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절입니다. 아기 예수의 탄생을 알리고 다시 오실 주님을 대망하는 대림절이지요. 교회는 물론이고 세상 곳곳에 캐럴이 울러 퍼지고 있습니다. 이 기쁜 소식을 맞으면서, 오늘날 기독교가 구약과 동떨어진 '신약 속의 예수'만 분리해 내려 하지는 않는지, 열방을 향한 구원보다 '배타적 구원관'에 치우쳐 있지는 않은지, 한번쯤 생각해 보게 되지요.

기독교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태동했지만, 그분의 탄생과 사역의 초점은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구축돼 왔습니다. 모판에 심은 벼 새싹을 커다란 논밭에 이식하는 것과 같은 모습이지요. 이는 곧 아브라함을 통해 모든 민족과 열방이 구원받게 하려는 하나님의 선교적 뜻과 일치하는 관점이지요.

그런데도 신약성경에 나타난 예수의 관점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그야말로 역사적 맥락과 '단절된 복음'에 불과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약시대에 당신의 사랑과 언약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셨고, 신약시대에 이르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 사랑과 언약을 새로 완성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에 관한 이 기쁜 소식만 해도 구약의 말씀과 뗄 수가 없는 것이지요.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통해서만 하셨던 일을 이제 메시아 예수라는 한 사람을 통해서 완성하신다. 역설적으로, 하나님은 그분의 구속 사역이 단 한 사람 예수라는 유일무이한 특수성으로 좁혀짐을 통해 그 구속의 은혜를 모든 민족에게 보편적으로 허락하시는 길을 여셨다. 예수님은 그 유일무이성을 구현하셨고 그 보편적 목표를 이루셨다. 이스라엘의 메시아로서 그분은 세상의 구원자가 되셨다." (62쪽)

크리스토퍼 라이트(Christopher J. H. Wright)의 <구약의 빛 아래서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성서유니온선교회)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의 나라와 구원의 은총이 제사장 나라로 삼으신 이스라엘 백성을 통해 열방으로 퍼져 나가게 하신 것처럼, 신약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그 특수한 구원이 온 민족의 보편적 구원이 되게 하시는 게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입니다.

이렇듯 이 책은 제목이 시사하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구약성경에 비춰 해석해 주고 있습니다. 복음서를 비롯한 여러 신약성경에서 밝혀 주는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 '인자', 그리고 '여호와의 종'에 관한 내용도 실은 구약의 언약을 통한 실체라고 설명하지요. 특히 예수 그리스도는 '다윗 언약'에 따라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이스라엘의 메시아이기는 하지만, '아브라함 언약'처럼 온 민족에 복을 주기 위해 오셨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게 특징입니다.

<구약의 빛 아래서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 크리스토퍼 라이트 지음 / 홍종락 옮김 / 성서유니온선교회 펴냄 / 308쪽 / 1만 2,000원

"구약시대에는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받고 신약에서는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생각은 완전히 잘못된 판단이다. 신약시대와 마찬가지로 구약에서도 하나님이 은혜의 주도권을 쥐시고 사람들을 믿음과 순종의 반응으로 부르신다. 출애굽기를 보면 처음 열여덟 장에 걸쳐 하나님이 능하신 구속 행위를 통해 그 분의 사랑과 약속을 성취하는 장면이 나오고 그 후에야 비로소 이미 구속받은 백성에게 율법을 주시는 장면이 등장한다." (92쪽)

"예수님은 율법을 거부하지 않으셨고, 율법의 기능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라는 더 높은 목적과 관련되어 있다고 보셨다.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에는 시편 119편의 정신을 반영하는 요소가 많다. 시편 119편의 저자는 율법을 즐거워하지만 성실한 순종으로 드러나는 하나님과의 풍성한 관계를 더욱 즐거워한다. 그가 율법을 즐거워하는 이유는 사랑하는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있는 힘을 주시기 때문이다." (237쪽)

이것은 '율법과 복음', '율법과 은혜'에 관한 내용입니다. 흔히들 구약에서는 율법을 지켜야 구원받을 수 있고,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구원받을 수 있다고 이분법적으로 이해하지요. 하지만 예수님은 율법을 폐기하러 오신 게 아니라 율법을 완성하고자 오셨지요. 위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아래로는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삶, 그것이 곧 사랑이요 율법의 완성이라고 하셨지요. 그 사랑을 이루기 위해 십자가 제물이 되신 것입니다.

그런데도 왜 율법과 복음, 율법과 은혜를 이분법적인 관점으로 나눠서 이해하려고 하는 것일까요. 분명코 율법은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방식으로 살아가도록 길잡이 역할을 위해 주신 것인데, 그것을 구원을 이루는 수단으로 여기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요.

이 책을 통해 생각할 때, 그 이유는 율법의 언약과 성취를 가나안 땅에 한정해 버리는 데 있지 않나 싶습니다. 이른바 애굽은 마귀와 사탄이 지배하는 '이 세상', 광야 40년은 '교회 생활', 가나안은 '천국'이라는 '모형론적 해석' 말이지요. 그래서 출애굽기의 십계명과 레위기의 율법을 온전히 지키지 못한 출애굽 1세대는 광야에서 다 심판받아 죽었고, 그 후세대만 가나안 땅 곧 천국에 들어갔다고 이해하는 것이지요.

어찌 보면 그럴듯해 보이지 않나요. 이 책에서는 율법의 언약을 그 시대에만 국한하지 않습니다. 이른바 '약속-성취-새로운 약속-새로운 성취'라는 순환 패턴으로 되풀이돼 왔다고 설명하죠. 구체적으로 '노아 언약'은 '아브라함 언약'으로 확대되고, '아브라함 언약'은 '출애굽 사건'으로 성취되지만 '시내산 언약'을 다시금 체결한다는 점, 그러나 '시내산 언약'이 가나안 땅에서 완성되지 못하기에 '다윗 언약'으로 새로 체결되고, '다윗 언약'도 궁극적으로 신약성경의 '예수님'에게로 최종 목적지를 향했다는 설명이지요. 물론 그 언약의 약속과 성취, 곧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는 것도 실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했다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이 없다면, 예수님은 금세 현실성을 잃어버리고 스테인드글라스 유리창에 새겨진 인물처럼 화려하지만 정적이고 부담 없는 존재가 되거나, 당시 유행에 어울리게 뒤틀어 옷을 입힐 수 있는 마네킹이 되어 버릴 것이다." (301쪽)

이 책의 마지막 내용입니다. 구약성경이 없는 신약성경의 예수 탄생의 존재감이 그렇다는 뜻이지요. 구약의 역사적 언약을 간과한 채 신약성경의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초점을 맞추려 하는 것도, 열방을 향해 열려 있는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보지 못한 채 기독교의 배타적 구원관에만 매몰되려는 것도 꼬집고 있는 것이지요. 아기 예수의 탄생을 알리고 다시 오실 주님을 대망하는 대림절 절기에, 우리가 깊이 있게 들여다봐야 할 또 한 권의 책이지 않나 싶습니다.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