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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화를 위한 거룩한 성경 읽기
[서평] 한주원 <말씀 앞에 서는 용기>(이레서원)
  • 크리스찬북뉴스 (cbooknews@naver.com)
  • 승인 2017.12.07 00:46

오래전, 교회를 다닌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의 이야기입니다. 부산 주례동 ㅈ교회 권사님이 운영하시는 하숙집에 2년 정도 머물렀습니다. 그 권사님은 언제나 성경을 읽으셨고, 전도에 열심이셨습니다. 매주 이틀 정도는 집 주변을 가가호호 방문하며 전도하셨습니다. 기존의 전도지 전도가 아닌 방문 전도에 가까웠습니다.

어느 날 권사님께서 저를 부르셨습니다. "정 선생도 같이 안 갈래?" 호기심에 "네, 그러지요"라고 대답해 버렸습니다. 전도지도 챙기고, 몇 가지 물건도 큰 가방에 넣고 출발하셨습니다. 그런데 출발하기 전에 작은 수첩을 하나 꺼내셨습니다. 수첩에는 지난주 다녀온 집에 대한 이야기와 기도 제목에 적혀 있었습니다.

다른 것은 하나도 기억이 안 나는데 출생한 지 몇 달 되지 않는 아이가 있던 집은 기억이 납니다. 철길 바로 밑에 셋방에 살던 새댁이었는데, 권사님께서 뭔가를 갖다 주기로 한 것 같습니다. 흐릿한 기억이지만 아마도 기저귀나 작은 저고리 종류였던 것으로 기억납니다. 아니나 다를까 세 번째 방문한 집이 바로 그 집이었습니다. 길지는 않았지만 방 안에 들어가 잠깐 이야기를 나눈 다음 아이를 위해 기도해 주고 나왔습니다.

처음 방문 때는 그냥 인사하고, 두 번 방문 때는 집에 들어가도 되느냐고 묻고, 세 번 방문 때는 시간을 내어 이야기를 들어 주었습니다. 가난한 동네인지라 갖가지 사연이 있었습니다. 술 중독자를 남편으로 둔 아내, 엄마가 바람을 피워 알코올중독이 된 아빠와 남동생과 같이 사는 여고생, 마흔이 훌쩍 넘었는데 독신인 사람, 시골에서 올라와 공단에 다니며 동생들의 학비와 생활비를 버는 청년 등 사연 없는 집이 없었습니다. 권사님은 그들 가정을 돌면서 사연을 들어 주고 기도해 주고, 가능한 물질로도 도우려 애썼습니다. 새로운 세계를 접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아직도 그 잔상이 지워지지 않습니다.

<말씀 앞에 서는 용기 - 구약 인물의 실패에서 배우다> / 한주원 지음 / 이레서원 펴냄 / 256쪽 / 1만 2,000원

오늘 이 책을 읽으면서 30년 가까이 흐른 지난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있으니까요. 저는 이 책이 특별한 의미로 다가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언제나 '승리하는 사람'의 샘플을 찾았습니다. 에녹의 믿음, 아브라함의 순종, 요셉의 인내, 다니엘의 기도 등등. 그러나 성경에는 성공보다 실패한 이야기가 더 많습니다. 아니, 모든 사람은 실패합니다. 개인뿐 아니라 온 인류가 실패합니다. 실패하지 않은 사람 없고, 실수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성경은 수많은 인물을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그들은 때로 위대한 존재로, 영웅으로 그려지지만 어떨 때는 조잡하고 악랄한 인물로 나옵니다. 한주원 목사는 우리가 감추고 싶은 인간의 어두운 면을 살펴봅니다. 가인의 폭력성, 라반의 갑질 본능, 아간의 탐욕, 삼손의 이기적 사랑, 사울의 인정 중독, 아합의 흐려진 분별력, 엘리바스·빌닷·소발의 소모적인 논쟁 등 인물도 다르고, 성향도 다르고, 시대도 다릅니다. 그러나 인간 본성에 면면히 흐르는 존재의 왜곡은 수천 년이 흐른 지금에도 여전히 옷만 바꿔 입었을 뿐 남아 있습니다.

가인은 하나님께 거절당했습니다. 성경은 그 이유를 분명히 밝히지 않습니다. 오랜 후에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에 대해 언급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었기에 그의 제물과 제사는 열납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제사의 열납 가부는 오직 하나님께 있습니다. 가인은 거절당했고 아벨은 열납되었습니다. 문제는 그다음에 일어납니다. 가인은 하나님의 판단을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노골적으로 하나님을 향해 분노"(19쪽)합니다. 심리학자들은 분노가 대상을 조정하려는 교만에서 나온다고 합니다.

제사를 올리기에 앞서 가인의 마음이 잘못되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그는 섭섭해하고, 분노하고, 결국 아벨을 시기하기에 이릅니다. 그리고 아벨을 불러내어 죽입니다.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사람들 속에는 분노가 일어납니다. 어떤 사람은 분노가 안으로 들어가 우울증을 일으키고, 어떤 사람은 분노가 밖으로 나와 타인을 해칩니다.

