 작용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교회가 지역사회에서 사랑방 역할을 안정적으로 지속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마땅한 수익원이 없다는 것이 대부분의 작은 교회가 겪는 문제다. 북악하늘교회도 카페에서 나오는 수익은 거의 없다. 주일예배 헌금과 후원으로 살림을 꾸려 나가고 있다.

임명진 목사는 일단 버텨 보자는 생각이다. 필요하면 하나님이 다른 방법으로 도와주실 것으로 믿는다.

"사회는 대기업 위주로 돌아가잖아요. 교회도 똑같아요. 대기업처럼 큰 교회는 잘되고, 작은 교회는 갈수록 어려워지죠. 많은 자영업자가 실패하듯 작은 교회도 마찬가지죠. 씁쓸하죠. 뭔가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가지고 시도해 보지 않는 이상 쉽지 않아요.

그럼에도 소형 교회 목회자들이 목회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요. 비록 경제적으로 어렵지만, 충분히 감당할 만한 일이라고 생각해서 그래요. (경제적) 어려움은 이미 각오했기 때문에 힘들지는 않죠. 사람들과의 관계를 맺어 가면서 '기적'이라 불릴 만한 일들을 경험하기도 하고, 하나님의 예비하심을 순간순간 경험하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목회를 해 나가는 거죠."

현재 북악하늘교회에는 20여 명이 출석하고 있다. 교인이 늘었으면 하는 마음이야 있지만, 임 목사는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고 믿는다. 교회가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것이다. 그러려면 주민들과 잘 지내는 게 사명이다. 임 목사는 "기왕 목회하는 거 지역 주민들과 재밌게 지내려 한다. 시간도 많고, 공기도 좋으니, 잘 지낼 수밖에 없을 것 같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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