하나님은 가인을 향해 "죄를 통제하라"고 타이릅니다. 네가 죄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된다. 네가 주인이 되어 죄가 너를 지배하지 않도록 네 마음을 다스려라. 이것이 하나님의 충고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끝내 자신의 분노를 절제하지 못하고, 죄가 자신을 삼키도록 하여 분노 안으로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가인 이야기를 읽다가 문득 권사님과 전도하면서 알게 된 아이들이 생각이 났습니다. 엄마는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바람이 나 남편과 아이들을 버리고 집을 나가 버렸습니다. 아버지가 자식을 버린다는 말을 들었어도 엄마가 자식을 버린 것을 눈으로 확인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아마도 알코올에 중독된 남편과 자식들을 책임져야 하는 삶의 무게 때문에 도피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습니다. 죄를 짓지 않을 수 없으나 선은 넘지 말아야 합니다. 때로는 억울하고, 도무지 참을 수 없는 상황이라 할지라도 인내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열심히 쌓아 놓은 명성이 한 번 참지 못한 분노로 완전히 무너져 내릴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죄를 다스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안에 가인이 살아 있습니다. 자신을 서운하게 하는 하나님께 분노하고, 자신에게 해가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보복하려고 합니다.

사울 이야기는 저의 민낯을 보는 것 같아 얼굴이 뜨거웠습니다. 서두에 나오는 어린 시절 성공한 모습은 저와 많이 달라 별다른 감흥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부득이한 상황"(141쪽)에서는 심장이 뛰었습니다. 저의 모습과 너무 닮아 있었습니다. 일종의 상황 논리에 빠진 사울의 모습입니다.

사무엘은 사울에게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고 따집니다. 그러자 사울은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합니다. "적들은 코앞이고, 군사들은 무서워서 도망가도, 오기로 한 당신은 오지 않으니…". 사울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자신보다 사람들의 인기를 독차지한 다윗을 시기하기 시작합니다. 왕인 자신이 백성의 인기를 독차지해야 하는데 어떻게 촌뜨기 목동이 인기가 더 있을까, 사울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사울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눈길보다, 보이는 사람의 인기를 갈망했습니다. 그리고 무너졌습니다.

"평생 사람의 인정에 목마르다가, 인정을 받으면 교만해지고, 인정을 받지 못하면 낙심합니다." (150쪽)

사람은 변합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와 같아서 이리저리 휩쓸립니다. 사람은 도무지 믿을 것이 못 됩니다. 그럼에도 사울은 변치 않는 하나님께 집중하지 못하고, 변덕스러운 사람 말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마침내 사람들의 인기가 사그라질 때, 사울도 존재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전쟁에서 스스로 자결하고 맙니다.

혹시 우리 안에 그런 모습은 없는지요. 사람들의 한마디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는 피상적 존재는 아닙니까. 부끄럽게도 저에게는 너무 많습니다. 하나님만을 묵묵히 바라보아야 하는데 사람의 칭찬이나 관심이 없으면 기운이 빠지고 낙심하게 됩니다. 우리 안에 사울이 죽지 않고 살아 있습니다. 사람들을 만족하게 하기 위해 하나님의 계명을 범합니다. 그리고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합니다. 자신보다 인기가 많은 사람을 시기하며 은밀히 모함하려 합니다.

사람의 뜻에 맞추면 맞출수록 자신을 잃습니다. 그 사람에게 맞추기 위해 자신의 뜻을 꺾고, 자신의 계획을 접습니다. 자신의 희망도 내려놓습니다. 오직 타인의 칭찬을 듣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나중에는 무능한 사람이라고 비판할 것입니다. 남는 것은 허무함과 배신감뿐입니다. 사울의 말년을 보십시오. "겸손하고 착한 청년 사울"(145쪽)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사람을 따라가면 결국 모든 것을 잃습니다. 나도 친구도 하나님도.

이 책을 읽으면서 왜 오랜 일이 생각나는지 모르겠습니다. 분명한 한 가지는 사람은 저마다 지고 가야 할 짐이 있다는 것입니다. 누군가는 무겁고, 누군가는 가볍습니다. 그러나 그 짐을 내려놓는 순간, 가족뿐 아니라 자신까지 무너지고 맙니다. 성경 속에 수많은 인물이 나옵니다. 동일한 조건에서 시작했지만 누군가는 믿음의 경주를 완주하고, 누군가는 중간에 탈락합니다. 누군가는 열악한 상태에서 출발하여 거장이 되고, 누군가는 최적의 환경에서 시작하지만 타락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맙니다.

인간은 실패하는 것이 운명입니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악하고 교만합니다. 어쩌면 여기서 소개되는 실패한 인물들은 비극적 존재가 아닌 우리의 본성의 결과입니다. 어거스틴은 타락 이전에는 죄를 짓지 않을 수 있었지만, 타락 이후에는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즉 실패는 운명이고, 필연입니다. 악인들과 부족한 사람들로 소개되는 아간과 압살롬 같은 사람들은 우리들의 본모습입니다. 다만, 우리가 마지막까지 넘어지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부어지는 하나님의 부스러기의 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의 삶은 타락의 낭떠러지 위의 좁은 길을 걷는 것과 같습니다. 오늘 하루도 화 낼 일이 얼마나 많으며, 복수하고 싶은 생각이 얼마나 자주 들었습니까. 그럼에도 오늘 무사히 집으로 돌아와 가족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구약의 실패한 인물 속에서 자신을 발견했으며, 우리가 살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밖에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고 말하더군요. 정말입니다. 우리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삽니다. 만약 그 은혜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느 순간 가인과 같은 살인자가 되어 있을 것이고, 아간과 같이 탐욕스러운 존재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더 거룩해지기를 소망합니다. 내 안에 거짓된 자아를 죽이고,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으로 채워지기를 소망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에는 우리의 힘이 약합니다. 어쩔 수 없이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를 갈망합니다. 오늘도 그 은혜로 살아갑니다.

*이 글은 <크리스찬북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정현욱 / 목사,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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